신작 게임·영화·애니·술 그리고 미래 기술 by 코지마 프로덕션 10주년
코지마 프로덕션이 올해로 설립 10주년을 맞았다. ‘메탈기어 솔리드’의 아버지 코지마 히데오가 코나미를 떠난다는 소식에 놀랐던 게 엊그제 같은데, 독립 후 만든 게임이 벌써 두 편이나 된다. 이에 코지마 프로덕션은 자사의 설립 1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행사 ‘비욘드 더 스트랜드’를 23일(화) 토호 시네마 롯폰기 힐즈 점에서 개최했다.
무대에 오른 코지마 대표는 “10년 전 독립했을 때만해도 모든 것을 잃고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남은 건 동료들과의, 팬 여러분과의 연결뿐이었죠. 그것을 따라가 지금의 저와 코지마 프로덕션이 있는 겁니다. 창업 10년차 생존율이 한 자릿수라고 하더군요. 이렇게 10년간 살아남은 건 모두 여러분 덕분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오늘은 지난 10년을 되돌아보고 또 앞으로의 10년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고 인사를 전했다.
먼저 그는 과거 사진을 나열하며 코지마 프로덕션이 걸어온 10년을 회상했다. 겨우 4평 반까지 임대 사무실서 혼자 앉아 신작에 대해 기획한 일. CG 작업할 장비가 없어 신카와 요지가 모든 걸 직접 그리며 논의했던 일 등등. 또한 폭스 엔진 같은 걸 다시 구축하긴 비용과 시간이 부족하니 게임 엔진을 빌리러 다녔는데, 한 해 동안 30~40개 스튜디오를 방문하다 마침내 네덜란드의 게릴라 게임즈로부터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일단 엔진이 생겼더라도 장소, 사람, 그 밖에 온갖 기자재까지 모든 걸 준비하려면 거금이 필요했다. 하지만 당시 코지마 프로덕션은 아무런 실적이 없는지라 그 정도 대규모 융자를 내줄 은행이 존재치 않았다. 그런데 마침 한 은행의 지점장이 MSX 시절부터 ‘메탈기어 솔리드’를 즐긴 코지마 대표의 열성 팬이라 극적으로 융자가 성사됐다. 경영자의 인품, 사업의 장래성 이 두 가지를 믿고 코지마 프로덕션에 융자를 내줬다고.
덕분에 코지마 프로덕션이 여기까지 해낼 수 있었고, 당시 그 지점장 역시 10년 사이 미쓰비시 UFJ 은행 대표로 영전했다. 이 인연으로 양사는 코지마 프로덕션 X UFJ 콜라보 카드를 내년 선보일 예정이다. 미쓰비시 UFJ 은행은 스마트폰에서 구동하는 디지털 앱 카드를 준비 중인데 그 제1호가 코지마 프로덕션 콜라보 카드인 것. 해당 카드를 통해 쌓은 포인트는 코지마 프로덕션 공식 굿즈와 교환 가능하다고 한다.
다음으로 코지마 대표는 ‘코지마 프로덕션 20년 계획(20-Year Project)’을 우주 여행 준비, 태양계에서의 여정, 그리고 외주우로 떠나기까지 과정에 빗대 설명했다. 먼저 스튜디오가 설립된 2015년부터 첫 작품 ‘데스 스트랜딩’이 완성 및 출시된 2019년까지가 1st 페이즈. 일단 하나의 게임 개발사로서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위해 탄탄한 기반을 다졌던 시기다.
그 다음이 ‘데스 스트랜딩 2’로 기존 IP를 확장하고 또 신작도 만들며 팬들과의 연결을 강화하는 2nd 페이즈다. 이 시기는 2019년부터 현재 그리고 2030년까지 이어진다. 파르코 매장에 열릴 코지마 프로덕션 팝업 스토어, 월드와이드 ‘데스 스트랜딩’ 콘서트, 이날 MC를 맡은 아나운서 우나이 리사가 진행할 코지마 라디오 등이 2nd 페이즈에 포함된다.
끝으로 2030년부터 2023년까지가 3rd 페이즈로, 지금과는 크게 달라질 미래 엔터테인먼트 환경에 맞춰 콘텐츠를 만들어가는 시기다. 게임과 영화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AI, AR 등이 일상에 녹아든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IP를 선보이는 게 코지마 프로덕션이 가야 할 길이라고. 아직 5년 이상 먼 이야기라 구체적인 제품이나 일정까진 공개되지 않았다.
지난 6월 발매된 ‘데스 스트랜딩 2’ 캐스트 및 카메오들도 잠시 무대에 올랐다. 샘 포터 브리지스의 성우 츠다 켄지로, 코지마와 35년째 협력하며 아멜리와 브리짓의 성우이기도 한 이노우에 키쿠코, 레이니로서 영어와 일본어 연기를 모두 소화한 쿠츠나 시오리, OST 작업은 물론 깜짝 출연하기도 한 가수 미우라 다이치, 끝으로 공포 만화의 거장 이토 준지까지. 이야기 자체는 간단한 출연 소감과 코지마 프로덕션의 10주년을 축하하는 환담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신작 소식이다. 먼저 XBOX 게임 스튜디오와 협업 중인 ‘프로젝트 OD’는 ‘OD - KNOCK’으로 타이틀이 정식 결정됐다. 티저 영상에선 고풍스러운 적갈색 문을 누군가 두드리고(Knock) 이내 카드 한 장을 밀어 넣는다. 뒷면에 공포스러운 얼굴이 그려진 카드는 ‘그들의 ■■■■을 위해 불을 밝혀라’라 적혔다. 다음 장면은 비가 거칠 게 쏟아지는 와중에 어느 방 안이며 주인공이 제단으로 가 여러 초를 차례로 밝힌다. 그러나 등 뒤로 기분 나쁜 노크 소리가 이어지고 결국 어떤 거한이 들어와 주인공을 두 손으로 덮친다.
티저 영상 속 주인공이자 첫 포스터를 장식한 배우는 영화 ‘그것’에서 비벌리 마쉬로 열연한 소피아 릴리스다. 이외에 뭇 게이머에게 ‘레드 얼럿 2’ 유리로 친숙한 우도 키어, ‘유포리아’의 헌터 샤퍼도 출연한다. 노크 소리를 공포 요소로 활용한 아이디어는 코미디언이자 이제는 영화 감독으로 거장 반열에 든 조던 필이 냈다. 엔진은 데시마가 아닌 언리얼이며 필 스펜서 대표에 따르면 XBOX 게임 스튜디오가 관련 노하우를 전수했다고.
이들은 ‘OD - KNOCK’에 대해 아직 밝힐 게 많지 않으나, 무척 인터랙티브하며 영화와 게임의 경계를 허무는 혁신적인 작품이라 호언했다. 코지마 대표는 여태껏 잠입, 배송처럼 새로운 게임을 추구해왔는데 이것 역시 지금까지 누구도 해본 적 없을 거라고. 때문에 개발 진척도를 몇 %라 답하는 건 무의미하며, 밤 동안 스튜디오에 들리던 정체모를 소리를 녹음했다든지, 영혼을 3D 스캔하려 시도했다든지 진심인지 농담인지 모를 이야기를 들려줬다.
A24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데스 스트랜딩’ 실사 영화화는 아직 외부에 선보일 사진이나 영상이 없으나, 대신 마이클 사노스키 감독이 직접 무대로 올라 연출을 맡은 소감을 전했다. 그는 “큰 프로젝트를 제안 받고 꽤 긴장했는데 코지마 씨와 A24를 만난 후 창작의 자유가 크다는 데 안도했습니다. ‘데스 스트랜딩’의 고유한 혼을 유지하며 이 세계관에 아직 보지 못한 캐릭터, 알려지지 않은 스토리를 표현할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 중입니다”고 말했다.
즉 ‘데스 스트랜딩’ 실사 영화는 샘 포터 브리지스가 북미를 횡단하던 그 게임 내용과 다르다는 것. 코지마 대표 역시 “70~100시간짜리 게임을 2시간으로 줄이긴 어렵습니다. 대신 세계관을 공유하는 독립된 작품이길 원했고, 어려운 작업이기에 마이클 사노스키 감독께 꼭 부탁드리고 싶었죠. 또한 제가 관여하면 너무 세세한 부분까지 일일이 트집을 잡고 말 테니 세 걸음 정도 물러나서 지켜보자는 마음입니다”고 부연 설명했다.
‘데스 스트랜딩’ 극장판 애니메이션도 한창 제작 중이다. 실사 영화와 마찬가지로 세계관을 공유하는 독립된 스토리이며, 그 각본은 ‘더 레드 로드’와 ‘라이즈드 바이 울브즈’의 아론 구지코브스키가 썼다. 감독이 다소 의외인데, 다름아닌 ‘프리큐어’ 극장판을 줄곧 연출해온 미야모토 히로시가 맡았다. 무려 2년 반 전부터 미야모토 감독이 코지마 대표에게 먼저 러브콜을 보내 서로 깊은 이야기를 나눈 끝에 감독 자리를 받게 되었다고.
극장판 애니메이션 제목은 ‘데스 스트랜딩: 모스키토(Mosquito, 모기)’로서, 해당 부제가 붙은 이유는 주인공이 BT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빨아먹는 능력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미야모토 감독이 ‘프리큐어’ 극장판부터 장기로 내세우는 육탄 액션이 많이 등장하며, 신카와 요지가 붓펜으로 그린 컷을 디지털 채색해 완성하는 독특한 방식으로 작업했다. 이렇게 그려낸 컷이 1,500장 이상이라고. 최종본은 티저 영상보다 더 보기 좋을 거라고 덧붙였다.
앞서 ‘OD - KNOCK’와 XBOX 게임 스튜디오와의 협업이라면 SIE와는 ‘PHYSINT’가 있다. 차세대 택티컬 스텔스 액션 게임을 표방하나 아직 개발 극초기라 보여줄 게 포스터 형태의 비주얼 아트 한 장뿐. 대신 세 명의 캐스트가 우선 공개됐는데 ‘퓨리오사: 매드맥스 사가’서 퓨리오사의 어머니를 연기한 찰리 프레이저, 일본 여배우 하마베 미나미, 그리고 국내 제일의 원 펀치 캐릭터성을 지닌 마동석(Don Lee)이 그들이다. 다만 이들 중 주인공은 없을 가능성이 큰데, 공개된 포스터 속 캐릭터는 아직 얼굴이 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지마 감독은 앞서 ‘데스 스트랜딩 2’ 당시 레니이의 쿠츠나 시오리를 예로 들어 동양인 여성은 페이셜 스캔이 어렵다고 토로한 바 있다. 얼굴에 요철이 적고 매끈한 피부라 좀처럼 캡처가 잘 되지 않는다고. 그래서 쿠츠나 시오리를 위해 특별한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는데, 그것이 ‘PHYSINT’에도 한층 더 발전된 형태로 적용된다. 이날 현장에선 신 기술을 통해 3D로 구현된 하마베 미나미의 얼굴이 한 가지 예시로 보여졌다.
잠시 쉬어 가는 느낌으로 세이자부로 시미즈 쇼텐 ‘자쿠(ZAKU)’과의 콜라보도 발표됐다. 코지마 프로덕션 10주년 콜라보 기획의 일환으로, 스튜디오 마스코트인 루덴스 로고가 그려진 특별한 사케를 제작 및 판매한다. 세이자부로 시미즈 쇼텐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더 좋은 술을 만들자는 의미에서 ‘지을 작(作)’을 자사 주류 브랜드로 채택했다고 한다.
이어서 헐리우드의 거장 조지 밀러, 기예르모 델 토로와 ‘공각기동대’로 명성이 높은 오시이 마모루 자리했다. 이들은 모두 영화광 코지마 히데오의 우상이자 ‘데스 스트랜딩 2’에 캐스트 및 카메오로 출연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야기 주제는 코지마 프로덕션 3rd 페이즈를 좌우할 핵심인 ‘미래의 엔터테인먼트’. 이들은 AI가 영상물을 만드는 데 드는 시간과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임에 따라, 보다 개인적이며 작가성 강한 작품이 빠르게 늘어나리라 봤다. 여태껏 1, 2년씩 걸리던 작업이 1, 2주 혹은 그보다 더 짧은 기간에 가능할 거라고.
또한 예술 영역에서 기술의 영향은 언제나 있어왔다며, 사진기로 인해 사실주의 화풍이 저물고 인상주의 등이 등장한 흐름을 짚었다. 한편, 6만 5,000년 전부터 끊임없이 반복 및 재생산되는 가족 문화에 대해 언급하며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근본적으로 변치 않는 스토리텔링이 존재함을 역설했다. 이제 AI 같은 기술 덕분에 모두가 이야기꾼이 되었음에도 서로 연결되기 보다 분열이 커지는 상황에 대해선 다들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코지마 프로덕션과 나이언틱의 협업 소식도 전해졌다. 나이언틱 스페이셜의 LGM(대규모 지리공간 모델)은 지상 및 항공에서 수집한 실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구축되었으며, 이를 처리 및 정렬하여 AI로 학습시키는 프로젝트다. 여기에 코지마 프로덕션이 힘을 보태 연결을 주제로 한 일종의 스토리텔링을 가미한다고. 코지마 대표가 쓴 표현을 빌리자면 ‘데스 스트랜딩의 현실 버전’ 같은 느낌이다. 새로운 지역, 환경, 건물, 사람을 찾고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있는 게임인 셈. 물론 진짜 ‘데스 스트랜딩’ IP를 쓰는 건 아닌 듯하다.
끝으로 코지마 대표는 “여전히 세계의 분단과 고립이 현재진행형인 가운데 그들을 연결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랄까, 아트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 연결을 실제로 실천하는 건 저나 여러분일 겁니다. 그걸 위해 앞으로 10년이고 20년이고 열심히 나아가고 싶습니다. 우리 함께 이 연결을 소중히 여기며 20년, 30년 살아갑시다. 오늘은 감사했습니다”며 행사를 마쳤다.
코지마 프로덕션은 조만간 자사의 설립 10주년을 기념하여 특별 전시회를 개최한다. 단순히 제품 판매를 위한 팝업 스토어가 아니라 코지마 프로덕션이 10년간 걸어온 역사, 그 증거나 다름없는 각종 자료의 아카이브 성격이 될 거라고.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계획을 엿볼 수 있는 자리이자 오늘 소개된 콜라보 제품이 전시되기도 할 테니 많이 와달라고. 보다 자세한 사항은 코지마 프로덕션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수시로 안내될 예정이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