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민하준 원수의 전역은 각하(却下)되었다.
아니, 정정한다.
기각(掎角)되어졌다.
벨리코프 합참의장까지 나서서 민하준 원수의 전역을 요청하였지만, 장성급 인사의 최종 결정권자인 라비아타 통령은 민하준 원수에게 끝내 전역을 윤허하지 아니하였다.
“안 돼애애애애애애애!!!!!!!!!!!!!!!!!!!!!!!!!!!!!!!!”
“안 되기는 뭐가 안 되노.”
“어여 인나라, 기절 안 한거 다 알고 있디.”
마치 행보관에게 붙잡혀 강제로 끌려가 전문하사가 되어버린 병사처럼 녹아버린 하준을, 부인인 하루가 잔소리 하며 강제로 일으켜 세워지며 타박을 받았다.
“하이고 이 양반아...”
“그 사단을 내고 돌아와서 좀 변한 줄 알았더니, 어떻게 이런 거에는 또 변함 없이 한결 같을까, 으이구...”
“이렇게 된 거 이참에 아예 그냥 오르카 뒷방 늙은이가 되려던 나의 계획이...”
“뒷방 늙은이는 뭔 뒷방 늙인이고?! 액면가는 아직도 파릇파릇한 이팔청춘이고만!!”
“내가 올해로 나이가 2XX살이야!!”
“내도 올해로 나이가 2XX살이다, 안 카나?!?!”
“저게 그 멸망 전에 말로만 듣던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회춘하는 만화 그거 아ㄴ...”
“쉿, 조용.”
“그렇게 따지면 여기서 할머니, 할아버지 아닌 사람 없어.”
“아~...”
거실에서의 남편과 하루의 만담을 보며 멸망 전 어느 일본 만화가 생각난 은서가 그 만화의 제목을 말하려고 하자 다미가 만류하였다. 자신이 주인공인 줄 모르는 트루먼 쇼와 똑같은 삶을 살았었긴 해도, 엄연히 만화와 애니의 성지인 일본에서 살았으니, 다미도 모르는 만화가 아니었다.
사실 하준의 말대로라면 여기서 할머니 아닌 사람은 없었다. 제1차 연합전쟁 이후에 태어난 은서랑 다미도 서로 한 동갑에 거의 200살을 넘어가고 있었다. 하물며 멸망 직후 라비아타 통령에 의해 유전자 씨앗에서 태어난 수월이도 올해로 나이가 150살이 넘었다. 친우 유진과 라자르의 부인들도 전부 멸망 전에 태어났기 때문에 거의 200살을 넘어가는 사람들이었다.
거기다가...
“그러고보니 우리 새댁은 나이가 어떻게 돼?”
“나, 나 말인가?”
“당연하지. 여기서 새댁이 새댁 말고 또 누구 있어?”
“그, 글세... 그러니깐...”
“나도 한 2세기는 넘었지? 난 제1차 연합전쟁이 벌어졌을 시기에 태어났으니깐. 나도 200살은 훌쩍 넘기겠군.”
“와...”
하준의 여섯 번째 부인으로 들어온, 새댁인 칸 또한 남편이나 하루 못지 않게 나이가 많았다.
여담으로 남편이 낙원에 다녀오고 나서 말도 없이 한 달 가깝게 말도 없이 가출을 했었기 때문에 얼떨결에 칸이 여섯 번째 부인으로 들어온 것이 영 꺼림찍할 수도 있을 상황이었으나, 어쨋건 남편이 무사히 돌아왔으니 하루나 수월이나 은서나 다미나 다운이 다섯 명 모두, 그냥 자매 한 명 늘어났다 생각하고 그냥 넘어갔다. 물론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자면 잔소리 할 게 한 두 가지가 아니라서 그냥 머리 아프지 말고 넘어가자는 분위기인게 더 컸지만.
하여튼 간에, 사실 인류가 멸망하고 거의 2세기 가깝게 지났는데, 이제와서 나이 운운하는 것도 의미도 없을뿐더러, 하준과 하루의 투닥거리는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유치하기 그지 없다.
하준의 전역이 기각된 데에는 다분히 평의회의 의도였다.
원래 하준의 최초의 계획은 전역을 하여 현역에서 예비역으로 신분을 전환시키는 것이었다.
멸망 전 미군의 현역-예비역 복무 제도를 그대로 따라온 오르카 인류 저항군은, 생각보다 적지 않은 수의 대원들이 현역으로 입대 혹은 임관하는 동시에 예비역으로 신분을 전환한다. 그렇게 현역 입대와 동시에 예비역 신분으로 전환된 대원들은 평상시에는 일반 민간인으로 있다가, 일정 기간이 되면 군에 소집이 되어 주기적인 군사훈련을 받아 전투력을 유지한다.
혹은 이들 중에는 아예 멸망 전부터 생존하여 멸망 전의 군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저항군으로 군적을 전환하여 계속 예비역 신분으로 남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대표적으로 유진의 아내인 복규리 소령(예)과 엠마 원사(예)가 있었으며, 라자르의 아내인 반일라 상사(예)가 있었다. 간혹 멸망 전의 군적을 가지고 저항군에서 현역으로 다시 복귀하여 군복무를 이어나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대표적으로 송나빈 준장(진)과 임제인 대령이 있었다.
이 뿐만 아니라 본인이 필요에 의해서 원한다면 예비역의 신분에서 다시 현역으로 얼마든지 자유롭게 전환을 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하준도 원래는 전역하여 예비역 민간인이 된 뒤, 필요하다면 나중에라도 다시 현역으로 복귀하는 것을 염두하는 쪽으로 계획을 잡고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 진행이 되었다면 적어도 한 1년 가량 정도를 군에 대해서 생각지 않고 푹 쉴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디 오르카가 유능한 장성의 전역을 쉽게 받아들일 것인가.
라비아타 통령 혼자서는 도저히 결정할 수가 없어서 저항군의 국군 통수권자 서열 2위와 3위인 요안나 부통령과 고진아 의장까지 모두 모여서 민하준 원수의 전역에 대해서 논의가 오갔다. 그리고 논의 결과 최종적으로 민하준 원수의 전역은 기각되었다. 전 기각의 사유는 아직 전군이 데프콘4에 준하는 준전시태세인 상황이다보니, 유능한 장군 한 명을 내보낼 수는 없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다만 현재 민하준 원수의 상태가 아직까지도 외과적인 재활훈련을 받아야 하는 데다가, 정신건강적인 부분에서도 계속 상담 치료를 받는 등 아직도 온전하게 군의 업무를 볼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감안하여 그에게 병가를 기본 180일을 승인하는 것으로 그의 전역을 대체하였다. 180일 초과 후 추가 90일을 더 승인 받을 수 있도록 통령이 자신의 권한을 끌어모아서 그에게 배려한 것이었다.
전역을 반려당한 시점에서 이미 배려라는 것이 통할까 싶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휴가 빼고 아홉 달이나 쉴 수 있는 거면 완전 혜자다 아이가? 좋게 좋게 생각하그라, 오빠야.”
“결국 9개월 뒤에는 복귀해야하는 건 매한가지 아니냐.”
“오빠 계속 그라믄 통령한테 달려가서 병가고 나발이고 당장 복귀시키라고 말할기다.”
“아, 알았어, 미안해, 안 그럴게!”
“9개월 씩이나 쉬는 구나, 우리 남편.”
“근데 그러면 그렇게 오래 쉬는 동안 오빠 자리는 누가 맡는데?”
“원래는 라자르 오빠가 여지것 직무대리 했던 것처럼 가려고 했었는데, 합동참모차장 자리는 기왕이면 육군 대장이 와야 할 것 같다고 그래서, 한 동안은 마리 대장님이 맡기로 하셨어.”
“마리 대장 출세하네.”
“아니지, 그냥 인사 이동 수준인가.”
육군본부를 비롯한 각 군 본부는 직제상으로는 합동참모본부 소속인 것과 별개로, 각 군의 군정권을 행사하는 각 군 최고사령부로서의 상징성도 강하기 때문에, 편제상 각 군 본부는 합동참모본부 소속이면서도 같은 평행선상에 놓여있는 독립 기관으로도 볼 수 있었다. 쉽게 말해서, 참모총장들은 합동참모의장의 부하이지만 직책 상 각 군의 최고 군정사령관이기도 하며, 합동참모본부의 장인 합동참모의장은 각 군의 군정권은 없는 대신 군령권을 가지고 있는 최조 작전사령관인 셈이었다.
때문에 합동참모본부와 각 군 본부 안에서의 인사 이동은 딱히 요직, 한직의 개념이 없으며, 그냥 전속 보직으로 보는 시선이 강했다. 가령 항모전단장을 하다가 해군본부 작전참모부 항해처장으로 발령된 준장은 그 나름대로 영전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처장에서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본부 기획처장으로 발령된 준장은 딱히 영전했다기 보다는 그냥 전속 보직을 했다고 보는 편이었다.
물론 멸망 전 군에 대한 보편적인 시각으로 보면 그렇다는 것이고, 철충과 펙소 콘소시엄과의 전쟁을 준비하는 저항군 특성상 대원들 대다수가 딱히 요직, 한직의 개념을 두고 있지는 않는다. 부대 특성 별로, 기능 별로 다 각자가 맡은 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고 여길 뿐이었다. 앞서 언급한 예비역 하다가 현역으로 복무 전환해서 군 복무 하는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수월이 육군참모총장인 마리 대장이, 비록 직무대리긴 해도 합동참모차장이 된 것을 두고 영전이라는 표현에서 인사 이동이라고 바꿔 말한 것이었다.
물론 옛날에 마리 대장과 레드후드가 벌인 짓을 생각한다면 그 표현도 딱히 틀린 표현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미안하면 어여 빨리 나갈 채비나 단디 해라. 시간 거의 다 됐다, 아이가?”
“오늘은 영 아닌데 나 안 가면 안 될까.”
“안 된다! 마키나도 보니께 여기오자마자 벌써 예약 다 밀리고 엄청 바빠보이든데!”
“그래도 나름대로 오빠야 편의 봐준다꼬 자기 시간까지 다 빼주시는 분한테 그라믄 아이된다, 안 카나?!”
“아... 그래도 오늘은 영 아닌데, 정말...”
“이놈의 오빠야가 증말...!!”
낙원에서 오르카로 합류하고 하준과 관련된 소동이 정리되고 난 이후, 마키나는 오르카 병원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로 들어갔고, 그녀의 명성을 들은 많은 환자들이 그녀를 찾느라 병원이 인산인해를 이룰 정도였다.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마키나는 하준을 위해서 자기 시간을 따로 빼서 그의 상담 진찰을 봐주고 있었는데, 전역이 기각된 하준이 병원 가기 싫다고 땡깡까지 부리기 시작하자, 하루는 늘어져가는 남편의 그 모습에 또 다시 속에서부터 분노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때였다.
“하루? 내가 같이 다녀오겠다.”
“새댁이 다녀오겠다꼬?”
“괜찮긋나? 이 오빠야 이래봬도 손이 많이 가는 아다, 안 카나.”
“누가 애야??”
“괜찮다. 나도 잠시 나갔다와봐야할 일이 있었거든.”
“그르나. 이러면 내가 괜히 미안해지는데...”
“무시 당하네...”
“신경쓰지 마라, 앞으로도 함께할 가족이잖나.”
“그렇다면 나야 감사하제.”
“근데 가족이면 그 딱딱한 말투부터 어찌 해보는게 좋지 안긋나.”
“아, 음...”
“... 그러니깐...”
“알았... 네.”
“둘 다 가야할 길이 머네, 아직...”
“하여튼 부탁한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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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중 삽화로 사용되는 그림과 사진의 출처는 구글링과 핀터레스트입니다.
지난 챕터처럼 후일담이 길어 파트2로 나누었습니다.
저항군 병원에는 마키나나 정다운, 정리제 말고도 수 많은 의사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환자들을 위해 열심히 근무하고 있습니다.
저항군 특성상 군인의 치료도 도맡기 때문에 의사들의 신분은 군의관을 겸직하기도 합니다. 통상시엔 민간인인 예비역 신분으로 있습니다.
마키나 또한 오르카에 합류했을 당시, 멸망 전 군적을 그대로 이어나가는 저항군 논공제도 특성상, 현재 계급은 1계급 진급하여 준장으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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엇, 그런 방법이...! | 24.01.05 16:4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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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기대하곘습니다~ | 24.01.05 16:4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