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여기 지휘관이 누구야?!?!”
공도에서 사이렌을 미친 듯이 울리며 불법적으로 추월하여 장갑차 대열의 선두 차량 앞에 강제로 멈춰선 군용 코란도 스포츠에서, 짱딸만한 키에 단발머리, 치켜올라간 눈꼬리를 가진, 딱 봐도 간사하해보이고 성격 배배 꼬인 것 같이 생긴 여우상을 가진 여군이 차에서 내리며 소리쳤다.
목소리에 독기를 한 가득 품고서 장갑차 대열을 향해 빼액-! 거리며 소리를 지르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명령을 받고 파주시로 출동 중이었던 제55기동사단의 사단장인 이프리트 이희주 소장이 전술기동차량에서 내려 코란도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다가가니, 이휘주 소장 자신보다도 더 키가 작은 별 세 개짜리 중장이 차에서 나와있었다.
“제가 지휘관입니다. 누구십니까??”
“나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고은빈 중장이다!!!”
“지금 즉시 원대로 복귀해, 어서!!!!”
“원대로 복귀하란 말입니까??”
“아니, 작전본부장께서, 여기까지 무슨 일이십니까??”
“너, 지금 누구 명령을 받고 부대를 이동시키는 거야, 어????”
“우리 군단장님 명령입니다. 내년에 있을 자유의 방패 훈련에 대비한 전초 훈련을 위해 부대를 파주시로 이동시키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성노을 중장이??”
“예, 그렇습니다. 문제 있습니까??”
“문제?! 당연히 있지!!!”
“육본에 보고되지 않은 병력 이동이,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자네는 지금?!”
“그러니깐 말씀드렸잖습니까, 방금 전에. 연합 합동 전초 훈련을 위해서 부대를 이동시키는 것 뿐이라고. 그리고, 훈련에 대한 보고는 이미 합참이랑 국방부에도 모두 보고가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 대체 뭐가 문젭니까??”
“이... 이이...!!!”
고은빈 중장은 할 말이 없었다.
이희주 소장의 말에 전혀 반박할 거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한미 연합 합동 전초 훈련이라고 국방부와 대통령실까지 보고가 올라간 마당에, 은하수의 일원인 고은빈 중장이 그들을 막아세울 수 있는 논거는 없었다. 차후 은하수의 거사를 위한 일이니, 물러가라고 대놓고 말을 할 수도 없을 노릇이었을 터. 그렇다고 이대로 놔두면 분명 나중에 큰 걸림돌이 되고 말 것이다. 민하준이 이 양반이 머리를 굴려도 아주 제대로 굴리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제대로 된 반박 거리도 제시하지 못하고 어거지를 쓰고 있는 고은빈 중장을 보고 있노라니, 사단장인 이희주 소장도 답답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여기가 지금 사람이 잘 안 다니는 도로라서 그렇지, 사단 병력 전체가 움직이는 것인 만큼 파주로 향하는 1번 국도에는 지금 수십~수백 대의 장갑차, 전차, 기타 군용 차량들이 나라비로 줄을 지어서 서서 길을 완전히 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4차선 도로 한 복판에서 어거지를 쓰며 길을 막고 있는 중장을 눈 앞에 두고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해 하는 가운데, 저 멀리서 또 다른 사이렌 소리와 함께 전술차량 한 대가 나타났다.
- 삐용~! 삐용~! 삐용~! 삐용~! 삐용~! 삐용~!
성판에 별 세 개가 달린 전술차량이 나타나 갓길에 멈춰섰고, 차량 문이 열리자 지휘봉을 들고 키가 거의 190은 되어보이는 포니테일의 장군이 차에서 내렸다.
온 몸을 꽁꽁싸맨 두꺼운 동계용 전투복 차림임에도 불구하고 가릴 수 없는 묵직함은 덤이었다. 그걸 본 고은빈 중장은 절로 기분이 나쁜지 다 들리도록 혀를 찼다.
“쳇!...”
제55기동사단의 직속 상급 부대인 수도군단의 군단장, 성노을 중장이었다.
그녀는 제17기동사단이 동두천으로 가던 도중 제2기갑사단과 중간에 합류한 것을 보고 대열에서 이탈하여 55사단이 파주시까지 잘 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따라온 것이었다. 그런데 기동사단 예하의 수백 대의 차량들이 파주시로 향하는 길목의 2차선 도로 위에 완전히 멈춰서 점거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심상찮음을 느끼고 사이렌까지 키고서 달려온 것이었다.
군단장인 성노을 중장의 등장에 55기동사단장인 이희주 소장이 다가가 경례를 하였다.
“충성!!!!”
“충성! 군단장님.”
“사단장, 왜 갑자기 부대를 길 한 복판에 세워두고 있는 겁니까?”
“그게, 합동참모본부에서 작전본부장이 나와...”
“야!”
“거기 가슴 대가리 만한 바이오로이드! 너 잠깐 나 좀 봐.”
“?!?!”
고은빈 중장이 이휘주 소장을 옆으로 밀치고, 억척과 혐오가 가득한 어조로 성노을 중장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말하였다.
이희주 소장과 성노을 중장, 그리고 현장에 있던 병사들은 순간 자신들이 잘못 들은 것인가 싶었다.
육사 사조직인 은하수. 그 중에서도 고은빈 중장은 바이오로이드 출신 군인들에 대한 반감이 매우 큰 사람이었다. 아니, 거의 혐오를 한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대한민국 육군에서 안 그래도 좁은 여군의 입지를, 바이오로이드 출신 장교들이 등장하면서 더욱 좁아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여군은 남군에 비해서 입대부터 신체적 불리함을 안고 있으니깐 말이다.
그런데 바이오로이드 출신 군인들은 그런 신체적 조건 마저도 없이 남군들과 진급 경쟁에서 전혀 무리 없이 경쟁할 수 있으니, 당연히 전통적인 의미의 여군들은 더더욱 진급에 불리할 수 밖에 없었다. 고은빈 중장도 사실 육군사관학교 출신에 은하수의 라인만 잘 탔다는 것만 제외한다면, 애초에 중장은커녕 소장, 준장도 못달아보고 대령에서 전역했었어야 했을 것이다. 육사의 대장 진급 확정 보직인 작전본부장도, 사실 윤도철이 넣어준 것이었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 때문에, 사람들은 아예 남군, 여군, 바이오로이드군이 따로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리고 그 만큼, 여군에 대한 부정적 시선도 늘어났다.
이 때문에 고은빈 중장 뿐만 아니라 일부 여군들 사이에서도 바이오로이드 군인들을 향한 혐오와 차별의 시선이 적잖은 편이었다. 당연히 바이오로이드 출신 군인들은 대체로 그런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 편이었고, 이런 여군들의 편협한 혐오와 차별의 시선을 바라보는 사회도 여군들에게 그 만큼 더 열심히 하면 되지 않겠느냐며 오히려 여군들을 향해 비판을 가할 뿐이었다.
물론 이런 정당한 비판을 귀기울여 들을 여군은 아마 없겠지만 말이다.
“... 나한테 한 말입니까, 작전본부장?”
“여기 그럼 가슴이 머리 보다 더 큰 바이오로이드가 너 말고 더 있어??”
“지금 그거 성희롱 발언이라는 건 아시죠?”
“바이오로이드 주제에 성적 수치심은 좀 느끼나봐?”
“작전본부장, 지금 군단장님께 무슨 예의 없는 말입니까?!”
“됐어요, 사단장. 내가 상대를 할 테니, 사단장은 다시 집결지까지 부대를 이동시키세요.”
“... 알겠습니다.”
이희주 소장이 군단장의 지시를 받고 다시 부대를 출동시키기 위해 전술차량에 탑승하였다.
성노을 중장은 방금까지의 존댓말을 치우고 고은빈 작전본부장에게 최소한의 예의만 갖춘 어조로 말하였다.
“고 장군...”
“남의 부대 훈련하는 데 와가지고 훼방놓고 하는게 대체 무슨 짓인가? 그걸로도 모자라서 남의 부하 보고 있는 앞에서 대놓고 남의 성희롱이나 하고 자빠져있고.”
“작전본부장이란 양반이 그렇게나 할 일이 없나?”
“허, 허허... 이, 이게 이제 위아래도 없네??”
“그래, 말 한 번 잘 했네. 지금 누구 맘대로 부대를 함부로 이동시키고 난리야?!”
“작전사령관님께서 내년 초에 있을 자유의 방패 훈련에 대비해서, 주한미군과의 연합 합동 전초 훈련 지시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훈련 계획에 따라 집결지로 출동하는 중이었고.”
“합참 뿐만 아니라 국방부와 대통령실에도 충분히 보고가 된 사안인데, 도대체 합참에서, 그것도 작전본부장이란 양반이 나와서 도대체 무슨 근거로 훈련을 막겠다는 건가?”
“그렇다고 육본은 건너뛰고 보고를 해?!”
“이것들이 단체로 돌아가지고?!”
“그래, 그러면 육본에서 나와서 나한테 지랄하면 될 것이지, 왜 당신이 나와서 애 먼 우리 부하 욕하고, 거기다가 사람들 오고가는 길 까지 틀어막고 난리냐고?”
“이, 그, 그건...!!!!”
참으로 멍청하게도, 순간 하마터면 윤도철이 그렇게 하라고 시켰으니깐 이라고 말이 나올 뻔 하였다. 무리는 아니었다. 원래 고은빈 중장 본인부터가 말을 하기 전에 생각이란 걸 안 하고 사는 사람이었으니깐.
그녀가 굳이 생각이란 걸 해야할 때가 있다면 상대방을 어떻게든 까내릴 때 뿐이었다.
그 마저도 저열하고 저속한 단어를 쓸 뿐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누가 될 만한 사람이면 가학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서슴치 아니하였다.
아까도 앞서 말했듯 은하수의 연줄을 통해 진급을 했지, 실상은 진즉에 대령에서 장포대 하고 전역을 했어야 할 인물이었다.
은하수 출신들이 원래 능력과는 별개로 인품이 하나같이 개차반이었지만, 고은빈 중장은 그 중에서도 유별나게 인성이 좋지 않았고, 능력또한 그렇게 좋지 않았다.
경기도 파주시는 개성에 있는 육군본부와 평양에 있는 지상작전사령부를 수도 서울과 연결해주는 길목들 중 가장 최단 루트인 1번 국도가 위치한 곳이었다. 은하수는 이 길목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는데, 제2차 한국전쟁 이후 국군이 중국의 동북삼성과 수도 베이징을 제외한 허베이성, 산둥성을 점령하 관할하게 되면서 국군의 주요 부대가 38도선 이북으로 이전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충남 계룡대에 있던 삼군 본부는 개성시로, 지상작전사령부는 평양으로 이전하게 되면서 후방 작전사령부였던 제2작전사령부가 기존 지상작전사령부가 있던 경기도 용인으로 이전하여 수도권을 포함한 한반도 남부 지역을 관할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때문에 전통의 육군사관학교 출신 중장급 장성이 임명되는 수도방위사령부를 제외하면 사실상 수도권 지역의 방위는 비육사 출신들이 주류를 맡게 된 셈이었다.
후방지역이라면서 수도권 방위를 담당한다는 점 덕분에, 종전 이후의 제2작전사령부는 육사 출신들에게 있어 다소 애매모호한 부대가 되어버렸다. 제2작전사령관을 하자니 상대적으로 지상작전사령관에게 밀릴 수 밖에 없고, 그렇다고 지상작전사령부로 가자니 수도권 방어의 총 책임자들 중 한 명이라는 자리가 아깝고, 그야말로 계륵이 따로 없었다. 이러한 복잡한 사정 덕분에 아직까지 제2작전사령부는 비육사 출신 장성들이 입김이 강했다.
이렇다보니 이따금 지금처럼, 제2작전사령부 안에서는 육사 출신들이 더러 힘을 못 쓰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고은빈 중장이 성노을 중장 앞에서 부대를 회군시킬 마땅한 근거를 내놓지도 못한 채, 그저 어떻게 해보지를 못해 부들부들 떨고 있는 가운데, 그녀의 주머니 속 휴대폰이 울렸다.
“네, 여보세요??”
- “작전본부장? 지금 어디로 나가신 겁니까?”
“하, 합참차장님??”
“무, 무슨 일이신지, 갑자기...?”
- “내가 지금 어디냐고 물었잖소.”
“그, 그게 지금, 수도군단의 부대 이동과 관련해서 문제가 좀 있어서...”
- “수도군단이 훈련 때문에 파주랑 동두천으로 부대를 출동시킨다는 이야기는 분명 보고를 받은 사안이잖소.”
- “근데 그럼 대체 뭐가 문제란 말이오?”
“그, 그게 그러니깐....”
“수도군단의 부대 이동이 유, 육군본부랑은 전혀 협의가 되지 않은 사안이라...”
- “하아아아... 고 장군?”
- “귀하는 육군본부의 작전참모부장이오, 아니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이오??”
“하, 합참 작전본부장입니다.”
- “고 장군, 긴 말 안할 테니 당신이야 말로 내가 좋은 말로 할 때 어서 합참으로 복귀하시오. 괜히 다른 부대 훈련하겠다는데 방해하지 말고. 일 좀 크게 벌리지 말아요, 제발.”
“아... 알겠습니다...”
- “그리고 거, 옆에 성노을 장군 있으면 좀 바꿔봐요.”
합동참모차장의 질책과 함께 수도군단장을 바꾸라는 말에, 고은빈 중장은 아무 말도 못하고 받고 있던 전화를 마치 못해 성노을 중장에게 바꿨다.
“예, 수도군단장 성노을 중장입니다.”
- “미안하게 되었습니다, 성 장군. 합동참모본부는 신경쓰지 마시고, 미군이랑 훈련 하는 데에 집중해주시길 바랍니다.”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차장님.”
그렇게 갑작스러운 합동참모차장의 전화에 사태가 종료되고, 고은빈 중장은 통화가 끝나고 성노을 중장에게서 전화를 낚아챈 뒤 그대로 차를 돌려 서울로 돌아갔다.
한 편. 서울특별시 용산구.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 접속하자마자 송나빈 대장에게 전파받은 덕분에, 그 고은빈이란 장군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겨우 무마하긴 했지만...”
“그래도 앞으로가 문제야. 앞으로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계속해서 군 내부의 흐름을 예의주시를 해야겠군.”
“그나저나 가상현실에 접속해서도 오르카에 있을 때랑 똑같은 직책으로 들어오게 될 줄이야. 거기다가 접속하자마자 머릿 속에 상황이 자동으로 입력되기까지 하고. 이건 좀 신기한 일이구만, 그래.”
“안 그런가?”
“... 레드후드107 소위.”
“예, 예! 그, 그렇습니다.”
“그러고보니 자넨 나랑 오랜 만에 보는 구만, 안 그런가?”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합동참모차장 집무실에는, 오르카 인류 저항군의 육군참모총장이자 현 합동참모차장 직무대행인 마리 육군 대장과, 그녀의 전속 부관으로 접속한 레드후드107 소위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녀들도 나빈처럼, 과거의 가상현실에 접속한 아이들을 도와주기 위해, 선뜻 자원하여 가상현실로 접속한 것이었다.
비록 가상현실이긴 하다만, 이 곳에서마저 상관과 부관의 관계로 접속한 마리 대장과 레드후드107 소위는 굉장히 오랜 간만의 만남을 가졌다. 그 때의 사건 이후 15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그 때만 생각하면 좌불안석일 레드후드를 보며, 마리 대장은 희미하게 웃어보이며 안부를 먼저 건네보였다.
“... 훗.”
“그 동안 잘 지냈나, 레드후드?”
“리처드와 버질을 찾기 전에, 우리 오랜 만에 사담이나 좀 나눠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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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중 삽화로 사용되는 그림과 사진의 출처는 구글링과 핀터레스트입니다.
※설정 TMI
통상 NATO군 소속 바이오로이드들의 최고 계급은 평균적으로 소장이었습니다만, 한국군은 유독 바이오로이드 출신 고위 장군들이 많은 편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성노을 중장은 은하수 쿠데타 이후 바이오로이드 최초로 대장으로 진급하여 제2작전사령관이 되었습니다만, 이후 제1차 연합전쟁의 포화에 휘말려 안타깝게도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성노을 중장의 인격과 인품은 전 6군단장님과 전 합참의장님을 모티브로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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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02.04 17:21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