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카사하네구미는, 키리시마 내각총리가 초선 의원일 때부터 거래를 하던 사이였다. 자민당에서 키리시마 계파를 만들어준 것도 어찌보면 우리 덕분이라고 할 수 있지.”
“자네들도 잘 알다시피, 정치인들이란 자고로 뒤가 구린 자들이 많은 법일세.”
“정치인들이 다루는 정책과 법이 다 뭘로 이루어져 있는 지 아나? 다 돈이야, 돈. 국회에서 정치인들이 법안 하나 상정하고 통과시키는 것 만으로도 정치판은 물론이고 사회 전반에도 엄청난 양의 돈이 흘러가지.”
“즉, 정치를 다루기 위해서 필요한 건 결국 돈이다, 이 말이다. 그리고 돈이 곧 이 세계에선 권력이고.”
“돈 없고 빽 없는 정치인들이 암만 날고 기어봤자 정책 하나 발의하기는커녕 목소리 한 번 내기 힘든 실정일세. 그래서 정치인들은 다소 위험하지만 빠른 방법으로 정계에서 힘을 갖기 위해 우리 같은 사람들을 고용하는 거다.”
“정치인들의 불편한 점을 해결해주는, 일종의 해결사 같은 셈인 것이지. 우리가 그 쪽에서 일을 해결해주면, 그 쪽에서 우리에게 그 만한 대가를 지불한다던가, 새로운 일감을 던져주는 것처럼.”
“뭐 가령 반대파 의원의 대한 협박이라던가, 유치권 행사하는 곳 가서 용역 깡패마냥 훼방을 놓는다던가, 그런 거 말씀이시죠?”
피에트로의 거침없는 발언에, 카사사키 후쿠다가 순간 움찔하였다.
“젊은 친구... 거 깡패라는 말은 좀 삼가줬으면 하는데.”
“아까 말했잖나, 우린 이게 비즈니스라고.”
“비즈니스고 나발이고 간에 사람 괴롭히고 하는게 깡패(한구레 : 半グレ)짓이랑 하등 다를 바는 없는 거겠죠. 안 그런가요?”
“허어... 젊은 친구.”
“당돌한 건지 아니면 용감한 건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무식한 건지 모르겠다만, 그래도 기왕이면 예의라는 걸 좀 배웠으면 좋겠구만.”
피에트로의 지적에, 카사사키 후쿠다는 불쾌하다는 반응을 숨기지 않았다. 그도 그럴 법도 한 것이, 피에트로가 말한 깡패라는 말은 말 그대로 양아치나 건달 혹은 불양배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야쿠자들이 아무리 조직 폭력배라 할 지라도 나름대로 자기들 나름의 조직 체계와 선이라는 것을 지키면서 활동을 하는데, 깡패들은 그런 선 마저도 없으니 당연히 그런 반달들에게 비유당하는 것이 그닥 썩 유쾌하지만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후쿠다 쪽도 막상 변명을 할래야 할 수가 없은 것이, 이게 뭐 비즈니스 사업이니 뭐니라고 암만 잘 포장해서 말을 할 지언즉 결국 피에트로의 말대로 법에 저촉되는 행위라는 것은 결코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깡패 새끼들이 정장 쫙- 차려입고 정치인의 권력을 유지해주어 그들의 뒷배를 두고 있다지만, 결국에는 싸잡아서 야쿠자던 정치인이던 둘 다 나쁜 놈들인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하여튼 이야기 계속 하도록 하지.”
“붉은 아레나는 키리시마가 우리에게 준 새로운 일감이었네.”
“덴세츠 엔터테인먼트와도 관련이 있지 않나요?”
“아니, 그렇게 까지 물어볼 정도면 이미 뭐 다 알고 왔구만 그래. 뭘 더 자꾸 나한테 물어보려고 그러나?”
“대답해주십시오, 카사사키 후쿠다 씨.”
“허어... 이러면 내가 마치 꼭 취조를 당하는 기분인데 말이지...”
“... 맞아, 붉은 아레나는 분명 D-엔터와도 연관이 되어있네.”
“하지만 요시미츠 금마는 그냥 우리에게 투기장이라는 장소와 판을 만들어줬을 뿐일세. 바이오로이드 시민들을 납치하라고 사주한 것은 키리시마고.”
“그렇다면 붉은 아레나에 카사하네구미랑 덴세츠 엔터테인먼트, 그리고 키리시마 내각총리대신 이 세 명의 합작품이란 말씀이시네요?”
“방금 전의 말씀대로 정리하자면 키리시마 총리가 카사하네구미에 바이오로이드 시민들을 납치하라는 지시와 함께 어떤 돈이 될 만한 밑판을 깔아주었고, 덴세츠 엔터테인먼트는 그 판을 구체화 시켜 만들어주었으며, 이를 운영하는 건 카사하네구미에서 한다...”
“... 이렇게 생각하면 되나요?”
이렇다 할 물적 증거가 없었기에 정황 증거만 난무했던 세 사람간의 관계가 카사사키 후쿠다의 입에서 나옴으로서 기정 사실화 되었다.
카사사키 후쿠다의 말대로, 키리시마 내각총리대신은 이미 키리시마 중의원이 자민당 내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시절부터 바이오로이드 시민들을 납치할 것을 사주하였고 그걸로 카사하네구미가 지하세계에서 사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었다. 여기에 키리시마 총리와 또 연관이 되어있는 덴세츠 엔터테인먼트가 카사하네구미에게 지하 투기장과 덴세츠 엔터테인먼트에서 촬용할 때 사용하는 소품을 내주었다.
바이오로이드 시민들에 대한 수사가 지지부진했던 것도 자민당에서 자신만의 독립적인 계파를 만들어낼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키리시마가, 카사하네구미의 물리적인 힘과 덴세츠 엔터테인먼트의 재력을 이용하여 경찰과 검찰에 입막음을 시키도록 시켰기 때문이었다. 이러니, 납치된 바이오로이드 시민들에 대한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었을 리가 없었다. 바이오로이드 시민 납치부터 붉은 아레나까지, 모두 이 셋이 짜고 치는 고스톱인 셈이었다.
그리고 이 대단한 사실을, 카사사키 후쿠다는 아무렇지 않게 이 네 사람에게 들려주고 있었다.
“덴세츠 엔터테인먼트가 이런 불법적인 일에 지원을 해주는 것은 대략 예상이 갑니다만...”
“키리시마 총리는 어째서 이런 일을 태연하게 카사하네구미에 대고 사주를 한 거죠?”
“이렇게 말하면 우리 대배우님의 아드님께서 어떻게 느낄지 모르겠지만, 우리야 바이오로이드 시민들에게 따로 악감정은 없네. 단지, 그걸로 우리는 돈을 벌 뿐이지.”
“하지만 키리시마는 다르더군. 마치 바이오로이드 시민들을 하급 종족으로 보는 것처럼 말이야.”
“...”
“이건 뭐 예전부터 언론에서 자주 나왔던 이야기니깐 자네들도 잘 알지 않겠나? 키리시마는 굉장한 인종차별주의자일세.”
“그리고 그 중에서도 키리시마는 바이오로이드를 굉장히 싫어했지. 물론 부라쿠민이나 류큐인이나 재일 조선인 같은 사람들도 싫어하긴 매한가지였지만 말일세.”
“키리시마는 원래 바이오로이드들이 일본 땅에서 사라지기를 바랬다네. 하지만 요시미츠는 달랐지. 바이오로이드를 차라리 노예처럼 사고 팔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면서 접근해왔었어.”
“덴세츠 엔터테인먼트는 키리시마에게 거액의 돈을 주면서 졍경유착을 권유했다네. 기업에게 유리한 정책과 법안을 발의해주면, 자신들 또한 섭섭지 않는 금전적 지원을 해주겠다고.”
“아까 말했었지? 정치는 돈의 흐름이라고. 돈이 많은 자일수록 권력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법일세.”
“키리시마 총리의 물리적 해결사가 카사하네구미면, 금전적인 해결사는 요시미츠였던 셈이네요.”
“그렇지. 잘 이해하고 있구만.”
자신들과 키리시마 내각총리대신, 그리고 덴세츠 엔터테인먼트 사이에서 일련의 바이오로이드 납치 사건과 붉은 아레나에 대해서 잘 설명을 해주던 카사사키 후쿠다가 한 텀 쉬고는 다시 천천히 말을 이어나갔다.
“근데 그러다가 최근에 와서 조금 일이 생겼었네.”
“저번처럼 바이오로이드 시민들을 납치해서 붉은 아레나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제와서 그 규모를 축소하는 게 어떻겠냐고 키리시마가 그러더군.”
“대뜸 갑자기 양심있는 척, 이제와서 죄책감이라도 느낀 건지 사업의 규모를 축소시켜 나가라고 전하더군.”
“붉은 아레나를 축소시키라고 말입니까?”
“최종적으로는 나중에 가서 아예 사업을 접으라 그러더군. 그 대신 새로운 사업을 알아봐주겠다면서 말이야.”
“붉은 아레나 투기장 사업은 상상 이상으로 돈을 버는 사업일세. 이제와서 사업장 규모를 축소시키고, 아예 사업을 접으라니 가당찮은 말이지.”
“하여튼 그래가지고 키리시마 총리와는 사이가 조금 멀어졌어. 그래서 그 녀석이 보복으로 우리 아이를 죽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네.”
뜬금없다면 좀 많이 뜬금없는 이야기였다. 인종차별주의자이며 바이오로이드를 싫어하는 키리시마 내각총리대신이, 어째서 이제와서 바이오로이드의 납치와 붉은 아레나 사업을 취소하라고 하는 것일까?
만약 카사사키 후쿠다의 말대로 키리시마 내각총리대신이 이번 야마자키 토오루의 살인 사건의 진범 혹은 연관이 있는 것이라면, 경찰에서도 수사를 주저하는 것도 이해가 되는 부분이긴 하였다.
“원한에 의한 살인이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단순 중의원도 아니고 정부수반 씩이나 되는 사람이 과연 청부살인까지 의뢰할 여유는...”
“정계에서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지금 키리시마는 옆 나라와 손을 잡고 뭔가 크게 한 바탕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모양이더군.”
“옆 나라요...?”
“대한민국.”
카사사키 후쿠다가 대한민국이라고 말하자, 유빈이는 순간 어떤 한 사건의 이름이 떠올랐다.
‘은하수...?!’
“음? 자네 뭐라고 말했나?”
“아, 아닙니다. 계속 하시죠.”
“하여튼 그래서, 뭔 지는 몰라도 옆 나라랑 뭔가를 하긴 하려던 모양이더군. 그래서 오히려 덴세츠만 바빠졌어. 되려 우리는 안중에도 없어졌지.”
“뭘 하려는 건지 혹시 아시나요?”
“그것까진 나도 잘 모르겠네. 정계에서 들리는 소문이 그렇다는 거지, 내가 정치인인 건 아니니깐 말이야.”
아마도 지금 네 사람은 거의 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
토사구팽.
키리시마 내각총리대신이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필요할 때 요긴하게 잘 사용하던 카사하네구미와 이제와서 손절을 치려는 것 같다는 뉘앙스로 들리기는 하였다.
카사사키 후쿠다로부터 모든 이야기를 전해들은 셜록 키무라는, 짐짓 주먹을 불끈 쥐고 살짝 떨리는 어조로 물었다.
“어르신. 그렇다면 이번 일...”
“한 번 저희에게 맡겨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뭐?”
“만약 카사하네구미가 움직인다 하더라도, 상대는 중의원 따리가 아닌 내각총리대신입니다. 일개 야쿠자 조직이 정부수반을 상대로 뭘 어떻게 하실 수는 없으실겁니다.”
“차라리 저희 같은 기자가 움직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흐음... 자네 보기에는 겁이 많아보이면서도 쓸데없이 배짱은 좋군.”
“그렇게나 진실을 밝히고 싶은가?”
“그, 그건...”
“... 예, 그렇습니다.”
“기자로서, 진실을 향한 갈망은 당연한 거라 생각합니다.”
“... 좋아. 내 그리 허락하지.”
“솔직한 말로 자네는 아직 못 미덥다만, 그래도 여기 꼬마 아가씨랑 자네 두 슈퍼솔져 친구들이 제법 믿음직스러워보이니.”
“아, 아하하하...”
“하지만 명심하게, 기자 양반.”
“한 번 발을 들인 이상 중도 포기는 없어. 모르는 게 부처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야.”
“막 말로 여기까지 이야기를 들어놓고 그냥 살아서 돌아가는 것도 감지덕지라고 생각을 해야할 걸세.”
“그래도 하겠나?”
“위험을 무릎 쓰는 일은 이미 익숙합니다.”
“그런 거 치곤 그래 보이지 않던데?”
“끄응...”
“하핫! 그래, 뭐. 기대하고 있지.”
“단, 우리가 바이오로이드 시민들을 납치하고 붉은 아레나를 운영하는 것에 대한 것 만큼은 빼주길 바라네.”
“예, 알겠습니다.”
졸지에 유빈과 피에트로는 셜록 키무라 덕분에 카사하네구미의 의뢰를 맡은 처지가 되었다.
어쨋건 셜록 키무라의 입장에선 야마자키 토오루의 대한 사건의 진실도 파헤칠 수 있고, 여차하면 카사하네구미의 도움도 얻어낼 수 있으니 여러모로 이득이 아닐 수 없었다.
“참, 키무라. 파란 성경책의 건도 있었잖아.”
“파란 성경책?”
“아, 맞아, 그것도 있었지.”
유빈이의 물음에 셜록 키무라는 야마자키 토오루의 살인 사건 현장에 있던 파란 성경책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카사사키 씨? 야마카지 토오쿠 씨의 살인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증거품 중에는 이렇게 생긴 성경책도 있었습니다만, 혹시 아시는 것이 있으십니까?”
“파란 성경책이라...”
“글세, 이것까지는 나도 잘 모르겠군. 종교야 뭐 개인 사생활인데다가, 나도 원채 종교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서 말이야.”
“어, 이 문양은...?”
사진을 유심히 보던 피에트로도 이 성경책을 처음 봤었을 때의 유빈이와 똑같은 반응이었다.
“아, 이 성경책은 제가 본 적이 있습니다, 오얏상.”
“오, 그래?”
피에트로가 뭔가 말하려던 순간,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야쿠자 한 명이 다가와 대답하였다.
“실은 토오루 그 녀석이 죽기 전에 괜찮은 일거리가 생겼다면서 저 성경책을 저에게 보여준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 때 저 문양에 대해서도 말해줬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때 술에 취해있던 터라 자세한 건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것 까지야 뭐 있겠나, 됐다. 원래 그런 얘기들을 일일이 다 기억하고 살지는 않으니깐.”
“... 그러고보니 예전에 나한테도 말해줬던 기억이 있었던 거 같은데 말이야.”
“문양이라면 이 성경책을 배포한 교단 측의 문양이려나...?”
“... 나 이 문양 뭔지 알아.”
“정말?!”
파란 성경책 사진을 유심히 보고 있던 피에트로가 진중한 어조로 말하였다.
그도 그럴 법 한 것이, 피에트로는 이 문양과 관련된 종교 집단에 가장 밀접한 관계에 놓여있는 사람이었으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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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중 삽화로 사용되는 그림과 사진의 출처는 구글링과 핀터레스트입니다.
서울과 동경의 봄.
줄여서 서경의 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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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01.29 19:2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