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윽...”
여전히 하반신이 허전하고 저릿한 기분이었다. 근질근질 거리는 것 같기도 하였다.
병상에 누운 채로 자신의 무릎 아래를 내려다보니, 절단면에는 지금 새로운 다리가 자라나고 있는 중이었다.
라자르에 의해 구해진 하준과 칸 일행은 요크타운 함에서 C-130 헤라클레스 수송기로 갈아타 부산으로 복귀하였고, 척추 골절을 입은 태미소 소령과 함께 비행장에 수송기가 안착하기 무섭게 저항군 병원 응급 수술실로 옮겨졌다. 헬기가 추락한 충격을 그대로 허리로 받아 척추가 골절된 태미소 소령은 골절부위 접합 수술을 마치고 금방 회복할 수 있었으나, 하준은 아예 왼쪽 무릎 아래가 S7 데스스토커의 레일건에 맞아 통으로 날아가버리는 바람에 부분적으로 신체 재건 장비를 사용하여 절단된 다리를 새로이 재건해야만 했었다.
설마 살면서 신체 재건 장치를 자신이 사용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써 보고 나니깐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따로 마취를 할 필요도, 복잡한 외과적 수술도 필요도 없이 환자의 결손된 부위를 고통 없이 신속히 재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의료용 시스템이 아닐 수 없으나, 결손 신체 부위가 신속하게 재건되는 것과 환자의 몸에 익숙해지는 데에 시간이 걸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쉽게 말해서,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다는 소리였다.
하준은 아직까지는 왼쪽 무릎 아래에서 오는 다리의 감각이 익숙치가 않았다.
다리가 있어야 할 지라에 여전히 다리는 없고, 그 대신 이상한 거목 같은게 달려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움직이려고 해봤자 움직이지도 않는다. 아프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절단된 상처 부위에서 오는 감각이라는 점에서 이 또한 환상통의 일부였다.
“이제 좀 후회가 돼?”
“어... 으응...”
외과의이자 하준의 아내인 다운이 병실로 들어와 커튼을 치며 다가와 물었다.
그 순간 환한 햇빛이 커튼이 쳐진 창문으로 내리비추자, 순간적으로 눈이 부셔진 하준은 눈을 질끈 하고 감았다 천천히 떴다. 눈을 떠보니 다운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팔에 혈압측정기를 대며 혈압측정과 함께, 자신의 몸에 청진기를 가져다 대며 남편의 건강상태를 확인하였다.
기분이 오묘했다.
지금 이 상황, 어딘가 묘하게 낯설지 않았다.
떠올려보니 자신이 오르카 호에 처음으로 발견되었을 때와 똑같았다. 무려 27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있었다. 지금의 아내인 다운도, 그 때 처음으로 만났었다. 그 때 영양실조로 픽- 하고 쓰러져버린 자신이 깨어나자마자 병실로 들어와서는 지금처럼 똑같이 혈압측정을 해주고, 또 청진기를 몸에 대며 제 몸을 체크해주었었다. 그리고는 따뜻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안심하라고 말하곤 포도당 용액을 갈아끼워줬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마무리로 링겔을 새로 갈아끼워주었다.
분위기는 그 때랑 전혀 딴판이지만.
“기절하시고 나서 세 시간 가까이 주무시고 계셨답니다.”
“안심하세요, 몸에 크게 문제된 부분은 없었고, 단지 경미한 영야부족이었을 뿐이니까요.”
“우선 포도당 용액을 새로 갈아드리도록 할게요. 잠시만요...”
“...”
“... 으음?”
“뭐야? 뭘 그렇게 쳐다봐? 나 의사 가운 입은 거 처음 봐?”
“아, 아니...”
“... 아니야, 아무 것도...”
하준은 다운의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뭘 말해도 금방이라도 한 대 때릴 것 같은 분위기에, 아무리 하준이라 할 지라도 시선을 피하고 절로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분명 27년 전 처음으로 오르카 호에 발견되어져 합류했을 때와 상황이 똑같은데, 그 때와는 분위기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그 때와 똑같으면서도 다른 오묘한 데자뷔를 느끼며, 하준은 비로소 그제서야 자신이 오르카에 “살아서” 복귀했음이 실감이 났다. 원래는 칸과 부상자 일행을 구하기 위해 시간을 벌고자 했던 명분으로 죽으려 하였으나, 때아닌 상황 속 갑자기 난데없이 등장한 라자르에게서 구해지고서는 거의 반쯤 자포자기였는데, 돌아오고나니 그제야 내가 살긴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으려고 하였으나, 또 다시 살아나다니. 이래저래 죽음이랑 가장 가까운 듯 하면서도 영 인연이 없는 것 같다, 나란 사람은. 이쯤되면 죽음이랑 연이 없는 걸 떠나서 저승사자가 날 억지로 살려두고 트루먼 쇼를 하고 있는게 아닐까 싶었다. 만약에 자신이 슈퍼솔져가 아니라 그냥 평범한 보통 사람이었다면, 레일건을 맞고 다리가 통으로 잘려나가기 전에 십자포화망에 걸려서 벌집이 되어 아마 지금쯤 삼도천을 건너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명줄이 길어도 너무 길지 않는가.
“나 진짜 오빠가 너무 궁금해.”
“뭐가?”
링갤의 포도당 용액까지 갈아끼우고 제 병상 앞에 앉은 다운이 대뜸 자신이 궁금하다며 물었다.
“사람이 그렇게 자기비하적이고 자기파괴적인데, 그 쯤되면 왜 진즉에 군대에서 문제 안 일으키고 불명예 전역 안 당했는지 진짜 궁금하다.”
“...”
“상처받았어?”
“... 조금.”
“잘 됐네. 상처받으라고 한 소리야.”
일말의 사과는 없었다.
당연했다. 오히려 사과를 해야할 사람은 하준이었으니깐.
“오빤 장군이잖아. 그러면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 다 해봤을 거 아니야.”
“그치.”
“그럼 오빠가 지휘관이었을 때, 밑에 있는 병사가 그렇게 심하게 아프면 어떻게 해?”
“막 어렸을 때부터 상처는 있는대로 다 받고 군대에 왔어. 적응은 잘 하는 거 같은데 언제 터질지 몰라. 그럼 어떻게 해? 응??”
“... 당연히 간부를 붙혀서... 행정관리를 하거나... 아니면 상담을 붙이던가...”
“그게 아니면 외진을 보내서... 진료를 보거나...”
“상황의 여의치 않으면 전역을 시키겠지.”
“... 그건...”
“안 그래?”
“...”
“그래, 안 그래?”
“... 네, 그렇습니다.”
“병사들 뿐만 아니라 간부들도 마찬가지일 거 아니야. 사람이 아프면 진료를 보던가 아니면 그만 둬야지.”
“근데 오빠는 누구보다 치료가 필요할 상황에 어떻게 단 한 번도 병원에 가볼 생각을 안 했을까?”
“... 그... 그게... 그러니깐...”
“... 그, 그래도... 일단은 먹고는 살아야 했으ㄴ...”
“핑계대지마.”
“누가 오빠 핑계대는 거 듣고 싶댔어?”
“네, 네...”
“연합전쟁 끝나고 기업들이 세상을 지배하던 세상이, 아무리 살기 각박하더라도 의사 한 명 정도는 있었을 거 아니야.”
“거기다 까놓고 말해서 당장 돈 벌어먹고 살아야 해서 삼안 군사고문으로 잠깐 들어갔었던 양반이, 고작 의사 한 번 만날 시간이랑 돈이 없었으리라고?”
“핑계야, 핑계. 순 핑계라고.”
“동생? 동생도 당연히 중요하지. 우리도 오빠 가정사 다 들었어.”
“들었다고? 어디서??”
“왜? 어디서 어떻게 들었냐고 말하면 말한 사람 찾아가서 쫓아가게? 쫓아가서 반 죽여놓게, 지 성질 못 이겨서?!”
“그, 그건 아닌데...”
“아니긴 뭐가 아니야, 이 인간아! 말이라도 했다간 당장 누군지 찾아가서 때려죽일 기센데?!”
“...”
“대답 안해?”
“아, 아닙니다...”
“그럼 여기가 안이지 밖이야??”
“...”
“대답 안 하냐니깐??”
“아, 그...”
“... 네, 그렇습니다...”
아무리 말빨로는 저항군에서 민하준 원수를 따라올 자가 없다고 한다지만(하물며 통수권자인 라비아타 통령과 그 오랜 친구인 유진 벨리코프 원수 조차도), 드물게 그를 찍어 누를 수 있는 사람이 분명 오르카에 존재한다.
한 명은 라비아타 통령, 요안나 부통령과 함께 오르카를 지도하고 이끄는 평의회의 의장이며, 오르카 저항군 통수권자 서열 3위인 고진아 의장과, 다른 한 명은 하준의 아내이자 외과의 정다운이었다. 둘 다 평상시에는 한 없이 상냥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한 번 꼭지가 돌아버리면 불같이 화를 내며 그 어느 누구도 막아낼 수 없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아가리 파이팅으로는 결코지지 않을 하준이 근소하게도 아니고 아예 무력화 당할 수 밖에 없는 상대들이란 말이었다.
“애초에 동생 분 죽음이 그렇게 한탄스럽고 억울했으면 라자르 씨한테 뭐라 그러기 전에, 그 삼안에 군사고문으로 있었을 시절에 김시석 그 새끼 모가지부터 땄어야 했던 거 아니야??”
“그랬으면 우리가 이렇게까지 고생할 일도 없었겠지! 전쟁 일으킨 건 애초에 기업이었는데!”
“...”
“그런 일이 있었으면 애초에 우리한테 말을 했어야지. 근데 뭐? 어차피 말 해도 안 바뀔 거 아니깐 그냥 참고 견뎌? 그러다가 못 이겨서 이 새끼 죽이고 저 새끼 죽이고 개 난장판으로 만들어놨잖아!”
“그러면서 뭐?”
“'난 인류 재건 따위 하기 싫었어????'”
“...”
다운의 말에 하준은 움찔거렸다. 하준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다운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절로 상상이 갔다. 하준의 예상대로 다운은 눈꼬리와 눈썹이 잔뜩 위로 올라간 채로 엄청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화를 내고 있는 중이었다.
낙원에서 무심코 한 말이었는데, 칸이 아무래도 말을 한 모양이었다. 사실 그럴 만 했다. 돌아가면 그대로 부인들한테 전해준다고 했었으니깐. 그 때는 진짜 유진이고 라자르고 뭐고 다 죽여버리고 저도 그냥 죽어버리려고 한 말이었는데, 그걸 부인에게, 그것도 초창기에 오르카에 합류한 직후 처음으로 호감을 느낀 여인에게 그런 말을 들었으니 맘이 심히 편치는 못했다.
허나 다운은 그를 향한 팩트폭격을 여전히 멈추지 아니하였다.
“오빠가 유진이 오빠한테,”
“‘너가 지금 앉아있는 자리에 비해서 짊어진 무게가 너무 가볍다는 생각은 안 하냐?’”
“이렇게 말 할 자격이나 있다고 생각해???”
“그, 그건 또 언제 들었...”
“누가 말 끊으래?!”
“네, 넵!... 죄송합니다...”
“도대체가 말이야, 누가 할 소리야??”
“뭐 그러면, 그렇게 따지면, 애들 위험에 빠졌을 때 오빠 따라서 하와이로 안 간 다미나 은서는 아주 그냥 오빠 앞에서 석고대죄해야겠다, 그지? 응? 아주 대역죄인이야????”
“아, 그...”
“그...”
“그, 뭐??”
“말을 해, 말을! 잘못했으면 잘못했다, 아니면 아니다라고!!!!”
“죄송합니다...”
-----------------------------------------------------------------------
https://novelpia.com/viewer/3138169
오늘(22일)오전 10시에 공개됩니다.
댓글과 추천은 작가에게 큰 힘이 되어준답니다!
가시는 길에 댓글 꼬옥! 추천 꼬옥 한 번 부탁드리겠읍니다!
작 중 삽화로 사용되는 그림과 사진의 출처는 구글링과 핀터레스트입니다.
탕아가 돌아왔습니다~
이제 뒤처리를 해야죠!
(IP보기클릭)119.206.***.***
(IP보기클릭)106.102.***.***
| 23.12.23 00:09 | |
(IP보기클릭)216.181.***.***
(IP보기클릭)106.102.***.***
| 23.12.23 00:0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