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층빌라였는데 우리 집은 꼭대기층이어서, 나는 엄마와 함께 옥상에 빨래를 널러 자주 올라가곤 했다.
옥상 끝까지 올라가면 저 편 한가진 공원길이 보였다. 그렇게 넓지 않은 공원길 한가운데엔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느티나무 옆에는 작은 유치원 하나가, 그리고 유치원이 세워진 길을 따라 오밀조밀한 작은 상가들이 모여 있었다.
이 이야기는 그 유치원에 다니는 내가 겪었던 기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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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대충 20년은 훌쩍 넘어 버린 이야기다.
당시 일곱 살의 난, 느티나무 옆 유치원에 다녔다. 부모님께서는 맞벌이셨고, 덕분에 나는 항상 가장 늦게까지 유치원에 남아 있어야 했다.
특히 겨울철이 되면 금방 해가 져 버려 항상 밖이 어두워지면 무서워졌던 기억이 생생했다.
그 날은, 한겨울이었다.
밖에는 눈이 내렸는데 대략 12월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펑펑 함박눈이 내리는 것이다.
어린 나는, 그것이 못내 좋아 선생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유치원 앞 작은 놀이터로 나가 눈을 맞으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미끄럼틀도 타고, 그네 위로 소복히 쌓이는 눈을 슥슥 치워 내고 그네도 탔다.
그 때였을 거다.
바람 때문인지, 눈 때문인지.
느티나무의 가지들이 좌우로 흔들 흔들 거리며 그 사이 뭔가가 매달린 것 같은 게, 내 눈에 보인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래. 그건 마치 목 매단 사람 같이 생겼었다.
나는 호기심에 뚫어져라 그것을 바라보았다. 바람이 불 때 마다, 눈발이 흩날릴 때 마다. 그것은 점점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마침 따라 나온 선생님이 나를 데리고 유치원으로 들어가셨고, 나는 금세 그것을 잊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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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은 며칠이고 내렸다.
며칠이 지난 뒤.
부모님이 모두 잠드신 새벽,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목이 말랐던 것 같다.
거실의 냉장고를 열고 델몬트 유리병에 든 보리차를 마시는데, 문득 창문 쪽으로 시선이 갔다.
커튼을 걷고 유리창을 통해 저 편을 바라보았다.
늘 보이던 느티나무가 있었다. 그리고, 기묘하게도 그 사이로 흔들 흔들 거리는 무언가가 보였다.
나는 눈을 비볐다.
온 세상은 눈으로 가득 쌓여, 새하얗게 변해 있었다. 가로등 아래로 하얀 눈밭만이 보일 뿐이다.
나는 물을 냉장고에 집어 넣고 다시 창 밖을 보았다.
흔들리는 것은 사라졌다.
하지만, 어쩐지 가로등 아래 무언가가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뭐라고 해야 할 까.
그냥 하얀 천 같은 것 같았다. 하얀, 하얀 색이지만 눈 위에 있으니 뭔가 사물이 있구나- 라고 구별이 가는 정도의 .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부를까 하다, 다시 돌아 보았다.
하얀 뭔가가 가로등 아래에서 사라져 있었다.
커튼을 치려고 시선을 돌렸는데, 어쩐지 느낌이 이상했다.
나는 다시 창 밖을 보았다.
창문의 좌측 맞은편 빌라의 같은 건물 유리창에, 하얀 뭔가가 펄럭이고 있었다.
태극기 같은 걸까? 아니, 그건 아니었다. 마치 연기처럼 일렁이면서도, 기묘하게 형체를 유지하고 있는 물질 같았다.
나는 뭔가에 홀린 듯 그것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마, 몸이 굳어 버렸던 거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
퍼러러러러러럭!
하는 소리와 함께 그것이 우리집 유리창으로 날아온 것이다. 나는 너무 놀라, 비명도 못 지르고 그대로 서서 똑똑히 볼 수 밖에 없었다.
순백의 하얀 어떤 것이 우리집 창문에 찰싹! 달라 붙었다. 세상의 풍경이 사라지고 유리창이 모두 새하얗게 변해 버렸다.
나는 너무 무서워 눈물을 줄줄 흘렸다. 기묘하게도 눈을 한 번도 깜빡일 수가 없었다. 온 몸이 꽁꽁 얼어 붙은 것만 같았다.
동시에 전신에 굉장한 한기가 들었다. 전신이 싸-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나는 부끄럽게도 오줌을 싸 버린 것이다.
그와 동시에 거짓말처럼 우리집 창문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감히 엄두가 나지 않아, 창 밖을 더 내다보지 못 하고 눈을 꾹 감은 채, 나는 엉엉 울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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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이야기하는 괴담에서의 경험처럼, 귀신이 붙어서 소리를 들었다던가, 무당을 불렀다던가 하는 일은 없었다.
부모님은 내가 안좋은 꿈을 꾸었거나, 가위에 들렸던 거라 생각하신 모양이다.
내게도 별 탈은 없었다. 나는 크게 다치는 곳 없고, 건강하게 유치원을 졸업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 쯤엔 이사를 갔다.
지금도 가끔씩, 눈이 내리면 나는 그게 썩 달갑진 않은 편이다.
몇 년 전엔 원래 살던 곳에 갈 일이 있어, 그 느티나무를 찾은 적도 있었다.
느티나무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는데- 이제 와 보니 생각보다 그렇게 크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바람이 불면, 이리 저리 바람 따라 가지와 나뭇잎이 흔들렸는데
어른이 된 지금 봐도 언뜻 보면 무언가가 매달려 있는 게 아닌가- 란 생각이 들었던 게 생각나 가끔 미소짓는다.
다만, 그 의문의 하얀 물체는 대체 뭐였을까?
그건 상상이라기엔 지나치게 생생했고, 마치 공포영화처럼 내게 다가와 아직까지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로 남아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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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해 보니 무섭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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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해 보니 무섭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