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인지 잡담인지 알 수 없는 글 .
내가 사는 곳은 지명을 밝힐 수는 없지만,
읍과 도시 중간쯤에 위치하는 그런 곳이다.
물론 좀더 나가면 제법 도시라고 할 수 있는 곳도 있다.
혹시 도농복합시라고 알고 있는가?
도시와 농촌을 합친 시를 뜻하는 말인데,
예전에 읍이었던 곳이 도시로 성장하게 되면서
그 주변에 어정쩡하게 남겨진 짜투리들까지 함께 끌어모아서 도시의 행정구역에 붙여주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이 바로 그렇다.
읍이나 면이라는 말보다는 산뜻하다는 이유로 요새들어 더욱 선호되고 있는듯하다.
그런 고로 언덕 하나만 넘어가면 아직 비닐하우스도 있고,
가끔 도로로 경운기 한 두대가 질주하는 광경도 심심찮게 본다.
이런 이야기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니 생략하겠다.
이 일은 한밤중에 일어났다.
무더운 한 여름 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작년 여름. 우리집은 에어컨도 없이 무더위를 버티고 있었다.
에어컨이 설사 있었다고 하더라도 켰을지는 의문이다.
비싼 전기요금을 감당할 수 없었을테니.
원래 나는 아무리 더워도 엔간해선 창문을 열지는 않는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역시 가장 큰 이유는 나방 때문이다.
여러분은 혹시 본 적 있는가?
여러분의 얼굴만한 거대한 나방이 철망에 붙어서 파닥파닥 날갯짓을 하는 장면을.
이 동네로 내려온 첫날, 내가 본 광경이다.
나방의 더듬이와 날개에 촘촘히 난 털까지 다 볼 수 있을 정도로
나와 녀석은 가까이 있었다.
엄청난 크기에 놀란 나는 멍하니 녀석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아마도 녀석은 나를 봤던 것 같다.
한번 여러분이 봤어야 한다.
녀석의 겹눈이 희한하게 빛났던 것을.
녀석은 나의 시선을 느낀 것처럼 주름접힌 배를 굽혔더 폈다하면서
미친듯이 철망에 온몸을 부딪혀댔다.
어떻게 해서든 들어오겠다는 것처럼.
나는 문을 닫아야만 했다.
녀석의 몸에 붙은 노란 가루가 창틀에 수북히 쌓이는 광경을 보고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내가 매번 창문을 열때마다 녀석은 거기 붙어 있었고,
악의섞인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하지만 그날 밤은 창문을 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더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녀석의 모습이 오늘만큼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방의 불을 모두 껐다.
나방은 열과 빛에 이끌린다고 했다.
녀석은 한낱 곤충일 뿐이다.
어떤 의도와 의지를 갖고 나를 노려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본능에 이끌려 창문 너머를 보았을 뿐이다.
아마도 암컷 나방이 가득하리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니까 나를 본 게 아니다.
녀석도 오늘따라 보이지 않는다.
내가 식은땀을 흘리며 잠을 깬 건 새벽 세네시쯤이었다.
어둠속에서 누군가가 나를 노려보는 듯한 시선이 느껴졌다.
이 밤중에 누가 나를 바라보는 걸까.
건넌집의 남자일까?
근육질의 남자는 담배를 피러 베란다로 나오곤 했다.
나는 힐끗 머리맡의 창문에 시선을 주었다.
그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잠에 들려고 했지만 좀처럼 그럴 수가 없었다.
계속 시선이 느껴지고 있었다.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으로 갔다.
내방은 이층에 있는데다가 창문도 이중샷시로 되어 있었다.
누군가가 타고 오를만한 파이프도 없다.
게다가 누가 이 누추하고 가난한 집 구석에 털게 있다고 오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시선이 느껴졋다.
비웃는듯이 키득거리는 소리마저 들리는 듯하다.
아니, 정말 들리고 있었다.
키득키득.
아니, 웃는 소리가 아니다.
좀더 집중해보자.
파스스!파스스!
날갯짓소리다.
또 그 나방인가?
그런데 단순한 날갯짓소리라기에는 뭔가 금속성소리가 끼어들어 있었다.
당시의 나는 그걸 느끼지 못했다.
나는 더위에 지쳐서 다시 침대로 돌아가려고 했다.
내가 돌아서려고 할 때 바람이 스쳐지나갔다.
부우웅.하고 부자연스러운 소리가 함께 뭔가가 뺨을 때렸다.
그리고 나는 반사적으로 그것을 밀쳐냈다.
손에 뭔가 묵직한 감촉이 전해져왔다.
'그 나방이군.'
고작 나방때문에 잠을 깨다니.
새삼 짜증이 밀려왔다.
나는 투덜거리면서 침대로 돌아가 잠에 빠졌다.
이게 내가 겪은 일의 전부다.
다만, 이런 일이 사흘간 반복되었을 뿐이었다.
아, 그런데 내가 왜 이 이야기를 장황하게 하고 있냐고?
사실 별 거 없는 이야기다.
그해 겨울, 갑자기 내가 방의 가구배치를 바꿔보려고 침대를 옮겼다.
그렇게 침대를 옮기는 순간, 머리맡부근의 바닥에서
그것들이 발견되었다.
손바닥만한 장수말벌 세마리가
침을 비죽 내민 채
쓸쓸히 미라처럼 말라가고 있었다.
지금도 그 녀석들이 어떻게 망창을 뚫고 들어왔는지는 알 수 없다.
아, 그리고 올해 여름 내내 내가 창문을 열지 않고 지낸 것은 비밀아닌 비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