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수!! 일어나라!! 학교가야지!!!"
당연한 소리겠지만, 졸린 눈에 햇살이 들어온다고, 잠에 취해 반쯤 막혀버린 귓구멍에 부친의 목소리가 멋대로 흘러 들어온다고 해서 곤히 자던 신체건강한 고등학생의 육체가 즉시 수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남수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이런 경우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무의식적으로 입밖에 내는 대사가 흘러나오게 마련이다.
"음... 오분만 더..."
이런 경우에 일반적인 가정이라면 모친의 따뜻한 손길과 뇌내 가득 모성애로 채워버리는 목소리로 남수를 깨워 보려 노력하겠지만, 이 가정은 그렇게 따뜻하고 안락한 일반적인 가정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뭐, 스스로 초래한 결과지만.
"오늘의 서브미션은 4자 굳히기다. 영어로는 Figure Four Leg Lock이라고 하지. 한쪽 다리를 잡고 빙글 돌아 비튼 다음에, 상대의 다리를 '4' 모양으로 만들어서 자기 다리를 넣고 조아버리면 된다."
보통 체격의 남수에 비하면,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판단되는 어마어마한 육체미의 부친이 내뱉은 말은, 자신이 지금 수마에게 굴복해버린 불초 아들에게 시전중인 기술을 설명한 것이다. 그로기 상태의 아들에게 이 기술은 실로 특효. 당장 반응이 오자, 부친 김홍각씨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반응 좋고. 일어나라. 밥 해놨다."
"살려줘요!! 아, 아버지이이이이이!!!"
창문을 열어놓고 잠든 탓에, 온 동네에 비명소리가 퍼진다. 주인과 함께 아침 햇살을 받으며 한가로운 산책 시간을 즐기던 강아지가, 뭔가 위기감을 느꼈는지 신나게 짖어댄다. 부친 김홍각씨는 자신의 아들이 완전히 수마를 쫓아냈다고 보일 때 까지 기술을 풀지 않다가, 반 실신 상태에 이르자 겨우겨우 다리를 풀어 줬다.
"...아버지... 축구선수 김병지는 남자의 생명이 허리가 아니라 다리라고 했습니다."
볼멘 소리로 중얼거리는 남수.
"그래서? 네 놈이 야밤중에 다리 써 본적은 있냐?"
당당히 받아치는 부친의 위용에 남수는 할 말을 잊는다.
"나이가 벌써 열여덟인 놈이 여자 하나 후리지도 못하고. 나 젊을땐 안 그랬다, 이놈아."
'거짓말' 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필사적으로 참는 남수였다. 저 괴물과 싸우면 남는 건 박살밖에 없으니. 부친의 파괴력이야, 애시당초 알고 있는 바이다.
무의미한 싸움은 피하는 것이 신조였던 만큼, 남수는 순순히 방에서 나와 밥을 먹는 방안을 선택했다.
"착하다. 효자났구나."
"아버지, 이런 환경에서는 신창원도 효자될겁니다."
"그 말은, 내가 훌륭한 아버지란 말이지? 어릴적부터 시킨 하드 트레이닝이 이제서야 빛을 발하는구나. 훗."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를 중얼거리는 아버지를 뒤로 하고, 남수는 밥솥에서 밥을 퍼내기 시작했다. 솔직히 별로 먹고싶진 않지만, 안 먹었다간 아버지가 무슨 기술을 걸어올지 알 수가 없다. '밥이 보약'이라는 격언을 인생 두번째 좌우명으로 설정한 떡대라서리.
"오늘부터, 새 학교에 가는구나. 기분은 어떠냐?"
아버지가 밥을 퍼면서 한마디 걸어온다. 적당히 입은 XL 사이즈의 티셔츠가 터질듯 보일 정도의 근육을 자랑하는 남자가 밥을 푸고 있는 장면이라... 어쩐지 등골이 오싹하다.
"그냥 그렇죠 뭐. 그나저나, 어떤 학교입니까? 1학년 마치고 갑자기 한마디 상의도 없이 전학이라니."
역시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남수가 말했다.
"뭘 또. 이 애비 성격 괴팍한 건 너도 알잖느냐. 그냥, 좋은 학교다. 일종의 특수 목적 고등학교랄까- 물론, 정부에서 정한 게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정한 거지만."
부친은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말한다. 그러나 걷잡을 수 없는 걱정이 남수의 마음속에서 먹구름처럼 퍼져간다. 저 인간은 도대체 뭔 짓을 벌일지 예측을 할 수 없다니까.
"......그럼 어떤 방향의 특수 목적 고등학교입니까?"
불안을 밥 한술과 함께 삼키며, 남수는 부친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아, 맛없다- 라는 말을 먼저 할 걸, 하고 남수는 순간 후회한다. 이건 밥이라기 보다는 쌀이잖아. 10년 가까이 밥을 했으면서 아직도 이 모양이라니. 전기밥솥으로 밥 하는 거 맞는지 몰라.
"아주 좋은 방향의 특수 목적 고등학교다."
이 한마디에, 남수는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은 기분이 생기지 않는 것을 느꼈다. 어여 먹고 등교나 해야지. 부친에게 캐묻는거 보다는 그 편이 빠를 거라고 결론내린 남수는, 밥을 뜨는 숟가락에 가속을 붙인다.
그리고 그 순간 날아오는 빗겨베기 챱. 숭모근(목과 어깨 사이의 근육)에 정확히 꽂히는 수도의 정확도에, 남수도 잠시 경악한다.
"컥!!"
"꼭꼭 씹어 먹어라."
"덴장......제발 내세에는 부자관계로 태어나지 않길 바랍니다."
"흥, 못된 놈."
화기애애한 김홍각씨 가정의 아침이 이렇게 지나갔다.
집안에서의 사정이 어찌 되었든 간에, 등교란 거 알고보면 참 기분좋은 것이다. 특히 지방 소도시 변두리에 있는 이곳의 등교는.
적당히 시원한 바람이 귀를 간지럽히는 것을 느끼며, 남수는 모처럼 기분좋게 발걸음을 옮겼다. 새소리를 들어보는 것도 참 오래간만이군, 하고 생각한다. 이런 분위기라면, 전학온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군.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노래는 의외로 조금 오래된 포크송. 시대에 뒤떨어졌니 뭐니 소리를 들어도, 남수는 요즘의 최신 유행가 따위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자신의 체질엔 역시 통기타가 가장 잘 맞다고 스스로 자처하고 다닐 정도였다. 사실 이것은 부친의 취향에 다분히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아버지와 닮았단 소리를 꽤나 싫어하는 편인 남수로서는 그 사실을 절대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부친 김홍각씨는 전직 프로레슬러로, 한때 김일 선생님이 인정한 최고의 유망주였다고 한다. 그러나 레슬러 치곤 작은 신장때문에 경량급이 그다지 발달하지 못한 당시 일본 프로레슬링에 맞춰가기 위해 억지로 근육을 불려 헤비급으로 활동했고, 그 오버 트레이닝이 화근이 되어 건강상에 지대한 문제가 발생해 결국 은퇴했다고 했다.
그런 사람의 아들로 태어난 남수 또한, 어렸을때부터 온갖 비인간적인 하드 트레이닝을 아버지로부터 받아 왔다. 주위에서는 감각만큼은 부친의 천부적인 소질을 이어 받았다고 했지만, 체질에 차이가 있어서인지 근육은 그렇게까지 불지 않았다. 그래서 남수의 체형은 언뜻 보기엔 마른 체형으로 보이나, 벗겨 놓으면 의외로 단단한 몸임을 알 수 있다.
아버지는 그런 남수를 프로 레슬러로 만들려고 했으나, 이내 포기하고는 이종격투계에 나가면 어떻겠냐며 자꾸 남수를 들볶았다. 그러나 무식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것에 비하면 의외로 남수가 범부였던 탓에 결사반대했고, 지금은 아버지로부터의 해괴한 권유도 많이 줄어든 편이었다.
'그 인간은, 머릿속까지 근육이라니까. 외동아들의 행복은 빌지 못할 망정, 사지로 등 떠밀어 넣을 생각을 하다니. 쳇.'
그때였다. 남수가 잡상에 빠져 외부 환경에 대한 인식이 미미해져가던 그 타이밍에, 무엇인가가 툭, 하고 남수의 어깨와 부딪혔다.
"씨바, 뭐야아?!"
그리고 그 부딪힌 무엇인가가, 사나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어, 미안..."
경황이 없었던 탓에, 남수의 목소리는 다분히 '형식적인 사과'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왔다. 초면의 상대에게 씨바, 라는 금기스런 단어까지 사용할 상대인 만큼, 그는 이러한 형식적인 사과에 즉각 '노발대발'이라는 단어로 표현 가능할 만한 반응을 남수에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 씨벌넘아, 미안하면 다냐? 엉? 이 개새꺄. 씨바 종나 짱나네, 어쭈, 교복보니 우리 학교 아냐. 씨바, 아주 겁대가리를 갈아서 햄버거 해먹었구먼? 개새꺄, 몇학년 몇반이야? 언능 불어, 쓉새야."
190는 족히 되어보이는 거구의 고등학생은 걸쭉한 말투로 남수의 기선을 제압하려 들었다. 그러나, 부친의 친구 중엔 2미터가 넘는 사람도 있다. 입담도 이것보다 더 걸진 사람 많다. 그리하여 남수는 평정을 잃지 않았고, 그것 자체가 또 다시 거구의 고등학생의 심기를 건드려 버린 모양이었다.
"아- 씨바!! 새 학기가 시작되는 이 즐거운 아침에 어떤 종나 싸가지 없는 섀끼가 또 인생을 포기하려 드네?! 야이 쓉새야, 몇학년 몇반이냐니까? 씨바, 아침밥 먹고 후식으로 딱풀이라도 처먹었냐? 씨바섀꺄, 주둥이가 붙었어?"
"2학년 4반인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남수가 대답했다.
"오올- 4반? 이 쓉새 디졌다. 나도 4반이거든, 이 개새꺄. 맘같아선, 씨바, 이 자리에서 당장 개방내주고 싶은데, 씨바, 첫날부터 지각하면 한학기가 재수없거든. 이 개새꺄, 알겠냐? 좀 있다가 학교 마치고 보자. 이 개쉐끼."
그 말을 마치고, 거구의 고등학생은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사라져 갔다. 남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왠지 모를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덴장, 아버지가 갑자기 전학 시킨 이유가 대충 짐작이 가는군. 언제 날 잡아서 대한민국 교육헌장이라도 보여 줘야지 원... 앞으로 고달프겠는걸...'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남수는 발걸음 당당히 등교를 계속했다. 그리하야, 남수의 백동 고등학교에서의 첫 날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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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서 쓰는 글입니다. 태클은 금지입니다.
제 홈에 연재하는 중이며, 반응 괜찮으면 계속 올릴 생각입니다.
당연한 소리겠지만, 졸린 눈에 햇살이 들어온다고, 잠에 취해 반쯤 막혀버린 귓구멍에 부친의 목소리가 멋대로 흘러 들어온다고 해서 곤히 자던 신체건강한 고등학생의 육체가 즉시 수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다. 남수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이런 경우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무의식적으로 입밖에 내는 대사가 흘러나오게 마련이다.
"음... 오분만 더..."
이런 경우에 일반적인 가정이라면 모친의 따뜻한 손길과 뇌내 가득 모성애로 채워버리는 목소리로 남수를 깨워 보려 노력하겠지만, 이 가정은 그렇게 따뜻하고 안락한 일반적인 가정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뭐, 스스로 초래한 결과지만.
"오늘의 서브미션은 4자 굳히기다. 영어로는 Figure Four Leg Lock이라고 하지. 한쪽 다리를 잡고 빙글 돌아 비튼 다음에, 상대의 다리를 '4' 모양으로 만들어서 자기 다리를 넣고 조아버리면 된다."
보통 체격의 남수에 비하면, 이미 인간의 한계를 넘어섰다고 판단되는 어마어마한 육체미의 부친이 내뱉은 말은, 자신이 지금 수마에게 굴복해버린 불초 아들에게 시전중인 기술을 설명한 것이다. 그로기 상태의 아들에게 이 기술은 실로 특효. 당장 반응이 오자, 부친 김홍각씨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반응 좋고. 일어나라. 밥 해놨다."
"살려줘요!! 아, 아버지이이이이이!!!"
창문을 열어놓고 잠든 탓에, 온 동네에 비명소리가 퍼진다. 주인과 함께 아침 햇살을 받으며 한가로운 산책 시간을 즐기던 강아지가, 뭔가 위기감을 느꼈는지 신나게 짖어댄다. 부친 김홍각씨는 자신의 아들이 완전히 수마를 쫓아냈다고 보일 때 까지 기술을 풀지 않다가, 반 실신 상태에 이르자 겨우겨우 다리를 풀어 줬다.
"...아버지... 축구선수 김병지는 남자의 생명이 허리가 아니라 다리라고 했습니다."
볼멘 소리로 중얼거리는 남수.
"그래서? 네 놈이 야밤중에 다리 써 본적은 있냐?"
당당히 받아치는 부친의 위용에 남수는 할 말을 잊는다.
"나이가 벌써 열여덟인 놈이 여자 하나 후리지도 못하고. 나 젊을땐 안 그랬다, 이놈아."
'거짓말' 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필사적으로 참는 남수였다. 저 괴물과 싸우면 남는 건 박살밖에 없으니. 부친의 파괴력이야, 애시당초 알고 있는 바이다.
무의미한 싸움은 피하는 것이 신조였던 만큼, 남수는 순순히 방에서 나와 밥을 먹는 방안을 선택했다.
"착하다. 효자났구나."
"아버지, 이런 환경에서는 신창원도 효자될겁니다."
"그 말은, 내가 훌륭한 아버지란 말이지? 어릴적부터 시킨 하드 트레이닝이 이제서야 빛을 발하는구나. 훗."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를 중얼거리는 아버지를 뒤로 하고, 남수는 밥솥에서 밥을 퍼내기 시작했다. 솔직히 별로 먹고싶진 않지만, 안 먹었다간 아버지가 무슨 기술을 걸어올지 알 수가 없다. '밥이 보약'이라는 격언을 인생 두번째 좌우명으로 설정한 떡대라서리.
"오늘부터, 새 학교에 가는구나. 기분은 어떠냐?"
아버지가 밥을 퍼면서 한마디 걸어온다. 적당히 입은 XL 사이즈의 티셔츠가 터질듯 보일 정도의 근육을 자랑하는 남자가 밥을 푸고 있는 장면이라... 어쩐지 등골이 오싹하다.
"그냥 그렇죠 뭐. 그나저나, 어떤 학교입니까? 1학년 마치고 갑자기 한마디 상의도 없이 전학이라니."
역시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남수가 말했다.
"뭘 또. 이 애비 성격 괴팍한 건 너도 알잖느냐. 그냥, 좋은 학교다. 일종의 특수 목적 고등학교랄까- 물론, 정부에서 정한 게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정한 거지만."
부친은 대수롭지 않게 웃으며 말한다. 그러나 걷잡을 수 없는 걱정이 남수의 마음속에서 먹구름처럼 퍼져간다. 저 인간은 도대체 뭔 짓을 벌일지 예측을 할 수 없다니까.
"......그럼 어떤 방향의 특수 목적 고등학교입니까?"
불안을 밥 한술과 함께 삼키며, 남수는 부친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아, 맛없다- 라는 말을 먼저 할 걸, 하고 남수는 순간 후회한다. 이건 밥이라기 보다는 쌀이잖아. 10년 가까이 밥을 했으면서 아직도 이 모양이라니. 전기밥솥으로 밥 하는 거 맞는지 몰라.
"아주 좋은 방향의 특수 목적 고등학교다."
이 한마디에, 남수는 더 이상 말을 하고 싶은 기분이 생기지 않는 것을 느꼈다. 어여 먹고 등교나 해야지. 부친에게 캐묻는거 보다는 그 편이 빠를 거라고 결론내린 남수는, 밥을 뜨는 숟가락에 가속을 붙인다.
그리고 그 순간 날아오는 빗겨베기 챱. 숭모근(목과 어깨 사이의 근육)에 정확히 꽂히는 수도의 정확도에, 남수도 잠시 경악한다.
"컥!!"
"꼭꼭 씹어 먹어라."
"덴장......제발 내세에는 부자관계로 태어나지 않길 바랍니다."
"흥, 못된 놈."
화기애애한 김홍각씨 가정의 아침이 이렇게 지나갔다.
집안에서의 사정이 어찌 되었든 간에, 등교란 거 알고보면 참 기분좋은 것이다. 특히 지방 소도시 변두리에 있는 이곳의 등교는.
적당히 시원한 바람이 귀를 간지럽히는 것을 느끼며, 남수는 모처럼 기분좋게 발걸음을 옮겼다. 새소리를 들어보는 것도 참 오래간만이군, 하고 생각한다. 이런 분위기라면, 전학온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군.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노래는 의외로 조금 오래된 포크송. 시대에 뒤떨어졌니 뭐니 소리를 들어도, 남수는 요즘의 최신 유행가 따위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자신의 체질엔 역시 통기타가 가장 잘 맞다고 스스로 자처하고 다닐 정도였다. 사실 이것은 부친의 취향에 다분히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아버지와 닮았단 소리를 꽤나 싫어하는 편인 남수로서는 그 사실을 절대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부친 김홍각씨는 전직 프로레슬러로, 한때 김일 선생님이 인정한 최고의 유망주였다고 한다. 그러나 레슬러 치곤 작은 신장때문에 경량급이 그다지 발달하지 못한 당시 일본 프로레슬링에 맞춰가기 위해 억지로 근육을 불려 헤비급으로 활동했고, 그 오버 트레이닝이 화근이 되어 건강상에 지대한 문제가 발생해 결국 은퇴했다고 했다.
그런 사람의 아들로 태어난 남수 또한, 어렸을때부터 온갖 비인간적인 하드 트레이닝을 아버지로부터 받아 왔다. 주위에서는 감각만큼은 부친의 천부적인 소질을 이어 받았다고 했지만, 체질에 차이가 있어서인지 근육은 그렇게까지 불지 않았다. 그래서 남수의 체형은 언뜻 보기엔 마른 체형으로 보이나, 벗겨 놓으면 의외로 단단한 몸임을 알 수 있다.
아버지는 그런 남수를 프로 레슬러로 만들려고 했으나, 이내 포기하고는 이종격투계에 나가면 어떻겠냐며 자꾸 남수를 들볶았다. 그러나 무식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것에 비하면 의외로 남수가 범부였던 탓에 결사반대했고, 지금은 아버지로부터의 해괴한 권유도 많이 줄어든 편이었다.
'그 인간은, 머릿속까지 근육이라니까. 외동아들의 행복은 빌지 못할 망정, 사지로 등 떠밀어 넣을 생각을 하다니. 쳇.'
그때였다. 남수가 잡상에 빠져 외부 환경에 대한 인식이 미미해져가던 그 타이밍에, 무엇인가가 툭, 하고 남수의 어깨와 부딪혔다.
"씨바, 뭐야아?!"
그리고 그 부딪힌 무엇인가가, 사나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어, 미안..."
경황이 없었던 탓에, 남수의 목소리는 다분히 '형식적인 사과'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왔다. 초면의 상대에게 씨바, 라는 금기스런 단어까지 사용할 상대인 만큼, 그는 이러한 형식적인 사과에 즉각 '노발대발'이라는 단어로 표현 가능할 만한 반응을 남수에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 씨벌넘아, 미안하면 다냐? 엉? 이 개새꺄. 씨바 종나 짱나네, 어쭈, 교복보니 우리 학교 아냐. 씨바, 아주 겁대가리를 갈아서 햄버거 해먹었구먼? 개새꺄, 몇학년 몇반이야? 언능 불어, 쓉새야."
190는 족히 되어보이는 거구의 고등학생은 걸쭉한 말투로 남수의 기선을 제압하려 들었다. 그러나, 부친의 친구 중엔 2미터가 넘는 사람도 있다. 입담도 이것보다 더 걸진 사람 많다. 그리하여 남수는 평정을 잃지 않았고, 그것 자체가 또 다시 거구의 고등학생의 심기를 건드려 버린 모양이었다.
"아- 씨바!! 새 학기가 시작되는 이 즐거운 아침에 어떤 종나 싸가지 없는 섀끼가 또 인생을 포기하려 드네?! 야이 쓉새야, 몇학년 몇반이냐니까? 씨바, 아침밥 먹고 후식으로 딱풀이라도 처먹었냐? 씨바섀꺄, 주둥이가 붙었어?"
"2학년 4반인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남수가 대답했다.
"오올- 4반? 이 쓉새 디졌다. 나도 4반이거든, 이 개새꺄. 맘같아선, 씨바, 이 자리에서 당장 개방내주고 싶은데, 씨바, 첫날부터 지각하면 한학기가 재수없거든. 이 개새꺄, 알겠냐? 좀 있다가 학교 마치고 보자. 이 개쉐끼."
그 말을 마치고, 거구의 고등학생은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사라져 갔다. 남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왠지 모를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덴장, 아버지가 갑자기 전학 시킨 이유가 대충 짐작이 가는군. 언제 날 잡아서 대한민국 교육헌장이라도 보여 줘야지 원... 앞으로 고달프겠는걸...'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남수는 발걸음 당당히 등교를 계속했다. 그리하야, 남수의 백동 고등학교에서의 첫 날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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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해서 쓰는 글입니다. 태클은 금지입니다.
제 홈에 연재하는 중이며, 반응 괜찮으면 계속 올릴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