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있을 16강 경기를 앞두고, 남해는 접이식 침대에 앉아 D-패드로 이전 상대의 듀얼 로그를 읽는둥 마는둥 하고 있었다.
다음번에 붙을 상대는 홍진고의 강진호. 그러나 남해의 머릿속은 아직도 저번에 만난 이이사라는 여자아이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아니야, 일단은 덱부터 손봐야지.’
남해는 엑스트라 덱을 주시하다가 말없이 [크리스트론-피니키시온]을 뺐다.
생각해보면 원래 세상에서도 애매한 소환 조건과 의외로 쓸 일이 적은 성능으로 인해 즐겨 쓴 카드는 아니었다. 그 다음에는 [코랄 드래곤] 역시 제외시켰다.
교체용 카드 뭉치를 하나둘 넘겨보던 남해는 [땅 속성] 칸을 넘기다 한 장의 카드를 찾아냈다.
[증식의 G].
“이거를 넣고… 이제 덱 스페이스가 꽉 찼으니… [격류장]을 빼야겠어.”
-“신중하게도 짜네.”
“나한테는 집에 가느냐 마느냐가 달린 문제야.”
마리오네트와 다시 마주칠 거란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막상 그 장소가 이런 대회 자리가 되니 남해는 머리가 쪼개질 것 같았다.
그때 분명 타락천사 덱이었지. 라이프가 100까지 몰리는 위기였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러고보니 그때 대체 뭘 꺼내려고 했었던거지? 갑자기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카드가… 아니… 왜 이게 기억나지 않는 거야…?
그렇지만 아무리 고민해도 제자리걸음이자 남해는 생각을 그만두고 고개를 세차게 휘저으며 다시 대회에 집중하기로 했다.
일단 오랫동안 건드리지 않아 꺼진 패드의 화면을 켜고 [덱 저장]을 누른 남해는 한참을 더 고민하며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틱. 어두운 방 안에서 핸드폰 불빛이 꺼졌다. 바닥에 깔아둔 요에 누워있던 진호는 천천히 방금 본 영상을 되새겨보았다.
‘내가 교대표로 나가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했어…’
그나마 32강에서는 정말 천운이 따라서 이길 수 있었다.
사실 진출하더라도 16강에서는 당연히 유철이 상대가 될 줄 알았지만, 진호의 상대가 된 것은 예상외로 남해였다.
남해에 대해서라면 조금은 알고 있다.
해황으로 봉쇄호루스를 원턴 낸다거나… 교내의 듀얼에서 서로 죽도록 치고받다가 깡타점을 뽑아내 뒤집는다거나…
뭐 대충 자기랑 비교하면 무슨 부분을 생각해봐도 자기가 낫다고 자신할 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한숨만 푹 쉬던 진호는 남해의 듀얼 영상들을 다시금 머릿속으로 곱씹어보았다. 그 교내 듀얼 영상은 남해의 듀얼 방식의 전형적인 예시였다.
‘리쿠르트 몬스터로 버티면서 기회를 노리고, 버티다가 기회가 찾아오면, 가진 것을 가능한 만큼 활용해 반격… 나랑 거의 같네…’
하지만 비슷한 방식이더라도 교신과 가르도스를 무시하고 공세가 가능한 가이저나 자신의 여러 몬스터들을 카운터치는 클리어윙, 아예 속성째로 메타를 칠 수 있는 쵸호우…
하나같이 골치가 아픈 몬스터들이 남해의 덱에는 가득 들어있었다.
‘메타 카드? 어설프게 메타치면 자승자박이 될텐데… 어떻게든… 아냐, 이건 어떻게든 될 문제가 아니야.’
진호는 혼자 계속 고민하며 덱을 펼쳐보고 접기를 반복하다 결국 덱을 내려놓고 입가로 손을 가져갔다.
덱 맨 앞의 [가스타의 무녀 윈다]가 자기에게 꼭 힘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으으… 이걸 넣고… 가르도는 몇장이 좋을까…”
…
오후 3시. 아직 경기 시작까지는 시간이 넉넉하게 남아있었다.
대회 덕분에 학교를 빠지게 된 남해는 일찍 경기장에 와 덱도 보고, 경기장 건물도 괜히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마음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이제 두 번째인데도 진정이 안되네…’
그런 남해의 눈에 들어온 건, 테이블에 앉아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다릴 쉴새없이 떨고 있는 한 소년의 모습이었다.
몸 곳곳에 붙은 자잘한 음향기구, 팔에 붙은 큼직한 교대표 완장과 누가 봐도 교복이라고 생각되는 옷까지.
누군지는 몰라도 자기와 같은 교대표가 틀림없었다.
“너도 순서 기다리는 거야?”
“응? 으응. 으으으응…”
남해가 같은 테이블에 앉자 소년은 긴장한 듯 몸을 뒤로 뺐다.
어색해지는 분위기에 남해가 괜히 말을 걸었나 몸을 뒤로 빼던 그때 소년이 뭔가 알아챈 듯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네가 남해 맞지? 룡성 쓰던 걔.”
“어? 아, 응. 나 맞아.”
32강 듀얼은 굉장히 치열하기도 했고 처음으로 겪어본 실전이라 추태도 좀 있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이겼다.
남해는 그 듀얼이 누군가의 기억에 남았다는 사실이 부끄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리쿠르터 위주로 운용되는 덱한테는 ABC가 천적인데…”
“맞아, 나도 예전에 몇 번 붙을 때마다 고생다니까. 아무리 턴제약이 있어도 제외 프리체인은 좀 심한 거 아냐?”
“나도 리쿠르터 위주로 굴러가는 덱이라… 제외 당하면 골치아파.”
소년이 말끝을 흐리며 끝낸 혼잣말에 남해가 대답을 해주자 그제야 소년은 말문이 트였는지 몸을 앞으로 살짝 당기며 남해와 대화를 이어갔다.
교대표끼리의 부담감이나 비슷한 덱을 쓰는 유저끼리의 동질감 같은 것을 이야기하며 둘은 서로 뭔가 잘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도 룡성 쓸거야?”
“응? 응. 파츠만 조금 손봤어. 피니키시온 빼고… 격류장 빼고…”
“그래도 룡성은 낫지. 가스타는 애들 효과가 하나씩 나사가 빠져있거든.”
가스타?
남해는 그 이야기를 듣자 바로 떠오르는 게 있었다. 대충 읽은 듀얼로그라 잘 기억나지 않지만 16강에서 만날 상대가 가스타였을텐데?
남해의 흔들리는 눈을 보고 상황이 이상해짐을 깨달은 소년이 말을 멈추자 분위기는 더 빠르게 식어갔다.
“잠깐만… 가스타면 너…”
“강진호 학생! 확인할 서류가 있는데요!”
“아, 예!”
양복을 잘 차려입은 진행요원이 급하게 진호를 부르며 이쪽으로 달려왔다. 자기 이름이 불리자 진호는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남해는 그제야 지금 앞에 앉은 학생이 다음 듀얼에서 맞붙을 상대, 강진호라는 것을 깨달았다.
급하게 요원을 향해 뛰쳐나가던 진호는 앞으로 가다 말고 잠시 고개를 돌려 남해를 돌아봤다.
둘 사이에는 아무 대화도 오가지 않았지만, 그 찰나의 순간 진호는 남해의 눈에서 여러 감정을 읽을 수 있었다.
놀라움, 당황스러움, 그리고… 분노.
‘저거…’
진호는 더 그 눈을 쳐다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 다음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대기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그때, 남해는 링 위로 올라와 간단하게 몸을 움직이며 듀얼을 준비했다.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도 보고 괜히 덱도 셔플해보며 마음을 추스르던 남해는 반대편에 나온 진호와 눈이 마주쳤다.
남해의 그림자 안에서 고개를 내민 가이저도 뱀처럼 긴 목을 뻗어 늘어트리고 진호를 이리저리 살폈다.
‘쟤가 이번 상대였구나.’
남해는 진호를 차가운 눈으로 응시했고 진호는 그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눈을 피했다.
가이저는 진호를 잠시 더 쳐다보다 뭐라도 본 듯 목을 움츠려 뒤로 빼더니, 녹아내리듯 바닥으로 쏟아지며 그림자로 빨려 들어갔다.
시선에 부담을 느꼈는지 후다닥 진호가 자리를 피하자 남해는 잠시 그 자리에 머뭇거리다가 진호를 쫓아갔다.
‘눈빛이 달라. 이길 수 있는 걸까?’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간 진호는 남해의 그 눈빛이 너무 큰 부담으로 느껴졌다.
자신과 눈이 마주치기 전, 남해의 얼굴에서는 긴장과 공포가 느껴졌지만… 그 안에 절대로 질 수 없다는 절박함이 보였다.
그래서 저 애가 ABC도 이긴 거였다. 그리고 자신과 눈이 마주친 다음은 속았다는 분노까지 더해졌다.
자신에게도 비장의 수는 하나쯤 있다. 단숨에 승부를 결정지을 비장의 수가.
하지만 정말 그걸 여기서 꺼내도 괜찮을까? 좀 더 높이 올라가고서 써야하는 거 아닐까? 그리고 먹히긴 할까? 쓰고서 실패한다면?
자기가 누구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정말 미안하지만, 나쁜 의도는 아니었다. 그냥
자꾸 쓸데없는 걱정만 늘어간다. 이럴 때가 아니다.
“힘내, 진호야. 할 수 있어.”
“저기?”
벽에 기대 혼잣말을 하던 진호는 코너에서 불쑥 튀어나온 남해와 눈이 마주쳤다. 진호는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네가… 이번에 나랑 붙는 그 진호 맞지?”
“응? 으응… 응…”
진호는 남해가 무슨 말을 꺼낼까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얘가 나한테 해코지하는 거 아냐? 아니, 나 일부러 그런 거 아닌데… 이게 그렇게까지 화날 일인거야? 아니 잠깐만, 잠깐.
그리고 머릿속이 복잡해진 진호에게 남해가 손을 내밀었다.
“16강 승부. 잘해보자.”
“응? 어어, 어. 응? 아… 알았… 어…”
남해는 별다른 이야기 대신 악수를 청했다. 진호는 남해가 그 일에 대해 별다른 이야기가 없자 머뭇거리다가 손을 잡았다.
“미안…”
“뭐가?”
“그… 속이려던 건 아니었어…”
“뭐, 그럴수도 있지.”
남해는 그 일에 대해선 별말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좀 화나기도 했고, 속은 기분도 들었지만 이미 말해버린 일을 어쩔 수 있나.
먼저 말을 건 것도 자신이고, 진호 역시 일부러 자신을 속일 목적으로 그랬던 거 같지도 않고.
-“그런 거로 화내는 쪽이 얼간이인게다.”
그리고 가이저가 남해 옆에서 툭 던진 핀잔도 듣고보니 맞는 말 같았다.
물론 가이저가 진호에겐 보이지 않겠지만.
“경기 오늘이지? 최선을 다하자. 먼저 간다.”
진호는 다시 가버린 남해가 있던 자리를 잠시 쳐다보다 뭔가 생각이 났는지 덱을 꺼냈다.
그래, 지금은 다 잊자. 저 애처럼 사소한 일이랑 고민은 다 저 멀리 던져버리고 이번 듀얼에만 집중하자.
되든 안되든… 할 수 있는 걸 하자.
그래, 저 애처럼.
경기 시작이 코앞으로 다가오자 남해는 마지막으로 마이크와 패드를 비롯한 장비를 점검했다.
패드와 설비의 연결상태도 양호했고, 상대방도…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지만 준비는 끝난 모양이었다.
그리고 촬영팀에게서 사인이 보내졌다. 익숙한 오프닝 배경음악이 깔리며 객석이 소란스러워졌다.
침착하자, 저번처럼 실수하지 말자. 그렇게 속으로 다짐하는 사이 캐스터들의 이야기가 끝나고 메인 캐스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GA배 학교대항전 16강, 그 첫 경기!! 시자아악!! 하겠습니드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오늘도 목이 터져라 영혼을 담아 소리치는 메인 캐스터의 외침과 함께 팡! 하고 파열음이 터졌다.
드라이아이스의 하얀 연기가 쭉 뿜어져 나왔고 객석에서도 반응이 환호성이 돌아왔다.
솔리드 비전 투영 장비들의 작동음이 울리자 진호는 심장이 그 소릴 따라 같이 쿵쾅쿵쾅 터질 듯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양 선수, 경기장 중앙을 주목해주십시오!!”
32강에서도 사용된 코인이 다시 필드 위에 생겨났다.
탱-!! 하고 맑은 소리를 내며 동전은 제자리에서 빠른 속도로 회전했고 서서히 속도를 줄이던 동전이 멈췄을 때, 동전의 눈은 진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진호 선수의 선제 공격으로, 게임 시작하겠습니다!!”
진호 쪽의 조명이 좀 더 밝아지다가 진호에게 한번 집중된 다음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서로의 아이디를 한 번씩 부르고 듀얼 개시를 알리는 버저음이 울렸다.
“머, 먼저 턴 받았습니다! 몬스터와 카드를 하나씩 세트하고, 턴 종료!”
-강진호/LP 8000/패 3장
가스타와 룡성의 플레이 스타일은 아주 비슷하다. 다르게 말하자면, 서로 상대가 어떤 식으로 나올지는 대충 다 알고 있는 셈이다.
-“가스타가 잘나봐야 딱히 이렇다할 전개 수단도 별로 없고… 그렇다고 자랑스레 초동으로 내세울 카드도 없지. 흥, 뻔한 결과다.”
-“두 학생의 듀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 강진호 선수의 덱은 가스타… 강남해 선수의 덱은 룡성. 두 덱 다 리쿠르트와 장기전이 특기인 덱이거든요. 아마 늘어지는 듀얼이 나오지 않을지… 오늘 정시에 돌아갈 순 있을지 걱정입니다.”
-“첫턴이라도 빠르게 넘어가서 다행입니다.”
오랜만에 턴을 빠르고 간단하게 넘겨받은 남해는 가이저의 이야기에 고갤 끄덕였다. 남해는 패를 쭉 둘러보고서 패드를 확인했다. [드로우 페이즈] 패널에 불이 들어왔다.
드로우한 카드는 [크리스트론 임팩트]. 패는 괜찮다.
“패의 [암룡성-죠쿠토]를 일반 소환! 그리고 패의 룡성 카드 두장을 버리고, 덱에서 공격력 0의 [풍룡성-호로우]와 수비력 0의 [염룡성-슌게이]를 특수 소환!”
가스타가 가진 주력 견제 카드라면 가르도스와 교신, 그리고 깃털펜이 있겠다. 가르도스는 레벨 5 이상의 싱크로 몬스터, 교신과 깃털펜은 마법 카드다.
탁상놀음이지만 호로우로 마법 내성을 부여한 클리어윙을 내세운다면야 어렵지 않게 돌파할 수 있을 것이다.
“레벨 2 죠쿠토에 레벨 1 호로우와 레벨 4 슌게이를 튜닝!
어둠속에 모인 정수는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불꽃처럼 타오르며 빛의 날개를 펼쳐라!!
싱크로 소환, 레벨 7 [클리어윙 싱크로 드래곤]!!”
[클리어윙 싱크로 드래곤/Lv7/2500 → 3000/2000 → 2500]
녹색 돌풍 안에서 새빨간 불티를 휘날리며 클리어윙이 날아올랐다. 남해는 패드에서 한 장을 뽑아 세트하고 [배틀 페이즈] 패널을 터치했다.
클리어윙도 몸을 숙이고 전투태세를 갖췄다.
“배틀! 클리어윙으로 세트된 몬스터를 공격!”
클리어윙이 숨을 들이쉬고는 입에서 녹색 돌풍을 발사했다. 돌풍이 세트 카드를 한번 긋고 지나가자, 그 위에 [가스타 가르도]의 모습이 나타나고 파괴되었다.
“전투로 파괴된 가르도의 효과를 발동! 덱에서 레벨 1 [가스타 이굴]을 특수 소환합니다!”
[가스타 이굴/Lv1/200/400]
“카드를 한 장 세트하고 턴을 종료.”
-강남해/LP 8000/패 2장
“그럼 드로우. 몬스터를 하나 세트!”
또다. 룡성의 전개력이 비루하다고는 하지만 가스타에 비할 바는 아니다.
필드 유지력만 어떻게 커버칠 수 있다면 언제라도 찍어누를 수 있다.
“제외 시킬 수 있는 카드가 있다면…”
“카드를 하나 더 세트하고 차례를 마칩니다!”
-강진호/LP 8000/패 2장
턴을 넘겨받은 남해는 덱에서 카드를 뽑았다. 드로우한 카드는 [크리스트론-시스트번]. 남해는 잠시 고민하다가 그 카드를 그대로 필드에 냈다.
“시스트번을 일반 소환하고 효과를 발동! 대상은 시스트번 자신!”
시스트번의 몸이 빛과 함께 쩌저적 갈라지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완전히 폭파되기 직전에 하얀 막이 시스트번의 몸을 감쌌고, 한번 폭발의 충격으로 시스트번이 뒤틀렸지만 끝내 붕괴하지 않았다. 오히려 하얀 막 안에서 시스트번은 서서히 재조립되고 있었다.
“뭐야…?”
“세트 카드 [금지된 성의]로 시스트번을 지정합니다! 이 턴 시스트번은 효과의 대상이 되지 않고, 효과로 파괴도 되지 않아요!”
[크리스트론-시스트번/A 1500 → 900]
금지된 성의의 생각지 못한 활용법에 남해는 잠시 어이가 없었다. 그리고 공세를 펼치는 대신 잠시 고민하다가 패를 다시 살폈다.
“패에서 [룡성의 휘적]을 발동. 묘지의 호로우, 죠쿠토, 후우시를 덱으로 되돌리고 덱에서 두장을 드로우하겠어.”
이번에 드로우한 카드는 [증식의 G]와 [스크랩 리사이클러]. 어젯밤 덱을 개수하면서 투입한 카드였다. 패를 잠시 주시하던 남해는 [엔드 페이즈] 패널을 눌렀다.
리쿠르트형 덱에게 괜한 공격을 하는 것보다 내가 준비가 끝나는 것을 기다리는 쪽이 이득이다.
-강남해/LP 8000/패 3장
“제 차례, 드로우합니다.”
턴을 넘긴 남해는 뭔가 불길했다.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불길했다.
진호는 패와 남해의 필드를 계속 살폈다.
‘지금이라면… 그 콤보를 쓸 수 있어.’
진호는 잠시 망설이다가 드로우한 카드를 패에서 발동했다.
“먼저 [싸이크론]을 발동! 세트된 카드를 파괴합니다!”
남해가 세트한 [크리스트론 임팩트]가 돌풍에 휘날려 파괴되었고 진호는 카드를 한 장 더 패에서 뽑아들었다.
남해쪽 필드에서 갑자기 열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닥에서 올라온 커다란 손이 클리어윙과 시스트번을 덥석 쥐어채고는 땅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뭐야?!”
“그리고! 클리어윙 싱크로 드래곤과 크리스트론 시스트번을 릴리스하는 것으로 [용암 마신 라바 골렘]을 상대의 필드에 특수 소환!!”
소름끼치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서부터 용암으로 된 거인이 올라왔고 그와 함께 거대한 철창살이 남해를 가뒀다.
[용암 마신 라바 골렘/Lv8/3000/2500]
“세트해둔 [가스타의 희망 카무이]를 반전 소환합니다! 여기서 카무이의 리버스 효과로 덱의 가스타 튜너 [가스타 가르도]를 특수 소환해서-”
“체인! 패에서 [증식의 G]의 효과 발동!!”
“-레벨 3 가르도와 레벨 2 카무이를 튜닝! 레벨 5 [다이가스타 가르도스]를 싱크로 소환한 다음 다시 가르도스에 레벨 1 이굴을 튜닝!”
사람은 가끔 지금 뭔가 꼭 해야만 된다 생각하는 순간이 있다. 남해는 증식의 G를 버리며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라 생각이 들었다.
카무이의 효과로 한 장, 가르도스의 소환으로 한 장, 그리고 이번에 나올 몬스터로 세 장…
“하나된 뜻으로 적에게 맞서는 거야, 우리들을 승리로 이끌어줘! 레벨 6 [다이가스타 스피어드]를 싱크로 소환!!”
[다이가스타 스피어드/Lv6/2000/1300]
스피어드의 효과는 남해의 기억으로는 전투 데미지 떠넘기기였다.
그리고 지금 자신 필드 위에는 공격력 3000의 라바 골렘까지 있는 상황. 그래도 일반 소환권도 없는 가스타가 이 턴에 줄 수 있는 데미지는 기껏해야 1000.
그정도 데미지는 감수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세트 카드 발동! [가스타를 위한 기도]!! 묘지의 카무이와 이굴을 덱으로 되돌리고 가르도를 공격표시로 부활시킵니다!!”
망했다. 망했다. 망했다.
남해는 덱에서 뽑혀나온 네장째의 드로우를 패에 넣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스피어드 단독이라면 몰라도, 리쿠르터가 붙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금 이렇게 철창 안에 갇혀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면서도 그대로 끝나야 하는 모습이 자신의 신세랑 똑같았다.
“아… 하, 이거…”
-“대책도 없는데…”
“배틀! 스피어드와 가르도로 라바 골렘을 공격!!”
스피어드가 먼저 지팡이를 휘두르자 라바 골렘에게 회오리바람이 날아와 부딪혔다.
그 다음 가르도가 쏜살같이 날아가 라바 골렘에게 충돌했고 두 번의 공격으로 라바 골렘의 몸이 움찔거릴 때마다 불티와 함께 라바 골렘의 용암이 남해에게 조금 튀었다.
-강남해/LP 8000 → 4500
“가르도의 효과 발동, 덱에서 가스타 이굴을 특수 소환!! 이굴로 라바 골렘을 공격!”
-강남해/LP 4500 → 1700
남해가 카드를 새로 뽑은 직후 폭연 속에서 이번에는 이굴이 저 높이 날아오른 다음 라바 골렘을 향해 그대로 몸을 내리찍었다.
라바 골렘이 고통스러운 듯 몸을 흔들자 더 많은 용암이 남해가 갇힌 우리로 떨어졌다.
남해도 진호도 승부의 향방을 확신했다.
“이굴의 효과를 발동, 덱에서 [가스타의 무녀 윈다]를 특수 소환! 그리고, 윈다로 라바 골렘을 공격하겠어!!”
남해는 넋을 놓고 덱에서 다음 카드를 드로우했다.
진호의 필드에 나타난 윈다가 지팡이를 한껏 치켜들고 빙빙 돌리다가, 라바 골렘을 향해 휘두르자 번개가 빠찍!! 하고 내리치며 라바 골렘을 덮쳤다.
남해의 라이프는 1700. 윈다와 라바 골렘의 공격력 차이는 2000.
콰앙-!!번개가 골렘을 내리치며 일어난 거대한 폭연이 남해의 필드를 뒤덮었다.
“해냈다…”
진호는 그걸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설마 했던 그 필살기가 정말로 먹힐 줄이야. 아직도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것만 생각하느라 스피어드의 효과 발동도 잊어먹고 놓쳐버렸다.
진호의 필드에 있던 윈다가 신이 나서는 진호를 돌아보며 폴짝폴짝 제자리 뛰기를 하다가,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렸다.
그리고 서서히 폭연이 걷혀갔다.
“내가 저번에 말했었는데, 그거 알아?”
그리고 걷힌 폭연의 뒤에서 아직 쓰러지지 않은 라바 골렘과, 여전히 작동 중인 남해 필드의 솔리드 비전들이 보였다.
오히려 갑자기 남해의 필드에서 진호 쪽으로 벼락이 튕겨나와 윈다의 옆을 내리찍었고, 윈다는 급히 방어태세로 바꿨다.
“패에서 소환하면 몬스터, 패에서 내면 마법, 그리고…
패에 쥐고 있다면 패트랩이라고!!!”
-“크리보르!!!”
-“32강에서도 나왔던 그 카드입니다!”
-강남해/LP 1700
남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서서히 걷혀가는 크리보르의 그림자를 쳐다봤다.
윈다의 특수 소환에 반응해 크리보르가 뽑히기 전까지는 정말 여기서 진다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구사일생이었다.
“턴… 종료.”
-강진호/LP 8000/패 1장
-강남해/LP 1700/패 7장
“그럼 내 차례, 드로우!”
남해는 턴을 넘겨받자마자 덱에서 카드 한 장을 드로우했다. 라바 골렘의 몸에서 떨어진 용암 한덩이가 남해의 바로 옆에 떨어졌다.
솔리드 비전인데도 피부가 화끈거리는 기분이었다. 남해는 간신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패를 쭉 살폈다.
이제 라이프는 고작해야 한줌이다. 최대한 빠르게 승부를 봐야 한다.
-강남해/LP 1700 → 700
“묘지의 시스트번을 제외해서 덱의 [크리스트론-프라시레타]를 서치하고, 서치한 프라시레타를 버리고 [크리스트론-설퍼프너]를 특수 소환!
그리고 설퍼프너의 효과에 따라 필드의 라바 골렘을 파괴한다!”
라바 골렘의 몸에서 끓어오르던 용암이 순식간에 식어가며 골렘의 모습이 바뀌었다.
이윽고 화강암 덩어리가 되버린 골렘은 쨍강!! 하고 시끄러운 파열음과 함께 산산조각났고, 남해를 가둔 우리도 함께 부숴지며 땅속으로 가라앉았다.
라바 골렘이 있던 자리에는 대신 수정 황룡 한 마리가 파편들을 밟고 서있었다.
“여기에 묘지의 프라시레타를 제외하는 것으로, 패의 [크리스트론-시토리]를 특수 소환하고 시토리와 설퍼프너를 튜닝!
지금 적의 숨통을 물어뜯어라! [사룡성-가이저]를 싱크로 소환!”
[사룡성-가이저/Lv7/2600/2100]
“그리고 가이저의 효과 발동! 자신과 스피어드를 대상으로 찍고, 파괴한다!!”
가이저의 몸에 새겨진 붉은 무늬가 꼬리에서부터 빛을 발했고 그 빛은 이내 목덜미까지 타고 올라왔다.
한번 발을 굴러 자세를 제대로 잡은 가이저는 숨을 크게 들이쉰 다음 검은 소용돌이를 토해냈다.
소용돌이는 이내 스피어드를 집어삼켰고, 가이저 자신이 흑안개가 되어 흩어짐과 함께 스피어드 역시 모습을 감췄다.
“파괴된 가이저의 효과에 따라 덱에서 환룡족 몬스터 [어버이해마]를 불러온 다음, 어버이해마 자신의 효과로 레벨을 3 내리고 토큰 세장을 불러온다!”
-“금천고 대표 강남해 선수, 솔리테어 엄청 돌리고 있습니다!”
-“라이프 700이면 바람 앞의 등불이니까, 지금부턴 실수 하나도 용납되지 않거든요.”
“레벨 4 어버이해마에 레벨 1 토큰을 튜닝, 레벨 5 [액셀 싱크론]을 싱크로 소환!!”
어버이해마에게 어린 해마 한 마리가 빨려들어가며 액셀 싱크론의 모습으로 변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남해는 덱에서 [제트 싱크론]을 뽑아내 묘지로 보냈고, 또 다른 해마가 빛으로 변해 액셀 싱크론에게 흡수되더니 액셀 싱크론은 뒤이어 보우텐코우의 모습으로 변했다.
“이제 1번 효과로 덱에서 [룡성의 기맥]을 패에 넣고, 패의 [수룡성-비시키]를 일반 소환! 그리고 2번 효과로 덱의 [마룡성-토우테츠]를 덱에서 묘지로 보내 레벨을 5로 만든 다음 원룡성을 레벨 2 비시키와 레벨 1 해마 토큰 둘에 튜닝! 레벨 8 [휘룡성-쇼후쿠]를 싱크로 소환한다!”
[휘룡성-쇼후쿠/Lv8/2300/2800]
“그리고 쇼후쿠의 효과에 따라, 네 필드에 남은 윈다를 덱으로 되돌리겠어!!”
콰아앙-!! 윈다의 머리 위에서 빛의 기둥이 내리꽂혔다. 콰아아아- 굉음을 내던 빛의 파동이 걷혔을 때 윈다의 모습은 흔적도 남지 않았다. 남해는 이를 꽉 물고 계속 덱에서 카드를 뽑아냈다.
“그리고 원룡성이 필드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덱에서 룡성 몬스터인 [지룡성-헤이칸]을 특수 소환한 다음 헤이칸과 묘지의 비시키를 대상으로 쇼후쿠의 효과를 발동하고 패의 [크리스트론-로즈닉스]를 버려 묘지의 [제트 싱크론]을 소생시킨다! 비시키와 제트 싱크론을 소재로 레벨 3 [해마]를 불러내겠어!”
-“지독하게도 돌리는구만…”
가이저가 핀잔을 주건 말건, 남해는 초조했다. 무조건 이 턴 안으로 승부를 본다는 생각 뿐이었다. 이를 악물고 최대한 머릿속으로 쓸 수 있는 빌드를 생각하며 다음 카드를 계속 패에서, 덱에서 뽑아들 뿐이었다.
“그리고 레벨 3 해마를 레벨 1 호로우와 크리스트론 토큰, 그리고 패의 레벨 3 [스크랩 리사이클러]에 튜닝!! 만물의 정점이 되어라, 레벨 9 [환룡성-쵸호우]를 싱크로 소환하고 패의 [죽은 자의 소생]을 발동해 묘지의 [사룡성-가이저]를 소생시키겠어! 마지막으로 [룡성의 기맥]을 발동하고, 배틀!!”
[환룡성-쵸호우/Lv9/2800/2200]
남해의 필드에 모인 세 룡성 전부의 공격력 합계는 8000 이상이었다. 오히려 이번에는 진호의 필드에 아무것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가이저로, 공격.”
남해는 간신히 숨을 돌리고 가이저로 직접 공격을 지시했다. 가이저의 입가에서 불꽃 튀는 소리와 함께 보랏빛 번개가 파지직 흘렀다.
다른 두 룡성도 가이저와 발맞춰서 진호를 공격할 태세를 갖췄다.
“이 승부, 내가 가져간다!!”
콰아아아아아-!!
“패에서 [속공의 허수아비]의 효과 발동!!”
파아앗! 진호의 앞에 고철로 만들어진 허수아비가 내리꽂히면서 반투명한 방벽이 생겨났다.
허수아비는 몸의 말단에서부터 갈려나가면서도 끝끝내 방벽을 지켜냈고 진호에게는 상처 하나 나지 않았다.
“패트랩은 너만 쓸 줄 아는 거 아니거든!”
남해는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봤다. 그리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심판이 카운트 다운을 세기 시작하자 그제야 D-패드의 [엔드 페이즈] 패널을 눌렀다.
-강남해/LP 700/패 2장
“남해야!”
코앞까지 온 승리를 놓친 것이 분한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남해를 진호가 불렀다. 진호는 남해에게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네가 32강에서 말했지! 여기 모인 서른 두명 모두가, 자기 학교에서 제일 잘난 애라고!”
남해는 그 이야기에 32강의 기억이 났다. 사실 그때는 간신히 잡은 역전의 실마리, 벼랑 끝에서 살아났다는 안도감 같은 분위기에 취해서 했던 말이었지만.
하지만 진호는 그 말에 대해 다른 느낌을 받은 것 같았다. 진호는 처음의 긴장은 어디갔는지 즐겁다는 듯 웃는 얼굴로 남해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맞아! 나도!! 우리 학교에서 제일 잘난 녀석이라 온 거니까! 패에서 [욕망과 탐욕의 항아리]를 발동!”
진호는 덱 맨 위에서 카드를 한뭉치 뽑아 그대로 패드의 제외 존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리고 덱 위에서 뽑혀나온 카드 두 장을 한번 확인한 다음 두 장 다 필드에 세트했다.
“카드 둘을 엎어두고 턴 종료!”
-강진호/LP 8000/패 없음
가스타에 욕탐이 들어간다는 것도 어이가 없는데 함정 2세트 엔드라니. 저건 함정이다. 무조건 함정이다.
하지만 때로는 저게 함정이라는 걸 알아도 밟아야 하는 순간이 있다.
“드로우.”
“가이저, 세트된 카드는…”
-“나는 모른다. 공격에 반응하는 카드일 수도 있고, 파괴되면 작동하는 트랩일 수도 있지. 어쩌면 그냥 허세일 수도 있다.”
고민하던 남해에게 가이저의 말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엔 자기도 모른다는 소리 아닌가.
남은 라이프는 700.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지만 번 계통의 카드라면…
-“강남해 선수, 고민이 많이 될겁니다.”
-“한장이면 가이저로 터트리면 되는데, 두장이면 하나가 남거든요.”
남해는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패를 한 장 뽑아들었다.
“패에서 [광룡성-리훈]을 일반 소환하겠어. 그리고 리훈과 3번 자리에 세트된 카드를 대상으로 가이저의 효과를 발동한다. 가이저, 흑랑아!!”
리훈이 바스러지며 가이저에게로 빨려들어갔고, 가이저가 토해낸 검은 소용돌이가 진호의 필드에 세트된 카드 한 장을 내리찍었다. 쨍강-!!하고 산산조각나는 소리와 함께 세트되어 있던 [왕혼조화]가 묘지로 갔다.
공격 반응형 카드는 부쉈는데, 그럼 세트된 나머지 한 장은?
남해는 진호의 얼굴을 쳐다봤다. 진호는 올테면 와보라는 듯 자신만만한 얼굴이었다.
그럼 저 카드 역시…?
남해는 잠시 멈칫하고 패와 필드를 몇 번이고 확인했다. [코랄 드래곤]을 빼는 게 아니었는데.
그럼 이제…
-“여기서 멈출 생각이냐?”
가이저의 핀잔에 남해는 정신이 돌아왔다.
그래, 잊으면 안되는 게 자신에게 있다. 돌아가고 싶으니까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까 돌아가기 전까지는 멈출 수 없다.
함정 카드라면 비시키를 소재로 쓴 쇼후쿠가 있다. 마법 카드라면 호로우를 소재로 쓴 쵸호우가 있다. 대상을 찍는 카드라면 가이저가 있다.
그러니까, 되든 안되든 일단 가보자.
“배틀!!”
남해의 패드에서 [배틀 페이즈] 패널이 빛났다. 가이저와 쇼후쿠, 쵸호우 셋이 남해의 고함에 맞춰 다시 한번 전투태세를 갖췄다.
“세마리 몬스터로 상대를 직접 공격한다!”
콰앙, 콰아앙-!!세 마리 룡성의 공격의 진호의 필드로 빗발쳤다. 폭연이 진호의 필드를 뒤덮어서 진호와 세트 카드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서서히 연기가 걷히며 진호의 필드가 드러났다.
-강진호/LP…
“헤, 안 속는구나.”
…8000 → 0
빠아아아앙-!! 경기 종료를 알리는 버저음이 울렸다. 양쪽 필드의 솔리드 비전이 서서히 걷혀갔다. 진호는 세트되어있던 [긁어부스럼]을 뽑아냈다. 이게 파괴되었다면 역전의 한수를 노릴 수도 있었을텐데.
남해는 한숨을 쉬고 카드를 정리했다. 반대편에서 남해에게 다가온 진호가 손을 내밀었고 남해는 별 고민하지 않고 그 손을 잡았다.
“수고 많았어.”
“너도.”
“네가 해준 말들 다 힘이 됐어. 그러니까 넌 꼭 높이 올라가줘.”
남해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도 없었다.
문득 남해는 무대를 내려가는 진호의 뒤에서 무언가가 보이는 것 같았다. 진호에겐 들리지 않겠지만 진호의 옆에서 윈다의 정령이 고생했다, 수고했다, 다음번에는 꼭 이기자… 뭐 그런 위로하는 말들을 건네고 있었다.
남해는 자신의 옆을 돌아봤다. 그곳에 둥둥 떠있는 가이저의 머리를 보고나니 남해는 갑자기 이기고도 진 기분이었다.
-“뭐.”
“아니야…”
…
자신의 차례도 끝나고, 슬슬 대기실에서 자기 물건을 정리하던 남해에게 간식거리를 한봉투 가득 채운 목사님이 찾아왔다.
“오, 남해야. 아직 있었구나.”
“네? 네. 슬슬 가려구요.”
“가기 전에 너도 이거 좀 먹으려무나.”
목사님이 꺼낸 것은 쌍쌍바였다. 익숙한 모습에 남해는 친근감을 느꼈다. 하지만…
“어, 쌍쌍바네요.”
“쌍쌍바? 원, 여긴 그런 거 없다. 이건 제미니바야.”
그렇지. 여긴 원래 살던 곳이 아니었지… 남해는 새삼 여기가 원래 세상이 아니란 게 느껴졌다.
두 막대를 잡아당기던 나의주 목사는 한쪽에만 몰리게 떼어진 아이스크림을 보며 잠시 생각을 하다가 적게 남아있는 쪽을 남해에게 내밀었다.
“남해야, 나는 나이가 많아서 당이 금방 떨어진단다. 그러니까 큰쪽은 내가 먹으마.”
“어… 예, 네.”
반쪽도 남지 않은 막대를 들고서 난감해하던 남해의 눈에 TV에 나온 대진표가 눈에 띄었다.
지금 탈락한 게 누구니까… 다음 매치업은 누구고… 이 다음은… 이사의 차례였다.
그걸 본 남해는 아이스크림을 물고 봉투 안에서 과자 한봉을 꺼내더니 대기실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급하게 복도를 달려 객석까지 눈썹이 휘날리게 뛰쳐온 남해는 대충 객석의 빈자리 아무곳에나 자리를 잡고 앉아 이사의 듀얼을 확인해보기로 했다.
마침 경기장의 중앙에 눈에 익은 동전이 나타났다.
“시작한다…”
이사의 듀얼을 지켜본다는 생각에 남해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이 됐다. 동전이 맹렬하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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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에 일을 지나 일을 하면서 결국 반년만에야 올라온 12화. 죄송합니드아아아아아아아아아!!!!!!
하필 가스타로 덱을 설정한 이유는 제 경험이 바탕입니다.
작중에서 남해가 마지막으로 경험한 9기를 기준으로 하면 가스타는 이미 구시대의 카드군입니다. 느린 전개력과 부족한 화력에 9기 이후의 시선에서 보면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덱 구성까지.
오죽하면 “디자인 컨셉은 령수에게, 운용 컨셉은 룡성에게 뺏긴 카드군”이란 이야기까지 봤습니다. 그런데 막상 붙어보니 그게 아니더라구요. 진짜 눈뜨고 코 베인다는게 뭔지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룡성이 가스타 상위호환이라는 사람들은 가스타의 원턴죽창에 찔려본 적 없는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꼭 얘들을 등장시켜보고 싶었습니다.
정작 등장시키고 나니 에이스도 없고 위기 넘겨줄만한 카드도 없고 덱에 포지션 비는 구간이 너무 많아 용두사미처럼 순식간에 끝나버린게 함정.
그러고보니 다음편이 나매가 참가하지 않는 첫 딱지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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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딱지칠 이사는 전에 딱지친 적 있는 사이지만 남해랑 진호라 하면 아무 관계가 없읍니다 | 19.11.10 23:4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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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예전 에피소드에서 만났다던가 하는 건 아니었군요. 작중에서 진호가 걱정하는 건 우연히 만났다가 놀라서 도망쳐나온 일 뿐인 거구나 난독증이 도졌습니다 죄송해요 | 19.11.10 23:4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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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니까 돌아가는거지 실전에서는 더 즉발성 좋은 포제를 스까시는걸 권합니다 룡성이 아니어도 피안처럼 필드 유지력 좋은 친구들도 많읍니다... | 19.11.10 23:4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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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긴 한데 딕을 짜는것도 하나의 재미이기 때문에 ㅎ 다음은 지원받고 있는 섀돌이군용 | 19.11.10 23:5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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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바골렘 소환제약만 생각하느라 저걸 놓쳤군요 해당 파트는 고쳐두겠습니다 지적 감사합니다 | 19.11.11 02:5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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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보니 서술에서 먼저 뭘 세트했는지 말하고, 파괴된 카드가 뭔지를 쓰지 않았다면 더 긴장감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너무 늦었군요 항상 듀얼의 흐름은 모르는 거니까요. 그리고 음... 그 이름이 맞습니다 | 19.12.18 00:22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