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어릴적 부터 할아버지를 참 좋아했었다.
할어버지는 손재주가 좋으신 편이라서
어린 나에게 방패연을 만들어 주기도 하고
낚시대를 만들고 같이 낚시를 가기도 했다.
낚시를 가면 물고기를 낚는 재미로 간다고 하지만
나는 그저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재미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사람들 말소리에 물고기가 도망가버린다고 하지만
할아버지는 달랐다.
할아버지의 낮은 저음의 목소리는
물고기에게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시며
항상 늦은 밤의 바닷가에 앉아서
낚시대를 준비해놓고는 라면을 끓이시며
이런저런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었다.
밤늦게 고개를 건너다가 도깨비를 만나 씨름을 하고보니
밤새도록 나무그루터기와 씨름을 하고 있었다느니
여우 목소리에 홀려서 절벽까지 갔다가 돌아가신 어머니(-할아버지)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적도 있다는 둥.
어찌보면 내가 즐겨보던 무서운 이야기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였지만
나는 할아버지가 이야기해주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할아버지가 말씀해주시는 것이 더욱 사실적이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무엇보다 할아버지와 함께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즐거웠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할아버지는 하루에 딱 먹을 만큼의 고기만 잡히면
미련없이 집으로 돌아오셨다.
빈손으로 돌아온 적도 없지만
가방가득 물고기를 담아온 일도 없다.
내가 라면 하나를 비우는 동안
할아버지는 소주를 한병 드셨고
이야기가 끊어질 때 쯤에는
항상 먼 바다를 바라보시며
나즈막히 의미를 알 수 없는 노래를 부르시곤 했다.
그 당시 유행가라고 할만한 노래는 아버지를 통해 다 알고 있었지만
할아버지가 부르는 노래는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들 뿐이었다.
정확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무척, 무언가를 안타까워하고 그리워하는 그런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침술도 잘 하셨다.
전문적인 자격증을 가지고 계신 것은 아니었지만
워낙 솜씨가 좋다고 소문이 나서 동네 사람들은 시내의 한의원에 가지않고
우리 할아버지에게 침을 맞으러 왔다.
할아버지께 '선생님, 선생님'하면서 주시는 사례(-그래봤자 쌀 한되나 과일 몇개였지만)도
그저 웃으시며 같이 나눠드시자고 집안으로 모시는 그런 분이었다.
항상 넉넉하고 웃음이 많으시던 할아버지가 굉장히 걱정하는 표정을 본 것은 딱 한번.
내가 고개를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을 때였다.
동네에서 제일가는 침술을 가지셨다는 분이
나를 업고 1시간이나 걸리는 시내에 가서
비싸다는 병원 검사를 3시간이나 받게하셨다.
집안의 장남이라 그러시는 거려니... 라고 생각했지만
내가 아무리 고통스러워해도
할아버지는 걱정스러운 표정만 지으신채
나에게 침을 놓으려하지 않으셨다.
보다못한 우리 어머니께서 할아버지께 먼저 말씀을 드리기 시작했다.
'병원 검사에서도 별 문제가 없다고 했잖아요...
아버님 능력이시라면 침이라도 한번 놓아주세요.
잘 안되더라도 절대 원망하는 일 없어요.
아버님. 그래도 아버님께서 제일 아끼시는 손자잖아요....'
'애미야....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란다.'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침놔서 잘못될까봐 걱정하시는 거잖아요.
저 아이 저렇게 고통스러워하는게 안보이세요?'
'.......'
할아버지는 내가 아파서 누워있는 동안
한번도 자리를 비우지 않으셨다.
오히려 낮에는 어머니나 아버지를 앉혀놓고
절대 자리를 비우지말라고 엄포를 놓으시고도 맘이 안놓이시는지
항상 내 머리맡에 자리를 깔고 누우셨기 때문에
어머니 아버지는 말도 못하고 그저 한숨만 쉬고 계실뿐이었다.
그리고 밤이면 어김없이 내 머리맡에 앉아서
바닷가에서 부르시던 노래를 부르며 내 머리를 만져주셨다.
'....아스라이......그 날을....... 용서하오.
그대의...... 이해하지만.... 어떻하오.
어린.... 무슨......있겠소..... 마음은... ...이해하오.
..... 있다면..... 하겠건만..... 이몸이....
나라도........ 그렇게 해주시게..'
머리는 움직이지도 않고 항상 고열에 시달렸던 나로선
평소엔 고요하게 들리던 할아버지의 노래가
날카롭게 파고드든 칼날처럼 내 머리를 찌르듯 아프게 느껴졌지만
어쩐지 평소보다는 다른 고통이 덜어지는 느낌이 있었다.
'할....아버지.'
'응. 그래. H야. 푹 자도록해라.
이 녀석과는 내가 이야기를 잘 해볼테니까.'
'누구말하는 거예요.?'
'너 아프게하는 녀석이랑 이야기하는 중이란다.
지금 말고 나중에 이야기 하자꾸나.'
이미 몽롱해진 의식으로 더 대화할 수 없었던 나는 다시 정신을 잃었고
간간히 들려오는 할아버지의 노래를 들으면서 잠이 들어버렸다.
열흘이 지났을까
할아버지는 다른 사람을 전부 내보내고
내 옆에 침구를 놓으시며 나에게 말씀하셨다.
'지금부터 내가하는 이야기를 잘 듣거라.
내가 침을 놓는 동안 절대 조금도 움직여선 안된다.
예전보다 더 아프겠지만 난 우리 손자는 잘 참을거라고 믿는다.
그렇지? 우리 손주는 잘 참아낼꺼야.'
'응. 할아버지. 어차피 지금도 충분히 아픈걸.'
'응. 잠시 따끔하다가 나중에는 조금씩 나아질꺼다.
그리고 침을 놓는 중에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도 절대 대답해서는 안된다.'
'엄마나 아빠가 불러도?'
'그래. 내가 불러도 절대 대답해서는 안되는거야. 알겠지?
다 끝나면 할애비가 네 등을 두드릴테니 그 때 바로 누워서 자면된다.
하지만 내일까지는 누가 불러도 대답해서는 안돼. 알겠지?'
'할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꼭 그렇게 할께요.'
'.......그래... 그럼 시작하자꾸나.'
할아버지는 나를 엎드리게 하시고는 침을 놓기 시작했다.
고개를 움직이지 못하는 나로선 엎드리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힘든 일은 베게에 코를 박은채로 엎드리는 것이었다.
숨을 쉬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기 때문에
가끔 나는 숨을 몰아쉬었고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내 팔을 두드리시며
입에 검지손가락을 가져다대시고
내가 아무소리 내지않도록 주의를 주셨다.
할아버지가 놓으신 침은 굉장히 아팠다.
고개가 돌아가지 않던 그 동안의 고통도 심했지만
할아버지가 침을 놓은 자리마다 통증은 뿌리내리는 것 처럼 퍼졌고
그게 늘어날 때마다 통증은 더더욱 심해져갔다.
몇번이고 울고 싶었지만
그럴때마다 모두 안다는 듯 할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숨쉬는 것도 등 뒤의 고통도 매우 컸지만
나는 할아버지와의 약속을 기억하고 절대 아무소리도 내지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건 정말 온몸에 뿌리를 내리는 듯한 고통이었다.
이전에 맞아봤던 침은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할아버지가 놓아주시는 침은 아픈적이 없지만
오늘은 놓아준 곳에서 무언가 뻗어나가는 느낌이 너무 아프게 느껴졌다.
마치. 온몸에 문신이라도 새기는 느낌이었다.
차라리 정신을 잃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
나는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H야. 괜찮니?'
나도 모르게 대답할 뻔 했지만
나는 고개를 돌려 할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래.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평소에도 그랬다는 듯
할아버지의 고개를 쳐다 보았다.
할아버지는 다행이라는 표정이었지만
여전히 입술에 검지손가락을 대고 아무런 말을 하지말라는 표현을 하셨다.
대답안했다고 엄마한테 혼날것이 두려웠지만
할아버지에게 미움받는게 더 싫었기 때문에 나는 내 손으로 귀를 막아버렸다.
'H야.'
이번에 아버지 음성이 들렸다.
분명. 나는 귀를 막았지만 똑똑히 들렸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절대 내 이름만 부른적이 없다.
가문의 장손으로 절대 근본을 잊어선 안된다면서
성과 이름을 따로 불러본 적이 없는데....
그래도 나를 걱정해준다는 마음에 마음이 놓였다.
그래서 대답하려는 순간
할아버지가 조용히 내 머리에 손을 얹으시며 내 행동을 제지하셨다.
할아버지를 쳐다보니 매우 엄숙하게 또다시 입술에 검지손가락을 대고 계셨다.
그런식으로 몇시간이 지났을까.
할아버지는 내 몸에 놓아두신 침구를 하나씩 제거하기 시작했다.
하나씩 침구가 사라지면서 지금까지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던 느낌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언제그랬냐는 듯 하나씩 내 고통이 사라지면서 고개는 물론, 조금씩 마비되어가던 몸도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내 안의 모든 고통이 사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 침구가 뽑힐때 나는 내 몸을 바로 뉘이면서
할아버지에게 감사한다는 마음을 꼭 전하고 싶었다.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순간. 나는 할아버지의 얼굴에 드리워졌던 어둠을 잊을수 없다.
갑자기 방문이 요동쳤다.
할아버지는 허둥지둥 침구를 챙기시고 방문을 향해 외쳤다.
'어르신 감사합니다.'
그러자 요동치던 방문도 잠잠해졌다.
할아버지는 잠시 방문을 바라보시다가
내손을 꼭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H야. 네가 나아진 것 같아서 참 다행이구나.
앞으로도 이런 일이 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단다.
못난 할애비만나서 니가 고생이 많구나.
하지만 이제 아프지 않을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항상 다른 사람을 챙기는 마음을 잊어선 안된다.
그리고 절대 몸에 열을 부르는 '삼'이나 '영지버섯'같은 음식은 절대 입에도 대지 말고
혹여 니가 살아가는데 누가 네 이름을 부르거든
세번까지는 대답하지 말거라.
애미나 애비한테는 잘 이야기 해놓으마.
할애비 이야기 꼭 잘 들어야 된다.
애미든, 애비든, 할애비든...
앞으로 누가 불러도 같은 방식으로 부르는 거라면 세번까지는 대답해선 절대 안돼.
우리 손주는 착하니까 할애비 이야기 잘 들어줄거라 믿어요.
그러니까 그래줄 수 있지?'
'네. 할아버지..... 근데 오늘 고맙다고 이야기하면 안되는 거였어요?'
'아니야. 괜찮단다. 그건 아무래도 괜찮고 아픈데는 어떻니?
정말. 거짓말처럼 모든 고통이 사라져버렸다.
멀쩡하게 걸어나오는 내 모습을 보며 엄마와 아빠는 어쩔줄 모를정도로 기뻐했다.
혹여나 지켜보던 동네 사람들도 '어서 잔치상 차려야겠다'는 둥
같이 즐거워해주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난 그때 할아버지의 얼굴이 많이 야위셨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로부터 몇년 후
할아버지가 많이 쇠약해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 몸이 낫자마다 등 떠밀다시피 우리 가족을 내보내서
약간 서먹서먹한 관계가 되어버렸었지만
나는 할아버지에 관한 좋은 기억이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에
부모님께는 말씀드리지 않고
할아버지를 만나기 위해 시골로 향했다.
오랫만에 찾아뵙는 손자라고 좋아하실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문전박대 당했다.
할아버지의 용태를 물어봐도 묵묵부답뿐이었다.
나는 그래서 그 자리에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다.
어린 시절 나에게 최고의 친구였고
최고의 어른이었으며
최고의 선생님이자 치유자였던 분을 만나지도 못한다는 생각에 억울했다.
몇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이제 슬슬 막차라도 타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할때
집안일을 봐주시는 어른이 편지를 가져지고 오셨다.
반드시 기차를 타고 읽어야 된다고 신신당부하시며
심지어 기차타는 곳까지 데려다주시고
기차 출발이 임박해서야 편지를 전해주셨다.
돌아오는 길..
나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편지를 펼쳐보았다.
- - -
H야. 할애비의 잘못으로 네가 고통받는게 너무 미안하구나....
그 녀석과의 약속을 하는게 아니었다고 후회하지만 이제는 어쩔 수가 없구나....
자세한 이야기를 전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앞으로는 바다를 멀리하고
네 몸에 열기를 채우는 일을 멀리하렴
언젠가 누가 너를 부르더라도
세번까지는 절대 대답해서는 안된다.
지금은 내가 그 녀석을 데리고 있지만
속이는 것에도 한계는 있는가보구나......
할애비로서 너에게 마지막으로 해 주고 싶은거 다 했으니
더이상 나를 찾아오진 말아라.
고향을 멀리하고 다른 사람에게 항상 친절하고 덕을 쌒도록 하려무나
이전에 할애비가 약속했던 35살때까지
내가 버텨보려 노력했지만
이 녀석은 포기하지 않고 있구나
40살이 넘을 때까지 부디 함부로 남의 부름에 답하지 말거라.
거기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너를 부를때엔
혹여 존재하더라도 조금이라도 의심이 들면 대답하지 말거라.
어쩌다 의심되는 누군가가 너를 부른다면
절대로 3번전에는 답하지 말아야한다.
언제나 할애비 말이라면 잘 들어줬던 손주니까
할애비의 마지막 소원도 잘 들어줄거라 믿는다.
자세한 이야기를 해줄 수 없는 할애비를 용서하거라.
그래고 절대.
세번까지는 대답하지 말아야한다.
더이상 할애비도 찾아오지 말고
남을 도우며 덕을 쌒으며 살아가길 바란다.
잘 지내렴.
그리고 몇년 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찾아가고 싶었지만
집안 식구는 물론, 할어미도 할아버지의 유언이라 하시며
장례식 참여를 금지하셨기 때문에
나는 할아버지의 임종에도 참여할 수 없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해부터
나는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가끔은 어미너의 목소리로
가끔은 직장동료의 목소리로......
아직까지는 할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뭔가 이상한 느낌이 느껴질때엔
누가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어머니의 목소리도
아버지의 목소리도
할아버지의 목소리도 들렸지만
아직 나는 대답한 적이 없다.
아니, 적어도 세번째까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적어도 어제까지는.......
나는 내 곁에 있는 어머니가 나를 불렀다고 생각했지만
어머니가 나를 부른 게 아니었다.
그 녀석이 나를 찾아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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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밋게 잘 봤습니다. 언제나처럼 상황 묘사하나는 탁월하시네요. 할아버지가 사랑하는 손자에게 당부하는 설명이 너무 많은게 아닌가 했으나 할아버지 성격이 원래 그런거라고 본다면 크게 문제없어 보이네요. 제가 평가할 수준은 아니지만 간결하게 살짝만 손보신다면 꽤나 괜찮은 작품이 될거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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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말도 안듣는 손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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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몇번 손을 대려고 했는데 지난번 글보다 추천수가 많아서 이전 글보다 나아진 걸까 고민하다가 그대로 내버려두었습니다. 상세한 설명 감사드립니다. 나중에 다시 한번 수정작업을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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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말도 안듣는 손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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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밋게 잘 봤습니다. 언제나처럼 상황 묘사하나는 탁월하시네요. 할아버지가 사랑하는 손자에게 당부하는 설명이 너무 많은게 아닌가 했으나 할아버지 성격이 원래 그런거라고 본다면 크게 문제없어 보이네요. 제가 평가할 수준은 아니지만 간결하게 살짝만 손보신다면 꽤나 괜찮은 작품이 될거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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