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오래된 친구가 있다.
국민학교때 부터 친하게된 친구로
알고지낸지 벌써 25년정도 된 녀석이다.
어릴적에는 자주 어울려다녔었지만
중학교 졸업 이후 고등학교가 달라지면서 연락이 뜸해졌다가
내가 대학교에 진학했을때
그 친구는 일본에 가버렸다.
평소 일본을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다는 이유도 있었고
-그의 시력이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 어느 곳에서도 일자리를 주지 않았다.
심지어 아르바이트도 구할 수 없었다.
일본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 이유도 있다고 들었다.
그 녀석은 엄청난 호러물 및 심령현상 매니아로
어지간한 괴담은 그 녀석에게 물어보면 안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래서 8년만에 만난 그 녀석이 일본에서 경험했던 무서운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냈을 때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 녀석이라면 당연하지.라고 생각했으니까.
'일본은 잘 갔다왔냐?'
'응. 한국에 돌아오고싶지 않았을 정도.'
'근데 왜 왔냐. 한국에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데.'
키득거리며 웃는 나를 보며
그 녀석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정말.... 경험하고싶지 않은 일을 겪었거든.'
'응? 여자라도 엮인거야?'
아직도 장난을 치고 있는 나를 보면서
그 녀석은 정색했다.
'여자는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마라. 하지만 난 다시는 일본에 못갈 것 같아.'
'갑자기 왜? 일본이라면 좋아 죽던 녀석이....
중학교때도 마징가 노래를 일본어로 불러서 국어 선생한테 뒤지게 혼났잖아.'
'아아. 그래도 진짜 이제는 질려버렸어.'
'무슨일인데?'
'....믿기 힘들겠지만. 심령현상을 겪었거든.'
'그건 무슨소리냐. 그건 니 전문영역이잖아.
고등학교때는 호러비디오 빌리려고 어머니까지 모시고 비디오 대여점에 다니던 녀석이 뭐가 무서워.'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이야. 일본 자체는 좋아하지만
일본에 가면 그 날 기억이 날 것 같아서 두려워.'
'에이. 그러지말고 말해봐.'
'그럴꺼면 술이라도 하면서 이야기하자.'
이전에도 뜸들이는 것은 선수였지만
맥주말곤 입에도 대지도 않는 녀석이
양주라도 사주지않으면 말해주지않겠다고 엄포를 놓으니 별 수 없었다.
어차피 오랫만인데.
양주 한병 쯤이야 사주지 뭐.
가까운 Bar에 가서 위스키를 주문하면서
나는 그에게서 알 수 없는 기운을 느꼈다.
마치 내가 알고 지내던 친구가 아닌 느낌.
테이블에 엎드리듯 앉아있는 녀석의 등 뒤로 무언가가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느낌이랄까.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평소엔 입에도 안대던 녀석이 갑자기 왠 위스키야?'
'너. 내가 영감이 있다는거 알고있냐?'
칼로 자르듯 내 말을 끊어버린 그 녀석은 내가 잘 알고 있는 내용을 모른다는 듯 말했다.
중학교때도 그 놈의 '감' 때문에 친해졌다.
내 등뒤에는 무언가가 지켜주는 느낌이 있다면서
처음엔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이상한 녀석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녀석의 '감'은 정확했고
그 녀석과 함께 있으면 이상하게도 나쁜 일을 피할 수 있었다.
구석에 숨어있는 불량배라던가.
도서관의 화재라던가.
그 녀석과 함께 있을 때 '뭔가 이상한 걸' 이라고 이야기하면
그 녀석은 언제나 나에게 다른 길을 종용했고
나는 그 녀석과 함께 다니면서 웃지못할 에피소드를 겪은 적이 많기 때문에
그 녀석의 '감'을 무시한 적이 없다.
'영감이란건 누구나 가지고 있는거란거 이야기해줬나?'
'응. 이야기한 적이 있지. 나보고 수호천사가 있다면서?'
'아니아니. 수호천사라기보다 너를 지켜주는 무언가가 너의 영감이라고 할 수 있어.
모든 사람에게는 그런 영감이 있지. 혼자 있을 떄 가끔 서늘해지는 것을 느낀다던가
누군가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다던가
그게 증거지. 하지만 모두 자신에겐 영감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알지 못하는 것 뿐이야.
어떤 사람에게는 사람을 찾는 영감이
어떤 사람에게는 저주를 부르는 영감이
어떤 사람에게는 돈을 부르는 영감이 있는거지.'
'그래서 로또는 되는 사람만 되는건가?'
장난처럼 웃어넘기려했지만
그 녀석은 전혀 웃질 않았다.
'내 영감은.... 다른 사람의 영감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거든.'
'그건 무슨소리야.'
'음... 그러니까 사실 나는 영감이 있지만
그저 간단한 느낌이랄까.
아. 이 사람에게는 이런 영감이 있구나. 라는 것을 아는 정도.
사실 귀신을 본 적도 없고 경험한 적도 없었지만
그냥 이게 여기 있구나. 라는 것은 알 수 있는 정도야.
그래서 너에게는 어떤 느낌이 있고 그 능력이 증폭되면
나에게 오는 재난을 피하는데 도움이 될거라 생각하다보니
너랑 친해진거지.'
갑자기 뭔가 씁쓸해졌다.
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이 녀석에게 이용당고 있었던건가.
'뭔소리야 그게. 나를 이용한거냐?'
'이용....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지만
같이 지내다보니까 친해진거지 뭐. 그렇게 생각해줘.'
'너... 너무 솔직해도 상대방이 상처받는다구.'
'내가 솔직한건 너도 잘 알잖냐.'
그 녀석은 말을 끝낼때마다 술을 들이키고 있었다.
평소엔 맥주 2병으로 끝을 보는 녀석이
벌써 4잔째다. 큰 병을 주문할 걸 그랬나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녀석에게서
무언가 위험하다는 신호가 느껴졌다.
'이전에 타로카드를 보는 동호회에서 활동한 적이 있었어.
S라고 그 녀석은 사람을 찾는 능력이 뛰어나서
나랑 같이 있으면 동호회 사람이 어디 있는지 단번에 알아채곤 했지.
한번도 틀린 적이 없었어. 그 때. 나는 내 영감이 남을 증폭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걸 느꼈지.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어.
만약. 나와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
너도 알다시피 나같이 심령현상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일본이 천국이거든. 워낙 유명한 심령스팟이 많으니까
만약 일본에 가서 나와 같은 영감을 가진 사람을 만난다면
심령스팟을 찾아 갔을때
평소에는 그저 여기 뭐가 있구나. 라는 것을 느끼겠지만
내 능력이 증폭된다면 눈으로 볼 수 있지않을까.라는 생각을 한거지.'
그 녀석은 또 다시 잔을 비우며 말했다.
어느정도 눈이 풀린 모양이지만
허튼소리를 할 녀석이 아니니까
농담할 분위기가 아니란 것을 느낀 나는
담배를 피우고 싶었지만 가게가 금연이었기 때문에
애꿎은 이쑤시게만 씹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에 있는 대학에 가고
거기서 심령동호회에 가입했지.
여러가지 영감을 가진 사람이 있었지만
거의 쓸모없는 사람들 뿐이었어.
여자가 몰리는 사람이라던가
아니면 쉽게 사람에게 집착하는 사람이라던가.
쓸데없는 잡지식만 많은 사람등....
하지만 거기서 난 정말 알 수 없는 사람을 만났지.
정말. 철저하게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 사람을 만난거야.'
'에? 그럼 영감이 없는 사람을 만난적이 없다는 거야?
그럼 지금까지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도 다들 영감이 있다는거야?'
'그렇지.
지금 저기서 주문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는 손님을 부르는 영감이 있고
카운터에서 계산하고 있는 사장에게는 돈을 버리는 영감이
저기 앉은 사람에게는 손 대는 사업이 전부 망해버리는 영감이 있어.
아. 내가 영감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어쩌면 그저 능력.이라고 할 수있겠네.'
'그나마 난 쓸모없는 능력이 아니라서 다행이구나.'
'쓸모없다고 해도 어쩌면 쓸모있는 능력이 될지도 모르지.'
'그건 또 무슨소리야?'
'그건 나중에 설명하고.....'
그 녀석은 내가 따라주지않자 이제는 직접 위스키를 따서 마시고 있다.
'일단 나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 그 사람에게 집중했어.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거든.
희미하게라도 느껴지는게 전혀 없었으니까.
그래서 정확한 표현으로 질문하려고 일본어 배우는데 2년이 걸렸지.'
피식 웃는 그 녀석을 보니 어느정도 긴장감이 풀렸지만
아직도 그 녀석의 주변을 맴도는 기운을 지워버릴 수 없었다.
이건..... 뿌연 안개속에 갇혀버린 친구를 보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나는 그 사람이랑 친해지려고 노력했고
결국. 나는 그 사람의 능력을 발견했어.'
'그 사람의 능력은 뭐였지?'
'그게 내가 일본에서 도망쳐온 이유지.'
그 녀석은 안주는 손도 대지않고 술을 마시고 있다.
좀 위험한거 아닌가라고 생각했지만
사실 위험한 것은 그 녀석이라기보다
그 녀석에게서 느껴지는 이 느낌이다.
이젠 곁에 앉아있는 것 만으로도 두려울 정도다.
'그 사람의 능력은 남에게 저주를 부르는 영감이었거든.
2년동안 다가서는 동안 너무 많이 받아버린 것 같아.
증폭되버린 저주를 받아버린 탓일까
학교에서는 쫓겨났고
사귀던 여자친구와도 헤어졌지.
.....사실 그래서 연락한거야.
너와 같이 있으면 해결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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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를 친구에게 떠 넘기려는 마음인건가? 아님 친구의 수호적 기운에 도움을 청하려는 생각인가? 한번더 생각하게 만드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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