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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궁녀는 개소리라는건 이미 오래전에 밝혀진 사실이고, 백제의 멸망에 대한 진실이 몇년 전 중국에서 당나라 시대 기록이 발굴되면서 밝혀졌죠. 백제의 멸망은 의자왕의 무능함 때문이 아니라 믿었던 부하의 배신 때문이라는 것. 당시 백제를 침공한 나당연합군은 땅ㅁㅁ기식으로 성을 하나하나 공략하며 진격한것이 아니라 모든 성들을 그냥 지나쳐서 수도인 사비성으로 곧장 쳐들어 왔죠. 단순한 영토확장이 목적이 아니라 백제멸망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속전속결로 왕을 사로잡고 끝내겠다는 작전이었습니다. 의자왕은 사방이 탁트인 지형이라 방어에 적합하지 않은 사비성을 포기하고 산악지형이라 방어에 적합했던 웅진성으로 옮겨 장기간 항전을 하려는 작전을 구상합니다. 웅진성에는 의자왕이 신뢰하고 심복으로 여겼던 "예식"이라는 귀족이 성주이기도 했습니다. 의자왕과 주요병력등이 웅진성으로 퇴각하고 농성을 준비할 시간을 벌어주기위해 계백 장군이 사비성으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적은 수의 군사로 신라군을 맞아 결사항전합니다. 실제로 시간을 많이 벌어주었죠. 웅진성으로 퇴각해 장기간 항전을 하려는 의자왕의 작전은 아주 바람직한 작전이었습니다. 속전속결을 염두에 두고 주변의 성들을 그대로 두고 지나쳐 왔기 때문에 시간이 갈 수록 나당연합군에게는 불리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웅진성에서 농성하는 동안 그대로 보존된 지방의 성들의 군사들이 집결해서 나당연합군을 포위한다는 작전이었죠. 이렇게 되면 나당연합군이 택할 수 있는 길은 단 두가지 입니다. 포위 당하기 전에 퇴각 하던가, 아니면 포위당해 보급로와 퇴각로가 끊긴 상황에서 몰살 혹은 큰 피해를 당한채 퇴각당하던가. 그런데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백제는 멸망합니다. 중국에서 발굴된 한 당나라 귀족 무덤의 비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덤의 주인은 백제 출신의 "예식", '의자왕을 사로잡아 당나라에 항복한 공로가 있다.' 라는 내용의 기록입니다. 의자왕은 믿었던 심복인 웅진성주 "예식"에게 배신을 당하고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채 멸망당한 것입니다. 이는 단재 신채호의 의자왕에 대한 "믿었던 부하에게 배신당해 사로 잡히고 동맥을 끊어 자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라는 기록과 퍼즐이 맞춰지는 것이기도 하죠. 자살에 실패한 의자왕은 신라의 무열왕 앞에 끌려가 술을 따르는 굴욕을 당하고 당나라로 끌려갑니다. 당나라에 끌려가서는 비교적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고 하네요. 의자왕의 딸, 그러니까 백제의 공주는 당나라의 귀족과 혼인합니다. "예식"은 당나라에서 고위직인 종3품까지 지내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목숨까지 살다가 죽습니다. 신라 출신인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에서는 신라의 백제 병합을 정당화 시키기 위해 의자왕이 방탕함 때문에 백제가 멸망했다고 기록했는데 의자왕에 대한 기록 앞부분에는 매우 총명해서 '해동증자'라 불렸다고 기록되어있음. 모순되는 내용이죠. 실제론 의자왕 제위시절 신라는 백제에게 상당부분의 영토를 상실합니다. 신라는 이러다 멸망하는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팽배해있었고 그래서 삼국간의 항쟁에 당나라를 끌어들이는 극단적인 계획을 실행하게 된 것이죠. 결론은...."예식 개객끼..." 답글 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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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 이름이 부여의자. 의자왕은 시호가 없음. 시호가 없어서 그냥 이름에다가 왕을 붙인 거임.. 그런데 시호라고 당당하게 왜곡.. 삼천 궁녀는 저기 중간에 공주대 교수가 제대로 밝혔는데, 그 아래부터 제대로 왜곡으로 들어감. 조선 중기 시인 민제인의 백마강부라는 시에서 삼천 궁녀가 나옴. 그냥 문학적 수식어를 일본이 조작했다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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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 웃긴게 지네들 문물을 전파해주고(선박,공예기술,칠지도하사 등) 떠받드는 일왕도 조상이 백제의 왕손인데 지네가 반도식민사관이라며 까는게 결국은 누워서 침뱉기하는 꼴이죠. 실질적으로 왕족,귀족,기술장인 할것없이 대다수 백제인들은 멸망후에 당나라로 끌려가거나 일본으로 망명해 씨가 마릅니다. 백제부흥운동에도 적극 참전했던 일본이 근대에 들어 하는행태보면 결국 지네 조상을 까는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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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은 그냥 이름이 '의자'입니다. 이름 뜻풀이를 보고 '이 사람은 의롭고 자애로웠다.' 해석하는 건 무슨 코미디인지.. 이름 뜻 나쁘게 짓는 사람도 있나요 그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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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뭘하든 일본이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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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 웃긴게 지네들 문물을 전파해주고(선박,공예기술,칠지도하사 등) 떠받드는 일왕도 조상이 백제의 왕손인데 지네가 반도식민사관이라며 까는게 결국은 누워서 침뱉기하는 꼴이죠. 실질적으로 왕족,귀족,기술장인 할것없이 대다수 백제인들은 멸망후에 당나라로 끌려가거나 일본으로 망명해 씨가 마릅니다. 백제부흥운동에도 적극 참전했던 일본이 근대에 들어 하는행태보면 결국 지네 조상을 까는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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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 이름이 부여의자. 의자왕은 시호가 없음. 시호가 없어서 그냥 이름에다가 왕을 붙인 거임.. 그런데 시호라고 당당하게 왜곡.. 삼천 궁녀는 저기 중간에 공주대 교수가 제대로 밝혔는데, 그 아래부터 제대로 왜곡으로 들어감. 조선 중기 시인 민제인의 백마강부라는 시에서 삼천 궁녀가 나옴. 그냥 문학적 수식어를 일본이 조작했다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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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궁녀는 개소리라는건 이미 오래전에 밝혀진 사실이고, 백제의 멸망에 대한 진실이 몇년 전 중국에서 당나라 시대 기록이 발굴되면서 밝혀졌죠. 백제의 멸망은 의자왕의 무능함 때문이 아니라 믿었던 부하의 배신 때문이라는 것. 당시 백제를 침공한 나당연합군은 땅ㅁㅁ기식으로 성을 하나하나 공략하며 진격한것이 아니라 모든 성들을 그냥 지나쳐서 수도인 사비성으로 곧장 쳐들어 왔죠. 단순한 영토확장이 목적이 아니라 백제멸망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속전속결로 왕을 사로잡고 끝내겠다는 작전이었습니다. 의자왕은 사방이 탁트인 지형이라 방어에 적합하지 않은 사비성을 포기하고 산악지형이라 방어에 적합했던 웅진성으로 옮겨 장기간 항전을 하려는 작전을 구상합니다. 웅진성에는 의자왕이 신뢰하고 심복으로 여겼던 "예식"이라는 귀족이 성주이기도 했습니다. 의자왕과 주요병력등이 웅진성으로 퇴각하고 농성을 준비할 시간을 벌어주기위해 계백 장군이 사비성으로 들어오는 길목에서 적은 수의 군사로 신라군을 맞아 결사항전합니다. 실제로 시간을 많이 벌어주었죠. 웅진성으로 퇴각해 장기간 항전을 하려는 의자왕의 작전은 아주 바람직한 작전이었습니다. 속전속결을 염두에 두고 주변의 성들을 그대로 두고 지나쳐 왔기 때문에 시간이 갈 수록 나당연합군에게는 불리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웅진성에서 농성하는 동안 그대로 보존된 지방의 성들의 군사들이 집결해서 나당연합군을 포위한다는 작전이었죠. 이렇게 되면 나당연합군이 택할 수 있는 길은 단 두가지 입니다. 포위 당하기 전에 퇴각 하던가, 아니면 포위당해 보급로와 퇴각로가 끊긴 상황에서 몰살 혹은 큰 피해를 당한채 퇴각당하던가. 그런데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백제는 멸망합니다. 중국에서 발굴된 한 당나라 귀족 무덤의 비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덤의 주인은 백제 출신의 "예식", '의자왕을 사로잡아 당나라에 항복한 공로가 있다.' 라는 내용의 기록입니다. 의자왕은 믿었던 심복인 웅진성주 "예식"에게 배신을 당하고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한채 멸망당한 것입니다. 이는 단재 신채호의 의자왕에 대한 "믿었던 부하에게 배신당해 사로 잡히고 동맥을 끊어 자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라는 기록과 퍼즐이 맞춰지는 것이기도 하죠. 자살에 실패한 의자왕은 신라의 무열왕 앞에 끌려가 술을 따르는 굴욕을 당하고 당나라로 끌려갑니다. 당나라에 끌려가서는 비교적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고 하네요. 의자왕의 딸, 그러니까 백제의 공주는 당나라의 귀족과 혼인합니다. "예식"은 당나라에서 고위직인 종3품까지 지내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목숨까지 살다가 죽습니다. 신라 출신인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에서는 신라의 백제 병합을 정당화 시키기 위해 의자왕이 방탕함 때문에 백제가 멸망했다고 기록했는데 의자왕에 대한 기록 앞부분에는 매우 총명해서 '해동증자'라 불렸다고 기록되어있음. 모순되는 내용이죠. 실제론 의자왕 제위시절 신라는 백제에게 상당부분의 영토를 상실합니다. 신라는 이러다 멸망하는거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팽배해있었고 그래서 삼국간의 항쟁에 당나라를 끌어들이는 극단적인 계획을 실행하게 된 것이죠. 결론은...."예식 개객끼..." 답글 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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