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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lected Ones - 54
태양 아래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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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 메달리아가 초아와 함께 지상으로 떨어져내린 이후로, 상공에 매달려있던 감옥 또한 붕괴하기 시작했다. 다만 그 속도는 무척이나 느리게, 깃털처럼 살랑살랑 무너져 내려갔다.
"어떻게 하지?"
"뛰어내려서 초아씨에게 가세해야 하나?"
"멍청아. 방금 그 불꽃 못 봤어? 우리가 껴봤자 방해만 된다고!"
여러 남자들이 웅성 거렸다. 그들은 모두 코트 메달리아를 쓰러트리기 위해 초아와 함께 왔지만, 정작 그 싸움을 눈 앞에 목격하니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둘의 싸움이 마치 끼어들 수 없는 그런 것으로 보여, 그들로서는 감히 뛰어들어 같이 싸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것보다 우선 저녀석을 무찌르자고."
한 남자가 듀얼 웨펀으로 몬스터를 여럿 소환했다. 그들의 뒤에는 새까만 미역 머리의 남자가 서있다. 그의 이름은 닥터. 둥그런 안경을 쓴 백의 차림의 이지적인 남자였다.
"바보천치만 모였다고 생각했으나. 최소한 알 건 알고 있군요."
"뭐라고?"
"보스의 싸움에는 끼어들어선 안 된다. 그리고 끼어들 수 조차 없다. 자기들의 한계를 알고 있다는 점, 그것 하나는 칭찬해줄만 합니다."
닥터는 그들에게 기운없는 박수를 쳤다. 그들은 닥터의 말에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 저놈부터 박살을 내줘야지."
"가라. 고요우 킹!"
그들이 불러낸 여러 몬스터들이 닥터를 향해 달려들었다. 닥터는 닥터대로, 몸 어딘가에 숫자가 쓰여진 넘버즈들을 불러내 대응했다. 어떤 것은 거미. 어떤 것은 용. 또 어떤 것은 반인반마 괴물. 닥터의 기괴한 몬스터들이 닥터를 뒤로하여 싸워 나갔다.
어느 쪽이 우위를 점하지 못 하고 지루하게 이어지는 싸움. 닥터의 등 뒤에서 새까맣고 날카로운 흉기가 날아와 굉음을 내며 초아의 일행이 불러낸 몬스터를 베어버림으로서 분위기는 반전되었다.
"음?"
닥터는 뒤를 돌아 보았다. 입구에서 확인할 때, 초아의 일행은 자신의 앞에 있는 이들이 전부였다. 그들의 증원군이 이 하늘까지 올라와서 가세한 것일까. 그것은 아니었다. 새까만 칼날은 닥터의 적을 쳐서 베어냈다. 그렇다면 자신의 아군인걸까.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가 세 걸음을 더 걸어, 그의 몸이 어둠에서 빠져나와서야 닥터는 그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한스 라이너. 마침 잘 왔습니다."
닥터의 말을 들은 이들이 당황했다. 초아는 한스 라이너를 쓰러트리고, 스스로 풀 수 없을만큼 단단하게 결박해놓은 다음 감옥 입구에 내버려 뒀기 때문이었다.
"!?"
"분명히 구속했을텐데?"
"그걸 풀고 나타난건가!"
닥터의 등 뒤로 그가 나왔다. 코트 메달리아가 신목을 흡수하는 사이, 문지기 역할을 수행하던 한스 라이너였다. 다만, 그의 모습이 처음 보았을 때와는 달라져 있다. 새까맣던 머리는 새하얗게 색이 바랬다. 그가 내뱉는 숨결은 겨울 바람처럼 무척이나 차가웠다. 마치 죽은 시체처럼. 그러나 동시에 그의 모습에선 또다른 감정이 느껴졌다. 사람도 동물도 아닌, 그보다 고차원적이고 고상한 것을 보는 것 같은 경외감. 그는 살아있는 사람이 아닌, 신의 부름을 받아 달려온 천사처럼 보였다.
"보스께서 내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셨다."
감정없는 낮은 목소리에 그 자리에 서있던 모든 남자들이 경직되었다. 새까만 그늘에서 빠져나온 그의 몸은 새하얗게, 찬란한 것 같았다.
"패배한 전사에게 다시금 싸울 기회를 주셨으니, 나는 다시 한 번 그분을 위해 죽겠다."
그는 듀얼리스트에게 있어서 검이나 마찬가지인 카드를 뽑았다.
"나와라. 브레이크 스워드."
새까만 갑옷을 입은 반인반마 기사가 나타났다. 새까만 기사는 목 아래로 빈틈없이 갑옷을 입었으나, 정작 목 위로는 머리가 없었다.
"너희들의 보스, 초아는 듀얼에서 패배한 나를 살려두었지."
새까만 갑옷을 입은 기사는 브레이크 스워드라는 이름에 걸맞게 뭉툭하고 금이 간 반쪽짜리 검을 들고 적들에게 겨누었다. 그의 몸 사이에서 차갑고 소름끼치는 바람이 흘러나왔다.
"그는 날 동정하여 온정을 베풀었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치욕적인 일이다."
브레이크 스워드는 말발굽으로 바닥을 차고 날아가듯 뛰어가 몬스터들의 몸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제 자신의 부하들이 자신의 실수로 죽어버려야만, 그 잘못을 깨달을 거다."
……
온 세상이 새하얗게 얼어붙는 듯 했다. 차가운 바람이 칼날처럼 살을 찢고, 발로 밟은 땅이 모두 딱딱하게 굳어 쩌적쩌적 갈라지기 시작했다. 차가운 한기는 하늘에서 바닥으로, 바닥에서 다리로 이어졌다. 코트 메달리아의 몸이 얼어붙을 지경에 이르렀다.
"트리슈라의 효과 발동."
그 원인은 하늘을 날고있는 용 한 마리. 온 몸은 차갑게 얼어붙은 얼음 조각이고, 머리가 셋 달린 기괴한 빙룡이었다.
"네 필드 / 묘지 / 패를 하나씩 제외하겠다."
[AD 체인저]의 효과로 공격 표시가 된 [No.41 이수마수 바그스카]는 상대의 효과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트리슈라는 그것조차 신경쓸 바 없다며, 모든 것을 없애버리려 입가에 새하얀 얼음 덩어리를 물었다.
"그 효과에 체인하겠어."
자신의 몸에 올라온 얼음들을 억지로 부숴버리며, 코트가 왼손을 내밀었다.
"패에서 [이펙트 뵐러]를 묘지로 보내고 효과 발동. 트리슈라의 효과를 무효로 하지."
"큭."
세 머리의 빙룡앞에 투명한 베일을 두른 여인이 나타났다. 여인이 용의 눈에 베일을 덮자, 용은 그릉거리며 머리를 뒤로 내뺐다.
"아깝게 됬네. 바그스카만 치우면 바로 이기는 거였는데."
"네가 왜 그 카드를 쓰는거지?"
"음?"
"그 카드는 튜너 몬스터. 우리들의 카드다."
"내가 튜너 몬스터를 쓰는 게 이상해?"
코트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초아에게 물었다.
"나에게 있어 싱크로 차원이란 내 일부와도 같은 건데. 내가 그걸 쓰는 데 무슨 이상한 점이라도 있나?"
그 말에 초아의 팔이 경련했다. 늙어서 피부 밖에서도 보일정도로 도드라진 힘줄이 굳어졌다.
"네녀석을 반드시 박살내주마. [파워 툴 드래곤]( LV 7 / DEF 2500 → ATK 2300 )의 표시 형식 변경."
초아는 수비 표시가 된 기계룡을 다시금 공격 표시로 돌렸다.
"파워 툴의 효과 발동."
초아는 덱에서 초록색 카드 세 장을 뽑아들었다. 각각 [요도 죽도]와 [부러진 죽도] 그리고 [단결의 힘]이었다.
"[단결의 힘]을 발동하면 공격력이 1600 상승. 설령 바그스카가 있다고 하더라도 내 라이프 4000을 넘는 데미지를 줄 수 있다. 그거로구나."
코트는 자신의 듀얼디스크 위로도 출력된 세 장의 카드를 보고 씨익 웃었다. [단결의 힘]을 서치해서 발동하면 초아의 승리. 그러나 그 확률은 고작 1/3이다.
"어디 한 번 자알 기도해봐."
코트의 듀얼디스크에 출력된 장착 마법들이 뒷면으로 변해 셔플되었다. 코트는 셔플이 끝나자마자 망설임없이 가운데 카드를 찍었다. 초아는 코트가 선택한 카드를 패에 넣고, 나머지는 덱으로 되돌려 셔플했다.
"얼굴 빛이 어두운 걸 보니 [단결의 힘]은 아닌가 보네."
"[요도 죽도]를 파워 툴에게 장착한다."
"그래봐야 공격력 변화는 0. [단결의 힘]을 3장 넣었더라면 그냥 이겼을텐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그렇지?"
"시끄럽다."
초아는 그의 처지를 비꼬는 코트의 입을 다물게 하려 언성을 높였다.
"배틀이다. 파워 툴로 바그스카를 공격!"
샛노란 기계룡이 죽도를 들었다. 기분 나쁜 요기가 철철 흐르는 칼날을 왼손 대신 박아넣은 체, 잠에 빠져 코를 고는 괴물에게 한 방 먹였다. 그가 들고 있는 검은 날이 서지 않은 것이였지만, 빠르게 찌르는 힘은 괴물을 무찌르기에 충분했다.
"후우. 잘 자 바그스카. ( LP : 4000 → 3800 ) "
"공격해라 트리슈라."
트리슈라는 초록 머리 여인이 자신에게 씌워준 베일을 벗어던졌다. 그의 분노가 서린 숨결은 무척이나 추운 혹한의 바람이었다.
- 카아아아아!
감히 자신에게 방해물을 던진 남자에게, 트리슈라는 모든 분노를 쏟아냈다. 그는 폐를 한껏 부풀려 모아놓은 얼음 덩어리를 창의 형태로 변화하여 지상에 내던진 것이다. 날카롭고 거대한 창이 코트 메달리아의 가슴을 꿰뚫었으나, 그의 몸에서 피가 터져나오는 일은 없었다. 너무나도 차가운 나머지, 그의 몸이 얼어붙고, 핏물마저 얼어버렸기 때문이었다.
"큭. ( LP : 3800 → 1100 ) "
쇳소리를 내는 코트. 그는 스스로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카드를 하나 세트. 차례를 마친다."
이번 턴에 끝내는 것은 실패했지만, 코트의 라이프는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그의 필드에는 [요도 죽도]를 장착한 [파워 툴 드래곤]이 존재하니, [블랙홀]을 발동하더라도 한 번은 버틸 수 있다.
'걱정되는 건 단 한 가지.'
코트가 가진 규격외의 엑시즈 몬스터. [SNO.39 유토피아 더 라이트닝]. 단숨에 공격력을 5000까지 끌어올리고, 전투 도중에는 다른 어떠한 카드의 효과도 발동할 수 없게 만드는 넘버즈다.
'뭐. 구태여 그녀석이 아니라도 라이프가 1000밖에 없으니까. 어떤 몬스터가 나오던지 간에 조심해야 하지만.'
--- 초아 ( LP : 1000 ) ---
몬스터 : □[파워 툴 드래곤] + □[빙결계의 용 트리슈라]
마법 / 함정 : □[요도 죽도] + ■
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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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트 메달리아 ( LP : 1100 ) ---
몬스터 :
마법 / 함정 :
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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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턴이야."
코트의 몸에서 쩌적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몸에 있는 수분이 말라 비틀어지며, 수축되는 소리일 것이다. 피가 흐르지 않고, 심장과 온갖 장기들이 얼어붙어 목소리를 내는 것은 물론이요 움직이는 것조차 불가능해야 하거늘, 코트 메달리아는 입으로 말을 하며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드로. 아니 그 전에 먼저."
"?"
그의 몸에 새까만 검정이 올라왔다. 검정색의 정체모를 물질들이 꿈틀대며 그의 몸에 엉겨붙은 얼음 덩어리를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코트는 피를 한 움큼 토해냈으며, 상처 부위에선 정상적으로 피가 뿜어져 나왔다. 격렬한 통증이 뒤따랐겠지만, 그는 비명을 지르거나 고통을 호소하긴 커녕 즐거운 듯 웃기 시작했다.
"초아. 너는 모르겠지."
"무얼 말하는 거냐."
"내가 다른 세계를 침범하여, 내 안에 예속하려는 그 이유를."
"네놈은 남의 땅을 침범하고, 사람을 죽이길 좋아하는 미치광이. 이제서야 자기 행위에 그럴싸한 이유를 붙이려는 거냐."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야."
초아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며, 코트는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어떠한 미래도 없는 세상으로."
"세상을 멸망시킨다는 소리냐."
"그래. 기존 세계의 멸망. 우선 그게 실행되어야 하지."
초아는 혀를 찼다.
"사람들의 비명, 고통, 슬픔. 내게 흘러들어오는 모든 비통함과 괴로움은 모두 그 초석."
그의 머리 위로 다섯 개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래. 다시 시작하지. 내가 드로할 카드는 [RUM-더 세븐스 원]."
"!!!"
그의 눈동자는 모두 그의 손끝을 향했다.
"드로."
그는 뽑은 카드를 일곱 개의 눈동자로 확인하고, 초아에게도 보여주었다.
"마법 카드 [RUM-더 세븐스 원] 발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