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공격이 자신을 덮쳐들 땐, 희미한 실마리의 느낌이 머릿속에 번뜩 떠오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단지 방향만을 특정해내고 확신까지는 할 수 없었던 스이카는, 그 본능을 믿고 피해낸다는 선택지밖에 고를 수 없었다. 곧바로 일은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귀끝을 스쳤다. 바로 눈 옆에서 인 날 서있는 잔향에, 피하지 않고 대들었다면 어떻게 될지 섬뜩한 예상부터 들었다. 그리고 그런 한눈팔이로 인해 다음 공격은 시원하게 관자놀이에 작렬했다.
바닥엔 포탄이 떨어진 듯한 구덩이가 일순에 생겨났고, 그 반동으로 튕겨나는 스이카의 몸이 레이무의 팔꿈치에 맞아 기역자로 꺾이며 그대로 발사되듯 날라갔다. 폐옥을 뚫고 날라간 스이카의 몸은 한 발 앞서 연격을 준비하던 레이무의 밟에 밟혀 바닥에 고정되고서야 멈췄다.
단지 대치만을 보던 요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조약한 자신들의 눈으로는 쫓을 수도 없는 싸움이라 평소처럼 자신들의 우두머리가 이기겠지, 하며 응원을 하고 있을 뿐이다. 폐옥 몇 채가 와르르 무너지며 구덩이가 생겨난 걸 보곤 또 자기들이 한 것마냥 환희까지 한다. 스이카는 밟힌 채로 저 미친 것들은 이 상황이 안 보이나 싶어 이를 갈았다. 능력을 사용하는 걸 염두에 둘 수 없을 정도로 빈틈없는 공격은, 솔직히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경지였다.
상대는 분명 자신보다 높은 경지다. 그러나, 싸움이라면 당하고만 있을 순 없는 노릇이다. 상대는 상대만의 약점이 있을 것이었다. 예를 들면, 인간의 태생이기에 타고날 수밖에 없는, 허약한 강도의 육체같은. 그래서 스이카는 손을 우그러뜨리며 밀도를 조정한다. 그 행동의 결과는, 상대의 온 몸이 쪼그라들며 박살나는 것으로 결정돼있었다. 그래, 분명 그럴 것이었는데-
분명 근처에 느껴지는 고밀도의 공기와 조여드는 압착감은 능력의 발현이 됐다는 증거였다. 그런데도 위의 인간은 아주 멀쩡히, 발버둥을 해보라는 듯이 광포를 담고있는 어둠의 눈동자를 자신에게 보여주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그 어떤 공격보다도 두개골 깊숙히까지 전율하는 공포를 심어버렸다. 몸부터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후퇴책마저 먼저 떠오르게 하여, 실행으로 옮겨야만 했다. 스이카의 몸이 그 생각을 기점으로 흩어지며 다른 좌표에 재결합됐다.
이때까지는 도무지 느껴보지 못한 기분에 스이카의 몸이 떨려왔다. 환희인지도 흥분인지도 두려움인지도 공포인지도 모를 복잡함을 통감하고 있었다. 동그랗게 떠지다 못해 크게 벌려져있는 자신의 눈에 과연 무엇이 서려있는 것일지, 도무지 알지 못했다.
'뭐야, 이 기분.'
심장이 리미터를 넘어 뛰고, 눈동자는 상을 맺지 못하고 떨리고, 손은 주먹조차 쥐지 못할 정도로 요동친다. 생각해본다. 생을 거쳐오며 이런 기분을 통감했던 적이 있는가를.
답은 간단했다. 없었다.
이성조차 마비시키고 본능만을 따라 행동하게 만드는 저 어마무시함. 단지 분위기만으로도 온몸에 족쇄를 채워버리는 끝없는 압박감. 그것을 전투광이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강자인 오니가 느껴왔을 턱이 없었다. 미지에의 공포를 느껴보는 것조차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어떤 때보다도 발휘되는 생리현상이 낯설 게 뻔하다.
스이카는 공포와 대면하고 찰나를 고민하는 척하다, 마침내 생각하는 것을 그만뒀다. 피한다는 선택지가, 자신이란 오니에게 있어 허용될 리는 없었다. 게다가 상대도 그런 꼴사나운 도망은 결코 원치않을 것이었다. 복수를 위한 도전은 항상 자신이 기다려주어왔던 바이지 않았던가. 그러니 맞서주어야 했다. 인간이 만족해줄 때까지. 또 자신이 만족할 때까지.
그렇기에 스이카는 이 복잡함이 전투에의 환희와 열정이라고 환원해버렸다. 그것으로 상대를 굴복시키기 위한 준비를 마쳤다.
그 후로는 본능을 따른 전투만이 있을 뿐이다. 방금과는 달라진 눈으로 상대와 마주하고 그것은 시작된다.
"이번엔, 내 쪽에서 간다!"
결코 결실따윈 없을 무작정의 공격인 것을 알면서도 스이카는 돌진했다. 주먹은 당연히 공기를 갈랐다. 헛손질에 생긴 빈틈을 상대는 당연히 비집고 공격해왔다. 하나의 타격에 갈비뼈 모두가 부러지다 못해 파쇄되고 여파가 등까지 꿰뚫었다. 체구에서 결코 나올 수 없을법한 무거운 타격에 스이카의 온 혈관에 울렸다. 오르는 구역질을 참고, 복부를 때린 팔을 붙잡아 휘둘렀다. 상대는 왠지 당황한 눈치다. 왜, 고작 이걸로?
바닥에 충돌되기 직전, 레이무의 몸이 가볍게 돌며 안착에 성공했다. 레이무는 팔을 잡고있는 스이카를 당겨 그대로 다시 발차기를 날렸다. 자칫 방심하단 정신을 잃게할 충격이 스이카의 뇌를 흔들었다. 때문인지 레이무의 한 쪽 팔을 붙들고 있던 스이카의 압박이 힘없이 풀리고 구역질 소리가 크게 났다. 무릎꿇고 헛구토하는 스이카의 대가리에 다시 한 번 발차기가 작렬했다. 우람히 솟아있던 두 개의 뿔 중 하나가 부서지며 대지가 일직선으로 갈려나갔다.
스이카는 그런 피해조차 염두에 없다는 듯이 다시 달려나왔다. 맞서 대응했다. 하지만 팔의 궤도가 원하는 것과 달리 조금 틀어졌다. 때문에 스이카의 볼만을 살짝 스쳤다. 스이카는 빈틈이 생긴 레이무의 명치를 바로 노렸다. 거리만큼 비례된 위력이 주먹이 가슴과 충돌하자 지저의 온 대지와 공기가 크게 울렸다. 하지만 발이 살짝 밀려나는 것으로 고작이었다. 하지만 그것이라도 만족한 듯이, 스이카는 의기양양하며 옹골찬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한 방은 먹였는데 말야…."
"……."
"하나만 물어보자."
레이무는 험상궂게 표정짓고 있었으나, 스이카의 말이 끝날때까지 잠자코 기다리고 있었다. 저 질문이 왜지모르게 자신의 의표를 찌를듯한 기분이 만전이었다. 항상 극에달해있는 그녀의 직감은, 이번에도 당연히 답을 맞췄다.
"너, 왜 봐주고 있냐? 솔직히 말해서, 난 너 못 이긴다만. 그렇다고 해서 가지고 놀고 있다는 걸 모르지 않을 정도로 감이 무르진 않단 말이지.
왜 단번에 끝내지 않는 거냐? 어째서?"
"……."
"단순 망설이고 있다거나 그런 이유는 아니야. 눈이 그렇게 말하거든. 그렇다면 뭐냐? 궁금한 건 도저히 못 참겠다."
밀려난 자세 그대로이던 레이무는, 서서히 허리를 곧추 피며 말한다.
"망설이는 건, 맞아."
"…다른 부분에서구만."
"그래.
그 망설임은, 너를 죽이는 데 있어 존재하는 게 아니야.
내가 끊어낼 것들, 끊어내야만 하는 것이 있기에 가지는 주저지."
레이무는 그러며 잠시 한눈을 판다. 자신을 바라보던 눈이 방향을 틀어 다른 곳에 주의를 집중했다는 걸 알은 스이카는 그 방향을 따라 눈동자를 움직여본다. 몇 인영이 보였다. 그것이 바로 상대가 주저함을 품게 되는 원인일 것이었다.
"그렇지, 유카리."
레이무는 마침 도착한 그들을 지칭하며 말한다.
"난, 널, 그리고 너희를 끊어내야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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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면 올 거라 생각했어."
원수마저도 등한시하게 되는 이유는, 그녀와의 인연이 그 누구와 비교한들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얽히고 꼬여있기 때문이다. 지난 4년간 처절할 정도로 구가해왔던 원한의 해소가, 동시에 이어지기 시작했던 인연을 끊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게 되어버렸기에 그런 것이다.
레이무는 마음속으론 유카리가 자신을 막아설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다. 그 예상대로 유카리는 막아서기 위해 이곳에 나타난 것일 터였다. 하지만 그렇게 예상하고 또 예상했는데도, 당혹감이 약간이라도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유를 묻고 싶었다. 그런데 묻는다 한들, 그저 네가 화내는 게 싫어서 그럴 뿐이라는 알량한 대답이 나올게 뻔했다.
"이번만, 넘겨달라는 말은 너한텐 소용 없겠지."
"……."
"뭐, 소용없어도 말할게. 이번만 양보해. 이 녀석은 나의 원수야. 나의 평범하던 삶을 통째로 빼앗아버린 불구대천지의 원수지. 그래서 이번만은 나도 도저히 참고 넘어가진 못할 거 같아. 제발 묵과해. 그런다면 난 너와의 인연을 끊지 않아도 돼. 게다가 네가 원하는 대로 더 이상 분노하지도 않으며 살아갈 수 있을 거야…. 더 이상 복수란 것에 목매일 일이 없으니, 구차할 정도로 필사적이지 않게 될 테니까."
레이무는 유카리가 어떤 이유로든 자신을 막아설 거란 걸 알기라도 한 듯이 말했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확신을 하는지, 근거는 있었으나 다른 누군가를 설득시킬 정도는 안 되었다. 그러나 나 자신을 설득하는데는 타당하다고까지 느껴지는 이유가 분명 있었다. 다소곳이 모아진 채로 떨리는 저 손과, 초조함어린 나약한 눈동자는 언제인가 본 적이 있었으니까다. 요괴의 산에서 저러했던 그녀는 날 막아섰었으니까 뻔하다. 오히려 위의 말을 꺼낸 게 어리석다고 느껴질 정도라 느낀다.
그래, 내가 굳이 왜 말했을까? 레이무는 이제야 그 허무를 느껴 김이 빠져버렸다. 허탈한 헛웃음소리를 두어 번 냈다.
"푸흣… 흐…, 아냐. 굳이 대답하지 마. 너는 날 막아서겠지. 여태까지 그래왔으니까, 이번에도 분명 그럴 거야."
"……응."
"카센, 너도 마찬가지일 거고."
"……예."
레이무는 그녀들에게 궁금한 게 많았다. 어떻게 여기까지 쫓아왔는지나, 막아서는데 그렇게까지 필사적으로 구는가에 대해서나, 원수와 만났다는데도 그 불구대천지의 상대에겐 일말의 관심조차 주지 않은 채 오히려 나를 막아서는데나 급급히 구는 이유 같은.
하지만 호기심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물어도 답은 나오지 않을 것이었다. 이성적인 대화로 풀기에는, 이미 방법은 극단으로 치달아버린 때였다. 충돌은 피할 수 없으며, 그 수단은 당연히 폭력이었다. 끊어낼 수 있을까? 그렇게 냉혹을 다짐했다 생각했는데도 레이무의 머릿속엔 의문이 스쳤다. 그 어정쩡함을 얼버무리려고 레이무는 다짐하며 말해야만 했다.
"안 봐줄 거야. 이 말은 정말이야. 너희를 죽이고서라도 난 저 녀석을 죽여야만 해. 난 그러기 위해 살아왔어. 견뎌왔어. 이제와서 무산할 수는 없단 말이야."
레이무는 천천히 다가가며 팔을 휘둘렀다. 끝의 불제봉이 종이 흩날리는 소리를 기분좋게 냈다. 이제까지의 전투와는 반대의 성질을 가진 대립이 이제 일어나려고 하고 있었다. 레이무는 그 어느 때보다도 천천히 그녀들에게 다가갔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심장은 그 어떤 때보다도 차갑게 식혀져, 그녀는 냉담한 채였다. 시간마저 얼어붙은 듯한 착각이 일게 하는 그런 느릿한 걸음걸이는 은연중에 서로가 충돌하는 걸 원치는 않고 있다는 걸 알리고 있었다. 그러나 대립해야만 하는 이유가 존재하는 한, 멈추게 되는 일은 없었다. 단지 느릴 뿐이고, 결국에 도달은 하게 된다.
서로는 같은 이유때문에 충돌하게 되었지만, 이제 서로가 충돌하게 된 이유조차도 등한시한 채로 대립하게 되어버렸다.
"레이무, 복수를 이루게 된다면…."
"알아."
"당신은, 죽어버려요……."
"그래, 요괴의 의식에 집어삼켜져서 말야. 알고있어. 알고있단 말야. 알고서도 하는 짓이란 말이야."
시한부의 선고에도 레이무는 이를 꽉 문채로 다짐을 굳건히했다. 이미 수도없이 죽음의 끝자락을 경험해왔었는데도 살아있는 이유를 짐작해보면 그것은 대충 짐작이 갔다. '복수를 이룰 때까지만'이라는 단안은 목표를 이룰 때까지의 원동력으로서는 출중하나, 정말로 이루게 되어버렸을 때는 후까지 이어줄 뒷심이 없는 것이다. 복수에 사무친 원한을 원동력으로 삼아왔었던 생은, 그 목표가 달성되는 순간 빠지게 될 허무에서 저항할 힘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집어삼켜져 버리겠지.
"…어째서, 에요?"
카센의 습기어린 눈과 일그러져버려 미소같이 보이게 되어버린 입술에서 호소의 뜻이 비쳐지는 걸 알고있으나 레이무는 무시했다. 끝내 카센의 눈물이 흘러 구슬픈 쉰 소리의 음색을 냈을 때는 잠시나마 망설였다. 때문에 변론한다.
"나는 그것때문에 살아왔으니까. 몇번이고 죽음에서 돌아와 삶을 이어가게 만든 이유였으니까."
"그래도, 일단은 생을 이어야 하잖아요…. 그것만으로도 목표에 전환점을 맞는 시기가 언젠가 올 수도 있잖아요. 당신은 분명 가능했어요…. 지금까지 겪어왔던 혼선, 그리고 망설임은 인간인 당신이 복수 이외에도 살아가고 싶다는 이유를 만들어가고 있기에 생겨난 감정들이었으니까요. 그래요, 분명 가능했단 말이에요.
그런데도, 그런데도 어째서 생을 포기하려 해요?"
"그 초조가 싫었으니까. 망설임이 싫었으니까. 변화를 겪고 그것을 인식했기 때문에 이런 결단을 내리게 된 거지. 더 이상 주저하기 싫어서."
"……."
그 감정을 못내 이해하는 카센에겐,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결단이었는지 느낄 수 있었다. 저 어두운 눈동자 뒤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고뇌와 결단과 무마가 있었을지 겪어본 자로서 연민했다. 구슬픈 딸꾹임을 억지로 참아 삼켜버린 카센은, 습기어린 눈동자를 이제 서서히 뜬다.
"죄송해요."
"응."
"저는, 당신이 죽게 내버려둘 수 없어요."
때문에 막아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