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거역하기에 나는 소리가 그녀들의 고막을 잔뜩 때리고 있다. 하늘을 비행하는 무라사의 성련선은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지만 그렇게 바람을 헤쳐나가고 있다. 무라사는 오랜만에 만져보는 키의 그립감에 마음이 고양되어선 휘파람이나 불어대나, 그녀를 제외한 모두는 어딘가 떨떠름한 모습을 감추지 못한다. 묵묵한 세이자의 길안내만이 목소리의 고요를 잠시 깨는 돌발요소였을 뿐이다. 방향만을 기계적으로 읊어대던 세이자의 목소리가 문득 도달의 의미를 풀은 문장을 내뱉자 무라사는 벌써 도착이냐며 살짝 실망감을 내보인다. 도착은 아니지만 여기서부턴 너희들끼리 걸어가야 한다고 세이자는 말했다.
"솔직히, 여기서부터 길안내는 필요가 없어. 보이지?"
"하긴..."
그녀들의 돌아진 고개가 향하는 종착점에는 누더기같은 폐가들 사이로 쏙 솟아있는 지령전이 보였다. 우르르 배에서 하선한 그녀들은 마치 산보라도 나가듯 담소나 나누면서 그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우호적이면 좋겠는데 말이죠."
다소 가능성이 없는 경우를 쇼가 말한다.
"그건 글쎄다~지만 말이야."
무라사는 깍지껴 뒤통수에 대고 어색히 웃는다. 그런 실없는 이야기를 잇는 건 둘뿐이다. 하지만 주고받는 쪽이 있다면 담소라 칭할만하다. 침묵하고있는 나머지는 각자의 이유가 있다. 남은 둘까지 침묵하면 공기가 푹 싸해질 것이 예상돼 무라사는 말을 끊지 않는다. 가끔, 이치린이나 신묘마루가 실없는 얘기를 해주면 무라사도 웃는 걸로 대강 맞장구쳐줬다. 그러니 도착은 금세다. 도착하고 나서 하는 마지막 말은, 다소 희망에 차있다.
"그래도 이런 문명같은 곳에서 사는 걸 보면 오니들보단 우호적이지 않을까?"
"그렇기를 바라야죠."
입구에서 수레를 끌고있는 고양이귀 여성에게로 그녀들은 향한다. 걸음은 조금 다급하다. 문이 닫히고 있었다. 전속력으로 달려 닫히려는 문 틈새로 얼굴을 꾸역꾸역 끼워넣으며 쇼는 "잠시만요!" 라고 소리쳤다. 수레를 끌던 상대는 다소 당황한 티가 역력하다. 고개를 돌린 채로 한 걸음 놀라 뛰듯이 물러선다. 그런 과민한 반응은, 예의라곤 찾아볼 수 없을 지저에서 존대를 쓰는 존재와 조우했다는 의외의 탓에 그럴 수도 있었으며, 닫히려는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부라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 때문일 수도 있었다. 아무튼 당황하는 상대에게 쇼는 다음 말을 잇는다.
"여기, 혹시! 코메이지 사토리라는 분은 뵙고 싶은데!"
"그래서 언니야들이 여기까지…."
오린은 사정을 대강 듣고는 고개를 살근 끄덕였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인 '지저를 떠난다'는 얘기가 없었음에도 납득을 한다는 점은 쇼 일행에게 살짝이나마 찜찜함을 들게만 했다. 오린은 그런 건 별로 개의치 않고, 그녀들을 사토리에게 인도할 뿐이었다. 의심은 하지 않는다. 그저 주인께 일을 넘기면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렇기에 생면부지의 인물들에게서 듣는 이야기도 아무런 의구심없이 납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의외로 착한데요?"
"그러게요…."
쇼는 얼굴을 가까이하며 속삭인다. 이치린은 쓴웃음을 지으며 살짝 기대를 품는다. 사토리에게로 향하는 길은 어둡다. 배경은 어둑하나 그녀들의 분위기는 다소 희망과 가깝다. 어슴푸레한 것은 주위뿐이고 그녀들은 그렇지 않아했었다. ……과거형이다. 끝없는 어둠의 심연속으로 향하며 그녀들의 희망은 점차 잦아져간다. 종래는 아무것도 보이게 되지 않아 녹슨 바퀴 탓에 덜컹이고, 수레 안의 뼈 때문에 바스락거리는 오린의 소리만이 공간을 장악하는 무엇이다.
다소 희망찬 분위기도 빛이 없는 암흑속에서는 그 모습을 점차 감춘다. 어둠이란 것은 무언가가 그려져있는 스케치북의 위를 덮어버리는 지독한 색의 물감이다. 그녀들의 모든 것은 덮어씌워질 수밖에 없는 무참한 것이 되었다. 말을 하던 쇼조차도, 무라사조차도, 신묘마루마저도, 이제는 말이 없다. 어둠속에서 그녀들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의해서 압박을 받는다. 뚝, 수레바퀴의 소리가 뼈가 달그락 거리는 소리와 함께 멎었을 때가 가장 정점에 달했다. 침묵하던 그녀들 대신 오린이 말한다.
"안보이겠지만… 여기 앞이 사토리 님의 공간이야. 근데, 들어가기 전에 유의해야 할 게 몇가지 있어."
"네? 유의해야할 거란게…."
"하나, 들어가는 건 한 명씩 차근차근. 적당히 시간이 지났다 싶으면 다음이 들어가도 돼. 둘, 안에서 불을 키지 말아줘. 되도록. 셋, 사토리 님… 솔직히 안에 계실지 아닐지는 나도 잘 모르겠어. 그러니까 기다려야 할지도 아닐지도."
문이 열렸다. 쇠가 마찰하면서 생기는 음이 귀를 간질였다. 발소리가 났다. 누군가 방 안으로 들어가는 기척이 났다. 하나다. 그녀들은 누가 들어가는 것인지 남겨진 목소리로 구분지었다. 방 안은 칠흑이었다. 무엇 하나의 윤곽마저도 볼 수 없는 암흑의 공간이었다. 붕 떠서 자신이 바닥에 서있는지조차도 모호한 그런 감각이 느껴졌다. 머릿속의 뇌가 진실로 흔들리는 기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야가 흔들려 의식마저 덜컹이는 기분이 났다. 커진 눈과 동공은 아무런 능력도 수행하지 못한다. 감각은 온통 외부 자극에 집중되었으나 아무런 것도 찾아내지 못한다. 들어온 이는 가만히 서서 결국엔 어둠과 동화된다.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 기분만이 마음을 으슥히 잠식한 채로.
가끔씩은 소리가 났다. 일정한 방향에서 가끔씩 들려오는 소리는 공간의 방위를 구분지어줄 척도였다. 하나, 둘, 셋. 그렇게 들린 횟수는 총 일곱 번. 그것에서 이상을 느낀 건 처음으로 들어온 이와 마지막으로 들어온 이다. 분명히 이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아야할 상황에서 소리라는 이변이 메아리가 인 듯이 한 번 더 발생한 상황은 의구심과 더불어 초조를 일게한다. 누군가 확인차 입을 뗀다.
"모두, 들어온 건가요?"
대답은, "네..."
다소 늦었다.
[모두, 들어온 건가요?]
[네...]
목소리가 한 번 더 들렸다. 성조는 다르다. 높낮이는 같다. 누군가는 그것이 밀폐된 방의 벽에 튕겨 일어난 소리라고 판단한다. 누군가는 이 중에서 목소리를 따라한 누군가가 장난을 치는 줄 알고 거북해한다. 그래서 말한다. 불쾌한 어둠이 잠식한 이 공간에서 그런 장난은 썩 유쾌하지 않았다.
"쿄코, 장난치지 마."
"나 아니야..."[쿄코, 장난치지 마.]
[나 아니야...]
기분 나쁜 소리가 계속된다. 누군가는 결국 얼굴을 찌푸리고 짜증을 낸다.
"너 말고 누가 있다고?"
[너 말고 누가 있다고?]
"나 아니란 말이야..."
[나 아니란 말이야...]
아니라고 대답은 하나 흉내는 계속된다. 칠흑속에서 자아의 존속에 필수적인 육체는 자신조차도 인식할 수 없기에 그저 무형의 존재인 목소리만이 자신이다. 그가 흉내내진다는 것은 자아를 뺏기는 기분마저 들게 한다. 그렇기에 모두는 불안하다. 더불어 초조해진다. 누군가는 화가 난다. 그런데도 흉내는 멈추지 않는다. 오히려 따라하는 타이밍이 점점 말하는 때와 겹쳐져서, 자신이 완전히 복사된다는 기분과 자아를 도둑질당하는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렇다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누에는 오린의 주의를 무시하고 손가락 끝에 불을 키웠다. 번쩍이는 빛이 모두의 눈을 찔러 찌푸리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방은 밝아졌다. 누군가가 주의를 줄 틈도 없이 일어난 이 일에 대하여 쇼는 타박을 할까 하다가 말았다. 시선의 끝에 싱그럽지만 어딘가에서 피폐함을 감출 수 없는 미소를 가진 이질적인 소녀 한 명의 고개가 자신을 향해있었기 때문이었다. 쇼는 그녀가 사토리라고 판단했다. 입을,
[당신이 사토리인가요?]
"당신이 사토리인가요?"
여는 건 사토리가 빨랐다.
"네, 맞답니다."
놀라는 쇼를 향해있는 사토리의 눈은 살짝 갸웃여지고 있었다. 쇼는 잠시 어벙한 티를 내며 물으려는데, 사토리는 입가에 그린 호선을 그대로한 채로 계속해서 그녀의 생각을 뺏었다. 쇼는 침묵해야 할 지 아니면 얘기를 계속 시도해야할 지를 몰랐다. 이야기를 하려는데 계속해서 말을 빼앗기니 대화에 가치가 있을까. 진정 사토리가 빼앗은 생각이 나의 것은 맞을까, 하는 의문을 품으면서. 그러다보니 말하는 것은 사토리 뿐이고, 대답하는 것도 사토리뿐이었다. 대화에 서로가 필요없다는 모순적 상황이 일었다.
"그런데, 제가 불은 키지 말라고 했을 텐데 말이죠."
"……."
"오랜만에 살짝 당황했답니다. 제 의사가 무시당했다는 점에서. 보통, 그런 건 상대를 신경쓸 여유가 없을 정도로 자신의 의식과 감정에 집중하고 있거나, 천성부터가 남을 무시하는 오니같은 녀석들이 아니면 그러지 않으니까요."
"죄…" "죄송하다… 네에 좋아요. 용서해드릴게요. 그리고 당신들의 목적도 되도록이면 이루어주도록 해드릴게요. 하지만, 궁금증을 해결하고나서부터랍니다. 기분이 팍 상했으니까요."
기미가 잔뜩 껴있는 눈의 놰쇄적인 눈동자가 빙글 돌아 누에를 향한다. 고개도 살짝 들어졌다. 누에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그녀를 보고있다. 불만가득한 입이 열리려고 하나 늦는다.
"날 따라한 게 너야? 네. 그렇답니다. 왜냐고요? 따라하고 싶으니까요. 이미 지저의 다른 생물들의 생각은 완전히 흉내낼 수 있으니, 지금껏 보지 못했던 당신들의 그 목소리, 자의를 따라하고 싶었으니까요."
"기분나쁜 자식."
"어머나."
누에의 목소리가 사토리를 앞서 나오자 사토리는 입을 가리면서 웃음을 짙게한다. 순간 누에의 생각이 바뀌어 생각의 연산이 한 차례 늦었다. 한 번 흉내냈었던 생각을 따라하는 게 늦었다는 건 생각을 읽고 흉내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토리에게는 꽤나 크나큰 충격이다. 충격이면서 행복이다. 그래서 사토리는 웃는다. 기분나쁜 미소라고 누에는 생각한다. 그래도 사토리는 여유를 잃지 않는다.
"불을 키지 말라던, 제 의사도 무시하시더니."
"되도록이라 들었지. 절대라는 말은 없었으니까."
"그거야 당신들의 목소리를 복제할 때까지만 그랬다면 충분했으니까요."
"하."
누에는 코웃음친다. 사토리는 고개를 반대방향으로 갸웃이며 미소를 없앴다가 다시 만든다. 고개의 방향에는 쇼가 있었다. 사토리의 눈동자가 굴러가며 쇼를 바라본다. 입이 열린다. 누구에게 향하는 것인지는 자명하다.
"당신들이 원하는 게 뭔지는 알겠답니다. 이루어드리죠."
"…정말ㄹ…!"
"하지만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불은 다시 끄도록 하죠. 그리고 제가 말할때까지는 절대 키지 말도록 하세요."
누에의 손가락 끝의 불이 픽, 하고 갑자기 꺼진다. 그녀들을 둘러싼 세상은 다시 암흑이 되었다. 칠흑은 불안감을 돋우고, 모든 감각에 동원되던 힘을 자의식으로만 집중하게 만드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무구이다. 의식 깊은 곳으로 숨겨놓았던 심연의 공포를 꺼내는 괴물이다. 세상 속 그녀들의 몸이 움츠려들면서 스스로마다의 불안을 내비치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 유일한 자극이 될, 고막을 때리는 목소리가 들리면, 그녀들은 그 목소리를 표지판으로서 생각의 방향을 일정지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사토리는 친히 말한다. 자신의 유희를 위해서.
"그 동안, 당신들의 생각을 가장 깊은 심연까지 들여다볼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