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게 날아다니는 두 무녀를 땅개가 따라 잡기란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게다가 평지가 아닌 가파른데다 아름드리나무가 빼곡하게 솟아 있는 산 속이니 산길에 이골이 난 백랑이라고 해도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다.
어떻게 된 게 레이무는 모미지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날아간 것치곤 그녀가 있을 만한 장소로 향했다. 그리고 우연이라고 해도 정도가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모미지를 맞딱트렸다. 나와 사나에가 거의 동시에 레이무가 내려선 장소에 도착 했을 땐, 레이무와 모미지가 이미 옥신각신하고 있었다.
편하게 날아온 주제에 거친 숨을 몰아쉬던 사나에가 날 보며 물었다.
「이제 어떡하죠?」
그걸 왜 나한테 묻는 거야?
레이무와 같이 모미지에게 따지려 가기로 했으면서 뭘 해야할지 모르는 눈치라니. 일단, 숨부터 고른 나는 짧게 한마디 했다.
「말려야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사나에는 곧바로 레이무에게로 날아갔다. 나도 뒤쳐질세라 사나에를 쫒아 현장에 끼어 들었다. 그녀들과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뭐라고 다퉈대는 목소리가 명확하게 들려왔다.
「하쿠레이 무녀면서 참견이 지나친 거 아닌가?」
「그럼, 이게 참견할 일이 아니라는 거야?」
「나와 소우지 씨, 둘의 문제다.」
「웃기고 있네! 가해자 주제에, 그런 변명이 통할 것 같아?」
그녀들의 대화를 엿듣느라 뜀박질을 늦춰 걷는 속도가 되었지만, 금방 지근거리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레이무는 당장이라도 공격할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일측촉발의 상황 속에서 날 발견한 모미지가 반갑다는 얼굴로 반겨주었다.
「어, 소우지 씨!」
반면에 레이무의 얼굴은 겸연쩍기만 하다. 날카롭게 노려보는 눈빛에도 모미지는 밝은 표정을 잃지 않았다. 날 만난 게 어지간히도 기쁜 모양이다. 나는 「어.」하고 단답형으로 대답하고는 레이무 옆에 섰다. 그리고 따라온 사나에는 반대편 옆자리에 자리 했다.
누가 봐도 레이무를 편드는 형태로 서있었지만, 모미지는 괘념치 않아하며 여전히 싱글벙글이었다. 레이무가 말했다.
「당신, 웃을 때가 아닐 텐데?」
노기 서린 목소리에 모미지는 웃는 얼굴로 맞받아쳤다.
「내 마음이다. 무녀는 그런 것 까지 간섭하나?」
「추궁 당하는 입장인 걸 알라는 거야. 게다가 피해자를 앞에 두고 뻔뻔하게.」
피해자라는 건 날 말하는 거겠지.
표정은 달랐지만 둘의 시선이 불을 튀며 힘겨루기를 했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팽팽한 분위기 속에 헛기침 소리와 함께 사나에가 끼어들었다.
「흠. 저기... 저도 그쪽에게 볼일이 있거든요.」
동시에 향해진 두 사나운 시선에 사나에는 조금 흠칫했지만, 이내 평정을 되찾고는 당당한 얼굴로 말했다.
「카나코님이 그쪽. 스토커에게 따끔한 벌을 주라고 명하셔서.」
「응?!」
뭔가 엄청난 선언에 놀랄 틈도 없이 사나에는 막대기에 흰 종이가 톱처럼 붙어 있는 불제봉을 번쩍 쳐들면서 외쳤다.
「그러니까, 천벌이에요!」
그 순간 마른 청아한 하늘에서 꾸르릉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더니, 별안간 콰쾅하고, 한 줄기 벼락이 떨어졌다. 주변 일대가 눈부신 뇌전에 잠식 되었고, 강렬한 빛에 잠시 감았던 눈을 떴을 땐, 검게 거슬린 지면과 연기와 함께 풀들이 불타 올랐다. 벼락의 흔적을 바라보다가 문득, 모미지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다행히 그녀는 무사했지만, 엉덩방아를 찧은 채 멍하니 벼락이 떨어졌던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발밑 바로 앞에 떨어진 차라 다소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리 요괴여도 저런 벼락에 맞고 멀쩡할 수는 없으니까.
이게 천벌이란 말인가.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나는 사나에를 그런 눈으로 쳐다봤다.
「이.. 이건.. 제가 한 게 아니에요.」
사나에는 눈에 띄게 동요하고 있었다. 반응으로 보아 의도한 것이 아닌 모양이었지만, 방아쇠를 당긴 것은 다름 아닌 그녀 본인이다.
「사나에. 네가 한 게 아니라면 설명 좀 해주지 않겠어?」
딱히 추궁하려고 물은 게 아니었지만, 사나에는 질겁한 얼굴로 「모르겠어요.」만 외쳤다. 그 모습을 답답하다는 듯 보고 있던 레이무가 입을 열었다.
「그 야사카 카나코라는 신이 저지른 일이겠지.」
레이무의 말대로 마른하늘에 벼락을 떨어뜨리는 건 그분 말고는 없을 듯 했다. 레이무는 이어 한숨을 뱉어내며 말했다.
「뭐, 내 입장에서는 속 시원하긴 한데... 좀 지나쳐.」
「죽일 생각 만만이잖아.」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올려다 본 레이무의 시선은 정확히 요괴의 산 정상을 향해 있었다. 나는 사나에를 바라보며 그게 사실인지 물었고, 그녀는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긍정했다.
「아마도...」
그러나 곧 석연치 않다는 투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진심이 아닐 거예요. 보세요! 벼락이 빗나갔잖아요.」
정말로 그런 거냐는 시선으로 레이무를 쳐다보았다. 레이무는 내 시선에 고개를 주억 거리며 사나에의 말이 사실이라고 말해 주었다.
「사나에 말대로 카나코가 죽일 생각이었다면 절대 빗나가지 않았겠지. 저건 경고로 위협한 거야. 다음에는 용서 없겠지.」
그 말은 내가 아닌 모미지에게 한 얘기였다. 카나코님의 위협은 효과가 있었는지, 모미지는 아직도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지만, 그 표정만은 사납게 으르렁 거리고 있었다. 텐구여도 모미지는 나와 같은 말단이다. 그런데, 신을 향해 적개심을 드려 내다니.
저러다 정말로 신의 분노를 사면 어쩌려고.
「듣고 있어? 신까지 개입했다고.」
차디찬 레이무의 말에 모미지는 표독스런 시선으로 노려봤다. 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푹 숙이더니 한숨 섞인 어조로 내뱉었다.
「내가졌다. 앞으론 강압적인 방식을 취하지 않겠다.」
「신이 무섭긴 무서운 모양이네. 순순히 꼬리를 내리고 말이야.」
「아니.」
숙였던 고개를 든 모미지의 시선이 날 향했다.
「신이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라, 지금까지의 방식으로는 소우지 씨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날 빤히 바라보는 모미지의 눈은 여전히 사랑에 빠진 여인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날 덮치던 때와 같은 야수의 눈이 아니었다. 좀 더 사랑스러운 쪽으로 앞으로는 강제로 덮치려 들지 않겠다는 것을 시사하는 듯 했다.
자리에서 일어선 모미지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내 어깨 위에 두 손을 얹고는 그대로 체중을 실고 몸을 기대었다. 그 일련의 행동이 너무 자연스러워 제지할 틈도 없이 모미지에게 가슴을 허용한 꼴이 된 나는 난감해서 어쩔 줄 몰랐다. 그리고 왜 이런 돌발적인 행동을 한 것인지 짐작되었다.
틀림없다. 모미지가 갑작스레 내 가슴에 기댄 것은 일부러 그런 것이다.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레이무가 그걸 증명해준다. 아마도 자신의 연적을 도발하기 위해서겠지.
카나코님의 경고에 더는 강압적인 수단을 취할 수 없게 된 모미지는 이 자리를 빌려 레이무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모미지는 그 자세로 레이무를 향해 이렇게 고했다.
「확실히 난 당신에 비해 부족한 것이 많다. 힘, 지위, 나이. 무엇보다 소우지 씨의 취향은 나 보다 당신에 더 가깝다. 하지만, 딱 한 가지 그쪽에 뒤지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인연이다! 」
「아 그래?」
명백한 선전포고였다. 하지만, 레이무는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관심 없다는 투로 내뱉었다. 그리고는 손에 든 불제봉으로 제 어깨를 가볍게 툭툭 치며 한껏 여유를 부리며 말한다.
「그쪽과 아저씨의 인연이 어떻든 솔직히 관심 없어. 난 그저 아저씨와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것뿐이고, 누굴 더 좋아할지는 아저씨가 결정할 일이야. 그런데, 그쪽은 자신의 기분만 앞세운 나머지 아저씨를 곤란하게 만들었어. 그래서 뻔뻔하다는 거야. 사랑받고 싶으면 그에 걸맞게 행동하라고!」
찰나의 순간이었다. 아무런 예고도 없이 날아온 한 장의 부적이 나와 모미지를 갈라놓았고 기습에 의해 강제로 나에게서 떨어진 모미지는 날카로운 어금니를 드려낸 채 사납게 으르렁 거렸다. 그리고 등에 찬 커다란 월도를 뽑아 들어 그대로 레이무를 향해 튀어 나갔다.
너무도 갑작스럽게 벌어진 싸움이었다. 계기는 레이무의 부적이었다. 딱히 공격할 의도가 아닌 단순히 내게 찰싹 달라붙어 있는 모미지를 떼어내기 위해서였겠지만, 결과적으로 둘이 싸움을 일으키게 된 도화선이 되고 만 것이다.
레이무를 향해 휘둘려지는 모미지의 월도는 맹렬했다.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상대조차 되지 않는다는 알기에 가해지는 맹공에 레이무는 부적을 매개로 만든 결계로 방어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당장은 모미지가 몰아붙이는 형세지만 저 결계로 된 방어막을 뚫지 못하는 한 승산이 없는 싸움이라는 것은 누가 봐도 자명했다. 여유로운 레이무와 달리 갈수록 초조해져가는 모미지의 표정이 그 사실을 말해준다. 그리고 아무리 산을 마당 삼는 백랑이라도 저런 기세로 휘둘려 댔다간 금방 지쳐버리겠지.
승패는 조만간 결정 나겠지만, 그때까지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순 없었다. 레이무와 모미지, 누구도 다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고, 나 자신도 이 싸움에 관계가 없진 않았다. 그리고 두 여자가 싸우는데, 남자가 되서 구경만 한다는 건 한심한 일이다.
「둘 다 그만해!」
그렇게 있는 힘껏 외쳤건만, 들리지 않는 것인지 둘의 움직임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역시, 몸으로 막아야 하나. 저 둘 사이에 끼어든다는 게 영 내키지 않지만, 달리 말릴 방법이 없으니.
한숨을 푹 내쉬며 한창 싸우고 있는 둘에게로 걸어가려는데, 하얀 손이 내 어깨위에 내려앉았다. 뒤를 돌아보자, 어느새 내 뒤에 자리 잡고 있던 사나에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저에게 맡겨주세요.」
「네가 대신 말리려고?」
「네. 힘으로 둘 다 때려눕히려고요!」
그런 위험한 소리를 내뱉으며 사나에는 격렬하게 싸우고 있는 둘에게로 달려갔다. 그러면서 「현인신의 힘을 보여 주겠다-!」하면서 만화에서나 볼법한 결정 대사를 날렸다.
나는 고개를 절래 흔들며 큰소리로 외쳤다.
「그게 어딜 봐서 말리는 거야!! 싸움이 장난이야?」
아무래도 둘의 싸움을 보는 감각이 사나에는 나와 많이 다른 모양이었다. 아니, 저렇게 흥분해서 참전하는 걸 보면 상식이 정상인의 범주를 아득히 뛰어 넘었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