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야!”
레이무의 불제봉이 허공을 세차게 갈랐다. 뒤따라 유카리의 비명이 울렸다. 스키마 속에서 얼굴을 빼꼼 내놓고 있던 유카리는 생명의 위협에 벌벌 떨다 레이무를 떨떠름한 눈치로 바라보다 애처롭게 외쳤다.
“레이무! 제발 나 나타날 때는 공격하지 말아 줘어!!”
“또 무슨 일로 왔는데.”
“몰라서 묻는 거야…?”
“몰라.”
레이무가 피 묻은 불제봉을 툭툭 튕기더니 유카리를 불만에 찬 눈으로 보았다. 유카리는 저 불제봉 상태를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나 진심으로 걱정되어 물었다. 불제봉의 옆에는 요괴의 시체가 있었다. 시체는 거친 손속에 의해 몸뚱이가 반으로 갈려있었다. 당연히도, 레이무의 짓이었다.
“내가 요괴는 죽이지 말라고 몇 번이나 당부했잖아! 제발 지켜주면 안 돼?”
“아니, 나는 지나치려고 했는데 얘가 먼저 공격한 걸 어떡하라고.”
“요괴니까 당연한 거지 그건! 애초에 내가 환상향을 만든 이유가 뭔데! 환상향은…”
“요괴를 위한 낙원이지 인간을 위한 낙원이 아니야. 잊혀진 환상을 존속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세계라고ㅡ 지겨우니까 그만 말 해. 들은 횟수만 벌써 수백 번은 됐겠다.”
“알면서 왜 그러는데…….”
유카리는 진심으로 눈물을 흘리고 싶어졌다. 이해해주지 않는 레이무가 미워지려고까지 그랬다.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자신을 이해해 줄 것인가. 눈물을 마음속으로 삼켰다. 그러나 감정은 그녀의 얼굴로 새어나와 울먹거리는 움직임을 보였다. 레이무는 연기는 안 통한다며, 굳이 매몰차게 물었다.
“그러면 뭐,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데?”
“요괴를 죽이지 않겠습니다. 불살을 지향하겠습니다. 제창해봐!”
“날 죽이려는 녀석들을 내버려 두라고? 하.”
레이무가 흘깃, 요괴의 시체를 바라보더니 헛웃음을 쳤다. 그리고는 피 묻은 불제봉을 다시 요괴의 시체에 쑤셔 박더니 눈살을 찌푸리곤 유카리를 바라봤다.
“내가 왜 날 죽이려는 놈들을 이해해줘야 돼? 잘못은 이 새끼들이 먼저 했는데?”
“제에발… 좀 이해해 줘……. 뭘 해야 요괴들을 이해해 줄 건데….”
“도게자라도 해봐. 그러면 하루 정도는 양보해 줄게.”
레이무의 말에 유카리는 스키마를 빠져나오더니 단숨에 도게자를 했다. 눈 껌뻑할 사이에 무릎을 바닥에 붙이자 레이무도 당황했는지 떨떠름한 눈으로 유카리를 바라보았다. 이쯤 되니 레이무에게도 측은지심이 들려 그랬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렇다기보단 우연이었지만. 유카리가 말했다.
“어떻게 해야 될지. 어떤 방법으로 불살을 행할지 알려줄 테니까. 제발 요괴들을 이해해 줘…….”
“……내일 신사로 와.”
마요이가로 돌아온 유카리의 움직임은 분주했다. 불살, 불살이 무엇인가. 생명체를 죽이지 않는 것이다. 지금의 레이무에게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행하도록 유도할 방법은 마땅치 않았다. 창작물 속에서 불살이란 자주 행해지기에 행하기 쉬운 것으로 보이나, 그리 만만하지는 않은 것이었다.
‘아니, 레이무면 가능하려나…….’
유카리는 제 입가로 부채를 툭 갖다 대고는 생각했다. 대요괴와도 능히 싸우거나 승리를 쉽게 장담할 수 있는 자가 바로 레이무였다. 이전의 하쿠레이의 무녀와는 확연히 다르고, 비교조차 불가능한, 범접 불가의 존재였다. 그러니 하쿠레이의 무녀로서 선정한 것이었지만.
십호흡을 하고, 잠시 생각을 하고 나니 유카리의 방향성이 정해졌다. 흔히 창작물 속에서 이뤄지는 불살을 환상향에 재현시키기로. 환상향이라는 무대 안에서 싸우기는 하되, 적을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것을 실현시키기로.
레이무는 아직 어렸다. 그러니 창작물의 영향을 쉽게 받을 나이이기도 했다. 성격은 어른스럽긴 했으나, 본질은 아직 젖내도 안 빠진 어린애이니까. 아이들에게 권선징악의 동화를 보여주는 이유가 무엇인가. 결국에 세상은 선의 손을 들어준다는 교훈을 남기기 위해서이지 않은가. 그렇게 선을 행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던가.
그러니 불살이라는 개념을 창작물을 통해 레이무의 머릿속에 제대로 박아둘 생각이었다. 혹여나 거들떠보지도 않는다면 어떻게든 경계의 능력을 이용해 창작물과 현실의 경계를 간섭하여 창작물에 심취하도록 할 생각이었다.
“란, 내 노트북을 가져와주련.”
“알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창작물 속 인물들의 생각을 빌려야 했다. 어렸을 때부터 요괴를 죽인 레이무에게 있어 살해라는 행위에 도덕적 고찰을 일으키는 것은 힘들겠으니, 찾아보려는 것은 힘은 지니고 있되 이유가 있어 불살을 고수하는 캐릭터였다. 레이무의 입장과 최대한 접목하기 쉬워보일 인물로 말이다.
오늘따라 유독 바쁘게 구르던 유카리의 눈이 어느 시점에서 멈추었다. 지금의 레이무와 그나마 비슷하다 느껴질 존재가 있었다. 그렇기에 화색이 돋았다. 이제는 다음 날을 기다릴 뿐이었다.
다음 날의 하쿠레이 신사였다. 유카리는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노트북을 보였다. 레이무는 순간 무슨 용도인가 물었으나, 사용법을 듣자 빠르게 습득하는 모습을 보였다. 화면에는 유카리가 찾아낸 캐릭터의 이름과 영상물이 하나 뜨여있었다. 레이무는 의도를 짐짓 눈치 채고는 영화에 눈길을 집중하였다.
“잠시 그의 입장을 이해해볼 시간을 줄게. 언제쯤 돌아오면 될까?”
“저녁 먹을 때 쯤 와봐.”
“알겠어~”
영상물에 흥미를 보이는 레이무의 모습을 본 유카리는 평소와 다른 태도로 스키마에 들어섰다. 저녁이 될 때까지는 란이나 첸과 시간을 때우기로 하면서. 드디어 환상향에 평화가 찾아올지도. 기대하며 후훗, 웃었다.
기대한만큼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다시 저녁이 되어 유카리가 신사에 찾아왔다.
“유카리, 알았어.”
“드디어 생명의 소중함을 알게 된 거야? 남을 죽인 이들을 죽인다고 해서 자신이 도덕적인 인물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은 그들과 별 다를 바가 없게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거야?”
레이무는 평소와도 같은 담담한 말투였다. 유카리는 화색하며 물었다. 진작부터 문명의 이기를 사용할 걸 그랬다 마음속으로 후회하면서. 그래도 지난 일이지 않은가. 이제부터는 레이무가 요괴의 피를 바닥에 흩뿌리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만을 감격스럽게 떠올리기로 했다.
“내가 때렸을 시점까지만 죽지 않으면 불살인 거구나.”
“전혀 아니야아아아아아아아!!!!!!”
레이무, 인터넷에 유머로 퍼진 배트맨식 불살을 배우다.
==============================
생각만 해두던 거 한 번 글로 써봤습니다
(IP보기클릭)113.52.***.***
무녀-세면대
(IP보기클릭)61.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