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마저 구름에 가려진 칠흑같은 밤.
센라와 코우, 두 요괴는 낡은 목책에 둘려 쌓인 작은 마을에 들어섰다.
원래라면 요괴가 쉽게 발을 들일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지만, 늦은 밤이다. 낮이 인간의 영역이라면 밤은 자고로 요괴의 영역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코우는 인간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발을 들이는 것에 적잖은 저항감이 있었다.
밤이라곤 해도 인간의 마을에선 요괴는 불청객일 따름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후배를 억지로 잡아끌며 당당히 마을 정문으로 입장하는 센라는 그런 것 따윈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오랜만에 술을 맛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입을 쩝 다시고 있었다.
"인간들에게 목격 당했다간 소동이 벌어진다고요.."
"다들 집에 처박혀 있는데, 목격 당할 일이 뭐 있다고 그래?"
코우의 걱정과는 달리, 짙은 어둠이 내린 마을은 적막했다. 들리는 건 야산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와 찌르르 하는 벌레소리. 그리고
"저길 봐라."
센라가 검지로 가리키는 곳으로부터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게다가 희미한 불빛이 멀리서부터 보여 오기 시작했다. 시선을 고정시킨 코우는 그 불빛이 한두 개가 아니며, 소리와 함께 점점 커져오는 것을 눈치챘다.
"저건 도대체 뭡니까?"
궁금해 하며 묻는 물음에 센라는 팔짱을 끼며 자신 있게 답했다.
"백귀야행이다."
"백귀야행이요? 이 마을 한복판에!?"
코우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자신이 아는 백귀야행이라고 하면,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뭉친 요괴 집단이 산이고 들이고 다니면서 자신처럼 혼자 다니는 요괴나 인간들을 해치는 흉악한 무리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흉악한 요괴 무리가 인간들이 사는 마을에서 활개치고 다닌다고?
그런 무리가 어째서 인간 마을에 있는 것인지는 둘째 치고, 숫자의 폭력이 이리로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 코우에게 큰 걱정으로 다가왔다.
"어..어쩌죠? 저들이 우릴 보기 전에 어디론가 얼른 도망쳐야 되지 않을까요?"
코우가 다급하게 물었지만, 돌아오는 건 우악스런 주먹으로 내려치는 꿀밤이었다.
"으악! 왜.. 때리는 겁니까!"
"쫄보 같아서 때렸다. 도망가긴 왜 도망가?"
정수리에 난 혹을 비비며 눈가에 물기까지 고인 코우는 꿀밤의 통증을 호소하며 물었다.
"그럼, 도망 안 갑니까?"
"그래."
"우릴 해칠지도 모르는데?"
"하하핫!"
소리내며 크게 웃는 센라.
"걱정도 팔자다. 저 백귀야행은 무해한 놈들이야. 설령 우릴 해칠 의도가 있다고 해도 말이지..."
그는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는 코우에게 자신만만하게 단언했다.
"할 수 있다면 해보라지!"
수십이 넘는, 백이라는 숫자에 가깝거나 그 이상이라는 백귀야행을 상대로 겁먹지 않는 요괴는 흔치 않을 것이다. 잘 생각보라. 센라가 누구인가? 코우는 선배가 오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지금 자신과 같이 행동하는 선배는 보통의 요괴가 아닌 오니.
그렇게 생각하면 전혀 겁먹을 게 없었다.
백귀야행 무리가 제법 가까워졌는지, 환한 불빛 아래로 그 모습들이 드려났다. 통일성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각양각색의 요괴들이 저마다 흥에 겨워 왁자지껄한 모습이었다. 너무도 즐거워 보여, 코우는 자신도 저 속으로 들어가 같이 어울려서 놀고 싶은 기분이었다. 밤거리를 밝히던 불빛의 정체는 푸른 귀불과 저 혼자 떠다니고 있는 등불들이었다.
저게 정말로 백귀야행?
그렇게 묻는 눈빛에 센라는 담담하게 답했다.
"저게 바로 밤을 거니는 백귀야행이지."
"제가 봐온 백귀야행과는 많이 다르네요."
"그렇겠지. 네가 봐온 녀석들은 이른바 약탈자들 인거고, 저 백귀야행은 인간들 속에 숨어살다 밤만 되면 나다니는 그런 놈들이니까. 그러니까 무해하다고."
그의 말처럼 마을의 큰길을 가로질러 센라와 코우를 지나쳐 가는 백귀야행 무리에게서는 그 어떠한 적의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그저 흥에 겨워 할 뿐. 그들은 정말로 무해한 요괴들이었다.
적어도 지금의 둘에게는.
"그런데, 저들은 왜 마을을 배회하는 겁니까?"
정말 궁금해서 묻는 말이었다.
센라는 후배의 질문에 명확한 대답을 찾느라 고개를 주억거렸다.
"음.. 뭐냐.... 낮 동안 꽁꽁 숨어 있느라고 답답해서 저러는 거겠지."
"그럼, 왜 낮 동안 숨어 있는 거예요?"
"그야 인간이 사는 마을이니까. 인간은 낮, 요괴는 밤에 다니는 거라고 정해져 있는 거지. 낮에 다니는 요괴는 퇴치 당하더라도 불평할 수 없고, 반대로 겁도 없이 밤에 어슬렁거리는 인간은 요괴에게 잡아먹히더라도 별 수 없다는 거다."
요컨데, 인간과 요괴간의 불문율이었다.
서로의 영역을 낮과 밤으로 구분해 놓고 서로 침범하지 않는 다는 철칙.
하지만, 모든 인간과 요괴가 그런 것이 아니었다. 밤을 밝히는 인간이라면 얼마든지 있고, 대낮부터 활개 치며 패악질을 부리는 요괴들도 있다. 단지, 이 마을 안에서 만큼은 그 불문율이 철칙처럼 지켜지고 있는 거겠지.
백귀야행의 행렬이 길게 이어진다.
그들 중에는 센라와 코우를 발견하고는 힐끔힐끔 쳐다보는 이도 있었고, 이쪽으로 합류하라는 손짓도 있었다. 그러나 뒤늦게 센라가 오니인 것을 눈치 채고는 황급히 시선을 거두는 것은 모두 똑같았다.
"저만한 수라면 무서울 것도 없을 텐데, 오니 만큼은 무섭나 보네요."
"당연하지. 너 오니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내 손짓 한 번이면 저놈들 죄다 죽어 나자빠질걸?"
"선배가 강하다는 건 알지만, 그건 좀 과장이 아닐지.."
"그럼, 내가 거짓말 하고 있다는 거야? 아앙?"
코우는 오니가 아무리 강대한 요괴라 해도 저만한 행렬의 요괴들을 전부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자신을 삼킨 그 거대한 요괴집을 절명 시킨 선배라 해도 말이다. 그러나 오니는 거짓을 쉬이 고하는 요괴가 아닐 터이다.
선 듯 믿지 못하는 후배에게 자신의 말을 증명하고 싶은 센라는 어깨를 두둑, 풀며 오른 팔을 한 바퀴 돌렸다.
"보고 있으라고, 이 선배가 얼마나 강한 오니인지 보여 줄 테니까!"
주변 공기가 후끈 달아오르고, 코우는 센라가 당장 큰일을 벌일 것만 같아 불안했다. 지금이라도 선배 말이 옳다고 치켜 세워줘야 할지를 고민하며 손을 뻗는 찰나.
사고는 코우가 말리기도 전에 일어나고 말았다.
"으라차차-!!"
우렁찬 외침과 함께 내지른 주먹이 긴 백귀야행의 행렬을 두 개로 갈라지게 만들고 만 것이었다. 엄청난 광풍이 몰아닥쳤고, 요괴 몇이 거기에 휩쓸려 나갔다. 정말로 말도 안 되는 괴력이 아닐 수 없었다. 단순한 지르기가 거친 광풍을 부르다니.
코우는 입을 떡 벌린 채, 아무런 말도 나오지 않았다.
"어떠냐! 내 주먹 한 방에 백귀야행이 혼비백산하는 모습이."
의기양양하게 묻는 말이 코우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센라가 저지른 짓의 후폭풍에 시선을 빼앗겼기 때문이었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와 공포에 질린 채 도주하는 움직임. 행렬이 순식간에 와해되고 있었다. 센라가 내지른 주먹이 떠들썩하고 흥겹던 백귀야행을 한 순간에 혼돈의 도가니에 몰아넣은 것이었다.
그러나 센라는 경솔한 행동에 대한 자각도 없이 자신의 강함을 설파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날 다시 보게 되었지? 내가 이렇게 대단한 오니다!"
센라가 무어라 하든, 코우는 대답은커녕 고개도 끄덕이지 않았다. 대체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코우는 일단, 선배의 의견에 동조하기로 했다.
"대.. 대단하네요."
빈말이 아니었지만, 어째 맥이 풀린 듯한 어조에 센라가 불만을 내비쳤다.
"꽤 시원찮은 반응이네. 이걸로는 부족하다는 거야?"
"아뇨. 선배의 강함은 충분히 알았으니까..."
말끝을 흐리는 코우.
그는 시선을 백귀야행이었던, 지금은 혼비백산하며 떨고 있는 요괴들에게 옮기며 흐렸던 말을 이었다.
"저분들에게 사과 한마디라도 해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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