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루고 미루던 엔딩을 결국 봤습니다. 68레벨, 63시간 표창 받았네요. 특별히 트로피 작업한 거 없는데 아만타이 잡는거랑 글라디오 서바이벌 10랭만 남았습니다. ㅎㅎ
자동차 밀 때 나오는 대사 끝쯤 부터 눈물이 나더니 마지막 결혼식 장면까지 엄청 울어서 눈이 팅팅 부었네요;;
그래도 추후 요소 못할 만큼 허망하진 않아서, 움브라 불러 과거로 돌아가 비행 레갈리아 한 번 타보고 게임오버 두 번 당한 뒤에 껐습니다.
인게임에서 한 번도 게임오버 당해본 적 없는데 미친;;;;
아무튼 아래부터는 개인적인 스토리에 대한 생각을 조금 해보려고 합니다.
일단 엔딩까지 본 시점에서 스토리에 대한 총체적인 평은 '아쉬운 부분은 많지만 나쁜 스토리는 아니다'입니다.
파판15의 이야기를 간단하게 줄여서 [ 옛날 인섬니아 루시스 왕가의 녹티스 왕은 여섯 신과 고대 왕들의 힘을 이어받았으며, 그 목숨을 바쳐 어둠에 잠긴 세계에 빛을 돌려주었다 ]로 한다면 아주 그럴싸한 이야기가 됩니다. 즉, 이 이야기는 아주 고전적인 영웅 서사를 그대로 답습합니다. 영웅 서사에서 언급되는 영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는 생전의 업적으로 영웅이 되나 죽음으로 몰락하는 영웅(아서왕을 비롯해 그리스 로마 신화의 많은 영웅들)과, 죽음을 통해서 비로소 영웅으로 추대되는 성인(聖人) 영웅입니다. 녹티스의 이야기는 후자이며, 죽음이 세상을 구하는 키워드가 됩니다. 이 서사는 매우 간결하고 대중적이지만 그렇기에 틀로써는 허점이 딱히 없습니다. 그래서 실패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물론 단순한 맥락상으로는요. 문제는 파판15에서 이 이야기를 토대로 펼쳐놓은 변주가 미흡했다는 데 있겠습니다.
파판15를 얼핏 보면 녹티스 왕이 나라를 구하고 세상을 구하기 위한 장대한 서사시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파판15의 서사나 인물 관계도, 게임 구도를 살펴보면 철저하게 녹티스에 녹티스를 위한 녹티스만의 이야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녹티스의 설정, 여행을 떠나는 목적, 아덴의 간섭, 레기스와 루나의 희생, 제국의 존재 이유 등 모든 것이 오직 녹티스를 '운명에 선택받은 왕'으로 만들기 위해 존재합니다. 시점은 언제나 녹티스 개인에게 한정지어져 있고, 녹티스에게 선택받은 왕이 된다는 선택지 이외의 선택지는 아예 존재하지 않습니다. 녹티스가 기껏 선택할 수 있는 부분은 자신의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정도 뿐이었고요.
즉, 저는 파판15를 녹티스라는 한 개인의 일생 이야기를 대서사시처럼 꾸며둔데 1차적으로 패착이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기존 파판 시리즈의 서사가 주었던 웅장함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여기에서 우선 배신을 당합니다. 조국이 망하고 적대국가가 존재한다는 설정 자체는 아주 비범한 스케일인데, 이것은 녹티스의 운명에 빗대면 하찮은 존재감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행이라는 테마도, 우정의 이야기도 녹티스 개인에게나 중요한 일이지 세계구급 서사시에는 어울리지 않으니까요.
거대한 서사시 속에 살아가는 한 사람이라는 테마는 많은 매체에서 빈번하게 사용되고 재해석 됩니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조명한 건 인간을 위해 희생한 예수 그리스도의 인간적인 내면이었습니다. 녹티스의 일대기를 음미하면서 그 작품이 불현듯 생각났습니다. 마지막 캠프에서 녹티스가 '모든걸 결정하고 여기에 왔지만 역시 괴롭다'라는 말이 결국 파판15에서 보여주고팠던 테마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거대한 운명속에서 발버둥치고, 희생을 강요당하고, 버젓하게 가슴을 펴고 걸어왔지만 사실 너무나 괴롭고 무서웠던, 선택받은 이 이전에 왕이고 왕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이었던 녹티스를 보여주고 팠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초반 여행을 정말로 충실히 해오며 녹티스 일행의 생활을 함께 공감하며 걸었던 사람에게 (최소한 저에게) 마지막 캠프 씬은 슬픔의 도가니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녹티스의 일대기'를 제대로 표현했느냐? 라는 질문에 다다르겠고, 많은 분들이 생각하시는 것 처럼 아닙니다. 여기서 유저들은 또다시 배신을 당합니다. 철저한 녹티스 중심의 서사가 이어질 거라면 그 녹티스가 겪는 일들이나 인물들의 행동의 당위가 명확해야하고, 좀 더 감정을 보여주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지요. 13장에서 아덴의 입을 통해 풀리는 수많은 설정과 썰들이 왜 그런식으로 밖에 묘사할 수 밖에 없었는지는 의문으로 남습니다. 아덴이 말로 설명했던 그 이야기들이 1~8장 사이의 오픈월드 속에 여러가지 퀘스트를 통해 검증되었다면 이렇게까지 스토리가 지탄받을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스토리를 꼭 플레이어블 시나리오를 통해 친절하게 제시할 필요는 없지만 서사와 세계가 아예 동떨어지도록 느껴진다면 필시 문제입니다. 프롬 소프트웨어의 다크소울 시리즈나 블러드본을 보면 유저가 직접 겪을 수 있는 스토리는 아주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이 게임들은 세계에 서사가 녹아있기 때문에 내가 스토리를 잘 모르더라도 그 세계 속에 살아있다는 실감이 납니다. 인게임 캐릭터의 성격이 명확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유저가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들었어야 했는데, 오픈 월드 속에 그러한 부분을 체현하기가 그토록 힘들었나 싶습니다. 서브 퀘스트를 많이 만드는 대신에 프롬프토의 과거와 제국군의 비밀을 접하는 퀘스트가 있고 녹티스 일행들이 그들을 죽여온 것에 대한 충격을 묘사하는 이야기가 하나라도 있었다면, 아덴의 도움을 받으면서 세상에 흩뿌려진 아덴의 정체에 대한 떡밥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면 이야기의 맥락이 더더욱 풍요로워졌을 텐데요... 이처럼 아름답고 장대한 오픈월드를 만들어놓고서 어째서 서브퀘스트 밭으로만 쓰게 했는지 많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때문에 녹티스의 희생을 위한 결심에 필요한 방황의 요소가 거의 존재하지 않게 되어, 녹티스의 감정에 유저들은 쉽게 이입하지 못하게 되어버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하다못해 처음부터 녹티스가 자신이 바칠 대가를 알았더라면...
뭔가 할 이야기는 많은데 정리가 미처 안 된 고로 그냥 이 정도만 쓰겠습니다. ㅎㅎ 부족한 사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레벨업하고 플래티넘 작업한 뒤 숨겨진 던전들을 클리어하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면 DLC도 나오겠지요.
아쉬운 점은 많지만, 그럼에도 참 재미있게 플레이했고 플레이하고 있습니다. 100시간은 가볍게 찍지 않을까 싶네요.
즐거운 파판 라이프 되시기 바랍니다. ㅎㅎ 드퀘는 언제 나오려나 싶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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