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스타] ‘테일즈 오브’ 토미자와P, 전세계 사로잡을 JJJ-RPG를 향하여
지난 17일(목), 국제게임쇼 ‘지스타 2023’ 부대행사인 ‘G-CON’ 무대에 반다이남코 토미자와 유스케 프로듀서가 섰다. 당초 ‘갓 이터’ 시리즈를 담당했던 그는 몇 년 전 침체에 빠진 ‘테일즈 오브’ 시리즈의 부활을 주문 받았고, 마침내 2021년작 ‘테일즈 오브 어라이즈’를 통해 전세계 27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는 기염을 토해냈다. 이에 금번 강연은 <글로벌을 향한 JRPG 프로듀스의 현재>라는 주제로 그가 추구한 세계화 전략에 대해 이야기했다.
'갓 이터'와 '테일즈 오브' IP를 총괄하는 반다이남코 토미자와 유스케 프로듀서
토미자와P는 2003년 반다이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여 몇 년간 캡슐토이 개발에 매진했다. 그러다 2007년 반다이남코 엔터테인먼트에 파견간 것을 계기로 이적, 이듬해부터 콘솔 게임 프로듀스를 맡았다. 즉 프로듀서 업무만 15~16년째 수행해온 베테랑 중 베테랑이다. 그는 스스로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새로운 발상을 끄집어내는 크리에티브형 프로듀서보다는, 고객의 욕구를 찾아내고 분석하여 거기에 제품을 연결 짓는 비즈니스형 프로듀서라 자평했다.
자신은 천재가 아니므로(토미자와P는 강연하는 동안 이 표현을 몇 번이나 사용했다) 마케팅 기법의 공식을 중요시했다. 제품 컨셉은 아이디어 즉 ‘무엇을 할 수 있는지’와 베네핏 즉 ‘어떻게 좋은지’의 결합으로 탄생한다. 프로듀서는 결정된 컨셉이 몇 년이고 흔들림 없이 지켜져 실제 제품으로 완성되도록 계속 확인하고 지원한다. 최종적으로 컨셉과 퍼포먼스가 일치될수록 성공적인 프로젝트에 가깝다. 이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도 중요하다.
여기서 토미자와P는 재차 자신이 천재가 아님을, 따라서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기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보다는 기존에 마켓 리더가 존재할 때 그 시리즈에 내재된 매력과 충족되지 않는 수요를 분석하여 대응하는 게 낫다. 장르적 매력은 차용하되 거기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보태어 어느 정도 파이를 획득할 수 있는지 파악하는 게 프로듀서가 할 일이다. 일례로 ‘갓 이터’는 헌팅 액션에 아니메풍 캐릭터와 하이스피드를 보탰다. ‘코드 베인’은 소울라이크에 마찬가지로 아니메풍 캐릭터와 버디 요소를 보탰다. 보다시피 이는 신생 IP를 위한 전략이다.
반면 ‘테일즈 오브’ 시리즈는 1995년 슈퍼 패미컴으로 출시된 ‘테일즈 오브 판타지아’부터 무려 30년 가까이 이어진 유구한 IP다. 토미자와P로서도 이렇게 역사가 오랜 IP를 계승하기는 처음이었다. ‘갓 이터’나 ‘코드 베인’과는 확연히 다른 전략이 필요했다. 무엇보다 회사가 그에게 내린 특명은 ‘월드와이드로의 JRPG 확장’. 그러려면 브랜드 매니지먼트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판단 하에 가장 먼저 책과 깃털로 된 로고를 만들었다. 놀랍게도 시리즈가 25주년을 넘기는 동안 공통적으로 사용할 브랜드 로고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로고를 만들었으니 다음은 ‘테일즈 오브’ 시리즈가 지닌 매력, 가치, 전통 등을 프로듀서 자신부터 정확히 파악해둘 필요가 있었다. 1995년 초대 ‘테일즈 오브 판타지아’ 이래 가정용 게임기로만 37개 이상의 작품이 출시됐다. 모바일 앱과 애니메이션도 나왔고 팬 이벤트, MD 전개도 나름 활발했다. 주로 일본 내수를 중심으로 팬덤이 형성되었는데, 게임 유저는 남성이 많고 이벤트 참가 및 MD 구매는 여성이 강세였다. 이들이 매번 세계관도 주인공도 달라지는 ‘테일즈 오브’ 시리즈를 계속 즐기는 이유, 그것은 ‘모든 것이 캐릭터의 매력을 통해 견인되고 그럼으로써 다시금 캐릭터의 매력이 더 깊어지는 한 쌍의 구조’. 요는 캐릭터 기반 JRPG라는 것이었다.
이제 ‘테일즈 오브’ 시리즈에 대해선 알았다. 그러면 시장 상황은 어떨까. 마침 그 즈음 세계적으로 JRPG가 갖는 위상에 변화가 찾아왔다. 2000~2010년까지 JRPG라는 시대착오적이란 비판을 받으며 몰락해갔다. 그러다 2010년대 후반부터 독자적인 매력을 자각한 작품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니어: 오토마타’와 ‘페르소나’가 대표적이었다. 그 흐름에 ‘테일즈 오브’도 올라타야 했다. 그러자면 전세계 동시 번역, 출시와 프로모션이 병행되지 않으면 곤란했다. 스토리텔링이 핵심인 JRPG 특성상 시간차가 발생하면 화제성이 떨어지고 스포일러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테일즈 오브 어라이즈’는 시리즈 최초로 11개 언어권에 동시 발매됐다.
‘테일즈 오브’ 시리즈 25주년 기념작이란 상징성, 전작의 세 배에 달하는 제작비, 후술한 신규 요서 및 개선 사항과 더불어 언어 지원의 확대는 그만한 성과로 이어졌다. ‘테일즈 오브 어라이즈’는 정식 발매와 함께 빠른 속도로 팔려 나갔으며 여러 시상식서 최고의 RPG로 꼽히기도 했다. 글로벌 론칭 2년차 출하 및 다운로드 270만 장은 무척이나 고무적인 수치였다. 해외 미디어들의 리뷰점수를 평균 낸 메타크리틱서 87점이란 고득점을 거뒀고 ‘현재 플레이할 수 있는 JRPG 중 최고’라거나 ‘올드 팬들에게도 장점이 단점을 훨씬 능가한다’는 극찬이 이어졌다.
물론 시장 변화와 마케팅 전략, 언어 지원만으로 게임이 이렇게까지 크게 성공할 순 없다. 가장 중요한 건 ‘테일즈 오브 어라이즈’ 자체의 게임성이 뛰어났다는 점이다. 당초 토미자와P가 신작을 통해 이루고자 한 목표는 크게 세 가지다. 앞으로의 10년을 생각하여 기존 코어 팬덤뿐 아니라 새로운 세대, 나아가 워낙 오래된 IP인 만큼 중년 복귀층까지 모두 포섭하는 게 첫째. 이를 위하여 ‘테일즈다움’이란 타성에 젖어 계속 만들어온 요소들을 전면 검토하고 분해 및 재구축하는 게 둘째. 그러한 과정에서 변화된 크리에이티브가 코어 팬덤에게 받아들여지도록 진지하고 성실히 커뮤니케이션하는 게 셋째. 이 가운데 어느 것 하나 빠져서는 안 되었다.
요는 다양한 도전과 변경을 축으로 ‘계승과 진화’를 한번 이뤄보자는 것. 물론 앞서 시리즈의 핵심 가치로 파악한 ‘캐릭터 기반의 JRPG’란 정체성은 유지해야 한다. 그러한 체험에 보다 진입하기 쉽고 매끄럽게 몰입감을 느낄 수 있도록 캐릭터, 그래픽, 스토리, 사운드, 배틀 시스템 등에 많은 부분을 뜯어고쳤다. 그 가운데 특히 주목 받은 건 역시 비주얼인데, 독자적으로 준비한 애트모스 셰이더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차세대기에 대응하고자 언리얼 엔진 4로 전환했지만 그것만으로는 ‘테일즈 오브’ 시리즈 특유의 따뜻한 수채화풍을 구현할 수 없었던 것. 그래서 공기와 빛을 통해 전해지는 분위기와 거리감에 신경을 쓰며 애트모스 셰이더를 제작했다.
처음 목표한 건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클로드 모네 같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배경과 인물을 모두 모네처럼 그렸더니 가장 중요한 캐릭터의 디테일이 죽어버렸다. 배경은 수채화풍으로 가되 이물은 좀 더 명확히 보이는, 예컨데 장-프랑수아 밀레 정도가 딱 알맞았다. 이와 함께 캐릭터 일러스트도 좀 더 사실적인 반향으로 선회하여 인체 비율을 키우고 디자인에 중후함을 더했다. 최초 공개 시 ‘이건 테일즈 오브가 아니야’라는 부정적 반응이 다수였으나, 그들도 직접 게임을 해보면 기존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반드시 이해해줄 거라 믿었다. 3D 컷신의 표현력을 높이고 스킷이나 컷인도 일러스트가 아니라 인게임 캐릭터가 등장하도록 바꿨다.
캐릭터가 커졌으니 보다 시원스러운 액션을 선보일 수 있게 됐다. ‘테일즈 오브’는 예로부터 액션 돋보이는 JRPG라는 평가를 받긴 했으나 스킬 발동 속도나 특정 게이지의 유무처럼 수치적인 부분을 신경 쓰는, 다분히 RPG적인 배틀 시스템이었다. 이걸 완전히 액션 게임에 준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리고자 적의 움직임을 보고 직관적으로 대응하는 배틀 시스템을 채택했다. ‘테일즈 오브 어라이즈’는 월드와이드를 추구하는 작품이므로 액션이 어필 포인트라면 반드시 제대로 해내야 했다. 이러한 기조는 필드까지 이어져 맵의 고저차를 활용한 다양한 액션이 추가됐다.
물론 쇄신이란 명분이 중요하다 해서 뭐든지 바꾸기만 했다간 올드 팬덤에게 배신감을 안겨줄 뿐이다. 그래서 ‘테일즈 오브’ 시리즈를 정서적으로 지지하고 받쳐주는 사쿠라바 모토이 작곡가의 음악을 풀 오케스트라로 녹음했다. 또한 ‘오프닝 애니메이션이 존재해야 테일즈다’라는 팬덤의 피드백을 적극 수용하여 서비스 차원의 비밀스러운 두 번째 오프닝을 제작하기도 했다. 스토리 측면에서도 이야기의 전제를 이해하고 몰입하기 쉽도록 안배했다. 작중 세계는 두 개의 별이 존재하며 주인공은 기억을 잃은 노예다. 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다섯 나라를 여행한다. 이 정도만 알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대신 이야기 속에서 새로운 수수께끼를 제시하는 식으로 몰입감을 유지한다. 덕분에 여느 JRPG보다 엔딩까지 클리어율이 굉장히 높았다.
여기까지 열심히 만들었으니 이제 다시금 마케팅의 영역이다. 과거에는 매체 인터뷰나 유저 간담회를 통해 애써 사정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도 모두에게 잘 전달되지 않았다. 다행히 요즘은 유튜브라는 아주 강력한 프로모션, 커뮤니케이션 툴이 등장하여 비용 대비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게 됐다. 그래서 토미자와P는 모든 유저가 납득해줄 때까지 일대일로 설명한다는 수준의 열의를 담아 세세한 내용을 전부 유튜브 영상으로 업로드했다. 게임 관련 정보에 그치지 않고 Q&A에다 인터넷 밈적인 영상까지 섞어서 약 5개월간 40개 이상을 배포했다. ‘테일즈 오브’ 팬덤에게 있어서 그는 굴러들어온 돌에 불과했기에 그만큼 진정성을 보일 필요가 있었다.
정리하자면 고객의 니즈를 확실히 포착하고, 그에 맞춰 컨셉을 개발하고, ‘테일즈 오브’ 같은 오래된 브랜드는 가치와 매력을 충분히 분석하고 분해하여 재구축한다. 여기에 번역, QA, 마케팅 전략이 더해져야 월드와이드로의 전개가 가능해진다. 이 부분은 회사 단위의 체제 구축이 필수적이라며, 그는 이 자리를 빌어서 반다이남코의 열렬한 지원에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프로듀서인 본인을 포함하여 개발진 모두가 끝까지 흔들리지 않도록 컨셉을 잘 설계하는 게 핵심이다. 브랜드의 변화에는 명과 암이 공존한다. 그간 IP에 지지와 응원을 보내준 올드 팬덤에 대한 충분한 양해와 설득이 필수적이다. 그래야 모두 함께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테일즈 오브 어라이즈’가 큰 성공을 거두고 많은 사랑을 받으며 DLC를 원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컨셉 설계 시 레퍼런스로 삼았던 ‘니어: 오토마나’나 ‘페르소나 5’의 경우, 본편이 출시되고 몇 년이 지나서도 계속해서 판매고가 상승했다. ‘테일즈 오브 어라이즈’ 역시 그러한 대열에 합류하길 바라며 다소 늦은 시점이나마 DLC ‘비욘드 더 던’을 준비했다. 못다한 쌍세계의 이야기를 마저 전하고자 스토리텔링에 특화한 DLC다. 애니메이션으로 비유하자면 극장판 같은 느낌. 즐겨보던 TVA가 극장판이 개봉했는데, 그 완성도가 높으면 그 또한 추억이 되지 않나. 알펜 일행의 삶이 게임 엔딩과 함께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이어진다는 의미를 담았다.
월드와이드는 비단 ‘테일즈 오브’만이 아니라 모든 JRPG의 당면 과제다. 시장의 퀄리티 니즈가 급등하는 상황에서 그러려면 조금 드라이한 이야기지만 매출이 받쳐줘야 한다. 그걸 위한 마케팅 전략과 게임 개발의 노력은 앞서 쭉 설명한 바와 같다. 이건 마치 개발진과 프로듀서의 2인3각 경주다. 또한 일본 내수용이든 전세계를 거냥하든 JRPG는 JRPG다. 잘 하던 걸 놔두고 갑자기 다른 제품을 만들 순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규모로 따지자면 꼭 AAA급이 아니어도 좋다. AA나 A부터 시작하여 나름의 컨셉으로 승부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JRPG가 원래 보유한 저력이 있기 때문이다. ‘니어: 오토마타’나 ‘페르소나 5’가 그러했듯 ‘테일즈 오브’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일본 게임 프로듀서들이 해내야 할 역할이라 토미자와 P는 역설했다. 그러한 바람을 담아 J라는 단어에 실어, 그는 JJJ급 게임을 만드는 게 목표라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다음은 강연 종료 후 토미자와 유스케 프로듀서와 청중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 기존의 가치를 유지하며 새로움 추구하기가 쉽지 않게 들린다
: 맞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장수 시리즈라면 그 나름의 사랑받는 포인트가 있을 터다. 그걸 제대로 살리는 게 중요하다. 간단히 몇 가지 추가하거나 바꾼다고 그만한 평가로 이어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무언가 ‘플러스 알파’식의 아이디어는 크리에이터라면 누구든 낼 수 있지만 그것이 정말 팬덤이 원하는 바가 맞는지 냉정히 판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크리에이터의 욕심 탓에 신작 개발이 유저들의 바람과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기도 한다. 사실 꽤 빈번한 경우다. 너무 불행한 일 아닌가. 우리는 천재가 아니기에 마케팅 기법도 공부하고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시도하고 또 시도할 수밖에 없다.
● 그 유저의 바람이라는 게 본래 IP가 지닌 정체성과 상충되면 어쩌나
: 특히 RPG는 굉장히 다양한 요소가 하나로 결합된 장르이므로 유저에 따라 좋아하는 바가 제각기 다르다. 표면적으로는 말이다. 우리가 앙케이트를 돌려보면 누구는 ‘테일즈 오브’의 액션을 선호하고 또다른 유저는 캐릭터가 매력적이라고 한다. 답변은 다르지만 결국 다들 같은 작품을 좋아하는 거다. 그래서 이 게임의 컨셉을 보다 높은 차원으로 분석해야 한다. 가령 ‘테일즈 오브’는 최종적으로 캐릭터의 매력이 중요하다는 가설을 세웠다. 액션이 좋다지만, 아무런 개성도 없는 캐릭터 여섯 명이 싸워도 괜찮나? 하면 전혀 아닐 터다. 즉 액션을 선호한다는 답변도 계속 파고들다 보면 결국 캐릭터로 이어진다. 다른 요소도 마찬가지다. 표면적인 반응이 제각기 다르더라도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찾아내고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나도 이러한 컨셉 설계에만 거의 1년을 매달렸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