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보다 어렵고 마법보다 쉬운, ‘레전드 오브 룬테라’ 체험
그리고 저도 체험기를 준비했습니다. 다만, 이번 체험기에서는 게임의 시스템이나 룰을 상세하게 설명해드리기 보다는 이는 간단하게 정리하고,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는 플레이어로서의 감상, 그리고 다른 카드 배틀 게임과의 비교 등을 전달해드리고자 합니다. 상세한 게임 정보는 저희 다른 기사 및 플레이 영상을 참고하시길 권장드립니다.
첫 감상 – 충분히 복잡하지만, 난해하지는 않은
‘레전드 오브 룬테라’ 는 요즘 추세에 따라 지형이 없이 마나가 라운드마다 생성되는 방식이며, 또 한 라운드 내에서 양자가 한수씩 주고받는 인터렉티브 턴을 활용하는게 가장 큰 시스템의 골조입니다.
6개 지역이 각 테마를 대표하며, 최대 2개의 지역을 섞어서 덱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크게 챔피언, 유닛, 마법으로 구분되는데 그 안에도 사실 다양한 분류와 특수룰이 있습니다. 이 지역 간의 특색이 아주 명확하고, 상성관계도 강한 편입니다.
그리고 각 덱의 기본이 되는 챔피언 카드들은 각자 자신만의 특수 룰 외에도 레벨업 조건이 있어서, 이 조건을 충족하면 레벨업을 하고 더 강력해집니다. 이 조건들은 매우 다양해서, 적을 공격만 해도 달성되거나, 적 네서스 체력이 10 이하가 되거나, 적을 기술로 6회 타격하거나 등 챔피언의 특성을 잘 살린 각기 다른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챔피언을 중심으로 시너지를 채워나가는 식으로 덱이 구성 됩니다. 물론 챔피언과 전혀 상관없이 덱의 테마 자체로 시너지를 구성할 수도 있습니다. 카드는 40장, 넥서스 체력은 20이기에 한판의 길이가 15분을 넘어가지 않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정말 빠르게는 3라운드 내에도 게임이 끝날 수도 있습니다.
각 지역이 덱의 테마가 되는데, 이들 지역은 각각 유명한 다른 카드 배틀 게임들의 팩션을 생각나게 하는게 많습니다. 일단 보드 컨트롤에 최적화 되어 있어서 벌써부터 많은 이들의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아이오니아는 ‘매직 더 개더링’ 의 청을, 정직하게 강한 데마시아는 백을 떠올리게 하죠.
마법 카드에도 여러 종류가 있어서, 신속, 즉발, 집중이 각 턴마다 대처 가능한 선이 다르고, 발동 시점도 다릅니다. 또 인터렉티브 턴이기 때문에 한턴 씩 주고 받는 것이 룰이라 상대가 빠르게 행동해버리면 자기 또한 대처하기 위해서 빠르게 행동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방어 턴에서 유닛을 내리는데 주저하고 천천히 하고 있으면, 유닛을 내리기도 전에 상대가 공격을 시도해서 맞아야만 하는 경우도 생기죠.
무엇보다 특징적인 것은 이미 우리가 10년간 ‘리그 오브 레전드’ 를 플레이하면서 익숙한 여러가지 요소나 테마들, 특히 챔피언들의 기믹이 ‘리그 오브 레전드’ 와 매우 밀접하여 상당히 친숙하다는 겁니다. 다리우스는 적 넥서스 체력이 반절이 되면 레벨업을 하고, 압도 특성을 달고 있어서 적이 막아내도 넥서스에 데미지를 줍니다. 제드는 그림자 분신을 써서 공격턴에 훨씬 매서운 공격을 퍼부을 수 있고, 애니비아는 죽었다가 알에서 부활하는게 레벨업 조건입니다.
이런 게임의 특성을 모두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이런 일련의 시스템, 요소들은 한가지 명확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복합적이고 복잡하다는 것이죠. 으레 이런 직접적인 룰에 기반한 게임들을 한 플레이어라면 생각하는 ‘이 카드에 이 카드를 얹으면 이런 시너지가 가능할까?’ 라고 생각하는 부분들은 대부분 실제로 이루어지고, 매우 극적인 효과를 냅니다. 이런 시너지나 콤보의 한계가 거의 없고 이를 극대화하는 것이 게임의 핵심입니다. 이를테면 데마시아의 챔피언 피오라는 정말 말 그대로 적 유닛을 4번 처치하고 살아남으면 즉시 게임을 터트려버립니다. 이건 룰을 읽어봐도 에이 설마 그러겠어? 하다가 직접 당하거나 써봐야 깨닫게 되죠.
때문에 이 게임은 막연히 쉽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여기서 ‘쉽다’ 라는 말의 뜻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봐야겠죠. 만약 쉽다는 것이 ‘이해도가 낮고 크게 고민하지 않아도 게임을 할 수 있다’ 라고 하면 ‘레전드 오브 룬테라’ 는 그런 쉬움에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보다 직관적으로 익히고 일정 이상의 실력을 발휘하는 것이 수월하다’ 라고 한다면, 그런 쉬움에는 해당됩니다. 때문에 가끔씩 와 이게 돼? 싶은 것을 맞기도 하고, 내가 그렇게 상대를 때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 카타르시스가 옵니다.
‘리그 오브 룬테라’ 는 간단한 게임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런 최소한의 복잡도를 유지하면서, 그외 다른 게임을 너무 어렵거나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들을 최대한 철저히 깎아내고자 하는 노력이 보이는 게임입니다. 넥서스의 체력도 낮고, 덱의 카드 수도 낮으며, 카드 이펙트도 시원시원 합니다. 게임의 최대 시간도 상당히 억제되어 있고, 룰이 적혀있는 텍스트도 기존의 게임들보다 훨씬 짧고 직관적이죠. 어느정도 어렵긴 하지만 난해하지는 않아요. 물론 지금 밸런스에 문제가 많긴 하지만(아이오니아/녹서스 야스오 덱 만나는거 지겹습니다) 아직은 체험판이니 나아질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저는 이 게임이 어떤 게임을 표절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총 쏜다고 다 둠의 표절작이 아니듯이, 카드를 사용해 배틀을 펼치지만, 지향점도 기존의 게임들과 다르고, 실제 결과물도 결이 다릅니다. 분명 각 요소를 차용한 부분은 있겠지만, 그 총합은 충분히 유니크하고, 자기만의 매력을 가지고 있어요.
’하스스톤’ 과 ‘매직 더 개더링’ 사이의 기준점 같은 게임
하스스톤은 카드 배틀 장르에서 큰 업적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카드 게임이라는 상당히 매니악한 장르를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올리고 그 어느 게임보다 대중적이고 저변이 넓은 플레이어 풀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전까지 TCG 든 CCG 든 카드 게임은 매니악한 장르 중 하나로 유명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직관성의 부족이었습니다. 카드 게임은 실질적으로 오프라인에서의 게이밍을 큰 변화없이 디지털화 시킨 것이었고, 때문에 여전히 게임의 룰은 글자로 쓰여진 그대로 게임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비슷하게 오프라인 게이밍에서 비디오 게이밍으로 이식된 장르인 RPG 의 경우, 스토리를 구성하는 텍스트들은 여전히 그 형태대로 게임에 들어가지만, 게임을 구성하는 수많은 룰들은 수식이나 이미지 등 다른 방식으로 구현되어 플레이어들이 보다 접하기 쉽게 내장되었습니다.
하지만 카드 배틀은 오프라인 게임의 형태가 상당히 오롯하게 남아있는 비디오 게임이고, 때문에 이런 다양한 룰을 직접 읽고 숙지하지 않으면 플레이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일정 주기마다 추가되는 수많은 카드들은 그만큼 또 읽고 익히고 알아야 하는 숙제들을 늘려나갔고, 이 모든게 캐주얼 게이머, 혹은 신규 플레이어들이 접근하기 어렵도록 하는 원인이었죠.
그리고 하스스톤의 공은 바로 그런 다양한 진입장벽을 최대한 해소하는데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매우 유명한 IP 를 기반으로 플레이어들의 거부감을 없애고, 인터렉티브 턴을 최대한 억제하고 일방적인 공격과 방어로 만들어 턴을 직관적으로 바꾸고, 지형 자원을 없애고, 특수 룰이나 효과 또한 엄격한 코스트 범위 내에서 작동하고, 야생전 도입으로 카드 풀을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했죠. 이 모든게 호평받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하스스톤의 방향은 ‘훨씬 직관적이고 쉬운 게임’ 을 만드는데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적중했고, 역사상 가장 많은 플레이어 풀을 가진 대중적인 카드 게임이 되었죠.
때문에 이제 카드 배틀이라는 장르는 ‘이 장르도 이만큼 대중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때문에 수많은 시도들이 있어왔고, 이 장르의 시초인 ‘매직 더 개더링’ 과 가장 유명하고 또 가장 캐주얼한 ‘하스스톤’ 사이의 영역에서 다양한 시도를 해왔습니다.
‘레전드 오브 룬테라’ 가 ‘하스스톤’ 에게 영향을 받은게 있다면 저는 바로 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게임 내적인 부분이 아니라 게임 외적인 부분들 말이죠. 카드 배틀이기 때문에 베꼈다, 라는 관점은 너무 나이브하고 안일하죠. 그런 관점이라면 모든 카드 게임은 ‘매직 더 개더링’ 의 아류입니다. 저는 그보다는, ‘레전드 오브 룬테라’ 는 그런 카드 배틀의 사업적 성공 가능성을 확인했고, 또 얼마든지 새롭게 개척할 영역이 많은 장르임을 간파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레전드 오브 룬테라’ 는 간단히 말하면 ‘하스스톤’ 보다 복잡하고, ‘매직 더 개더링’ 보다 직관적입니다. IP 파워는 현존 온라인 게임 중에서 최상급이고, 그만큼 넒은 플레이어들이 처음 게임을 하는 장벽 자체는 매우 낮습니다. 하지만 플레이를 익히는 데에는 좀더 복잡한 룰들을 익힐 필요가 있죠.
‘하스스톤’ 은 유명한 덱 복사해 넣고 코스트 따라서 1234 만 눌러도 일정 승률이 보장되는 극 캐주얼 게임이고, 그만한 접근성을 따라가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게임 자체의 플레이어 저변이 ‘하스스톤’ 의 전성기처럼 극히 넓을거라고 생각되지는 않아요. 오히려 ‘매직 더 개더링’ 을 훨씬 간편하게 만든 타입에 가깝고, 그래서 저는 그 두 게임 사이에서 뭔가 아쉬움을 느끼는 플레이어층을 광범위하게 포용할 수 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실 이런 시도들은 꽤 있었지만, 그런 기존의 게임들과 다른 부분은 바로 ‘리그 오브 레전드’ 라는 IP 의 파워로 인한 저변이죠.
‘하스스톤’을 하면서도 좀더 전략적이고 고민할게 많은 카드 배틀을 원하는 이들이 있을 것이고, ‘매직 더 개더링’ 의 모르면 맞아야지 식의 직관성에 질려버린 이들에게는 분명히 매력적입니다. 그리고 저 또한 그런 플레이어 중 하나라, 저에게는 매우 매력적인 게임입니다.
물론, 이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역으로 양쪽 다 이도 저도 아닌 게임이 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매직 더 개더링’ 보다 전략적 깊이는 낮으면서, ‘하스스톤’ 보다 접근성이 낮은 게임이 되기 때문이죠. 결과적으로 이는 플레이어의 취향, 그리고 대중적인 선호도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취향을 타는 게임이고, 그렇다면 그 취향이 과연 대중적이고 대세인지, 아니면 마이너한지에 따라 평가가 갈리게 마련이니까요. 그래서 이 게임이 모든 카드 배틀 게임을 누르고 1인자가 되기는 어렵겠지만, 확고한 자기 영역은 꽤 넓게 가질 것 같습니다.
소과금에 최적화된 비즈니스 모델
과금 요소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어떤 게임을 미리 해보고 평가할 때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서는 크게 고려하지 않는 편인데, 하지만 카드 배틀은 그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매우 중요한 장르이기 때문입니다.
체험판 계정에서는 4개 등급별로 20장씩 일정량의 만능 카드가 지급되어 있었으며, 이 카드들은 해당 등급의 어떤 카드로든 변환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만능 카드들은 유료 결제가 가능한데, 대충 암산으로 환산해보면 챔피언 카드는 1장당 1,200원 정도, 서사급은 1장당 400원, 희귀급은 1장당 60~70원, 일반급은 20원 정도씩의 가격이었습니다. 하나의 덱을 짜는데 챔피언 카드가 최대 6장, 서사급이 5장 내외, 희귀급이 10장 내외, 나머지가 다 일반급으로 채워지는걸 고려하면 덱 1세트를 구성하는데 1만원 내외의 비용이 듭니다.
그리고 이는 완전히 덱을 바닥부터 구성한다는 조건이고, 챔피언 카드를 포함해서 카드들을 성장 진행도에 따라서 얻을 수 있고, 또 이런 비싼 카드들은 모아 놓은 재화로 제작할 수 있기 때문에 실제로 들어가는 비용은 그보다 낮을거라고 생각됩니다. 진행도에 따라서 랜덤 카드팩을 뜯게 되지만, 기본적으로 확정된 비용만을 들여서 게임을 할 수 있는 셈입니다.
사실 저는 랜덤 카드팩을 통해 거대한 이윤을 벌어들였던 ‘하스스톤’ 의 선례를 생각해서, 오히려 너무 수익성이 낮은 비즈니스 모델을 도입한다면 게임이 추후에 어그러질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레전드 오브 룬테라’의 방식은 괜찮은 것 같습니다. ‘매직 더 개더링’ 같은 오프라인 게임을 했던 입장에서는 더더욱 말이죠. 물론 이 비즈니스 모델은 추후 변경될 수도 있을 겁니다.
결론 – 양대 산맥의 틈새를 공략하는 게임
결론적으로 볼 때, ‘레전드 오브 룬테라’ 는 아예 게임을 플레이하는 진입 문턱이 없는 게임은 아닙니다. 일정량의 허들이 있죠. 플레이 면에서도, 과금 면에서도요. 하지만 저는 그 문턱이 정말 최소한도로 억제되어 있다고 생각하고, 또 그만큼 문턱을 넘은 후에 일정 수준의 성취감, 만족감을 얻기까지 과정이 매우 적절한 속도로 짜여져 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충분한 수준의 복잡성, 깊이 때문에 e스포츠 면에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습니다. e스포츠가 흥행하는데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필요하겠지만, 하나 중요한 것은 ‘실력을 겨룰 수 있는 게임’ 일 것입니다. 솔직히 저는 지금 ‘하스스톤’ 의 e스포츠가 과연 공정한 실력 싸움인지 의문을 가지고 있는 쪽이기 때문에, 그보다는 훨씬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리그 오브 레전드’ 라는 IP 가 가지는 브랜드 파워가 대단히 강력하기 때문에, e스포츠 활성화에 필수적인 대중적인 저변, 플레이어층을 확보하는데에서도 매우 용이하다고 생각합니다. 종합적으로, 이 게임은 지금 유행하는 카드 배틀 게임들과 더불어서 새로운 대중적 카드 게임의 기준선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모든 카드 배틀 게임을 재패하는 게임은 아니지만, 그런 다양한 트렌드의 가장 중심선에 있는 게임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죠.
플레이 테스트를 하면서 첫날 새벽, 간단히 한판만 이기고 자자고 켰다가 상대에게 무참히 썰린 후에 ‘내가 왜 졌지?’ 하는 고민을 하면서 덱에 이 카드 넣고 저 카드 빼고 하며 덱 빌딩을 계속 고민하고, 그걸 플레이 테스트를 해보고 다시 또 수정하고… 이런 과정을 거치다보니 어느새 아침이 되어있더군요. 하지만 저는 그런 카드 배틀 게임의 즐거움을 정말 오랜만에 느껴서 매우 행복했습니다. 하루 빨리 출시하기를 기다리겠습니다.
| 이명규 기자 sawual@ruliweb.com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