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스타] 느린 템포 그리고 줄어든 전략성, 영웅전설 : 가가브 트릴로지
지금은 오랜 시간이 지나 고전 게임의 반열에 들어선 가가브 트릴로지는 국내 개발사인 파우 게임즈를 통해 모바일 버전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고 있다. 파우 게임즈는 모바일에 맞춰서 비주얼을 개선하고 시스템 일부를 손보는 한편, 더빙을 통해서 모바일판 ‘영웅전설 가가브 트릴로지'를 제공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를 두고 오랜 팬들의 입장에서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추억 속에 있던 작품이 모바일이라는 조작의 한계 / 기기의 한계를 가진 형태로 다시금 자리하는 것에 대한 걱정과 같았기 때문이다.
최초 발표 이후 시간이 지난 현재. 부산에서 진행되는 지스타 2023에서 영웅전설 가가브 트릴로지의 실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왔다. 이번에 시연이 이루어진 ‘영웅전설 가가브 트릴로지'는 좋은 의미로 보자면 과거의 그것을 현대에 나름대로 변형하여 옮긴 형태다. 반대로 나쁘게 보자면 과거의 템포를 큰 변화 없이 그대로 가져온 무언가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 시연 버전의 구성 - 스토리 / 모험 / 보스
지스타 현장에 마련된 영웅전설의 빌드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우선 스토리 모드는 주홍물방울 초반부의 이야기를 모바일 플랫폼으로 구현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시연에서는 어빈과 아이멜이 카테드랄에 있을 때의 시점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카테드랄이 습격을 받게 되면서 아이멜과 이별을 하게 되는 장면에서 끝이 나는 분량이다.
극초반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스토리 모드에서는 기본적인 간단한 조작을 알려주는 한편, 이를 플레이를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딘가로 이동하는 것에 그치고 있으며, 대략적인 전투 튜토리얼을 겸하기도 한다. 원작 기준으로 그리 길지는 않은 분량이지만, 여기서 몇 가지 퍼즐 측면 요소를 더하기도 했다.
예를 들면, 카테드랄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선보이는 것들이 될 수 있다. 도주하는 과정에서 적들이 어빈의 뒤를 쫓는데, 이를 피해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과정이 대표적이다. 이외에도 적들의 감지 범위를 벗어나 은밀하게 이동하여 목적지에 도착하거나. 무너지는 바닥을 피해서 올바른 길로 이동하는 등의 플레이가 더해졌다.
다만, 가상 패드의 조작이 영 매끄럽지 못하다는 점이 문제처럼 다가온다. 상하좌우 이동이 껄끄럽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대각선 이동이 특히나 기묘하게 작동한다. 가상 패드의 크기가 작은 것이 문제일 수도 있고 기자의 손이 크기 때문에 오작동이 일어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좌우로 이동을 하려다가도 대각선 이동을 해서 실패한다거나. 원치 않는 방향으로 이동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대각선 이동 시의 모션도 어색한 것처럼 표현이 되기에, 비주얼적인 기묘함도 더해진다.
스테이지 진행 과정에서 플레이어는 매 스테이지마다 새로운 캐릭터를 획득하며, 최대 다섯 명으로 파티를 구성하는 경험을 해볼 수 있다. 원작의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스킬을 고려해서 파티를 구성하는 한편,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기 위한 고민을 조금은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보스 모드'의 경우 모든 캐릭터 풀을 갖춘 상태에서 시연자들이 파티를 구성하고. 오크툼과 전투를 벌이는 경험을 제공한다. 신영웅전설IV 주홍물방울에서 최종 보스였던 만큼, 강력한 패턴을 보여주며, 일정 패턴을 공격으로 차단하지 못하면 패턴마다 하나의 캐릭터가 사망하게 되는 구성이다.
모험 모드에서 보여준 일반 적들과 달리, 패턴 하나하나가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플레이어는 오크툼이 보여주는 패턴을 고려해서 제한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피해를 입히는 것이 해당 콘텐츠의 목적이 된다. 최종적으로 입힌 피해가 순위권에 들어갈 때에는 전체 시연자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 전투 전반 - 자동 공격에 스킬 사용만 플레이어가 하는 형태
가가브 트릴로지의 전투는 원작 영웅전설 시리즈가 그러했듯이, 캐릭터들이 자동적으로 공격하는 시스템에 바탕을 두고 있다. 따라서 캐릭터를 직접 조작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보다는 파티를 어떻게 구성하고 스킬을 언제 사용할 것인지가 조금 더 비중이 있게 다뤄진다.
파티 구성은 총 다섯 명의 캐릭터를 편성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어떤 캐릭터를 넣느냐에 따라서 시너지가 부여되기도 한다. 또한, 파티는 세 개의 열에 캐릭터를 배치할 수 있으므로 어디에 캐릭터를 배치하느냐에 따라서 초기 위치가 달라지는 구성이다.
다만, 완성도 높은 반자동 전투를 보여준 신영웅전설IV 주홍물방울을 기준으로 삼으면 곤란한 경험을 하게될 것 같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이 캐릭터 당 하나로 고정되어 있고 플레이어의 전략이나 조작이 반영될 여지를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고민을 더해서 전투를 나아지게 이끌어간다는 측면보다는 미리 설정해둔 파티 구성을 바라보는 플레이에 귀결되기 마련이다.
더불어 소모품들은 한 전투에서 사용 횟수 제한이 걸려있다. 재고가 쌓여있는 것과는 별개로, 체력 회복 물약은 전투에서 세 번. 이런 식으로 횟수가 정해져 있는 구조다. 따라서 언제 회복약을 사용할 것인지가 플레이어의 의지가 개입할 수 있는 요소처럼 다뤄지게 된다.
그렇기에 결과적으로 팀 구성이라는 측면은 힐이나 버프를 얼마나 용이하게 가져갈 수 있는가. 그리고 오크툼의 패턴을 끊어내기 위한 조건. ‘정해진 시간 동안 피해량을 주는 것'을 해당 파티 조합에서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 어차피 끝이 있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기에, 유의미한 결과로 이어진다는 느낌을 받기도 어렵다.
모바일 가가브 트릴로지의 전투는 넓은 화면에서 작은 캐릭터들이 알아서 움직이는데다, 스킬을 사용할 때 좌측 상단에 잠깐 일러스트가 지나가거나 캐릭터의 애니메이션이 재생되는 정도에 그친다. 플레이어의 시선을 집중시키기 어려운 형태이며, 조금은 당혹스러울 정도의 저속 템포가 플레이어의 눈에 비춰질 뿐이다.
환경에 따른 변수도 삭제되었고. 전투에서 플레이어의 전략이나 의지가 개입할 여지도 줄어들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는데, 그렇기에 가가브 트릴로지의 전투는 캐릭터들이 꼬물거리며 알아서 전투하고. 시기가 돌아오면 스킬만을 누르는. 이러한 간단하고 단조로운 전투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전투 측면에서는 기대 이하 혹은 원작의 지향점을 따라가지 못한 결과물이라는 시선을 던질 수 있을 것 같다.
육성 측면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등급인 별이 존재하는 상태다. 그리고 모험 모드와 보스 모드에서 어빈 / 마일의 테두리 변화를 보면, 육성 과정을 통해 등급을 올리는 기능도 선보일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보스 모드에서 시리즈 구분 없이 캐릭터들을 배치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시나리오와 상관이 없는 콘텐츠에서는 플레이어가 육성한 캐릭터들을 활용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 짐작해볼 수 있다.
● 팬인 것은 인지했다. 하지만 그 다음은…?
아루온이 서비스했던 신영웅전설은 이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패키지로 정식발매되었던 신영웅전설 3와 영웅전설 5 바다의 함가도 이제 고전 게임의 영역에 들어선 시기다. 팔콤의 전성기를 열었고 이제는 추억의 한 켠에 자리하고 있는 작품들을 모바일 환경에서 다시금 마주할 수 있다는 점에는 충분히 긍정적인 시선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개발진이 가가브 트릴로지의 팬이었음은 분명하다. 원작의 이야기를 오롯이 반영하는 한편, 여기에 현 시대에 맞는 일러스트와 음성 더빙. 일부 단조로울 수 있는 플레이 구간에도 자신들이 생각하는 나름의 게임 플레이를 더하고자 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비주얼적인 측면과 플레이 구성을 생각하면, 명작으로 회자되는 세 작품을 존중하고자 한 의지는 분명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원작의 전투 방식을 가져오면서도 현 시점에서 느릿느릿하게 다가올 수 있는 전투 플레이로 귀결되는 점. 그리고 가상 패드의 한계인지 몰라도 미묘한 조작감과 이로 인해서 발생하는 조작 미스의 스트레스 유발. 전투 필드의 단조로운 구성과 전략 요소를 최소화한 전투 시스템 전반이 아쉬움을 남긴다. 캐릭터 구성이나 육성 측면에서도 우려 섞인 시선을 던질 수 있을 것 같지만, 이는 시연 빌드보다는 이후 있을 테스트나 정식 서비스 시점에서 확인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부디 이번 시연의 인상이 바뀔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필권 기자 mustang@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