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 '동투' 향방 주목…민주노총, ILO 제소 등 투쟁 계속
화물연대가 9일 조합원 투표 결과에 따라 파업을 끝내면서 '강대강'으로 치닫던 노동계와 정부 사이 갈등은 가까스로 고비를 넘겼다.
정부가 사상 첫 업무개시명령까지 동원하면서 압박 수위를 높여가는 가운데 파업 장기화로 산업계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여론이 악화한 점, 또 이에 부담을 느낀 다른 대형 노조들이 일찌감치 파업 대오에서 이탈해 투쟁 동력이 떨어진 점 등이 결국 파업 철회라는 결정으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주 넘게 이어진 파업에 따른 피해가 작지 않은데다 정부가 책임을 묻겠다고 밝혀 후폭풍이 이어질 전망이다. 노동계는 특히 이번 파업 과정에서 정부가 겉으로는 '법과 원칙'을 내세웠다고 주장하지만 실상은 '노조 탄압', '노조 혐오'에 가까운 행태를 보였다면서 어떠한 형태로든 투쟁을 이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또 주52시간제 및 임금체계 개편,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등 윤석열 정부의 노동개혁 핵심 과제들은 노동계와 야당 협조 없이는 이루기 쉽지 않다는 점에서 이번 선례가 향후 노동개혁 과제 추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 노동계 '동투' 향방은…민주노총, ILO 제소 등 투쟁 계속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는 9일 오전 9시부터 오전 11시까지 총파업 철회 여부를 두고 전체 조합원 투표를 했다.
그 결과 '파업 종료 및 현장 복귀'가 가결됐다. 화물연대는 입장문에서 "지역본부별로 해단식을 진행하고 현장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로써 지난달 24일 0시 시작된 화물연대 조합원들의 운송 거부는 15일 만에 종료됐다.
이미 정부의 업무개시명령 등으로 파업 대오에 균열이 생겨 적지 않은 조합원이 업무에 복귀한 상태였지만, 이번 공식 종료로 화물 운송이 급속히 정상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동계 투쟁 수위도 한층 낮아질 전망이다. 화물연대 파업은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동투'(冬鬪·겨울 투쟁)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앞서 국민 생활에 큰 불편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됐던 서울교통공사 노조나 전국철도노조 파업은 조기에 끝나거나 돌입 전 철회됐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이날 연합뉴스 통화에서 "경제 여건이 어려운 가운데 늦었지만, 이제라도 화물연대 파업이 종료된 것은 바람직하다"며 "정부가 원칙에 맞게 대응한 결과"라고 높이 평가했다.
민주노총은 전날 기자간담회에서 화물연대와 연대해 대대적인 투쟁에 나섰겠다고 밝힌 바 있다. 대표적으로 오는 14일 제2차 총파업·총력투쟁대회를 개최하겠다고 예고했다.
양경수 위원장은 "2차 총파업이 예정돼있지만 가능하면 그 전에 문제가 해결됐으면 한다"고 말한 만큼 화물연대의 이날 결정으로 민주노총의 총파업 계획도 일부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눈앞의 고비는 넘겼지만, 앞으로 노정 관계에 험로가 예상된다는 지적도 있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일몰 폐지와 품목 확대 등을 요구하다가 정부·여당이 제시한 '안전운임제 3년 연장'을 뒤늦게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취했다.
하지만 대통령실과 정부가 이것이 '파업 돌입 전 약속'이라는 이유로 사실상 무효화를 선언하면서 노동계가 반발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다음주 중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자유위원회에 정부의 추가 업무개시명령, 공정위 조사 등 사안에 대해 정식 제소할 계획이다.
◇ 노란봉투법·중대재해법 등 놓고도 노동계-정부·여당 입장 첨예
앞으로 노동계 투쟁 방향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 중인 노동 개혁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 개혁을 연금·교육 개혁과 함께 '3대 개혁' 과제로 꼽는다. "독일에서 사민당이 노동 개혁을 하다가 정권을 17년 놓쳤다. 그러나 독일 경제와 역사에 매우 의미있는 개혁을 완수했다"고 말할 만큼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고용노동부는 윤 대통령 지시를 받아 주 52시간제를 비롯한 근로시간 제도와 호봉제로 대표되는 임금체계를 개편하기 위한 노동시장 개혁 방안 초안을 마련했다.
전문가로 구성된 미래노동시장 연구회는 정부에 제안할 구체적인 정책을 당장 오는 13일 공개한다. 앞서 연구회가 예고 형식으로 발표한 내용에 대해 노동계는 '개악'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른바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등을 놓고도 노동계와 정부·여당의 입장이 첨예하기 엇갈린다.
일각에서는 문재인 정부와도 대립한 민주노총이 윤석열 정부에 협조하는 것은 애초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현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한국노총도 민주노총과 연결고리가 있고,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과 민주노총 사이에 유대관계가 형성돼 있다는 점은 정부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이날 오전 민주노총을 찾아 양경수 위원장과 노동 현안을 상의하기도 했다.
노동 개혁 과제 중에는 국회 입법 사안이 적지 않다.
정부·여당과 노동계 사이 갈등이 심화할 경우 노동 개혁을 달성하기 위한 국회 논의 과정에서 169석에 달하는 민주당 협조를 얻어내기 어려울 수 있다.
다만, 민주노총 투쟁에 대한 여론이 마냥 우호적이지는 않다는 점은 정부에 긍정적이다.
한국갤럽이 지난 6∼8일 전국 성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주장이 관철될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는 21%, '우선 업무 복귀 후 협상해야 한다'는 71%로 집계됐다. 응답자의 8%는 의견을 유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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