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LITY IN GAMES
좀 거창하게 출발해보자면, 막연한 미래세계에 대한 동경 내지 상상력의 부산물을 소재로 삼았던 초기의 비디오 게임 시장을 생각해 볼 때, 확실히 요즘 쏟아져 나오는 게임들은 그 다양성에서 과거와 견줄 수 없는 발전을 이뤄왔다고 보여집니다. 저 머나먼 우주를 향한 끝없는 모험의 일대기나, 중세시대 기사들의 활약상을 그린 스토리에만 더 이상 묶여있진 않는다는 뜻이죠. 물론 Graphic / Sound 적인 측면에서의 연출력 강화나 그 밖의 제작능력 및, 기타 제작환경의 개선 등등 비디오콘솔 게임 시장을 한단계 끌어올린 요소가 어디 한두 개 뿐이겠습니까마는, 적어도 비디오 게임 시장의 활성화에 힘을 불어넣고 다양한 제작사들이 각자 나름의 독자적인 Originality를 내건 타이틀 제작에 혼신의 힘을 다할 수 있게 된 배경은, 바로 \'비디오 게임 소재의 다양화\' 가 그간 꾸준히 시도되어 왔으며, 나름의 우수한 퀄리티를 보유하여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하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즉 \'새로운 장르 / 스타일의 게임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수요와 \'새로운 게임 시장 개척 및 그 구체화에 대한 제작능력\' 을 보유한 제작사의 공급이 한데 어우러져 현재의 다양한 장르를 탄생시킬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게임 소재 발굴\' 에 제작사측에서 적지 않은 투자를 하는 것은 그런의미에서 어쩌면 당연한 결과라고 보여집니다. 문제는 이 화살을 바로 현재로 돌렸을 경우인데, 보다 사실적이고, 보다 현실에 근접해있으며, 보다 디테일할수록 단순한 \'비디오 게임\' 의 영역을 넘어 현실세계의 플레이어에게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폭력성이나 비윤리적 성향을 떠나, \'게임\' 의 영역에만 머무르기 쉬운 대다수의 비디오 게임과는 다르게 \'영향력\' 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는 그 소재가 보다 \'현실\' 에 가까웠을 때 그 정도가 더욱 강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잔인하고 다이나믹한 표현이 넘치는 게임이 그렇지 않은 게임보다 더 눈에 잘 띄기 때문에 [GTA] 시리즈 같은 게임이 종종 도마위에 오르는 것이겠지만, \'현실\' 을 소재로 다루었다는 점에서 플레이어에게 친밀감과 수긍을 얻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폭력성과는 거리가 먼 [SIMS]와 같은 시리즈의 파장도 결코 무시할 수준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범죄 액션 게임?
액션이라는 장르의 특성 상 폭력과 그로테스크한 연출이 어느 정도 필수불가결한 요소이긴 할 것입니다만,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문제는 이 배경이 바로 \'현실세계\' 에 맞춰져 있을 때 좀 더 심각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 액션이 \'정의 사회 구현\' 이나 \'악의 무리 응징\' 과 같은 권선징악적 주제가 아닌 \'범죄행위\' 에 목적을 두고 있다면 더더욱 심각하겠죠. 비디오 게임이라는 문화가 기타 다른 문화처럼 \'주어진 가상세계에 대한 대리만족\' 을 그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용납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도 생각되지만, 누구나 익히 알고 있을 법한 도시와 경치를 배경으로 그대로 옮겨놓고, 거리를 걷는 시민이나 도로를 달리는 차와 같이 \'현실세계\' 와 커다란 차이없는 세상을 구현해놓은 상태에서 플레이어의 의지를 반영한 범죄행위를 보여준다는 것은 확실히 \'게임 소재의 다양화\' 에 대한 100% \'긍정적인\' 성과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어쨌든 누구에게나 잘 알려진 [GTA] 시리즈나 [TRUE CRIME]에서 보여주었던 연출은 이제 \'범죄 액션\' 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하나의 장르로서의 높은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끊임없는 논란속에서도 이러한 스타일의 게임들은 불티나게 잘 팔려나가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도 \'소재의 다양화\' 라는 명목 아래 유사 스타일의 게임이 개발되고 있으니 말이죠. 본 리뷰에서는 그러한 부류의 \'범죄 액션 게임\' 중 과격한 연출 및 욕설이 상당수 그대로 반영되어 최근 국내에 정식발매된 [The Getaway]를 간략히 소개함과 동시에 \'범죄 액션\' 이라는 새로운 스타일의 액션 게임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The Getaway]
\'TEAM SOHO\' 라는 그다지 널리 알려지진 않은 제작진에서 만들어져 출시된 [The Getaway]는, 런던을 배경으로 과거 조직폭력의 길을 걸었던 \'마크 해몬드\' 와 특수기동대 소속 \'프랭크 카터\' 를 주인공으로 하는 진행형 액션 게임의 형태를 취하고 있습니다. 스토리 설정 상 이 두 명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한 범죄행위를 저지르게 되며, 그 과정에서 런던 범죄계의 대부 \'찰리 졸슨\' 을 쓰러뜨리려는 공동의 목표를 갖게 되는 것이 게임의 기본적인 줄거리입니다.
한글화
이 게임의 가장 큰 특징으로 주저없이 뽑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한글화\' 일 것입니다. 게임의 특성 상 [The Getaway]에는 런던 뒷골목 주먹들이 쓰는 걸쭉한 욕설이 난무하며 특히 배경이 런던인만큼 cockney(런던 토박이 풍의 영어)발음과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것을 나름대로 한국인의 정서에 맞는 욕으로 바꿔 그대로 게임에 삽입했으며, 그러한 로컬라이징이 무사히 심의를 마쳐 정식발매되었다는 점은 확실히 좋고 나쁘다를 떠나서 이례적인 일이라고 보여집니다. 이미 [The Getaway]를 플레이해보신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정식발매판 [The Getaway]의 욕설 표현 정도는 상당히 직설적이고 과격하여 여지껏 발매된 그 어떤 게임 못지 않은 \'갱스터\' 다운 분위기를 잘 살려내고 있는데, 이러한 로컬라이징이야 말로 원작의 분위기를 잃지 않고 플레이어에게 [The Getaway]의 다소 과격한 이미지를 심어주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문제는 번역에 있어서 일부 대사를 놓치거나 지나치게 \'의역\' 에 의존한 부분이 눈에 띈다는 점인데, 단어 하나하나의 정확한 번역에 못지 않게 대사와 대사간의 연결 및 전체적인 문맥의 자연스러움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크게 거슬릴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되네요.
드넓은 London
[The Getaway]의 또다른 특징으로는 \'세밀한 London의 묘사\' 를 꼽을 수 있습니다. 하나의 실제 도시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The Getaway]에서 배경으로 등장하는 London의 각 거리는 질서정연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그 공간감 또한 상당한 수준입니다. 물론 시점의 변화가 그리 자유스럽지 못하며 실제로 거리를 돌아다니다보면 기대만큼 취할 수 있는 액션이 다양한 것은 아닙니다만, 적어도 London이라는 드넓은 도시를 게임속에 이만큼 공간감있게 표현한 것은 [The Getaway]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시스템
기본적인 진행은 매번 주어진 미션의 클리어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미션에 들어가기 전 어떤 방식으로 미션을 수행해야 하는지 대략적인 설명이 제공되며, 플레이어는 주어진 상황에서 해당 목표를 달성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미션 목적은 \'총격전 승리\' 나 \'잠입\', \'특수 아이템 습득\' 등으로 이뤄지며, 목표지점까지의 이동수단으로 \'차\' 가 제공됩니다.
[The Getaway]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지는 두 시스템인 \'차량운전\' 과 \'총격전\' 에 대해 잠시 더 언급해보자면, 먼저 \'차량운전\' 의 경우 미니맵을 통한 목표지점까지의 이동이 아닌 \'좌우 방향 표시등\' 에 의지하여 이동해야 하는 다소 독특한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습니다(사실 이렇게까지 잘 표현한 배경에 왜 미니맵을 넣지 않았는지 개인적으로는 수긍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오직 방향 표시등에만 의지한 움직임은 특히 경찰차나 다른 조직원들에게 쫒기는 상황일 때는 더욱 불편한 조작감을 느끼게 하기도 하였습니다만, 거리를 지나다니는 다양한 차종의 묘사나 사실성을 부여한 차량의 내구도(충돌 횟수가 잦아질수록 차체의 손상정도가 강화되며 최악의 경우 폭발합니다) 등은 [The Getaway]의 현실성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방향 표시등에 의존한 길 찾기가 은근히 신경쓰이게 한다
한편 \'총격전\' 의 경우도 일장일단의 면을 보여주고 있는데, 사실감 넘치는 총격전 상황에 대한 훌륭한 묘사와는 어울리지 않게 \'벽\' 에 기대고 일정 시간이 경과하면 체력이 정상수치까지 올라간다는 점이나, 현재 사용중인 총기의 \'잔탄수\' 가 표시되지 않는다는 점은 이 게임을 처음 접하는 유저들에겐 다소 의아한 부분일 수도 있을 듯 싶습니다. 물론 익숙해지면 플레이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시스템이긴 합니다만, [The Getaway]에서 \'총격전\' 이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하며, 이 게임이 전체적으로 추구하는 \'사실감\' 을 생각해본다면 확실히 아쉬운 부분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밖의 특징들
사실 [The Getaway]의 조작감이나 시점은 그다지 좋은 편은 못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가장 두드러지는 단점으로 지적받을 수 있는 \'시점\' 을 보면, 3D배경임에도 불구하고 카메라의 움직임이 그다지 자연스럽지 못하며, 캐릭터가 움직일 때마다 자동적으로 카메라가 캐릭터의 등 뒤를 비추는 \'자동 3인칭 고점\' 시점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플레이어는 약간의 움직임에도 그에 따라 자동적으로 바뀌는 배경의 움직임으로 인한 부자연스러운 화면의 스크롤을 경험하게 되며, 쾌적한 플레이에 상당한 마이너스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보여집니다.
적 캐릭터들의 A.I 또한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일 듯 싶습니다. 미션 수행을 위한 본격적인 총격전에서는 큰 문제가 보이지 않습니다만, 차를 몰고 다니다 종종 부딪히게 되는 경찰이나 다른 조직 패거리들의 A.I 는 가끔 상식 이하의 행동을 보여주어 유감스러웠습니다. 예컨데, 주인공 차량을 추격하다 거리가 가까워지거나 차량을 정지시키고 차에서 내리면 경찰 역시 차에서 내려서 사격을 시작하는데, 이 상태에서 다시 차량에 탑승해도 경찰은 계속 제자리 사격만 일삼고 있습니다. 이러한 특성은, 일단 차량에 탑승하고 나면 왠만한 적의 총격은 어느 정도 견딜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적을 차 바깥으로 끌어낸 다음 차량으로 받아 버리기\' 식의 플레이를 조장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추격받는다\' 는 상황에 대한 압박감이나 긴장감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점은 확실히 수정되어야 할 문제점이라고 보여집니다.
전반적인 플레이 소감
\'쾌적하지 못한 인터페이스에서 쾌적한 게임성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는 것이 제 지론인만큼, [The Getaway]는 사실 개인적으로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눈에 띄는 게임이었습니다. 물론 자연스러운 스토리 진행이나 그에 걸맞은 미션 등장, 과격하다고 평가받아도 부족함이 없을 법한 한글화 등은 참신하였지만, 자신있게 모두에게 추천할 만한 타이틀로 내세우기에는 많이 부족한 점이 있지 않았나 싶네요. 특히 배경에 대한 공간감 묘사에 대비되는 미흡한 조작감이나 뭔가 하나씩 아쉬움을 남겼던 진행 방식 등은 [The Getaway]의 차기 작품에서는 꼭 수정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당신이 바라던 은밀한 자유
비디오 게임이 기타 문화 컨텐츠에 비해 차별화되는 가장 큰 특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감상자의 의지를 반영할 수 있는\' 요소가 넘쳐난다는 점일 것입니다. 음악도, 영화도, 순수미술도, 소설과 같은 각종 다양한 양식의 문학도 모두 \'제작자\' 의 의지나 사고를 반영할 뿐, 그 안에 감상자의 의견이나 의지를 찾아보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런 특징이 어떻게 보면 상당히 \'일방적인\' 감정 전달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는 반면, 비디오 게임은 감상자로 하여금 자신의 의지를 갖고 능동적으로 참여할 것을 플레이어에게 요구한다는 점에서 다른 문화영역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색다른 현실감\' 을 맛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지난번 [Silent Hill3] 리뷰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바로 이런 측면 때문에 일부 유저들에겐 \'Horror movie\' 보다 \'Horror game\' 이 더욱 공포감을 안겨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범죄 액션 게임\' 이라는 명칭이 과연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바로 이러한 비디오 게임의 영향력 덕분에 [The Getaway]와 같은 \'범죄 액션 게임\' 에는 보다 강도 높은 제제와 세간의 관심이 끊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유가 과격하긴 합니다만, 똑같은 생명체를 죽이는 행위더라도 몇천년뒤의 존재 여부조차 확실치 않은 미지의 생명체를 죽이는 것과, 바로 옆집에 사는 이웃을 게임속 세상으로 끌어내어 죽이는 것은 현실감각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를 보여줄 테니까요.
솔직히 [The Getaway]의 완성도가 모방범죄 따위를 조장할 정도로 높다고는 생각치 않습니다만, 어쨌든 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스토리 설정 상 불가피한 상황이라고는 해도 옛 동료나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다니는 행위를 게임의 본 내용으로 집어넣었다는 점은, 확실히 주변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만 할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낮은 인지도 덕분인지 놀랄 만한 과격한 표현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은 큰 이슈가 되지 못하고는 있지만, [The Getaway]와 같은 게임의 제작 및 한국 비디오 게임 시장 내에서의 정식발매는 순수한 \'게임의 다양성\' 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환영받을 만한 일이라고 보여집니다. 물론, 이러한 스타일의 게임을 일시적인 흥미 차원에서만 바라보느냐, 하나의 장르로 자리매김시키느냐는 유저들의 선택이겠지만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