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스타] K-MMO의 비주얼적 지평을 넓히다, 레전드 오브 이미르
간판 IP ‘미르’부터 대한민국 게임대상 우수상에 빛나는 ‘나이트 크로우’까지, 무협과 중세 판타지를 넘나들며 숱한 흥행작을 배출한 위메이드의 다음 목적지는 북유럽이다. 지난해 초 언리얼 엔진 5 프리뷰 당시 미려한 그래픽으로 화제를 모았던 ‘레전드 오브 이미르: 아트 비전 빌드’가 약 1년 10개월만에 실제 플레이 가능한 게임으로서 ‘지스타 2023’를 찾은 것. 과연 테크 데모서 추구하던 아트 비전을 얼마만치 제대로 구현했을까 무척 관심이 동했다.
평소 신화나 전설에 관심이 많거나 관련 영화, 게임 등을 즐겼다면 아마도 이미르라는 명칭이 익숙할 터다.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최초의 요툰(Jotun, 거인)으로서 그 육체와 피를 통해 우리 세계가 탄생했다고 일컬어지는 존재다. 그러니 북유럽 신화를 소재로 MMORPG를 구축하기에 ‘레전드 오브 이미르’라는 제목은 꽤나 잘 맞아떨어진다. 솔직히 ‘미르의 전설’에다 Y를 하나 붙였을 땐 너무 장난스럽지 않나 싶었는데 결과적으로 훌륭한 작명이 된 셈이다.
아무래도 국내서 북유럽 신화 기반의 MMORPG라면 카카오게임즈가 서비스하는 ‘오딘: 발할라 라이징’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신화에 라이선스가 존재하는 건 아니지만 토르와 같은 신명, 지명, 문화적 요소가 겹칠 테니 자연스레 비교, 경쟁 상대가 될 터다. 다만 론칭한지 수년이 흐른 ‘오딘’과 이제 막 지스타서 15~20분 분량의 시연 빌드가 마련된 ‘레전드 오브 이미르’를 곧장 비교하는 건 의미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기껏해야 비주얼을 견주는 정도다.
일단 겉모습만 봤을 때는 ‘레전드 오브 이미르’가 좀 더 북유럽스럽다. 말이 좀 이상했는데, 그만큼 고증에 입각한 캐릭터 외형이나 의상을 충실히 준비했다는 뜻이다. 흔히 북유럽 신화에 대해 묘사할 때 9세기 바이킹 문화를 차용한다. 거친 풍채와 땋아서 늘어뜨린 수염, 원형 방패와 철제 장검, 쌍도끼, 구불거리는 용 무늬 등이 대표적이다. 반면 ‘오딘’은 실력파 원화가인 김범 AD가 자신의 개성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문화적 고증은 뒤로 제쳐둔 편이다.
‘레전드 오브 이미르’는 용어에 있어서도 당대의 무력 집단인 욤스비킹이나 음유시인인 스칼드 등 보다 전문적인 개념을 차용했다. 워리어, 로그, 소서리스, 프리스트처럼 중세 판타지서 익숙한 용어를 그대로 가져온 ‘오딘’과 차별화된 지점이다. 현재 개발 중인 플레이어블 캐릭터는 맹렬한 전사인 버서커, 아군을 지원하는 스칼드, 신화적 마법인 세이드를 사용하는 볼바, 쌍창을 휘두르는 워로드까지 넷이며 금번 시연에선 버서커와 스칼드만 선택 가능했다.
시연 분량은 상술했듯 15~20분 내외로, 지스타 출품을 위해 별도로 제작한 빌드인지 굉장히 압축된 전개를 보여준다. 요약하자면 웁살라라는 마을에 거인족이 쳐들어오고, 갑자기 날아든 뇌신 토르가 거인족 군단장 흐룽그니르와 드잡이질하는 사이, 주인공 즉 유저가 에테르를 모아오자, 왕녀 브륀힐드가 의식을 통해 라그나로크의 도래를 막는다. 끝으로 일종의 이벤트전으로서 토르와 직접 싸워볼 수 있다. 상대가 상대인지라 적당히 얻어맞다 끝나지만 말이다.
언리얼 엔진 5 테크 데모를 냈던 게임답게 그래픽은 흠잡을 데 없다. PC, 모바일 크로스 플랫폼을 지원하며 각기 특화된 스탠다드, 라이트 UI를 선택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모바일이 메인 플랫폼인 경우에 PC 클라이언트까지 동일한 UI로 변통하는 수가 적잖은데, 본작의 스탠다드 UI는 대형 디스플레이 환경에 제대로 맞춰졌다. 캐릭터 어깨 부근으로 시점을 바짝 당기는 다이나믹 뷰 역시 흔히들 미사여구로 붙이는 ‘콘솔 게임스러운’ 인상을 강화한다.
‘레전드 오브 이미르’의 또다른 특징은 수동 조작에 대한 확실한 메리트다. 스탠다드 UI 기준으로 각기 다른 범위와 효과의 액티브 스킬을 여덟 개나 세팅할 수 있다. 보스급 몬스터의 동작이 큰 패턴은 전부 후판정이라 적절히 회피하는 것도 가능하다. 탈것에 올랐을 때 질주 기능이나 점프 두 번으로 발동하는 체공, 세 번으로 단거리를 비행하는 리프타 역시 게임을 직접 플레이할 이유가 되어준다. 물론 유저 편의를 위한 자동 이동 및 사냥 기능은 존재한다.
버서커는 적에게 도약하며 거리를 좁히고 도끼를 부메랑처럼 날리거나 함성을 지르며 전투력을 고양한다. 스칼드는 악기 연주와 함께 금빛 섬광을 내뿜어 자신을 지키고 적을 몰아낸다. 다만 시연 빌드에선 스킬 툴팁을 확인할 수 없어 구체적인 효과는 불명이다. 그리고 상대 HP가 거의 다 떨어졌을 때 검붉은 필터가 깔리며 곧장 처형해버리는 피니시 기능이 있는데, 오직 버서커만 발동하는 듯했다. 만약 특정 직업에 한정된 연출이라면 아쉬울 따름이다.
토르 이벤트전은 현란한 카메라워크와 묠니르가 휘둘러지는 궤적에 따른 QTE(Quick Time Event)로 전개된다. 보통 모바일 게임 시연서 ‘콘솔 게임스럽’고 싶을 때 QTE 연출로 도배하는 경향이 있는데, 정작 진짜 콘솔 쪽은 QTE가 사장되는 추세라는 게 꽤 묘하다. 아마도 컷신 와중에 직접 조작한다는 느낌을 주기 알맞아서 그런 듯하다. 어쨌든 연신 번개가 내리꽂히는 가운데 뇌신과 일격을 주고받는 장면은 금번 시연의 하이라이트로 부족함이 없었다.
중장기적인 캐릭터 육성과 다종다양한 콘텐츠를 통한 재화 수급, 나아가 수많은 유저가 어우러지며 만들어가는 각본 없는 드라마까지. MMORPG는 그 어떤 장르보다도 라이프 사이클이 길고 게임 플레이의 층위가 두터운 장르다. 따라서 1시간도 채 안 되는 지스타 시연이 MMORPG로서 ‘레전드 오브 이미르’를 전망할 충분한 단서라 보긴 어렵다. 그럼에도 현재 국내서 서비스되는 그 어떤 MMORPG보다도 비주얼적으로 진일보한 작품이라고는 평할 수 있겠다.
물론 어디까지나 지스타 시연에서 도드라진 하이엔드 그래픽이 정식 론칭까지 유지됐을 때 이야기다. 넓은 유저풀을 확보하는 게 중요한 MMORPG 특성상 최적화 과정에서 얼마간 비주얼 하락은 감수할 때가 많다. 거기다 언리얼 엔진 5가 현존 최강의 상용 엔진이긴 해도 모바일에서의 안정성은 여전히 미지수다. ‘레전드 오브 이미르’가 이러한 몇몇 우려를 떨어낼 수만 있다면 ‘미르’와 ‘나이트 크로우’를 뛰어넘어 위메이드의 새로운 플래그쉽이 될 것이다.
김영훈 기자 grazzy@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