츄부 지방을 다녀온 지 만 한 달이 된 시점에 다시 일본에 갈 기회가 생겼다.
본래 할머니를 모시고 온천 여행이라도 다녀오려고 모은 여행자금이었는데, 극구 사양하시기에 일정을 바꾸게 되며 돈이 남게 됐다.
마침 도쿄에서 유학중인 W가 이번에 대학에 합격했기에 도쿄를 뜰 예정이라 해서, 그 전에 한 번 도쿄를 찾아가 보기로 한다.
도쿄로 가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크게 나리타와 하네다로 나뉜다.
많은 LCC들이 포진해있는 나리타는 접근성은 좋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항공권을 구할 수 있고,
대형 항공사들이 들어가는 하네다의 경우 상대적으로 항공권은 비싸지만 도쿄와의 접근성이 좋다.
시기만 잘 맞추면 저가 항공사에서 5~6 만원만 더 주고도 김포에서 하네다로 가는 표를 구할 수 있다.
나리타에서 도쿄로 이동하는 비용과 시간이 많많지 않음을 감안하면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전에 경험했던 전일본공수의 서비스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기에, 이번 도쿄 행도 ANA를 이용한다.
이 안주가 조금 그리웠는데, 드디어 다시 만났다. 사실 ANA의 기내 서비스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건 이코노미 클래스임에도 제공되는 위스키, 와인과 바로 이 안주다.
제발 밖에서도 팔았으면 좋겠는데...
어쩐지 하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했더니 탑승교가 없는 게이트에 도착한 모양이다.
비자도 필요 없고, 입국 심사에 걸릴 만 한 것도 없기에 1시간도 안 걸려 공항을 빠져나왔다.
도쿄 시내까지는 보통 철도를 이용하는데, 짐도 있고 귀찮기도 해서 신주쿠 역까지 가는 리무진 버스를 탄다.
시내의 길은 막히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제시간에 신주쿠에 도착할 수 있었다.
초행에겐 너무도 복잡한 신주쿠 역, 코인락커를 찾으려고 역을 한 두 바퀴는 돈 것 같다. 짐을 맡기고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교엔’을 향한다.
신주쿠 역을 빠져나와 요요기 방향으로 걷는 중 멀리 ‘NTT 도코모 요요기 빌딩’이 눈에 띈다.
도쿄에서 네 번째로 높은 빌딩이다. 하지만 높이에 비해 실제 사무 공간은 작은데, 거의 절반은 안이 빈 외벽만 갖춘 형태이기 때문이다.
위쪽에 보이는 시계는 2002년에 10주년을 기념해 설치됐는데, 시침과 분침이 모두 1톤에 이를 정도로 아주 큰 시계이다.
이 시계 덕분에 ‘도코모 타워’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시계탑인 적도 있었다.
원래는 기내식도 먹었으니 크게 배가 안 고플 거라 생각해서 바로 ‘교엔’에 가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출출하다.
이왕 요요기 역으로 왔으니 근처의 식당가에서 간단하게 끼니를 때워야겠다. 어디 괜찮은 가게가 있으려나?
요요기 역 근처에 있는 ‘스시 타카세’. 합리적인 가격에 맛있는 스시를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이제 배도 찼으니 다시 ‘교엔’으로 가보자.
여행의 첫 일정부터 꼬였다. 평범한 공원이라 생각해서 휴일이 있는 줄 상상도 못했는데 한 번 조사하고 올 걸 그랬나보다.
서둘러 다른 날 일정을 보며 지금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찾아본다.
일정표를 보니 근처의 절들을 가기로 한 일정들이 보여 이걸 미리 하기로 한다.
제일 처음 도착한 곳은 ‘사사데라’ 이다.
절의 이름은 경내에 우거진 대나무에서 유래했다는데, 입구의 불상 아래에 심어져있는 약간의 대나무를 빼면 그다지 눈에 띄진 않는다.
본존의 석가여래상은 겐로쿠 시대의 작품이라는데, 문이 굳게 닫혀있어서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대신 밖에 서있는 불상이라도 담아가야지.
사원 뒤편에는 많은 무덤이 있었는데 에도시대에 활약한 국학자들과 그 자손들의 무덤이 자리한다고 한다.
그 뿐 아니라 근처의 ‘게이오기쥬쿠 의대’에서 세운 공양탑이나 초대 요코즈나인 ‘아카시 시가노스케’를 기념하는 비석 등 작은 절임에도 꽤 역사가 깊음이 느껴진다.
다음 목적지인 ‘히운지’로 가다 길을 잃고 헤매던 중 옆으로 작은 신사가 보인다.
지도상으로 ‘히운지’ 가는 길에 신사가 하나 있었는데 다행히 맞게 온 것 같다.
‘히운지’는 일본에 널리 퍼져있는 천태종이 아닌 일련종에 소속된 절이다.
절의 건물도 1757년 약사당을 이축한 건물로, 안에는 오이와이나리와 관련된 유물이 몇 점 있다.
지금도 가부키의 안전과 성공을 기원하는 배우와 관계자들이 참배한다고 한다.
절의 한 쪽에는 작은 도서관과 담요가 있다. 잠깐 앉아서 책이나 한 권 읽고 갈까?
오이와이나리와 관련된 절이라 그런 건지 여우상이 서있다.
일본에서 이나리를 모신 신사가 없는 곳은 거의 없기에 꽤 많은 조각을 봤지만, 이렇게 이빨이 잘 서있는 조각은 처음 보는 것 같다.
‘히운지’에서 ‘사이넨지’로 가는 길에는 ‘스가 신사’가 있다.
들어가자마자 고양이가 한 마리 보인다. 사진이라도 찍어달라는 것 마냥 앞에서 교태를 부리기에 카메라를 꺼냈더니, 이내 관심 없다는 둥 저 멀리 사라진다.
‘스가 신사’도 동네에선 제법 큰 신사이지만, 최근 이 신사가 유명해진 건 다름 아닌 ‘너의 이름은’의 흥행 덕분이다.
바로 옆에 있는 이 계단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의 배경임이 알려진 뒤 많은 사람들이 찾는 모양이다.
월요일 낮인데도 사람들이 여럿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벽 한 쪽에는 소란을 피우지 말아달라고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로 안내가 붙어있다.
하긴, 지금도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 웃고 떠드는데 한창때는 어땠을지 대강 예상이 간다.
‘사이넨지’는 둘러본 절들 중에선 가장 큰 절이었지만, 마침 역광이라 사진을 남기기가 힘들다.
일단 대강 사진을 찍은 뒤 절 뒤편으로 가니 한국에도 꽤나 이름이 알려진 ‘핫토리 한조’의 무덤이 보인다.
절 뒤편에는 꽤나 많은 묘들이 있다. 절과 묘에서 풍기는 모습이 저 멀리 보이는 신주쿠의 모습과 대비되어 묘한 느낌을 준다.
이곳엔 에도 막부를 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장남인 ‘도쿠가와 노부야스’의 공양탑이 있다.
아버지의 명으로 21세에 할복한 비운의 주인공인 그는 ‘오다 노부나가’의 사위이기도 했는데,
아내인 ‘도쿠히메’가 그의 비행을 ‘오다 노부나가’에게 고변하면서 분노를 사고 이어 아버지에게 할복을 명령 받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 가이샤쿠를 해 줄 인물로 ‘핫토리 마사나리’ 즉 ‘핫토리 한조’가 지명됐지만 주군에게 칼을 겨눌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한 일화가 전해진다.
여러모로 ‘핫토리’ 가문과 깊은 연이 있는 이곳은 지금도 그들의 보리사로 남아있다.
‘사이넨지’를 떠나 요쓰야 역으로 가던 중 ‘たいやき わかば’에 들렀다. 꽤 긴 줄을 무료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앞에 서있던 아저씨가 말을 걸어온다.
외국인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인데 마침 나도 심심했기에 짧은 일본어에 영어를 붙여가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아저씨의 말에 의하면 도쿄에 타이야끼가 맛있는 가게가 세 곳 있는데, 이곳이 그 중 하나고 자신의 생각대로라면 최고라고 한다.
말을 듣다보니 기대가 커진다. 식어도 맛있을 것 같은데, 넉넉히 사서 오늘 저녁에 W와 함께 먹어야겠다.
꽤 오래 걸었더니 제법 다리가 아프다. 다시 신주쿠 역으로 돌아가기 위해 요쓰야 역에서 전철을 탄다.
그러고 보니 이 역도 아마 ‘너의 이름은’에서 나왔었지?
열차를 타고 신주쿠 역에 도착했다. 여기서 다시 도영 지하철을 타고 하라주쿠로 향한다.
하라주쿠에 도착하니 길 양쪽으로 각종 명품 점포가 가득 들어차있다. 나도 지갑이나 하나 사볼까?
짧은 쇼핑을 즐기고 나니 배가 제법 고파온다. 원래는 간단히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고 가려고 들른 곳인데 나온 샌드위치의 크기가 생각한 것과는 너무 다르다.
배불리 먹고 야경이라도 담아볼까 싶어 나왔는데, 어디부터 찍어야 할지 막막하다.
주변은 화려하고, 사람들도 멋있는데 사진으로 담을 건 마땅치 않은, 그래 딱 명동의 느낌이다.
적당히 돌다가 W도 슬슬 만날 시간이 됐고, 다시 신주쿠로 돌아간다.
역에서 나와 ‘돈키호테’에 들러 필요한 생활용품을 몇 가지 산 뒤 밤거리를 걷는데 멀리 불빛이 화려한 골목이 눈에 띈다.
입구에 크게 써져있는 마을 이름을 읽으니 ‘은혼’이라는 만화에서 배경으로 등장하는 카부키초였다.
과연, 입구부터 떠들썩한 것이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왠지 안의 분위기가 상상이 간다.
한 외국인이 사진을 찍는 나를 보더니 저 멀리 있는 공룡 머리에서 조금 있으면 불꽃이 나온다고 알려준다.
상상한건 괴수 영화에 나오는 그런 모습이었는데, 어째 영 시시하다.
괴수의 울음소리도 스피커로 틀어주는데, 소리만 들으면 옆 건물 정도는 다 태워버릴 기세라 그런지 불꽃이 한 층 더 초라해 보인다.
후쿠오카에 면접을 보러간 W가 생각보다 늦어져서 다시 신주쿠 역 앞의 카페로 돌아왔다.
슬슬 여독도 풀고 싶은데, 언제쯤 돌아오려나? 도쿄에서의 첫 날이 서서히 끝나간다.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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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el
감사합니다 ^^. | 17.05.13 11:5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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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세로로 찍은 사진을 가로로 두 단계 잘라서 올리고 있습니다. 트리밍을 16:9로 하고 있어서요 ㅎㅎ, 극단적으로 종이 중심이 되는 사진은 3장을 쓰기도 합니다. ㅇ | 17.05.13 11:5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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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에 43만, 식비로 40만, 교통비로 5만, 기념품 및 입장료로 5만 정도 썼네요. 친구 집에서 묵었기에 숙박은 따로 들지 않았습니다. | 17.05.13 17:3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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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네다로 가다보면 국적기는 의외로 별 메리트가 없게 되죠. 저 또한 일본을 찾을 때, 지방 공항으로 가는게 아니면 전일본공수만 타게 되는 것 같습니다. | 17.05.14 15: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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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리타가 먼게 영 안끌리죠. 역시 공항은 도심하고 가까운게 최고입니다. | 17.05.15 20: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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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식 수준인가요 ㄷㄷ. 전 어차피 마일리지가 스얼이라 가능한 ANA를 이용합니다. JAL은 아직 한 번도 안 먹어봤는데, 차피 원월드라 가까이 할 일도 없을 듯 싶네요. | 17.05.15 20:2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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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ana가 기내식이 다른 항공사보다 튼실해서 그런지, 저거 먹다가 아시아나만 먹어도 영 기분이 별로에요 ㅎㅎ. | 17.05.15 23: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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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17.05.15 23:1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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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ㅎㅎ. 저도 그런데 맨날 송도 오가지만 가끔 사진가분들이 송도신도시 담은 사진들 보면 움찔하게 되더군요. | 17.05.16 00:06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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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 17.05.16 00: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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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콘의 D800과 신형 20mm, 구형 35mm 렌즈를 쓰고 있습니다. 최근은 24-120mm를 쓰고 있구요 ㅎㅎ. 저도 6월에 행선지는 다르지만 일본에 다녀올 예정인데, 좋은 여행 되시길 바랍니다. | 17.05.16 10: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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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ㅎㅎ. 저도 세로사진이 중간에 꼈을 때 생기는 좌우 여백이 싫어서 시도해봤는데 반응이 좋아서 기쁘네요. | 17.05.16 10:4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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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이 외항사 치고 비싼 것만 빼면 추천드립니다 ㅎㅎ | 17.05.16 16: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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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내식만 보면 완전 와~~ 하는데 역시 가격이... 사실 가급적 교통(항공)비는 싸게, 남는돈으로 쇼핑하자! 는 주의라서 ㅎㅎㅎ | 17.05.16 16: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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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진 다니면서 시비걸린 적은 없어서 ㅎㅎ;, 이래저래 고달픈 곳은 고달픈 모양이네요. | 17.05.16 23:1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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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안봄헛수고ㄴㄴ
맛있게 먹어도 탄수화물, 단백질은 g당 4.1kcal, 지방은 9.3kcal이고, 맛과 피폭량은 관계가 없습니다. | 17.05.17 00:4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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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아는 범위 안에서라면 도움 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 17.05.17 00:5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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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ㅎㅎ | 17.05.17 11:1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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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는 정말 부럽네요. ANA비즈니스가 아시아나에 비해 크게 비싸다 보니 아직 엄두를 못 내고 있습니다 ㅜ | 17.05.17 13: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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