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얼핏 보면 한국과 비슷한 부분이 많은데, 또 좀 깊게 들어가면 다른 부분이 한없이 많은 나라입니다.
거리도 가까운데다 구경 할 것이 많아서 수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일본, 그 중에서도 수도인 도쿄를 다녀온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봅니다.
때는 2008년.
'세계 불가사의 여행'을 이어가고는 싶지만 그러자니 가까운 곳의 목표물 (중국 만리장성, 캄보디아 앙코르와트)는 물론이고 나름 먼 곳의 목표 (인도 타지마할, 이집트 피라미드, 이스터 섬 모아이 석상) 까지도 돌아본지라 남아있는 선택지가 많지 않습니다.
유럽으로 가자니 보고 싶은 것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예산을 맞출 수가 없고, 중남미는 너무 멀고...
그래서 일단 가까운 일본을 구경하면서 배냥여행 스킬을 좀 쌓자는 결심을 합니다.
지금까지는 패키지 관광을 주로 했던지라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계획을 짜고 나 홀로 여행한다는 점에서 두근거리는 출발이었습니다.
나리타 공항에서 내려서 숙소에 도착할 때까지 그 짧은 시간동안 느낀 점이라면, 일본은 역시 초급 여행자가 경험 쌓기 좋은 곳이라는 것.
일단 선진국이라 치안 상태나 교통 인프라가 잘 되어있는데다가 한국인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한글 안내문도 여기저기 많습니다.
워낙 서울과 비슷한 분위기인지라 '내가 외국 여행 온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별 긴장감 없이 숙소에 도착.
인터넷에서 평이 좋고 저렴한 호텔을 예약했는데, 딱 문을 여는 순간 '내가 일본에 왔구나'를 실감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여행을 다니면서 이렇게 좁은 호텔방은 난생 처음 봤네요. 책상에서 의자를 꺼내 앉으려면 배에 힘 잔뜩 주고 몸을 끼워넣어야 하는 좁은 공간.
더 웃긴 건 그 좁은 공간에 냉장고와 TV, 전기 주전자 등 있을 건 다 있다는 점입니다. 어쩌면 이렇게 물건들이 많으니 상대적으로 더 좁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후진국 호텔들은 편의시설이 별로 없고 방은 넓은 경우가 많았는데 일본은 정반대입니다.
이럴 바엔 차라리 캡슐 호텔을 예약해 볼 걸 그랬나, 라고 생각하면서 일단 밖으로 나옵니다.
2008년 당시만 해도 스마트폰으로 지도를 찾아본다는 건 꿈도 못 꿀 일이었기에 (우리나라에서 아이폰이 판매되기도 전), 여행 책자와 지도를 열심히 챙겨오긴 했는데 그래도 처음 오는 동네라 길이 헷갈립니다.
그럴 때 큰 도움을 줬던 것이 바로 육교. H 모양이 아니라 무슨 나뭇가지마냥 여러갈래로 갈라지는 육교 덕에 지도상에서 위치를 확인하기가 수월합니다.
이게 일본 전체가 다 그런건지 숙소가 위치한 신주쿠 주변 지역만 이런 건지 모르겠네요.
아무리 한국에서 일찍 출발했다지만 입국 수속 거치고 공항에서 숙소까지 이동하다보면 첫째날은 절반 이상 지나가게 됩니다.
슬슬 저물기 시작하는 해를 보며 방문한 곳은 다카시마야 타임스퀘어.
커다란 시계탑도 아니고 시계 빌딩이 있는 이 곳은 백화점과 쇼핑센터가 가득한 번화가입니다.
백화점 쇼핑에는 별 관심도 없으면서 굳이 이 곳을 찾은 이유는 바로 도큐핸즈 때문입니다.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의 생활 용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다이소 비슷한 분위기인데 그보다 물건 종류가 훨씬 더 많고, 의외로 사람들 취향에 맞으면서도 싸구려 티가 나지 않는 상품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질구레하고 아기자기한 것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여기서 탈출하는데 최소 반나절은 걸린다고 하는 무서운 곳이죠.
원래는 부동산 회사였는데, '땅도 안팔리는데 우리가 상점 세워서 물건이나 팔자'고 만들었다는 게 재밌습니다.
유통망이고 뭐고 전혀 없던 부동산 회사다보니 직원들이 맨땅에서 시작해서 물품 리스트를 갖춰왔는데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걸 팔자" "소비자가 원할만한 것도 팔자"는 두 가지 신념에 충실하게 상품을 긁어모읍니다.
어찌 보면 물건 파는 사람이라면 당연하게 생각 할 일이지만, 보통 유통업체들은 기존의 유통망에 얽매여 자신들이 구하기 쉬운 상품, 돈 될만한 상품만 파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거든요.
이렇게 기본에 충실한 덕에 도큐핸즈는 다른 상점들에 비하면 월등한 가짓수의 상품들을 판매하게 됩니다.
주방용품에서 의약품까지 다양하게 구비해놓고 있다보니 여행 선물 사려는 사람들은 도큐핸즈에서 한 방에 다 구입하기도 한다더군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좋아할만한 물건은 없어도 남녀노소 각각에게 알맞은 물건들은 반드시 있습니다.
2층부터 8층까지 생활용품이 꽉꽉 들어차 있는데, 메이드복처럼 '이런 건 어디다 쓰나' 싶은 물건도 있는가 하면 '이건 꼭 사야해'라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물건도 많습니다.
특히 몇 년 간 남대문 시장을 뒤져도 못 구했던 스테인레스 칵테일핀이 쌓여있는 걸 봤을 때의 감격이란 이루 말할 수 없네요.
식품위생법상 아예 식품으로 등재가 되지 않아 국내에서는 구입도 못하는 아라잔 (은색 설탕구슬)도 쓸어 담고 커피 관련 용품도 한 가득 구입합니다.
아마 다른 사람들은 또 자기만의 영역에 꽂혀서 이렇게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쇼핑 삼매경에 빠지는 거겠지요.
도큐핸즈를 나오니 어느 새 저녁입니다.
카메라 삼각대가 부러지는 바람에 새로 하나 구입하러 요도바시 카메라에 잠시 들렸습니다.
이름은 요도바시 카메라지만 실제로는 종합 전자상가의 성격이 강합니다.
사방에서 판매원들이 계산기 두드리며 각종 쿠폰 할인가를 설명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환타 광고의 게키야스 선생(https://youtu.be/KtPx8n33_Lw)이 화면에서 튀어나온 거 아닌가 싶을 정도.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 도쿄도청에 도착했습니다.
지금까지 도쿄시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도쿄도였네요.
혹시 뉴욕주 뉴욕시처럼 도쿄시가 따로 있나 싶어서 봤더니 원래는 도쿄부에 도쿄시가 따로 있었는데 1943년에 합쳐지면서 도쿄도로 정착됩니다.
그래서 도쿄를 이루고 있는 23개의 구는 일본의 다른 구들과는 다르게 시의 하위 개념이 아니라 독립된 시장과 의회를 선출한다고 하네요.
거대한 도청 건물이 해가 저무는 풍경과 맞물리면서 왠지 으스스한 느낌입니다.
게다가 분위기와 장소가 맞물리면서 갑자기 '마계도시 신주쿠'라는 일본 애니메이션도 생각납니다.
지진이 나면서 신주쿠가 고립되는데, 여기에 유전자 조작 괴물들과 요괴들이 풀려나면서 일본 정부는 이 지역의 통치를 포기하고,
각종 마물과 범죄자들이 득실거리는 막장 도시가 되어버린 신주쿠를 배경으로 세계 정복을 꿈꾸는 악당과 세상을 구하려는 소년의 대결이 펼쳐지는 그런 내용이지요.
재밌는 건 한국어판에서는 신주쿠가 강남으로 번역되었는데, 낮에는 고층 건물들이 즐비한 현대적인 번화가가 밤에는 환락가로 변한다는 공통점이 있어서일까요.
신주쿠의 환락가로 유명한 가부키쵸나 강남의 밤을 가득 메꾸는 휘황찬란한 술집 간판들을 보면, 그리고 그 화려함 만큼이나 어둠이 짙은 뒷골목을 보면 마계를 떠올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거니 싶습니다.
하지만 도쿄도청 전망대에서 보는 야경은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시야를 가리는 산이 없는데다가 날씨가 좋아서인지 저 멀리 지평선까지 가득 채운 불빛이 보이는 게 마치 밤하늘의 별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정작 진짜 별들은 공해에 가려 안 보이지만요.
야경을 바라보며 전망대 바에서 칵테일을 한 잔 마십니다.
안되는 일본어로 "뭔가 특별한 칵테일이 있나요?" 물어보니 바텐더가 과일들을 주욱 보여주면서 "계절 과일 칵테일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런 거 말고, "뭔가 도쿄에 온 기념으로 마실만한 칵테일은 없을까요." 했더니 자신만만하게 맡겨달라고 하고는 내놓은 칵테일. 코스모폴리탄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체리블라썸 (벚꽃)도 한번 주문해 볼 걸 그랬네요.
알콜도 적당히 들어가고, 잠 잘 시간도 다가오는지라 숙소로 돌아옵니다.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이번 여행의 할 일 목록에 올라와 있는 "편의점 도시락 사먹기"를 합니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편의점 도시락이 판매되기 시작한 것이 2010년 부터인지라 이 때만해도 일본의 편의점 도시락은 나름 여행의 묘미를 즐길 수 있는 메뉴였지요.
딱 보기에 맛있어 보이는 4색 주먹밥을 골랐는데 만족스러운 경험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도쿄 여행의 첫째날은 종료. 빡빡한 다음날 여정을 소화시키기 위해 얼른 잠자리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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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다온지 거의 10년이 지난지라...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 17.03.09 09:4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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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12년전에 쇼핑 잘 했엇는데... 요새 일본 여행글에는 도큐핸즈가 안보이더라구요 | 17.03.09 09:4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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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저기 저 자리에 그대로 있습니다... ㅎㅎ | 17.03.09 09:5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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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 감사합니다 ^^ 도큐핸즈가면 살게 많더라구요. 올만에 일본 한번 가봐야겠네요 | 17.03.09 10:0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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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있고 도쿄에서는 가장 큰 규모가 신주쿠에 있죠 | 17.03.12 21:3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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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째 거주중인데 10년전 도쿄공기를 우째알죠...? | 17.03.13 02:2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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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원래 살려고 하는 곳에는 그전에 여러번 가보지 않나요 | 17.03.13 13:2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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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마수전선 바빌로니아 신성원탁영역 카멜롯 뭐 이런식으로 수식어가 앞에 붙다보니 제목이 뭘 말하는지는 아는데도 자연스레 '페그오?' 하고 들어왔... | 17.03.12 21: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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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판은 그냥 마계도시로 출시했습니다. 지역은 강남구로 더빙했구여.. http://mnews.joins.com/article/526553 | 17.03.13 14: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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