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는 그날 돌아와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교회의 다른 사람들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어도 보았지만 남해는 대답하길 거부했다.
듀얼에서 지며 잃은 것은 가이저와 자존심뿐이 아니었다. 그때부터 남해는 더 이상 정령이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도 더는 들리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실망해 모두 떠나버린 걸지도 모른다.
“아!!”
“뭐.”
“왜 그래?”
남해는 교회 문을 나서자마자 탄식했다. 허리에 덱 케이스가 없다.
이럴 때 가이저나 용연에게-
“아… 미안, 나 덱 케이스 두고왔어…”
“빨리 갔다 와!”
-라고 해봐야 둘 다 이젠 없다.
남해는 급하게 왔던 길을 달려 계단을 죽어라 올랐다. 낙랑과 금선이 한번 눈을 마주쳤다. 금선이 혀를 찼다.
“쟤가 왜 저런대. 안 하던 실수를 다 하고.”
등교 이후로도 여전히 남해는 뭔가 나사가 풀린 듯한 모습이었다.
하루종일 침울한 채로 기운이 없었고 무얼 하든 영 집중하지 못했다.
‘어둠의 듀얼을 하자.’
미아 누나는 왜 하필 자신을 상대로 했을까. 그냥 에너지가 많으니까? 그리고 가이저는 왜 자길 밀쳐내고 대신 먹혔을까. 듀얼이 끝나고 누나는 어디로 사라진 걸까. 무엇하나 알 수가 없었다.
가이저는 살아있을까? 살아있다면… 하지만 그럴 거 같진 않다…
경찰에 신고할까?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듀얼에 져서 제 카드의 영혼을 빼앗겼어요? 듣기만 해도 헛소리 같고 설득력도 없는 이야기다. 이런 걸 받아줄 리 없다.
고민한다고 해도 해결될 여지가 없고, 대화하고 싶어도 털어놓을 수가 없는 이야기다.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남해 쟤 왜 저러는 거 같냐?”
“응? 아냐 별일 아닐지도 몰라.”
“에이, 저새끼 별일 아니면 저런 표정 안나와.”
“어차피 교대표 탈락해도 점수 보니까 쟤가 LT유스 나가지 않겠냐. 교대표 걱정은 아니겠지.”
그러는 사이에도 시간은 흐르고 흐른다.
수업도 듣는 둥 마는 둥, 식사도 넋을 놓고 하면서도 어느새 하교시간이 가까워졌다.
서혜수 담임선생님의 전달사항과 프린트까지 받고, 반장의 인사도 끝나고, 오늘의 학교 일과가 모조리 끝났다. 하교를 위해 스윽 학교 계단을 내려가던 남해는 그때 그 장소에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지민과 눈이 마주쳤다.
“강남해, 듀얼이야!!”
지민이 목청껏 소릴 지르자, 주위 학생들의 시선이 그곳과 남해에 모였다. 그 사건의 생각으로 완전히 잊고 있었다.
오늘이 마지막 집계일. 여기서의 승패가 최종 진출자를 가리는 승부가 될 것이다. 여기서 진 사람에게는 아직 LT유스의 예선 진출권이 남아있지만 이기고서 바로 교대표의 본선에 합류하는 것과, 지고서 예선까지 뚫어야만 LT유스의 본선에 합류할 수 있는 건 시간, 체력, 그리고 정신적으로도 차이가 크다.
남해는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망설였다. 준오와 원형이 어서 다녀오라는 듯 눈치를 보냈다. 결국 남해의 발걸음이 그 방향으로 향했다.
“룰은 링크 스탠다드!”
남해의 패드에 그제야 [매칭 완료]라는 글씨가 떠올랐다. 이미 시작해버린 이상 더 생각할 필요가 없다.
남해는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세차게 흔들며 잡념을 떨쳐버리려 애썼다.
지민은 남해를 보며 위화감을 느꼈다. 평소의 남해와는 다르다. 가이저도… 보이지 않고.
띠링-! 지민의 D-패드에 [선공]이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잠시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 지민은 어느새 승부욕 가득한 눈으로 돌아와 덱에서 뽑혀나온 다섯 장의 카드를 뽑아들었다.
잠시 카드를 확인한 지민은 옅은 미소를 띤 채 패에서 자신만만하게 카드 하나를 뽑아들었다.
“먼저 [게네랄프로베] 발동이야!”
뒤이어 지민이 패에서 카드를 하나 더 냈다. 패드의 스크린에 [PENDULUM]이라는 글씨가 떠올랐다. 지이잉- 짧은 기타 리프 소리와 함께 몬스터 하나가 나타났다.
“패에서[사운드 워리어 기타스]를 펜듈럼 존에 세트! 그리고 기타스의 효과 발동! 패 한장을 버리고-”
“거기에 체인, [증식의 G]의 효과 발동이야.”
남해의 그림자 안에서 스스슥 무언가 움직이며 안광을 발했다. 지민의 패에는 저 카드를 견제할 수단이 없었다.
차라리 있는대로 달린 다음 남해의 대응을 볼까? 그런 생각도 들었지만… 역시 그건 아니지.
지민은 패에서 [사운드 워리어 피아노]를 버리고 덱에서 뽑힌 [사운드 워리어 디제이스]를 필드에 냈다.
“잭키, 등장! [사운드 워리어 디제이스]를 특수 소환!”
-“디, 디- 디이이이-!!”
-강남해/패 4장 → 5장
-앰플리파이어/카운터 0 → 1
“게네랄프로베의 효과로 [엠플리파이어]를 넣고 발동!”
지민의 양 옆으로 주황빛 앰프 스피커 둘이 나란히 솟아올랐다. 지민의 필드 곳곳에 생긴 형상은 꼭 지민을 주인공으로 하는 콘서트장처럼 변해있었다. 그걸 지켜보는 애리의 눈도 반짝거렸다.
“[사운드 워리어 기타리스]를 일반 소환, 기타리스의 효과로 기타스를 패에 회수한 다음… 레벨 4 [사운드 워리어 디제이스]를 레벨 3 [사운드 워리어 기타리스]에 튜닝, 모여든 선율이 함성을 불러낸다!! 레벨 7 [사운드 워리어 록스]! 온 스테이지!!”
[사운드 워리어 록스/Lv7/2500/1500]
찌이이이이잉-!! 짧고 강렬한 기타 리프와 함께, 사운드 워리어의 악단이 지민의 필드로 등장했다. 팡-! 하는 폭죽 소리와 함께 기타 리프도 멎었다.
“록스의 효과로 엑스트라 덱의 디제이스를 패로 회수하고 필드의 카운터를 셋 제거해서 [사운드 워리어 사이저스]를 패에 넣을게.”
강남해/패 5장 → 6장
앰플리파이어/카운터 3 → 0
“응, 턴 종료야!”
-유지민/패 4장/LP 8000
지민의 차례가 끝났다. 남해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렇지만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덱에서 카드를 뽑았다.
남해는 필드와 패를 살피며 작게 무언가 중얼거리다 패 한 장을 뽑았다.
“패에서 [용상검현]을 발동. 덱에서 [상검사-태아]를 패에 넣는다.”
“막야가 아니네?”
“저렇게 쥐고도 패에서 보일 카드가 없나보지.”
애들의 말처럼 그 이유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자리에 있는 낙랑은 생각이 달랐다.
아니야, 그 이유는 절대 아니야. 남해는 노림수가 분명 있을 거야.
“태아를 일반 소환. 태아의 효과 발동, 묘지의 용상검현을 제외하고…”
“체인! 패에서 [이펙트 뵐러]의 효과 발동!”
태아의 곁으로 얼음박쥐 하나가 포르르 날아왔다. 얼음박쥐에게 손을 뻗던 태아의 팔을 어딘가에서 갑작스레 나타난 반투명한 천이 칭칭 감았다.
그 천 끝에는 하얀 베일을 두른 요정이 태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너만 초동 경계하는 거 아니거든~?”
“나도 체인. 패에서 카드 한 장을 버리고-”
태아의 모습이 흐릿해지며 마치 비를 맞는 진흙더미처럼 녹아내렸다. 전혀 예상 못한 기괴한 모습에 원형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며 뒤로 몸을 뺐다.
게다가 녹아내린건 태아만이 아니었다. 록스도 마치 기타줄 끊어진 기타처럼 기분 나쁜 소음을 내며 몸을 움찔거리다가 똑같이 녹아내려 필드 한 가운데를 향해, 마치 하수구로 내려가는 오물처럼 태아와 뒤섞여 사라졌다.
“대체 뭐야?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아! 저거!!”
“뭔데? 어? 어엇…!”
“-초융합을 발동.”
두 몬스터가 뒤섞인 진흙 안에서 날개가 펼쳐졌다. 그와 함께 꼭 짐승이 트름하는 것 같은 더러운 울음소리가 났다. 몬스터 하나가 상반신을 필드 위로 끌어올렸다.
-“그르르르으으으으윽…”
[늪지의 도로곤/Lv4/1900/1600]
“소재는 같은 속성의 다른 종족의 몬스터 둘. 도로곤을 융합 소환한다.”
대상을 잃어버린 베일은 스르륵 진흙으로 떨어져 안으로 가라앉았다.
그 자리에서 커다란 기포를 하나 만들며 얼음박쥐가 다시 올라왔다. 아까와 달리 날갯짓에 기운이 없어보였다.
“그래, 네 말 맞아. 다들 내가 초동 내면 경계하더라고! 그래서 나도 대책 세웠고.”
“태아도 록스도 바람 속성… 이래서 태아를…”
“이제 레벨 4 도로곤에 레벨 4 상검 토큰을 튜닝. 영봉의 대사형, 레벨 8 [상검대사-적소]를 싱크로 소환!”
낙랑은 무언가 더 떠올랐는지 D-패드를 터치해 적소의 정보를 띄웠다. 적소는 비튜너의 소재 제약으로 [환룡족]이 붙어있었다.
그리고 도로곤의 종족도 [환룡족]. 남해도 상상 이상으로 대비를 철저히 해왔다는게 느껴졌다.
“태아의 효과로 [천위룡-비슈다]를 묘지로 보내고, 적소의 효과로 패에 넣은 [상검군사-용연]은 [광룡성-리훈]을 버려서 특수 소환한다.”
남해의 필드로 용연이 나타났다. 평소와 달리 이번엔 얼음 기둥을 가르고 안에서 나타나는 대신 카드 위에서 소환되었다.
용연은 남해를 돌아보지 않았다. 남해도 용연을 부르지 않았다. 용연의 곁으로 다른 얼음박쥐가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왔다.
“그리고 이번엔 레벨 6 용연을 레벨 4 상검 토큰에 튜닝! 영봉의 통치자! 레벨 10 [상검대공-승영]을 싱크로 소환!!”
[상검대공-승영/Lv10/3000/3000]
“용연의 효과로 1200의 데미지를 준 다음 배틀. 두 몬스터로 상대를 직접 공격.”
적소와 승영이 자신의 키만한 대검을 동시에 휘둘렀다. 푸른 검기와 금빛 검기가 그대로 뻗어나가 지민을 베고 지나갔다.
-유지민/LP 8000 → 1000
“그 다음 카드를 한 장 세트.”
주위에서 애들이 하나둘 웅성거렸다. 흐름이 남해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았으니 그럴법도 했다.
지민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모습을 본 애리는 조바심이 났지만 기다리기로 했다. 자신의 스타를 믿어주는 것이 팬의 도리니까.
“너, 내가 이 정도로 쫄 줄 아는 건 아니지?”
역시 지민은 애리의 기대처럼, 금새 고갤 들었다. 이제 듀얼은 서로 한 턴씩 지났을 뿐이니까.
되려 이 상황은 지민의 기대 그대로였다. 자신이 전력을 다해 준비한 이 듀얼이 너무 허무하게 끝나버리면 그게 더 재미없고 실망스러울테니까.
지민의 얼굴에는 아직도 옅은 미소가 떠있었고 두 눈엔 아까보다도 승부욕이 가득했다.
“차례를 마친다.”
남해는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제 할말을, 턴을 마쳤다.
-강남해/LP 8000/패 2장
“좋아, 드로우! 다시 패에서 기타스를 펜듈럼 존에 세트, 패 한장을 버리고 덱에서 디제이스를 특수 소환한다! 디제이스의 효과로 또 다른 사이저스를 특수 소환!”
찌이이이이-잉-!! 지직, 치잉-!!지민이 재빠르게 몬스터를 전개하자 꼭 사운드 워리어 몬스터들의 소리가 짧은 노래처럼 이어졌다.
노래는 이어지면서 콘서트까진 되지 못했다.
쾅, 콰앙-!!
“어?”
디제이스의 발 밑에서, 그리고 지민의 옆에서 푸른 폭발이 일어나 디제이스와 공연 장비들을 박살내버렸다. 남해의 세트 카드가 어느새 뒤집혀 있었다.
“세트 카드 발동. [상검암전]. 승영과 네 필드의 게네랄프로베, 그리고 디제이스를 대상으로 파괴한다.”
디제이스의 안에서 기계 부품들이, 그리고 박살난 공연 장비들이 후두둑 바닥으로 쏟아졌다.
그 수라장 가운데 세트된 사이저스 또한 성치 못했다. 바닥에서 솟아오른 얼음송곳이 사이저스를 궤뚫어버렸다.
-“사… 사… 사르…”
“이번엔 또 뭐야?”
“승영 효과잖아. 자기 효과로 터질 거 같으면 묘지 째고, 상대 필드랑 묘지 째는거.”
“순식간에 다 쓸려버렸네…”
-앰플리파이어/카운터 0 → 2
지민의 D-패드에서 피아노와 사이저스가 제외 존으로 이동했다. 지민은 아직 패에 남은 카드를 뽑아들었다. 패드의 스크린에 [PENDULUM]이 다시 떠올랐다.
“패에서 [사운드 워리어 기타리스]를 펜듈럼 존에 놓고, 기타리스의 효과로 기타스를 패로 회수! 이제 패에서 기타스와 디제이스를 다시 세팅! 이것으로 레벨 1부터 7까지의 펜듈럼 소환이 가능해졌어!”
기타스와 디제이스가 아직 남은 장비들로 연주했다. 리드 기타도 비었고 사이저스도 없는 초라한 공연이었다.
그래도 두 몬스터는 진심을 담아 노래를 연주했다. 아이들의 시선이 다시 지민의 필드로 향했다.
“엑스트라 덱에서 록스, 무대 복귀합니다!”
찌이이이잉-!! 그리고 노래의 하이라이트에서 비어있던 악기들이 일제히 복귀했다. 지민은 패에 남은 카드 한 장을 뽑아들었다.
“이제 기타스를 일반 소환! 기타스의 효과로 묘지의 또 다른 기타리스를 부활시키고 디제이스가 자체 효과로 필드로 특수 소환!”
-앰플리파이어/카운터 2 → 5
다시 지민의 필드에 몬스터가 넷이나 늘어섰다. 상관없다. 네마리 다 승영은 커녕 적소보다도 공격력이 낮았다.
조급해하지 말고 기다려서 다음에 나올 몬스터만 적소로 효과를 요격해버리면 그만이다.
“소환 조건은 효과 몬스터 넷 이상. 링크 소환!”
탱, 탱, 탱, 탱!! 록스, 기타스, 기타리스, 디제이스가 링크 마커 안으로 빨려들어갔다. 마커 넷에 붉은 빛이 들어왔다. 그리고 애로우 헤드 하나만이 아무 몬스터도 없는데 불길하게 점등했다.
…탱!! 불길하게 점등하던 다섯번째 애로우 헤드가 핏빛으로 빛났다. 승영의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순식간에 회오리치며 승영을 붙들었다.
그리고는 목을, 팔을, 다리를 붙들고 서서히 그림자 안으로 끌어당겼다. 승영은 결국 그림자 안으로 사라졌고 그걸 지켜본 남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링크 5, 사로스, 에레스… 쿠르누기아스! 등장!!”
[사로스=에레스 쿠르누기아스/Lnk-4/3000/]
링크 게이트가 그림자 안으로 가라앉은 후 그 자리에서 검은 머리칼의 여인이 올라왔다.
남해는 올라오는 헛구역질을 입을 틀어막고 견뎠다. 그러다 그 여인의 핏빛 눈동자를 바라봤다. 남해는 필사적으로 어금니를 꽉 깨물고, 손바닥에 손톱자국이 날 정도로 주먹을 세게 쥐고 견뎠다.
주변에서 일렁거리는 그림자가 그때의 기억을 상기시키고 있었다.
“남해 쟤… 왜 저래?”
“승영 먹혀서 그런 거 아냐?”
“너만 상대 몬스터 소재로 쓸 수 있는 거 아니거든! 배틀, 쿠르누기아스로 적소를 공격! 이터널 리워드!”
적소의 등 뒤에 하얀 광채가 나타났다. 광채가 서서히 그림자에 가려졌다. 줄어든다. 줄어든다.
그러다가 완전히 광채는 그림자에 덮여 검게 변했다. 그 순간 적소도 새카맣게 물들었다.
마치 종이가 불타 없어지듯 잿가루를 날리며 적소는 스르르 남해의 필드에서 사라졌다.
남해는 그 순간이 떠올랐다.
-강남해/LP 8000 → 7800
“턴 종료!”
-유지민/LP 1000/패 없음
남해는 말없이 카드를 뽑았다. 아무 천위 몬스터, 하다못해 두 번째 태아나 용상검현이라도 뽑았다면 좋았는데. 전부 아니다. 지금 상황을 돌파할 마땅한 수단이 남해에겐 없다.
“[해피의 깃털]발동.”
필드에서 돌풍이 일기 시작한다. 기타스와 공연용 기기들이 하나씩 쨍강-! 파열음과 함께 산산조각났다. 남해는 패를 좀 더 읽다가 카드를 하나 더 뽑았다.
“몬스터 하나를 세트하고 턴 종료.”
-강남해/LP 5000/패 1장
“이거로 끝?”
“남해 패 말렸다!”
지민은 미소띈 얼굴로 덱에서 카드를 뽑았다. 지금이 몰아붙일 기회. 지민은 드로우한 카드를 한번 흘끗 보고, 바로 패에서 냈다.
“[아로마지-로즈마리] 일반 소환!”
[아로마지-로즈마리/Lv4/1800/]
-“로즈마리, 등장!”
“배틀! 세트된 몬스터를 로즈마리로 공격!”
로즈마리가 있는 힘껏 지팡이를 높이 치켜들고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세트된 카드를 내리쳤다. 캉-!! 하는 충돌음과 함께-
-“로즈마리 스페셜! …어라.”
로즈마리의 지팡이 끝이 뚝, 부러졌다. 로즈마리의 표정도 머리카락처럼 새파래졌다.
엎어둔 카드가 뒤집히며 커다란 거북 등딱지가 나타났다.
[수룡성-비시키/Lv2/0/2000]
-유지민/LP 1000 → 800
“아아아아악 하필 저거야!!”
애리가 비시키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로즈마리가 당황하는 사이 비시키의 등 뒤에서 나타난 그림자가 비시키를 먹어치웠다.
그림자 안에서 비시키의 푸른 정수가 포르르 올라왔다.
남해는 그 모습을 보고 잠시 넋을 놓고 있다 정신을 차렸다.
“비시키가 파괴되었으므로 덱에서 [지룡성-헤이칸]을 공격 표시로 리쿠르트한다!”
“턴 종료.”
-유지민/LP 800/패 없음
남해는 어떻게든 심장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눈을 감고 조용히 손을 가슴팍으로 가져가 성호를 그려보았다.
하지만, 손과 팔이 너무 떨리는 바람에 성호를 제대로 긋지 못했다. 세 번이나 실패한 남해는 결국 포기하고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드로우!”
남해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드로우한 카드를 바로 필드에 냈다. 상검의 몬스터들과 비슷한 복장을 입은 남성 2인조가 남해의 필드에 나타났다.
“[현원의 상검사]를 일반 소환한다!”
[현원의 상검사/Lv4/1800/1500]
“어, 저 몬스터…”
준오는 D-패드로 현원의 상검사의 능력치를 확인했다.
레벨 4 튜너 몬스터. 그리고 필드에는 레벨 3의 비튜너 몬스터인 헤이칸.
지민의 라이프는 800. 로즈마리의 공격력보다 800 이상 높은 수치라면 2600 이상이니…
벌써 눈치 빠른 애들은 이 듀얼의 향방을 확신했다. 지민도 마찬가지였다.
“레벨 4 현원의 상검사에 레벨 3 헤이칸을…”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에… 남해는 말끝을 흐렸다.
남해도 무슨 몬스터를 소환해야 이길 수 있을지는 알고 있다. 공격력 2600 이상의 레벨 7 싱크로 몬스터라면 남해가 가장 먼저 떠올릴 카드는 당연히 ‘그 카드’니까.
하지만 남해는 도저히 D-패드를 더 누를 수 없었다.
그 카드가, 가이저가… 소환될 리 없다고,.. 남해가 가장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게 될 리 없으니까.
남해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떨리는 손으로 D-패드에 손가락을 얹는다.
“레벨 3 헤이칸을 튜닝!! 빛의 날개를 펼쳐라, 레벨 7 [클리어윙 싱크로 드래곤]!!”
[클리어윙 싱크로 드래곤/Lv7/2500/2000]
“어? 왜?!”
“가이저는? 가이저가 아닌데?”
“뭐야, 왜 저게 나와…”
주변의 다른 학생들이 수군거렸다. 남해는 다른 아이들에게 뭐라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애써 그 목소리를 무시하며 남해는 이 상황에 집중했다.
듀얼은 끝나지 않았고 자신의 라이프는 아직 많이 남았다.
이길 수 있다. 이길 수 있어. 이길 수 있다고.
“배틀! 클리어윙 싱크로 드래곤으로 로즈마리를 공격!!”
클리어윙이 온 몸에 칼바람을 두르고 날아올랐다. 그리고 크게 방향을 틀어 로즈마리에게로 돌진했다.
로즈마리는 남의 일처럼 클리어윙을 여유롭게 쳐다보다가 정말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깨닫고 옷처럼 얼굴도 파래졌다.
-“어.”
콰앙-!! 클리어윙 싱크로 드래곤과 충돌한 로즈마리는 저 멀리 날아가다가 적당히 벽에 부딪히며 박살났다.
남해는 얼굴 표정을 추스르며 마저 D-패드를 계속 터치했다.
“턴 종료야.”
-유지민/LP 800 → 100
-강남해/LP 5000/패 1장
“알겠어, 그렇다면 드로우!”
그리고 주변의 어떤 아이들보다도 가이저가 나오지 않은 것이 신경쓰이는 사람이 지민이다.
항상 남해의 곁에는 가이저가 있었다. 2학기 말부터는 용연 또한 둘과 같이 있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남해 곁에는 그 어떤 정령도 보이지 않고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다. 소리 또한 들리지 않는다.
마치 남해를 버리고 떠나버린 것처럼.
“패에서 [사운드 워리어 기타스]를 일반 소환! 기타스의 효과로 묘지의 피아노를 부활시키고, 두 장의 몬스터를 오버레이! 등장이야, 랭크 3 [건마인 허미허미허밍]!”
[건마인 허미허미허밍/Rk3/1100/1800]
그래도 그건 그거고, 듀얼은 듀얼.
“허미허미허밍의 효과 발동! 이 턴 허미허미허밍은 상대를 직접 공격할 수 있어! 그럼, 배틀!”
지민의 외침에 에레스=쿠르누기아스가 손짓했다. 이윽고 클리어윙의 그림자가 솟아올라 클리어윙을 마구 난타했다. 그리고 그동안 허미허미허밍이 연주한 폭음이 클리어윙을 통과해 남해를 덮쳤다.
-강남해/LP 5000 → 3400
“그래도 헤이칸을 소재로 쓴 클리어윙은 전투로 파괴되지 않아!”
“상관 없어, 메인 페이즈 2! 배틀을 실행한 허미허미허밍을 엑시즈 체인지!”
허미허미허밍의 주위로 은하수가 펼쳐지며 허미허미허밍이 서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허미허미허밍의 관현악 연주가 허미허미허밍 주위를 공전하던 피아노와 기타스의 합주에 더해졌다.
은하수가 허미허미허밍을 중심으로 회전했다. 삼중주의 하이라이트 파트에서 관악기가 크게 울릴 때마다 세 몬스터는 하나씩 빛으로 변했다.
“대지를! 하늘을! 우주를 울리는 낙뢰!”
세 빛이 한군데로 합쳐지자, 돌풍과 함께 은하수가 팽창하며 그 안에서 지민의 필살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엑시즈 소환! 출격이다, [네가로기어 아제우스]!!”
“저게… 무슨…”
“그럼 턴 종료야!”
-유지민/LP 100/패 없음
“우와아아아아아아아!!”
“야 남해 들을라!!!”
아제우스의 등장에 원형의 눈빛이 마구 불타올랐다. 준오가 팔꿈치로 옆구리를 찌르자 그제야 좀 조용해졌지만, 여전히 원형의 눈이 반짝거렸다.
한발짝 앞에서 놓친 승리, 그리고 이젠 승리와 너무 멀어졌다고 쐐기를 박는 몬스터의 등장.
남해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드로우한 카드로도, 손에 남은 카드로도, 상황을 타개할 수 없었다.
남해는 혼이 빠진 사람처럼 아제우스를 올려보다가 아무 말도 없이 [End Phase]패널을 눌렀다.
-강남해/패 2장/LP 3400
사사삭-! 턴이 돌아왔음을 알리는 효과음에 지민은 빠르게 카드를 한장 드로우했다.
“아제우스의 몬스터 효과 발동! 자신을 제외한 필드의 모든 카드를 묘지로 보낸다! 네가로기어 카타스트로프!!”
키이이이잉-!! 아제우스 양 날개의 엔진이 가열차게 돌아가며 빛을 발했다. 이윽고 고막이 터질듯한 폭음과 함께 쏟아진 번개 폭풍에 클리어윙도, 에레스=쿠르누기아스도 사라졌다.
그리고 그 번개 폭풍은 궤도를 바꿔 남해에게도 쏟아졌다.
“아제우스로 상대 플레이어를 직접 공격! 그리고, 패의 [허영거영] 발동! 여기까지야, 케라우노스 풀버스트!!”
꽈릉-!! 번개 폭풍이 그대로 한줄기로 모여 남해를 강타했다. 남해는 조용히 눈을 감고 패배를 받아들였다.
-네가로기어 아제우스/A 3000 → 4000
-강남해/LP 3400 → 0
“아자아아아아아아!”
승패가 결정났다. 지민은 이겼고, 남해는 졌다. 승자는 두 주먹을 꽉 쥐고, 기쁨에 겨워 환희했다. 제일 먼저 애리가 달려들어 지민을 껴안았고 다른 아이들도 지민에게로 달려와 승자를 축하 해줬다.
그리고 패자는 말이 없었다.
1학년 2학기의 남해처럼 분해하지도 않았다. 친구들이, 같은 학교 아이들이 지민을 축하 해주고 있을 때 그냥 우두커니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곤 마치 바람에 휘날려 흩어지는 연기처럼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해냈다! 잘했어 지민아!!”
“이번 대회도 결국 너구나!”
“역시 네가 이길 거 같았어!”
지민은 남해가 떠올라 방금 전까지 남해가 있던 장소를 쳐다봤다. 이미 남해는 자리를 떠난지 오래였다. 그 사이 낙랑이 먼저 남해의 뒤를 쫓아 교문 바깥으로 달려갔다.
“거봐 내가 그거 쓴댔지!”
지금 괜히 패자를 건드릴 필요는 없겠지. 지민은 승리의 여운에 젖어 미소를 지은 채 자신을 꽉 껴안은 애리의 등을 토닥거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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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가입니다.
이번 로그에선 초안의 프리파라천동이라던가, 울프라이에라던가 못 나온 카드도 꽤 있습니다.
그래도 아제우스도 나오고 에레스도 나오고 설계대로 비교적 잘 흘러가서 만족스럽습니다.
기억하실지는 모르겠지만 로즈마리도 1시즌 당시 지민이 쓴 적 있는 카드입니다.
남해 쪽은 가이저가 없어서, 가이저가 있었다면 이겼을 승부를 그르치는 상황 묘사도 성공.
이제 다음은 LT 유스 예선, 즉 이번 시즌의 대회편 스타트가 되겠습니다!
남해는 과연 어디까지 오를 수 있을까요? 가이저와 재회할 수 있을까요? 집에는 돌아갈 수 있을까요?
아니, 애초에 이 이상 "올라갈 수"는 있을까요? 좌절도 실패도 여기까지일까요?
20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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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 리 가라사대 일곱번 넘어지면 일곱번 일어서는 캐릭터를 그려라 그리고 여덞번째 넘어트려라... 대회 파트도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기대해주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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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덱 상대로 전열 깔든 후열 깔든 제외부터 하고 시작하는 칠성용연도 막강하고, 가이저를 낼 수 있었다면 거기서 승부가 끝이었고... 역경이 없었다면 넘을 수 있었을 상황을 못 넘어가는 표현이 하고 싶었으니까요! | 24.01.27 22:4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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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 리 가라사대 일곱번 넘어지면 일곱번 일어서는 캐릭터를 그려라 그리고 여덞번째 넘어트려라... 대회 파트도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기대해주세용 | 24.01.27 22:4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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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렇게 남해라는 이름도 존재도 모두 사라지고 듀얼리스트라는 개념으로만 남게 되는 거죠(?) | 24.01.28 02:0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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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즌에서 대회 한창 진행할 파트만큼 일상편으로 룰루랄라 지냈으니 괜?찮지 않을까요 | 24.01.27 22:4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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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혹시 가면라이더 드립이라면 아닙니다 전 라이더 시리즈 아는 게 거의 없어서요. | 24.01.28 09:2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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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가면라이더 시리즈 안 봅니다 그냥 제 상상의 결과물입니다 | 24.01.28 11:5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