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이게 아빠의 마지막 기록이 될 거 같구나.”
-“사람은 자기가 죽는 때를 안다고 하잖니.”
-“아빠가 없어도 현이랑 엄마랑 잘 지낼 수 있지?”
-“아빠는 우리 딸을 믿어.”
…
간만에 보는 누나 미아의 밝고 환한 표정에 현은 자신도 모르게 기분이 풀려 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누나는 늘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으니까.
누나의 얼굴이 이정도로 풀린 날은 근래엔 몇 없었다.
학업마저 미루면서 집을 어떻게든 일으켜보겠다는 누나에겐 늘 미안한 심정을 품어온 현이지만, 그렇게 풀린 표정은 잠시나마 걱정을 덜어줬다.
‘참, 누굴 보러가길래…’
무슨 일일까. 적어도 저런 미소를 짓게 해줄 정도면 결코 나쁜 것은 아닐터. 그러니 안심하고 배웅해줄 수가 있었다.
“갔다올게!”
현관을 나서자마자 미아는 한번 심호흡을 했다.
오늘은 만날 사람이 있었다. 손이 파르르 떨리고 심장은 터질 듯이 쿵쾅거렸다.
오늘 이 날을 위해 얼마나 오래 계획을 짰는지 모른다.
제대로 준비는 됐겠지? 주변에서 이상하게 보진 않을까? 실패하면 어쩌지?
“아빠. 괜찮을까요?”
미아는 아무 것도 없는 허공을 보며 물었다. 땅에서 스으윽 뻗어나온 그림자가 벽에 닿았다.
벽을 타고 올라와 미아의 눈높이까지 늘어난 그림자. 그 모습은 사람처럼도 보였다.
-“아빠는_우리_딸을_믿어.”
그림자가 미아에게 대답했다. 그 이야기에 미아는 결심한 듯 고갤 끄덕였다.
얼굴에서도 망설임이 사라졌고, 이내 결의에 찬 표정으로 변했다. 오늘이 미아에겐 결전의 날이었다.
연락해둔 그 장소를 향해 미아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남해가 기다리는 그 장소로.
…
교회의 자기 방에서 남해는 옷매무새를 한껏 다듬고 화장실로 달려가 거울을 확인했다.
평소에는 그다지 옷차림에 신경쓰지 않는 남해도 오늘만큼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남해의 짝사랑, 미아 누나와의 약속이 아닌가.
루비색 가디건을 걸치고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보고, 고갤 한번 끄덕.
가이저도 용연도 남해가 이렇게 옷차림에 신경쓰는 광경은 처음이었다.
-“지금 나가도 한시간은 더 일찍 가겠다.”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야지!”
-“주군. 진정 좀 하시옵소서.”
“나 지금 무지 침착해!”
남해는 시선도 돌리지 않고 대충 대꾸하고 움직이다 젖어있는 화장실 바닥에 넘어질 뻔 했다. 그 꼴에 가이저가 한숨을 쉬었다.
-“퍽이나.”
그래도 가이저나 용연이나 그런 남해가 싫진 않았다.
듀얼, 듀얼, 그리고 듀얼. 그나마 있던 청춘스러운 순간들조차 외면하고 집에 간다는 목표 하나만을 위해 달려오는 남해였다.
옆에서 보고있으면 대견하다 못해 고행을 자처하는 종교인처럼 보일 정도로 남해는 쉬지 않고 달렸다.
그런 남해가 2학년에 들어서는 조금씩 일상을, 청춘을 즐기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교회 가족들과 함께 추억도 쌓고…
-“그렇게 침착하면 하계 교대표나 귀가라도 준비해라.”
“하계 교대표 미뤄졌잖아! 걱정 마, 추계 교대표도… 읏샤, 제대로 준비 중이라고!”
-“이런건 또 제대로 답하는구만.”
올해의 교대표 결정전은 원래대로라면 하계 교대표 결정전 이후 추계 교대표를 건너뛰고, 동계 교대표 결정전으로 넘어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스폰서를 비롯한 여러 사정으로 하계 교대표가 취소되고 대신 추계 교대표가 대신 치러진 다음, 그 직후에 동계 교대표로 바로 넘어가는 강행군이 되버렸다.
그리고 이 추계 교대표 결정전의 교대표의 결산도 이제 코앞. 주말이 끝나고 다음 주가 시작되면…
-“이번 분기에도 지민 낭자와 한번 크게 붙겠지요?”
-“뭐 그렇겠지. 늘 그랬으니.”
1학년 때는 둘이 번갈아 교대표를 출전했다.
2학년 춘계 교대표 때는 어쩌다보니 어부지리로 윤수가 나가게 됐지만 이번에는 지민도 남해도 교대표 자릴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귀가도 비슷한 이야기였다. 남해가 거의 2년간 죽어라 달려오며 모은 듀얼 에너지는 상상 이상. 이 속도라면 늦어도 내년 초, 만일 흐름만 잘 탄다면 연말에는 시도라도 해볼 만큼의 듀얼 에너지가 모인다.
그것 하나만 보고 달려온 남해에게 무엇보다 기대되고 가슴 뛰는 기다림이었다.
-“그런데 가이저 공.”
-“응?”
-“진실로 회귀할 기회를 얻는다면… 그 때엔 무엇을 하실 생각이십니까?”
용연은 만일 그렇게 되면, 자신은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새로이 키울만한 인재라도 찾아보겠다고 전에 가이저와 이야기를 나눈 바가 있었다.
처음부터 용연의 카드는 이곳 출신이었으니 딱히 뭐라 말릴 이유도 부분도 없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가이저는 다르다. 가이저는 엄연히 원래 세계 출신의 카드. 게다가 돌아가게 되면 정령체를 유지할 수 있다는 보장도 없다.
-“그런 건 생각 안해봤다고.”
-“그러시다면 뭐…”
용연은 수염을 매만지며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굳이 가이저에게 더 캐묻진 않았다.
그런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두 정령은 남해를 따라갔다. 남해는 방으로 돌아가 루비빛 가디건을 도로 벗어던지고 푸른 빛이 도는 진한 보라색의 얇은 바람막이를 꺼냈다.
“이게 나을까?”
-“넌 파란색 좋아하잖냐.”
“누나가 좋아할까?”
-“그런 것 정도는 미리 본인에게 물어보셨어야 하지 않습니까…”
“아 그러네. 진작 좀 물어볼걸!”
남해는 미아에게 연락하려다가 멈췄다. 본인이 생각해도 그건 아닌 모양이었다. 마침 복도를 지나가던 낙랑을 본 남해는 급하게 가디건을 팔에 걸치고 달려가 낙랑의 팔을 붙잡았다.
낙랑이 뒤를 돌아보자 남해는 들고나온 두 옷을 들어보였다.
“낙랑아, 네가 보기엔 둘 중 뭐가 나은 거 같아?”
“둘 중에? 난… 빨간 쪽!”
“그럼 미아 누나가 보기에도 이쪽이 나을까?”
미아의 이름이 나오자 낙랑은 눈살을 찌푸리곤 토라진 듯 가던 길을 마저 가 계단을 내려갔다. 방에서 그걸 지켜보던 금선이 피식, 웃었다.
“하여간 우리 동생~ 아직 멀었구나~”
“누가 동생이야?”
그때 그 분식집에 다들 모였을 때, 귀갓길에서 금선이 뜬금없이 꺼낸 논리는 이랬다.
금선의 나이는 남해보다 한살 어리다. 하지만 이쪽 세상에는 남해보다 1년 일찍 떨어졌다. 그러므로 살아온 햇수로 따지면 남해와 동갑이다.
거기에 더해 자신의 생일이 남해보다 이르므로 자기가 남해보다 누나라는 논리.
당연히 남해는 인정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어차피 적당히 놀 건데, 둘 다 나쁘지 않으니까 편한 쪽으로 입어.”
“그런가?”
남해는 가디건을 잠시 살피다가 접이식 침대 위에 던져두고 바람막이를 익숙한 동작으로 걸쳤다.
몇 번째일까, 또 옷매무새를 한번 다듬은 남해는 이번에야말로 만족한다는 표정으로 고갤 끄덕였다.
남해를 슥 쳐다본 금선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D-패드를 차고서 짝사랑하는 여자애를 만나러 간다니. 원래 세상에선 생각할 수 없을 일이다.
완전히 여기 사람이 다 됐네 쟨.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날씨도 참 좋고, 정류장으로 가니 버스도 적당하게 제시간에 정류장에 멈춰섰다.
혹시 몰라 내려서 편의점에서 산 음료도 1+1.
처음 오는 길이지만 헤매지 않고 깔끔하게 약속 장소로 움직이고 있다.
“107동… 여기 있다.”
아무래도 이 아파트 단지는 건축이 막 완료된 모양이었다.
차는 거의 없었고, 단지 내부를 걷고 있는 사람은 아예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평소의 남해였다면 이상하게 여겼을지 모른다.
가이저는 그랬다. 좀 더 분위기 있는 곳, 밝은 곳, 혹은 놀거리가 가까운 곳… 그런 곳도 있을텐데 왜 굳이 이런 곳일까.
참 남해가 특이한 여자에게 빠졌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흠…”
약속한 동호수를 찾은 남해는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가벼운 몸놀림으로 내려갔다.
남해를 따라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려던 용연은 문득 하늘을 봤다.
방금까지 맑던 하늘이 잠깐 새 태양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려졌다. 이야긴 꺼내지 않았지만 뭔가, 왠지 찝찝했다.
“여긴가…?”
지하주차장 지하 2층 N-7 구역. 지하 주차장은 지상처럼 깔끔했다. 예외적으로 약속 장소 바로 옆에만 차 한 대가 있었다.
남해가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또각, 또각 발소리가 주변에 울렸다. 그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없는 곳이었다.
아직 약속 시간 전, 미아는 당연히 보이지 않았다. 남해는 한쪽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른 손으로 지금 시각을 확인했다.
여전히 한참 약속시간 전이었다.
-“주군. 소생이… 아뢰올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왜?”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가이저가 보기에도, 용연이 보기에도 여긴 남녀가 만날만한 공간이 아니다.
남해 또한 둘이 지적하고 싶은 이야기는 뭔지 감이 왔다. 그렇지만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이유가 있겠지.
그게 뭔지는 아직 모르지만.
“벌써 와있었어?”
남해가 기다리고 기다린 목소리가 지하 주차장에 울렸다. 남해의 얼굴이 확 밝아지며 그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용연과 가이저도 그 방향을 돌아봤다. 처음부터 미아를 의심했던 용연이 먼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 발소리도 인기척도 없이 어디서 나타난 거지? 먼저 와있었던가?
아니다, 저 방향은 남해가 지난 방향이다. 몸을 숨길만한 것도 없는 텅 빈 주차장에서 미아를 못 보고 지나쳤을 리 없다.
“아니에요. 저도 방금 왔어요.”
용연은 남해 한발짝 뒤에서 둘을 지켜봤다. 가이저도 남해에게서 약간 떨어진 곳, 그림자 안에서 목을 길게 빼고 미아를 주시했다.
“흠, 흠. 그럼 이제 뭘 하려고요?”
“어둠의 듀얼을 하자.”
딱 3초였다.
3초간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적이 지났다.
그 3초가 끝나기 무섭게 용연이 금빛 불티를 튀기며 상검을 뽑아 들었고, 가이저도 상반신을 빼고 남해의 바로 옆까지 목을 뻗어 미아를 향해 송곳니를 들이밀었다.
남해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단어의 등장에 대답도 하지 못하고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렸다.
“남해 넌 가족을 다시 만나고 싶다고 했지? 나도 그래.”
분위기가 이상하다. 미아의 눈은 진심이 담겨있었다. 정말로 남해를 이해한다고 믿는 눈이다.
“듀얼 에너지로 뭐든 가능하잖아? 정령도 구현할 수 있고, 차원도 이을 수 있고, 시간도 넘을 수 있어. 그리고…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잖아…!”
“네?”
“나도 너랑 같아. 나도 아빠랑 다시 만나고 싶을 뿐이니까.”
그러나 남해는 미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남해도 가족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남해의 가족은‘죽지 않았다.’ 그러니 미아의 생각도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다.
삐이이-! 남해가 머릿속을 정리하기도 전에 지하 주차장에 안내음이 울렸다. 기분 나쁜 고음과 함께 옆에 있던 차도 제멋대로 라디오를 송출하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말이에요?”
“아빠가 말했어, 듀얼 에너지로 뭐든 할 수 있다고! 그러니까 듀얼 에너지를 잔뜩 모으면 자길 부활시킬 수 있다고!”
-“안내드립니다. 안내드립니다.”
-“미_아_말대로_란_다.-”
라디오와 안내방송이 지하 주차장에 울렸다. 이 방송, 저 방송에서 자르고 이어 붙인 목소리가 미아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그렇지 않아? 가이저.”
미아의 시선이 가이저에게 향했다. 처음부터 보고 있었다는 것처럼 정확하게 가이저와 미아의 눈이 마주쳤다.
누군가 말하기를 웃는 것은 이빨을 드러내는 표정. 상대에게 물러설 생각이 없다 위협하는 의미라고 했다. 미아는 웃고 있었다. 맹수가 먹잇감을 노려보듯이.
남해 뒤의 용연이 둘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뛰어들어 검을 내리쳤다. 자동차의 그림자가 주욱 늘어나 용연의 상검을 막아냈다. 그림자는 한순간 번쩍였을 뿐 아무것도 없던 양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가이저, 용연. 뭐해?”
남해의 목소리가 그림자 안에서 들렸다. 가이저는 바로 그 목소리를 떠올렸다.
분명 전에 들었던 그 말이었다. 들었던 곳이…
“용연, 맞지? 아빠가 말해줬어. 그때 교회에서 처음 봤잖아? 그런데 인사보다 칼이 먼저네?”
남해는 지금 상황이 하나도 이해되질 않았다.
미아 누나에게도 사실 정령이 있었다. 무슨 정령인지는 모르지만.
정령만 있는게 아니고 정령을 볼 수 있는 정령안도 있다.
부모님이 그립다. 다시 만나고 싶다. 그래서 듀얼 에너지가 필요하다. 듀얼 에너지가 필요하니까 어둠의 듀얼을 하겠다?
왜 하필 나지?
그 사이에도 발 밑의 그림자는 서서히 영역을 넓혀 주변을 감쌌다. 가이저도 그림자 밖에서 나와 앞으로 나섰다.
-“어이.”
“응?”
남해가 뒤를 돌아보자, 가이저는 왼팔을 뒤로 뻗어 출구를 가리켰다. 아직 그림자는 거기까진 닿지 못했다. 지금이라면 도망칠 수 있다.
머뭇거리는 사이에도 그림자는 서서히 출구로 향하는 길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남해는 미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게까지 해야하는 이유가 있을 거야.”
미아가 어떤 사람인지는 남해도 모르지 않았다. 한달에 한번 교회에 와서 아버지에게 인사드리는 효심이 깊은 사람이었고, 가족을 잃은 고통에 슬퍼하는 것도 몇 번이나 봤다.
극단적인 선택이지만,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 거다.
“그 듀얼, 받아들이겠어요.”
생각 못한 폭탄발언에 여전히 미아에게 검을 겨누고 있던 용연이 당황한 눈으로 남해를 돌아봤다. 가이저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남해의 푸른 D-패드가 구동음과 함께 펼쳐졌다.
-“주군?”
-“너, 너 지금…”
“이기면 그만이야.”
-“듀얼을_받아_들_였_구나.”
서서히 넓어지던 그림자가 완전히 주위를 뒤덮었다. 이사, 아니 [마리오네트]와 듀얼할 때의 그 감각이 다시 느껴졌다.
-“미친 짓입니다! 주군, 주군에겐 주군의 삶이 있습니다. 일상이 있고, 지인들이 있고, 친구들이 있습니다! 이런… 이…”
용연은 남해를 더 몰아붙이지 않았다. 대신 남해의 뒤편 한 발짝 떨어진 자리에 나타났다.
-“복배지수, 일수불퇴입니다.”
이젠 이긴다는 선택지뿐이다. 남해의 D-패드가 어둠 속에서도 밝게 빛나며 철컥 소리와 함께 펼쳐졌다.
남해는 자신 있다. 두렵지 않다. 이길 테니까.
이기고서 이유를 들어보고 설득하면 된다.
“거는 것은 하나의 영혼. 그럼 듀얼을 시작하자.”
그 말과 함께 주차장은 완전히 어둠에 집어삼켜졌다. 다시 시야가 돌아왔을 때, 둘은 마치 듀얼 필드에 선 것처럼 양 끝에 상대를 마주보고 서 있었다.
남해가 조작하기도 전, D-패드는 혼자 멋대로 작동하더니 남해의 차례를 가리켰다. 남해는 드로우한 카드 다섯을 쭉 살피곤 하나를 뽑았다.
“패에서 [상검사-막야]를 일반 소환! 패의 [천위룡-아다라]를 공개하고 상검 토큰을 특수 소환!”
[상검사-막야/Lv4/1700/1800]
남해의 필드로 포르르 얼음박쥐가 날아왔다. 그리고 늘 남해의 초동이 그렇듯 미아의 패에서 뭐가 반짝였다. 막야의 가슴팍으로 부적 한장이 쏜살같이 날아와 달라붙었다. 부적은 그대로 푸른 불꽃으로 변해 막야를 집어삼켰다.
“패에서 [유령토끼]의 효과 발동.”
막야는 소름 끼치는 비명소리와 함께 완전히 불타 사라졌고 얼음박쥐 하나만 외로이 필드를 빙빙 돌고 있었다.
남해는 반응도 하지 않고 다른 패를 이어서 뽑았다.
“필드에 효과 몬스터가 없으니 [천위룡-슈타나]를 특수 소환. 레벨 4 슈타나에 상검 토큰을 튜닝, 영봉의 대사형, 레벨 8 [상검대사-적소]를 싱크로 소환!”
[상검대사-적소/Lv8/2800/1000]
어두운 필드 위로 금빛 불티를 흩날리며 적소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해는 패드를 터치하곤 덱으로 손을 가져갔다. 적소의 서치 효과가 아직 남았다.
그리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적소의 주변에 뭔가 흩날렸다. 꽃잎이었다. 남해가 그 꽃잎의 정체를 알아채기도 전에-
빠찍-!!
“윽?!”
“[하루 우라라] 발동.”
하루 우라라가 적소의 머리 위를 한번 빙글, 돌자 적소에게 벼락이 내리쳤다. 남해는 패에서 카드를 하나 더 뽑았다.
“카드를 한 장 세트하고 턴 종료.”
-강남해/LP 8000/패 3장
“드로우.”
미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덱에서 카드를 뽑았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런 일을 시작한 걸까.
아니, 그보다 자기가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알긴 할까? 남해는 아직 그런 생각을 할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미러 스워드나이트]를 일반 소환! 미러 스워드나이트를 릴리스하고 덱에서 [키메라 퓨전]이 적힌 몬스터를 하나 특수 소환한다!
[대익의 바포메트]를 덱에서 특수 소환!”
[대익의 바포메트/Lv5/1400/1800]
“바포메트…? 환상마족…?”
남해는 사이킥족과 환룡족의 등장은 실시간으로 봤다.
사이버스족의 추가도 보지는 못했지만 추가될 거라고 알고는 있었다.
이번에는 진짜로 모르는 종족이었다.
-“환상마족입니다.”
“용연 너는 알아…?”
-“애굽오가안-埃及烏加眼-이 몸 어딘가에 하나씩 달린 자들입니다. 소생도 실제로 보는건 이번이 처음인데…”
“애굽…? 오가안?”
-“그리하면 우자트의 눈이라 하면 아시겠습니까?”
남해의 눈동자가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아, 그래. 수학책 구석에 그려진 짧은 일화와 함께 본 기억이 났다. 2분의 1, 4분의 1, 8분의 1… 그런 거 적혀 있었지.
바포메트는 자기보다 약간 나이 많은 유저들이 이야기할 때 나왔던 게 기억났다.
“대익의 바포메트의 효과 발동이야. 덱에서 [키메라 퓨전]과 레벨 4 이하의 야수족 몬스터를 패에 넣겠어.”
“그렇다면 묘지에서 슈타나를 제외하고 바포메트에게 적소의 몬스터 효과 발동!”
파앙-! 적소가 손에서 쏴낸 금빛 파동이 바포메트에게 명중했다. 한순간 필드가 금빛 광채로 밝아졌고 바포메트의 우반신도 적소가 쏜 파장이 마치 고리처럼 묶어버렸다.
미아는 패에서 다른 카드를 뽑았다. 마법 카드였다.
“패에서 [키메라 퓨전]발동.”
-“여분이 있었군.”
“패의 [환조의 왕 가젤]과 필드의 바포메트를 융합! [환상수왕 키메라]를 융합 소환!”
[환상수왕 키메라/Lv6/2100/1800]
필드에 돌풍이 몰아쳤다. 상상 이상의 풍압에 남해가 자신도 모르게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가젤과 바포메트가 마치 녹아내리듯 섬광 안으로 들어갔고, 두 몬스터를 반씩 합친 듯한 합성수가 섬광 안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뒤이어 미아의 듀얼 디스크에서 카드가 더 뽑혀나왔다. 하나, 둘, 셋. 남해는 카드를 잘못 센 줄 알았다.
“가젤의 효과로 덱의[콘필드 코아틀]을 패에 넣고, 바포메트의 효과로 묘지의 스워드나이트를 소생시킨다!
그, 그리고! 키메라 퓨전을 묘지에서 패에 넣고 다시 발동!”
수복력에 감탄하던 찰나 남해는 다시 닥쳐온 강풍의 풍압에 뒤로 넘어갈 뻔했다. 환상수왕 키메라의 몸이 징그럽게 뒤틀렸다.
뱀의 머리가 돋아있는 꼬리는, 머리가 서서히 빨려 들어가듯 사라지고 굵은 뱀의 꼬리처럼 변했다. 왼쪽의 늑대 머리의 이마에선 칼날이 솟아올랐고 허리춤에서도 박쥐를 닮은 녹색 날개가 살을 뚫는 소리와 함께 삐져나와 펼쳐졌다.
“콘필드 코아틀, 미러 스워드나이트, 환상수왕 키메라를 소재로 융합! 위대한 피조물, [환상마수 키메라]를 융합 소환한다!”
[환상마수 키메라/Lv8/3100/2800]
“배틀! 키메라로 적소를 공격!”
키메라의 왼발에서 펼쳐진 칼날 같은 발톱이 적소를 한번 크게 베었다. 그 공격에 적소는 산산조각 …나지 않았다.
남해는 키메라의 효과를 다시 확인했다. 적소는 치명상을 입은 듯 검을 제대로 쥐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상검대사-적소/A 2800 → 0
“키메라의 융합 소재는 세장이니까, 키메라는 두번 더 공격할 수 있어!”
이어서 키메라의 오른발이 뒤틀리더니, 커다란 낫 같은 발톱 달린 세 발가락이 달린 모습이 됐고 그 발톱이 적소의 가슴팍을 크게 베었다.
그 다음엔 키메라의 왼팔에 생겨난 칼날이 적소를 한번 더 베어버렸다. 남해의 필드에 적소의 피가 사방팔방 튀겼다.
피가 슬쩍 튄 가디건에서 느껴지는 너무 현실적인 피비린내에 남해의 표정이 굳었다.
“후, 후… 후우. 하. 그, 그리고! 카드 하나를 세트한 다음 차례를 마친다! 이때, 키메라의 효과로 상대 패 한장을 묘지로 보낸다!”
-강남해/LP 8000 → 1500
-나미아/LP 8000/패 2장
그 피비린내는 곧 약해졌다. 냄새에 익숙해지거나 걷힌 게 아니고, 피가 묻은 부분 대부분이 흐릿해지며 감각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으윽, 큭…”
처음이 아니지만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기분 나쁜 이 느낌. 당연히 느껴져야 하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으니 몸이 몸 같지 않다.
사람의 몸 대신 쇳덩이를 달고 있다면 이런 기분일까.
적소가 베인 자리와 같은 자리의 아래로 남해의 몸 대부분이 물을 뿌린 수채화처럼 흐릿하게 변해버렸다.
아직 남은 왼팔, 그리고 오른팔 하박으로 남해는 덱에서 카드를 뽑았다.
“드로우.”
남해의 몸에 서서히 감각이 되돌아왔다. 등 뒤를 돌아보니, 대신 가이저의 몸이 흐릿해져 있었다. 가이저는 남해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번 숨을 고르고 남해는 카드를 패에서 뽑았다. 필드에는 효과가 무효가 되고 공격력도 없는 사실상 장식이 되버린 적소와 당장은 사용할 수 없는 세트 카드. 게다가...
‘묘지에 있으면 키메라를 서포트하는 효과까지…’
다른 두 몬스터의 효과를 확인한 남해는 드로우한 카드를 확인했다. 그나마 키메라의 효과로 묘지로 보내진 카드는 [천위룡-아다라]인게 다행이다. 그러면-
“적소를 묘지로 보내고 [금지된 일적]을 발동!”
빠찍-!! 키메라의 몸에서 커다란 방전이 일어나며 바닥에 고꾸라졌다. 키메라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로 바닥을 짚으며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미아는 심장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자신도 모르게 가슴팍을 움켜쥐고 놀란 듯 몸을 한번 들썩였다.
용연은 혹시 미아가 이런 듀얼이 처음인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으로 환상마수 키메라의 효과는 무효가 되고, 더이상 [유익환상수 키메라] 또한 아니므로 묘지에서 서포트도 받지 못해요!
이제 패에서 [상검사-태아]를 일반 소환!”
필드에 은빛 갑옷의 상검사가 소환됐다. 태아가 한껏 기합을 외치며 팔을 뻗자, 태아의 앞에 상검 한 자루가 짙은 보라색 불티를 뿌리며 내며 생겨났다.
그리고 태아는 그 검을 있는 힘껏 바닥에 찔러넣었다.
“묘지의 [천위룡-아다라]의 효과로 슈타나를 패에 넣은 다음 레벨 4 상검 토큰을 레벨 4 태아에 튜닝, 레벨 8 [휘룡성-쇼후쿠]를 싱크로 소환!”
빛의 기둥과 함께 그 안에서 호피 무늬의 용이 날개를 펼쳤다. 용의 주위로 빛의 파장이 필드를 휩쓸자, 키메라와 미아의 세트 카드는 먼지처럼 변해 사라졌다.
“쇼후쿠의 효과로 키메라와 세트 카드를 덱으로 되돌리고, 태아의 효과로 덱의 [천위룡-비슈다]를 묘지로 보낸 다음 배틀! 쇼후쿠의 몬스터 효과 발동! 쇼후쿠를 파괴하고 묘지의 막야를 소생시킵니다!”
쇼후쿠가 포효와 함께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그 자리에 푸른 상검이 생겨났고, 신기루 안에서 나타난 막야가 그 상검을 뽑아냈다.
“슈타나를 공개해 소환한 레벨 4 상검 토큰에, 막야를 튜닝!싱크로 소환, 레벨 8 [아다마시아 라이즈-드라가이트]!!”
[아다마시아 라이즈-드라가이트/Lv8/3000/2200]
“막야의 효과로 카드를 한 장 드로우하고, 드라가이트로 상대를 직접 공격!”
“묘, 묘지의 환상수왕 키메라의 효과 발동! 묘지의 [대익의 바포메트]를 부활! 그러므로 바포메트의 효과로 덱의 [키메라 퓨전]과 또 다른 [환조의 왕 가젤]을 패에 넣겠어!”
드라가이트의 몸이 푸른 빛을 발했다. 이윽고 수정 폭풍우가 미아를 향해 몰아쳤다. 미아의 앞에 솟아난 바위벽이 그 공격을 막아냈고 수정이 내는 소리라 믿기 힘든 충돌음과 사방으로 튀기는 눈부신 파편들이 미아의 필드를 가득 메웠다.
그 바위벽의 바깥, 미아의 필드에 서있던 바포메트는 괴성을 지르며 서서히 피투성이 고깃조각으로 변해가다 쨍그랑-! 하는 파열음과 함께 완전히 필드에서 사라졌다.
“윽, 우… 와, 앗…”
“차례를 마칩니다.”
-강남해/LP 1500/패 2장
미아는 한참이나 숨도 못 쉬고 바포메트가 있던 자리를 봤다. 그리고 덱에서 카드를 뽑으려다 멈췄다.
다시 표정을 다잡고 미아는 손을 앞으로 뻗었다.
“내 턴이야, 드로우!”
미아의 눈에는 각오가 가득했다. 용연은 미아의 눈을 보고 그 뒤의 그림자를 봤다.
저 옆의 검은 덩어리가 정말 미아의 아버지인지는 몰라도, 미아는 정말로 아버지를 살리기 위해 각오가 되어있는 눈이다.
각오가 없다면 이미 진 거나 다름없다고 한다. 미아는 각오만은 확실히 있었다.
“패에서 [키메라 퓨전]발동!”
“드라가이트의 몬스터 효과로 키메라 퓨전을 무효로!!”
캉-!!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날아든 수정조각이 키메라 퓨전의 한가운데를 관통했다. 아직 여긴 예상한 수순. 미아의 패에서 카드가 하나 더 나왔다.
“환조의 왕 가젤을 일반 소환! 가젤의 효과로, 덱에서-”
빠찍-!!가젤의 몸에서 방전이 일어났다. 덱에서 카드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가젤의 머리 위에서 벚꽃잎이 사르르 떨어지고 있었다.
생각할 것도 없다. 미아라도 이 카드는 너무 잘 알고 있다.
“소환하면 몬스터, 내면 마법, 쥐고 있다면 패트랩. [하루 우라라]발동이에요.”
미아는 [End Phase]패널을 눌렀다. 자신도 모르게 미아는 심장이 욱신거리는 감각에 꽉 쥔 주먹을 가슴팍에 가져갔다. 남해는 이젠 미아가 진심이라고 깨달았다. 미아는 위험한 장난을 치는 아이 같은 마음가짐이 아니라 진심으로 자길 꺾어버리고 싶어 한다고.
“턴… 종료야.”
-나미아/LP 8000/패 3장
“드로우. 패에서 [서상검구] 발동. 덱의 [상검사-막야]를 패에 넣습니다. 막야를 소환하고 패의 슈타나를 공개해 덱에서 토큰을 소환합니다. 이제 필드에 일반 몬스터가 있으므로-”
콰아아아아-!! 바닥에서 검은 용오름이 올라와 가젤을 집어삼켰다. 남해의 묘지에 존재하던 [천위룡-비슈다]의 몬스터 효과였다.
용오름이 걷힌 후 가젤은 미아의 패로 되돌아가 있었다. 남해가 D-패드를 몇 번 터치하자 막야는 방금처럼 상검을 뽑아내 한껏 높이 치켜들었다.
“레벨 4 상검 토큰에 막야를 튜닝! 레벨 8 [천위의 용귀신]을 싱크로 소환!”
[천위의 용귀신/Lv8/3000/0]
남해의 D-패드가 [Battle Phase]패널을 빛냈다. 용귀신이 쏜살같이 달려가 미아를 향해 주먹질했다. 방금처럼 바닥에서 올라온 암반이 용귀신의 주먹을 막았다.
콰앙-!! 귀 아픈 충돌음과 함께 바위가 흔들리고, 충격파로 미아 주변의 공기가 흔들렸다. 뒤이어 쏟아진 수정 폭풍우까지도 바위는 버텨냈지만 금가고 깨진 모습과 곳곳에 꽂힌 수정으로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나미아/LP 8000 → 2000
“턴 종료.”
-강남해/LP 1500/패 2장
남해는 미아의 눈이 흔들리는 것을 봤다. 지금이라면 미아를 설득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 죽음으로 향하는 치킨 게임을 멈추고 이성적으로 대화할 수 있다.
“누나. 이런 일 그만둬요.”
“뭐…?”
“이건 아닌 거 같아요. 다른 방법이… 있을 거예요.”
“다른 방법?”
미아의 몸이 떨렸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어떻게든 반박을 하고 싶어했다. 그러다 미아의 눈동자가 옆의 그림자… ‘아빠’가 있는 곳에 멈췄다.
“아빠…”
미아는 ‘아빠’가 늘 하던 말을 떠올렸다.
아빠는 우리 딸을 믿어.
그러니까, 자기도 자신을 믿기로 했다. 이 길의 끝에는 반드시 정답이 있을 것이다.
미아는 목소리에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다시 그녀가 눈을 떴을 때 더는 눈동자가 흔들리지 않았다.
망설임, 공포… 그런 감정 대신 확신에 찬 눈동자로 변해있었다.
미아는 덱으로 손을 가져가 카드를 뽑았다.
“아니. 다른 방법은 없어.”
드로우한 카드를 확인한 미아는 그 카드를 패에 넣고 세트 카드로 손을 뻗었다. 세트되어 있던 카드가 펼쳐졌다.
“함정 발동. [트랩트릭].”
“드라가이트의 효과로 무효로 합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드라가이트로 막으라고 발동한 것 같은 효과다. 하지만 막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되면 미아의 다른 카드는 막을만한 카드기를 바라는 것밖엔 없다.
“패에서 [테라포밍]발동. 덱의 [지박뢰]를 패에 넣겠어.”
“지박…”
지박. 남해는 그 이름에 위화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 위화감을 애써 무시했다. 아닐 거라고.
“지박뢰 발동. 발동 처리 시의 대상은 [천위의 용귀신]. 이제 패로 올라온 가젤을 일반 소환해 효과 발동.”
“그렇다면 [천위의 용귀신]의 효과를…”
천위의 용귀신이 몸을 움직이자, 바닥에 거대한 지상화가 번쩍였다. 용귀신의 발 밑에서 자라난 손아귀들이 용귀신을 단단히 붙들었다. 용귀신의 효과가 막힌 것을 본 남해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 지상화를 본 순간 남해는 그 위화감을 더는 무시할 수 없게 됐다. 자신이 생각한 그것이 확실해졌으니까.
“가젤의 효과로 덱에서 레벨 5 악마족 몬스터, [지박수인 스톤 스위퍼]를 패에 넣는다.
이 지박수인을 버리고 레벨 1 악마족 튜너 몬스터 [지박수인 그랜드 키퍼]를 패에 넣고 지박뢰의 효과로 일반 소환.”
[지박수인 스톤 스위퍼/Lv5/1600/1600]
[지박수인 그랜드 키퍼/Lv1/300/300]
“마지막으로 패에서 [이계공명-싱크로 퓨전]발동!”
남해는 저 카드를 기억하고 있었다. 어디서 언제 봤는지는 기억 못 했지만, 그 효과는…
“스톤 스위퍼와 그랜드 키퍼를 소재로 소환 가능한 싱크로 몬스터와 융합 몬스터를 하나씩 특수 소환한다!
[지박계레 지오그렘린]과[지박계레 지오그렘리나]를 필드에 해방시킨다!!”
[지박계레 지오그렘린/Lv6/2000/1000]
[지박계레 지오그렘리나/Lv6/2000/1000]
미아의 필드 바닥에 금빛 지상화와 하늘색 지상화가 동시에 나타났다. 우직, 우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렸다.
바닥을 부수며, 괴성과 함께 그림자 덩어리의 괴물 두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 무섭지 않게 생긴 괴물이었지만 칼을 차고 사슬로 칭칭 묶인 그 모습과, 어쩐지 기분나쁘고 혐오스러운 울음소리에 꺼림칙한 기운이 바닥에서부터 스윽 올라오는 것만 같다.
당장 두 몬스터의 공격력은 드라가이트나 용귀신에 비할 바가 안된다. 이계공명의 디메리트로 저 둘을 이용한 엑시즈 소환 같은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남해는 더욱 불길했다. 그런 몬스터를 소환할 리 없으니까.
“지박… 지박… 지박이면…”
남해는 그 순간 지박신들의 공통점이 떠올랐다.
지박, 말 그대로 땅에 묶인 존재들이기에 필드가 없다면 묶일 곳을 잃고 파괴되어 버리는 카드들이었다. 그리고 땅에 묶인 대신…
“지오그렘리나의 효과 발동. 지오그렘린은 이 턴 상대를 직접 공격할 수 있어.”
…물리적인 제약을 무시하고, 땅 어디서라도 솟아날 수 있다고.
마치 수술실 사인처럼 그 사실이 떠오른 순간 [Battle Phase]패널이 붉게 빛났다. 남해가 그 다음에 벌어질 일을 인식하기도 전에 바닥에서 올라온 시커먼 덩어리가 교통사고처럼 남해를 들이받았다.
콰앙-!!
“커흑?!”
남해는 그대로 뒤로 날아가 바닥을 두세바퀴 굴렀다. 뼈에 금이라도 간 것처럼 팔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어렵사리 팔을 움직여 바닥을 짚어보아도 마치 얼음판 위에 쓰러진 것처럼 손이 자꾸 미끄러진다.
세 번째에 손은 더 미끄러지지 않았다. 대신 바닥에서 올라온 그림자가 왼손을 단단히 옥죄이고 있었다. 마치 용귀신을 붙들었던 그 모습처럼.
“어…? 어?”
그다음은 등 뒤에서 뻗어온 그림자가 마치 목줄을 걸듯 목을 조이며 남해의 몸을 뒤로 홱 당겼다.
분명히 땅바닥의 차가운 감촉이 느껴지는데도, 땅바닥이 아니라 물 위인 양 몸이 천천히 가라앉고 있었다. 오른팔에 온 힘을 주어 바닥에 걸고, 어떻게든 몸을 밖으로 빼내려 애썼지만 발버둥칠수록 점점 더 깊게 빠져들 뿐이었다.
산 채로 묻히고 있는 그 기분에 남해는 당장이라도 비명이 나올 것 같았지만 그림자는 그 비명조차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남해의 양 턱까지도 단단히 붙들었다.
땅속으로 가라앉은 몸이 깊은 곳에서부터 서서히 감각이 흐려지고 있었다. 라이프를 잃고 몸이 흐려질 때의 기분과 똑같았다.
저편에 있던 용연은 도저히 그 풍경을 두고 볼 엄두가 나지 않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가이저도 처지는 비슷했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저 상황에 아무 손도 쓸 수 없었다.
…거는 것은 하나의 영혼.
가이저가 무언가 떠올렸다. 그 핏빛 눈동자가 선명하게 빛났다.
-“분명히 [거는 것은 하나의 영혼]이렸다!”
가이저의 외침에 용연은 바로 그 의도를 깨달았다. 용연이 말리기도 전에, 가이저는 용연을 뿌리치고 앞으로 달려가 남해를 그림자의 늪에서 끌어냈다.
-“가이저 공! 멈추시오!!”
하나의 영혼이다. 그 주인을 선언한 적은 없다.
그러니까 굳이 남해가 지불할 영혼이 자신의 영혼일 필요는 없었다.
“윽?!”
남해의 빈자리를 메우듯 그림자가 가이저를 붙들었다. 그리곤 그 거대한 몸을 마치 간식거리 먹듯 순식간에 집어삼켰다. 가이저의 꼬리와 날개 끝을 마지막으로 가이저의 모습은 완전히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게 남해가 그림자에서 뽑혀 나와 마지막으로 본 모습이었다.
“가이저…?”
가이저를 집어삼킨 그림자는 아무 일 없던 듯, 물에 떨어트린 먹물 한 방울이 사라지는 것처럼 온데간데 없었다.
“가이저?”
-강남해/LP 1500 → …0
ㄲ□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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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급오가안(埃及烏加眼)] = [우자트의 눈]을 뜻하는 말입니다.
호라서지안이라던가 다른 표기도 있는데 이쪽이 제일 괜찮아 보여서 채택했습니다.
소설이 또 늦어졌네요. 틀은 잡았는데 적당한 카드들이 안 떠올라서 엄청 늦었습니다.
드라가이트도 안 쓰고 싶었는데 도저히 괜찮은 방법이 없어서 쓰고 말았습니다.
삽화는 루리웹 커미션 게시판 [루리웹-0782649389] 님에게 커미션 맡긴 물건입니다.
네, 이 에피소드는 제목 그대로 달리고 달려 도달한 터닝 포인트입니다.
그간 일상편이 쭈욱 진행 됐다면, 이 앞은 스토리 파트의 차례.
앞으로 어떻게 될까요? 그건 기다리는 즐거움으로 남겨두겠습니다.
19화도 잘 부탁드립니다.
(IP보기클릭)121.169.***.***
여기서 어둠의 듀얼이라고... 가이저가 죽는다고... 어우 얼얼하네요
(IP보기클릭)121.173.***.***
제목부터가 터닝 포인트인걸요 하하 2시즌에서 구상과 달라진 부분도 있고, 구상대로 간 부분도 있는데 2시즌 만들기로 한 그 순간부터 결정했던 사안입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계속 상승장만 찍었으니 하락장도 찍을 차례잖아요 하하하
(IP보기클릭)121.173.***.***
19화... 로그 초반만 있스빈다... 뒤도 금방 써오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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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터닝 포인트인걸요 하하 2시즌에서 구상과 달라진 부분도 있고, 구상대로 간 부분도 있는데 2시즌 만들기로 한 그 순간부터 결정했던 사안입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계속 상승장만 찍었으니 하락장도 찍을 차례잖아요 하하하 | 24.01.19 00:05 | |
(IP보기클릭)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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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저는 오늘도 트와일라잇 스토리 에피소드 연재를 미루고 있습니다... 완결을 내긴 내야 할 텐데... | 24.01.18 23:59 | |
(IP보기클릭)121.173.***.***
얀데레 멘헤라에서 데레가 없고 집착과 파괴만 남았으니 그냥 가해자 피해자인 것으로... 남해의 여복 포텐은 언젠가 터지겠습니다만, 그게 지금은 아닙니다 | 24.01.19 00:06 | |
(IP보기클릭)39.7.***.***
여복(조문객) | 24.01.19 01:02 | |
(IP보기클릭)1.238.***.***
남해에게 부디 어느 하프보일드 탐정처럼 엮이는 여자마다 죄다 악녀고, 그 끝은 언제나 비극이라는 징크스가 없기를 바랍니다... ㅠㅠ 그나저나 저는 언제 연재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까요... 일단 미뤄두고 있는 트와일라잇 스토리 연재부터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은데... | 24.01.19 01:18 | |
(IP보기클릭)58.143.***.***
역시 유기오에는 어둠의 듀얼 만한게 없는 것 그림자가 또 나오니 섀도르상 또 등판하는 줄 알았습니다
(IP보기클릭)121.173.***.***
19화... 로그 초반만 있스빈다... 뒤도 금방 써오도록 하겠습니다... | 24.01.19 00:07 | |
(IP보기클릭)39.7.***.***
그러니까 요컨대 이젠 남이야 정말 남이야 씨는 현재 대충 '아빠 호소인'에 홀려 맛이 간 거로군요 그리고 나선 끝엔 '이래선 만족할 수가 없어'로(아닙니다)
(IP보기클릭)118.235.***.***
이제 2시즌 스토리는 시작이니 다음을 기대해주시길 아직 교대표도 남았고 회수할 떡밥은 가득함다 | 24.01.19 10:4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