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못을 들이다
마당에 연못을 들이는 일은 궁금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
요 내 안에 당신을 들이는 일처럼 나는 그 넓이를 헤아릴 수
없었어요 뒷짐을 지고 몇날 며칠 소금쟁이 물을 짚듯 혼자
맴돌았지요
포클레인 기사가 와서 흙무더기를 퍼내고 나서야 가까스
로 허공이 땅속에 숨어 있었다는 걸 알았고요 내가 발자국
새기며 걷던 자리가 바로 허공의 둘레였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지요 그 둘레는 하물며 날카로웠어요
움푹 팬 못의 깊이를 무어라 할까요 반지하 셋방의 도배
풀 마르기를 기다리는 오후 한때 같다고나 할까요 때로는
음흉하게 때로는 느긋하게 남의 집 문전을 들락거리는 건달
의 겨드랑이 같다고나 할까요 이 깊이에 물을 불러들이는 궁
리는 하는 동안 연못의 수위는 금세 허벅지까지 오르더군요
텅 빈, 연못도 아닌 허공이 마른입을 내밀고 얼마나 젖을
빨고 싶어 하는지, 머잖아 좌우의 골짜기가 소란스럽게, 어
느 때는 유치원생처럼 칭얼거리며 물소리를 내려보내고 싶
어 하는지 나는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보았지요 당신이 내게
괴어 오듯이 물이 오면 나는 못물이 어디서 왔는지 그가 살
던 골짜기의 주소라도 귀띔해달라고 보채기도 할 겁니다만
당(塘)이든 방축(防築)이든 지당(池塘)이든 이름은 그 무
엇이라도 심상한 것이지요 내가 따로 기별하지 않아도 개구
리도 물방개도 우렁이도 올 것이며 박새도 어치도 직박구리
도 돌미나리도 부들도 피는 꽃도 지는 잎도 쉬러 올 것이며
어쩌다 바람이 바리깡을 들고 와 수면의 머리를 파랗게 깎
아주고 가는 가을도 오겠지요
누구나 흉중에 언덕과 골짜기와 연못의 심상이 있을 겁니
다만 그동안 고심이 깊어 나한테 그 어떤 선물 한번 하지 않
고 살았어요 당신의 숨소리를 받아 내 호흡으로 삼을 수도 있
다면 세상의 풍문에 귀를 닫고 실로 슬프지도 기쁘지도 않
게 찰랑거릴 수 있다면 나는 그걸 연못의 감정이라고 부를
까 해요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안도현, 창비시선 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