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의 경계
꽃밭을 일구려고 괭이로 땅의 이마를 때리다가
날 끝에 불꽃이 울던 저녁도 있었어라
꽃밭과 꽃밭 아닌 것의 경계로 삼으려고 돌을 주우러 다
닐 때
계곡이 나타나면 차를 세우고 공사장을 지나갈 때면 목
빼고 기웃거리고 쓰러지는 남의 집 됫박만 한 주춧돌에도
눈독을 들였어라
물 댄 논에 로터리 치는 트랙터 지나갈 때 그 뒤를 겅중겅
중 좇는 백로의 눈처럼 눈알을 희번덕거렸어라
꽃밭에 심을 것들을 궁리하는 일보다 꽃밭의 경계를 먼저
생각하고 돌의 크기와 모양새부터 가늠하는 내 심사가 한심
하였어라
하지만 좋았어라 돌을 주워들 때의 행색이야 손바닥 붉은
장갑이지만 이 또한 꽃을 옮기는 일과도 같아서 나는 한동
안 아득하기도 하였어라
그렇다면 한낱 돌덩이가 꽃이라면 돌덩이로 가득한 이 세
상은 꽃밭인 것인데 거기에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아무 욕심
이 없어졌어라
나와 나 아닌 것들의 경계를 짓고 여기와 여기 아닌 것들
의 경계를 가르는 일을 돌로 누를 줄 모르고 살아왔어라
꽃밭과 꽃밭 아닌 것의 경계는 다 소용없는 것이기는 하
지만
경게를 그은 다음에 꽃밭 치장에 나서는 것도 나쁘지 않
은 일이라고 결론을 내렸어라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안도현, 창비시선 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