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미
호미 한자루를 사면서 농업에 대한 지식을 장악했다고 착
각한 적이 있었다
안쪽으로 휘어져 바깥쪽으로 뻗지는 못하고 안쪽으로만
날을 세우고
서너평을 나는 농사라고 했는데
호미는 땅에 콕콕 점을 찍으며 살았다고 말했다
불이 호미를 구부렸다는 걸 나는 당최 알지 못했다
나는 호미 자루를 잡고 세상을 깊이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너른 대지의 허벅지를 물어뜯거나 물길의 방향을 틀어 돌
려세우는 일에 종사하지 못했다
그것은 호미도 나도 가끔 외로웠다는 뜻도 된다
다만 한철 상추밭이 푸르렀다는 것, 부추꽃이 오종종했다
는 것은 오래 기억해둘 일이다
호미는 불에 달구어질 때부터 자신을 녹이거나 오그려 겸
손하게 내면을 다스렸을 것이다
날 끝으로 더이상 뻗어나가지 않으려고 간신히 참으면서
서리 내린 파밭에서 대파가 고개를 꺾는 입동 무렵
이 구부정한 도구로 못된 풀들의 정강이를 후려치고 아이
들을 키운 여자들이 있다
헛간 시렁에 얹힌 호미처럼 허리 구부리고 밥을 먹는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안도현, 창비시선 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