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계장 힙합
자정이면 멍해질 거야. 양계장의 닭들은 너무 바보같이
살아서 자기가 알인지 닭인지도 모를 거야. 나만 그런 줄
알고 옆을 둘러보면, 혼자만 그런 게 아니라 바보 같은 놈
들이 수천수만 마리나 줄지어 서 있는 거야. 하나같이 바겐
세일로 산 싸구려 모피 코트를 입고, 누군가가 쓰레기통에
쑤셔 넣은 우산처럼 우두커니 섰지.
잠을 재우지 않고 알만 낳게 할고 형광등을 줄지어
빼곡하게 켜 놓은 양계장의 좁다란 닭장 속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서 있어야 하는 닭들은 자기가 뭐 하는 놈인
지 진짜 모른다. 그런데 어느 할 일 없는 놈이,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와 같은 쓸데없는 질문을 만들었을까. 내가 병
아리였을 때, 무서운 아버지 앞에서 이모가 눈치 없이 물었
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나는 진실을 지키려는 안간
힘으로 눈을 까뒤집고 기절을 했지. 이후로 평생 양자택일
에 시달렸어.
새벽 세 시. 밤새도록 불을 켜 놓은 닭장에서 알을 낳으
려고 끙끙거리는 닭처럼 나는 눈을 말똥거리고 있다. 제길,
항문으로 말이야. 어쩌다 잘못하면 피똥을 싸게 되는 줄도
모르면서 무엇을 써 보겠다고 작심하고 밤새도록 책상 앞
에 앉은 꼴이라니. 아니, 내가 심한 암치질에 걸렸다는 얘
기 안 했던가요? 마음껏 피똥을 싸는 것도 어려울 정도였
답니다.
당신은 지금 멍해. 홍콩 가려고 플라스틱 막걸리병에 짜
넣은 본드를 들이마신 중딩이 같아. 히로뽕 대신 감기약을
한 통씩이나 물 없이 주워 삼킨 행려병자 같아. 그리고 당
신 골통 속에 거꾸로 서 있는 아랫도리가 쑤시듯이 아픈
거야. 누가 함부로 범한 그레이 하운드 레그혼의 똥구멍처
럼. 아, 이뻐라! 이처럼 쓸데없는 자의식이라니, 예찬해야
하지 않을까? 환자라는 것을 알고 있는 환자는 이미 쾌차
한 것이겠지. 담당 의사는 나를 오랫동안 그루밍해 왔지만,
나는 손바닥 위에 있는 빨간약과 파란약이 아무 약효가
없다는 것을 알아.
북극성도 보이지 않는 희끄무레한 밤. 서울 하늘 아래
그 많은 노새족, 당나귀족들은 귓전에 철렁거리는 방울소
리도 없이 그저 내달린다. 그저 죽어라고 자기 주인을 싣고
달린다. 목마에세 불온하거나 음란한 노래를 들려주지 마
라. 목마의 앞길을 가로막지 마라. 우는 목마의 목을 껴안
고 뺨을 부비지도 마라. 그냥 달리고 달리다가 경첩이 빠져
고갯길에 나뒹굴게 놔둬라. 그러니 어찌할 거냐. 계속 ↗뱅
이 쳐라, 씨1발놈들아! 이런 식으로 당신들을 싸그리 욕해
본들 기분은 나아지지 않아. ↗뱅이 칠 당신은 나. 내가 닭
이야.(그런데 이 연은 패러디로도 별로야. 하여튼 그 사람
은 박인환에게 잔인했지.)
새벽 네 시나 다섯 시 쯤. 뿌연 형광등이 켜진 방 안에
들어앉아 열 시간째 컴퓨터 자판을 타닥거리고 있으면 저
절로 자신이 수간당한 닭 같다고 느껴질 거야. 혹은 새로
나타난 우두머리 혹은 오래전부터 그놈이 약해지길 기다
려 왔던 경쟁자가 쪼아 놓아 형편없이 너덜너덜해진 벼슬
을 녹슨 단검처럼 달고 있는 아스팔트 위의 수탉. 여기까지
읽었으니, 이마트에서 좋은 닭고기를 고르는 팁을 줄게. 잡
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일수록 좋은 닭고기야. 간단명료하
지. 나는 문예지를 볼 때(2019년 기준) 시인들의 약력부터
보고, 1990년생 이전 태생이라면 거들떠도 안 봐. 등단한
지 10년만 되면 모조리 폐닭, 쉰내 나는 쉬인이지.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얼만데 아직도 닭장 같은 술집에
서 술을 빨며 뇌세포를 죽이는 거야, 거냐고? 모스크바
행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서 러시아 게이와 입속에 든 맥
도날드 햄버거를 서로 나눠 먹고 오면 안 되나? 리우데자
네이루의 삼바 축제에 가서 다리가 꼬일 때까지 춤을 추
다가 오든지, 케냐 같은 데 가서 표범이나 그 비슷한 고양
이과 동물을 사냥하는 흉내라도 내어 보면 안 되나? 한국
작가들은 물신과 만나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것에 대
한 복수로 끔찍하고 엽기적인 이야기만 잔뜩 써 대는 거라
고. 그런 상상력을 High Mordern인 양 착각하지만 사실은
Gothic Fantasy처럼 구리고 구려. 생계가 없고 생활이 없
으니 모던이 생겨날 리 없다.
우리는 70년 넘도록 이견을 가진 사람에게 빨갱이 낙인
을 찍어 왔어. 그랬던 한국인의 DNA가 민주화 시대라고
해서 하루아침에 형질 변화를 일으키진 않았겠지. 옛날과
달라진 점이라면, 고작 정치적 올바름 말고 아무런 변변
한 이념도 없는 것들이 자기 심사에 들지 않는 이들을 향
해 자유주의자라고 손가락질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것이랄
까. 예, 예, 꼴리는 대로 부르셔요. 나는 김수영 장정일입니
다. 포1르1노 작가라고 비웃지 않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올시
다. 나는 세상의 항문을 빨겠습니다. 당신 혀가 닿지 않는,
당신이 빨지 못하는 항문을 빨아 드리겠습니다. 진한 커피
향이 올라오는군요. 이제 내 혀를 당신 입에 넣어 드리지
요. 기절을 하든 죽은 체를 하든 편한 대로 하셔요.(“꼬끼
오” 소리를 놓쳐 버렸어. 닭대가리!)
눈 속의 구조대
장정일, 민음의 시 2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