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10월 25일 ~ 1923년 6월 17일까지 벌어진 러시아 내전(또는 적백내전)은
러시아에 막 내려앉은 공산주의의 위기를 불러일으켰다.
공산주의자들로 이루어진 적군과 그 외 나머지 많은 세력이 연합한 백군의 대결은
많은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으며 그 와중에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짜르)였던
니콜라이 2세 일가까지 적군에게 몰살당하는 사태를 초래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폴란드, 우크라이나의 독립선언이 있었던 시기이기도 하며
외부에서는 독일과의 전쟁에 참여하였던 '연합국'의 군대가 러시아 영내를 침범하는 등
그야말로 혼란의 극을 달리던 시기였다.
하지만 적군, 레닌의 볼셰비키는 이 모든 세력을 쳐부수고 러시아에 확고한 공산주의를 뿌리내리며
소비에트 연방(소련)을 세우게 되며 세계 최대의 공산주의 국가를 성립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시기는 만주, 연해주 등지에 있던 독립군, 독립운동가들에게 있어 가장 큰 고난의 시기였다.
백군을 돕는다는 이유로 출병한 일본군이 시베리아를 침공함에 따라
만주와 연해주까지 영향력을 넓혔고, 당시 그곳에 거주하던 많은 한인들이 목숨을 잃게 되었다.
(이시기에 일어난 사건은 간도 참변과 신한촌 참변 등이 있다.)
아래의 사진들은 1918년 9월에 촬영된 것으로
체코인으로 이루어진 체코 군단에 의해 점령된 블라디보스토크에
각국의 연합군이 입성하는 모습이다.
일본이 7만 3천명으로 가장 많은 병력을 파견하였으며
서부 전선 쪽에 이미 많은 병력을 파병한 상태인
미국, 프랑스, 영국등은 물자 지원을 해주는 형태로 협조하였다.
그리고 시베리아에 주둔중이었던 백군이 일본군과 함께 전투를 치렀다.
초기에는 연합국과의 협정으로 블라디보스토크만 점령하겠다 약조한 일본은
이후 일방적으로 약속을 깨고 사할린, 연해주, 만주 철도 등을 침공하며 승승장구하는 듯 했으나
적군과 파르티잔의 게릴라 전법에 시달렸으며 이에 대한 보복으로 민간인을 학살하는 실수를 저질러
전황이 적군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도록 만들고 말았다.
결국 1920년 알렉산드르 콜차크의 시베리아 정권이 볼셰비키의 공격으로 붕괴되었고
더 이상 군대를 주둔시킬 수 없었던 일본군은 결국 군대를 돌리고야 말았다.
적백내전 시기에 일본군이 소모한 예산은 당시 기준으로 4억 3859만엔이었으며
사망한 병력은 약 3,000 ~ 5,000명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