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허물없어 보이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둘의 관계가 유카가 말한 것처럼 단순한 역연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방금까지 주변을 압도하던 살기도 없어져 팽팽했던 분위기가 누그러져 있었다.
일단, 살았다는 것 만큼은 알겠다.
유카리님의 등장으로 내 목숨은 물론이고, 관계 없던 소녀의 목숨도 구원 받았다. 이거 유카리님에게 큰 빛을 진 거 같네.
마치, 오랜 친구를 보는 듯한 유카리님의 태도에 아까까지 살벌했던 유카가 곤란해 하면서도 못 마땅한 듯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었다.
부채로 입가를 가린 유카리님의 눈이 살짝 반호를 그렸다.
「뭐, 네가 저 애한테 짖굿게 군 이유 정도는 대충 상상이 가지만 말이야.」
「쓸데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썩 꺼지지 그래?」
「아직, 말도 안 꺼냈는데, 과민하게 반응할 것까지야.. 설마? 그거야??」
「크윽... 그 이상 말 하면 죽인다..」
유카와 대화하는 유카리님의 모습은 정말 능구렁이 같았다. 유카는 얄밉게 구는 유카리님을 사나운 눈으로 노려봤지만, 그럴수록 유카리님은 즐거워했다.
「별 의미 없이 폼이나 잡다가 전부 허세라는 게 간파 당한 거겠지. 너도 참 질리지도 않나 보구나.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러고 있어?」
「그 입 닥치라고...」
「어머. 딱히 비밀인 것도 아니잖아. 알만한 애들은 다 아는 사실인데. 단지, 네가 그렇게 민감하게 구니까, 다들 입을 다물고 있는 거지.」
「그만 말하라고!」
「그렇게 부끄러워 할 거면 애초에 그만 두면 되잖아? 그거 알 어? 네가 하는 그 의미 없이 멋 부리는 거 말이야. 세간에서는 중2병이라고 불러.」
「으아아아-!」
가차없이 이어진 유카리님의 지적에 유카가 참지 못하고 고함을 내질렀다. 저게 바로 팩트 폭격이라는 건가. 실로 무시무시했다. 말로 상대의 멘탈을 산산조각 내 놓다니. 저것이 바로 야쿠모 유카리라는 요괴인가.
독설도 그렇지만, 저 조소로 가득한 눈이 상대방의 속을 뒤집어 놓게 만들고 있었다. 세상에 저렇게 얄미울 수가 있을까? 상대를 화나게 만드는데 있어 타고난 소질이었다. 그걸 정면에서 받고 있는 유카는 오죽할까?
열이 머리끝까지 받친 듯한 유카가 이를 빠득빠득 갈면서 말했다.
「유카리. 넌,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그런 식으로 날 놀려 먹으면서 약 오르게 해!!」
「놀리는 게 아니라, 사실 대로 말한 것 뿐인걸?」
「그런 태도가 열 받게 만든다고!!」
인내의 끈이 끊어진 유카가 양산 끝을 유카리에게 겨누었다. 그리고 노기 서린 얼굴로 사납게 노려보며
「오늘이야 말로 죽여 버릴 테다!」
외치는 것과 동시에 고막을 찢어 놓는 듯한 파공음이 터져 나왔다. 일순, 강한 빛이 눈앞을 메우더니 전봇대를 옆으로 세운 듯한 굵기의 빔이 해바라기 밭을 갈랐다. 얼마나 강대한 요력을 담고 있었는지, 열 보 정도 떨어진 위치에서도 뜨거운 열기가 전해져 온다. 그 엄청난 열량의 극태 레이저의 직선상에는 당연하게도 유카리님이 있었다.
그러나 당연하다는 듯 레이저는 유카리님에게 닿지 않았다. 태양 같은 빛의 격류에 휩쓸리기 직전에 조금 떨어진 장소로 순간이동. 조금도 힘을 들이지 않고 피해내는 것이었다. 그 정도는 예상 했다는 듯 한 번 더 극태 레이저가 유카리를 향해 쏘아진다.
「죽어!」
한 발만 해도 엄청난 요력을 소모할 텐데, 그것을 두 발, 세 발, 네 발, 다섯 발. 유카리님이 순간이동하며 피해낼 때마다 연달아서 쏘고 있었다. 차원이 다른 공방에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무는 것도 잊은 채, 멍하니 바라보며 구경했다.
이윽고, 빔으로는 맞출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유카는 돌연 그 자리에서 사라져 유카리님의 면전까지 거리를 좁혔다. 원거리 사격에서 근접전으로 전환한 것이었다. 유카는 빔의 포대로 썼던 양산을 휘두르며 공격했고, 그에 맞서 유카리님은 접은 부채로 대항했다.
양산과 부채가 합을 나누며 부딪칠 때마다 철을 내려치는 듯한 금속음이 울려 퍼졌다. 무기로 보기 애매한 저 양산과 부채에 대체 어느정도의 힘이 담긴 것인지, 상상하기도 싫어진다. 소리만 들어서는 거대 로봇끼리 육탄전을 벌이는 수준이다.
그 엄청난 공방을 넋 놓고 구경 하던 나는 불현듯, 고개를 돌려 소녀를 쳐다봤다.
「대단해..」
마사다양도 나와 별 다르지 않은 감상인지, 완전히 넋을 놓고 감탄했다. 대요괴 끼리의 싸움은 어지간해선 구경할 수 없는 진풍경이니 당연하겠지. 웬 만한 요괴들은 대요괴가 싸우는 모습을 죽을 때까지 보지 못할 테니까. 나도 오늘 처음 본다.
그렇게 서로 양보 없이 합을 이루는 공방이 이어진지 수분 째. 두 대요괴는 일단, 서로 거리를 벌리며 대치 상태로 돌아갔다. 그리고 격렬한 싸움이었다는 것을 말해주듯 지친 얼굴로 거친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눈빛을 교환하며 누구 먼저 움직이지 않고 있던 둘은 마치, 짠 것처럼 동시에 웃었다. 입가를 올리며 도전적인 미소를 지으면서 서로를 인정하는 듯한 기류가 생겨난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유카리님이었다.
「실력이 녹슬지 않은 모양이네.」
「내가 할 말이야.」
그리고 누구 먼저랄 것도 없이 작은 웃음을 터트린다.
아까까지 격렬하게 싸워 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 둘에게서 아무런 적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심지어 먼저 공격해온 유카도.
유카리님이 시원한 미소로 말했다.
「이 정도 힘이 있으면 굳이 멋 부려가며 포장할 필요도 없을 텐데.」
「포장한 게 아니야. 날 우러러보는 녀석들의 기대에 부응 했을 뿐이야.」
유카가 한탄하는 어조로 내뱉었다.
「멋대로 기대해 놓고, 멋대로 실망하고. 내 행동 하나하나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것은 녀석들이라고.」
그렇게 유카는 자신에게 과도한 환상을 품는 자들에 대한 불만을 표출했다. 그 중에는 물론, 나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확실히 유카의 말대로 나는 그녀의 행동을 자기 형편에 좋게 해석해 버렸다. 그리고 멋대로 기대해 그녀로 하여금 부응해 주기를 바랐었다. 그 결과, 뜻하지 않게 곤란하게 만들었고, 그런 사실조차 눈치 채지 못했다.
그런데, 추궁을 해서 창피까지 주다니.
몰랐다곤 하나 나 최악이구나.
내가 한 행동은 다소 괴롭힘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그런 유카의 사정에도 불구하고, 유카리님은 냉정하게 쓴 소리를 뱉어냈다.
「그런 건 네 변명에 지나지 않아. 폼이나 잡으면서 흰소리를 해대니까, 오해를 사는 거잖아? 그럴 소지를 만든 네 잘못이면서 구차하게 남 탓이라니.」
「그럼, 어쩌라는 거야? 나 정도 되는 대요괴면 좋든 싫든 경외의 시선을 받게 된다고. 위엄이 없으면 경멸 받고 말아. 난 그게 견딜 수 없단 말이야.」
「자의식 과잉도 정도껏이지. 네 그런 점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변함 없구나.」
질린 듯한 어조였다. 유카리님은 눈앞의 고민하는 유카가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그에 반해 유카는 눈에 힘을 주며 분개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평행선에 대화는 끊어져 침묵이 이어졌다.
한심하다는 시선과 분노한 시선이 교차하며 교환한다. 싸움이 언제 다시 재개 될지 모르는 일측촉발의 분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유카가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너랑은 말이 안 통해.」
「그건 네가 한 쪽 귀를 막고 있어서겠지. 듣기 싫은 소리도 받아 들일 줄 알아야 하는데. 유카 넌, 자기 생각만 고집하느라 앞뒤가 꽉 막혀 있어.」
「고집쟁이라고 불러져도 상관없어. 네 말 만큼은 듣고 싶지 않으니까.」
「뭐. 너의 그런 점이 답답하긴 해도 싫진 않아. 귀여우니까.」
풉, 하고 유카리님이 실소를 터트렸다. 비아냥같은 행동에 유카는 짜증을 내며 혀를 찼다.
「재수 없는 년.」
그렇게 툴툴대면서 유카는 몸을 홱 돌려 어디론가 걸어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멀어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유카리님은 고양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키득 거렸다. 그리고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서웠지?」
그런 물음에 나는 눈치를 보느라 뜸을 들이다 조금 늦게 대답했다.
「... 네.」
「유카는 다혈질이긴 해도 사리분별 정도는 할 줄 아는 요괴니까, 너무 무서워 할 필요는 없어.」
유카리님은 내게 안심 시키는 듯한 말을 하고는 시선을 옮겨 마사다양을 바라봤다. 뻣뻣하게 굳어 있는 소녀에게 유카리님이 싱긋 웃어 보인다.
「직접 보는 건 처음이지? 마사다 히요리양.」
「아.. 네.」
「정말 용감하던데? 오빠에게 뒤쳐지지 않을 정도야.」
「저기.. 보고 계셨던 거예요?」
혹시나 싶은 물음에 유카리님은 고개를 끄덕여 긍정했다. 그럼, 왜 진즉 나서지 않았던 걸까? 유카가 무해하다는 걸 알기에 그런 거겠지만,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나랑 마사다양이 얼마나 무서워했는데!
나랑 같은 생각인지, 뿌루퉁해진 마사다양에게 다가온 유카리님은 인자한 미소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면서 대견하다는 듯이 말했다.
「히요리가 멋져 보여서 무심코 구경하고 말았거든.」
「저.. 정말요?」
칭찬이 싫지 않은 지, 마사다양은 양 볼을 붉게 물들이며 쑥스러워했다. 솔직함이 고스란히 드려난 반응이 너무 귀엽다. 심장이 위험할 정도로. 마사다양은 까마귀이긴 하나, 지금은 꼬리를 흔들고 있는 강아지로만 보인다.
유카리님도 귀엽다고 훈훈한 엄마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오죽하면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고속 재생한 것처럼 빨라질까. 보통 저러면 애 취급한다고 싫어할 만도 한데, 마사다양은 저항은커녕 좀 더 쓰다듬어 달라는 듯 머리를 더 내밀고 있었다.
「에헤헤... 기분 좋아여..」
저 애 좀 위험한 거 아니야?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칭찬에 취약한 모습이었다. 그러다 뚝, 유카리님은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멈추었다. 그리고 말아 쥔 손을 입가에 다져다 대며 작게 헛기침을 했다.
「크흠... 그런데, 히요리양.」
「네?」
「두려움을 극복하고 맞선 건 용기 있는 일이야. 칭찬 받아 마땅하긴 한데..」
마사다양이 묻는 듯한 눈을 했고, 침착해진 유카리님이 그에 설명했다.
「너무 무모했어.」
「그러면 안 되나요?」
「만약, 유카가 진심이었다면 너와 소우지는 내가 나설 새도 없이 죽었겠지. 용감한 것도 좋지만, 앞으론 좀 더 자신과 상대방의 역량을 파악하고 움직였으면 좋겠어.」
「네..네에...」
칭찬 한마디에 날아갈 듯 기뻐하던 애가 쓴소리 들었다고 시무룩해졌다. 적잖이 온도차가 큰 반응에 나는 이 애(마사다 히요리)의 행동 원리가 무엇인지 대략 파악 되었다. 정말이지, 겉모습만큼이나 순진한 어린 소녀다. 마사다양이 목숨을 걸면서 까지 나를 지키려 했던 것은 오빠(마사다 타이치)를 포함한 어른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심리에서 기인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이 얼마나 아이다운 이유야.
지켜주고 싶을 정도로 순진무구했다.
그러나 그만큼 위태로운 아이였다.
그 점은 유카리님이 나 이상으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저런 조언을 해주는 거겠지.
마사다양의 행동 원리는 그 나이대의 아이로서는 최고의 향상심을 불러일으키지만, 자칫 잘못하면 스스로를 파멸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이었다. 이대로 잘 자라만 준다면 찬란하게 빛날 수 있는 원석인 반면, 위험에 처하기 쉽거나 벽에 막혀 좌절할 공산이 큰 아이. 나랑 동년배인데도 부대장의 자리까지 오른 히데오가 딱 저런 케이스였다.
그녀석도 어릴 적부터 위험한 짓도 불사하고 다녔었지..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의 히데오와 지금의 마사다양이 엄청 닮아 있었다. 외모가 선남선녀인 것도 그렇고.
무언가에 대한 집착도 엄청나겠지.
너무 기죽지 말라고, 침울해진 마사다양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유카리님은 「이만, 가볼 게. 위급할 때 언제든지 불러. SOS신호로 달려올 거니까.」라는 말을 남기고 스키마에 하반신부터 삼켜져 사라졌다.
그렇게 나와 마사다양 둘 만 남은 해바라기 밭은 풀벌레 소리를 제외하고는 조용했다. 미사다양은 머리를 쓰다듬어져서 다시 기운이 난 듯했다. 감정의 기복이 큰 만큼 다루기 쉬운 아이네. 이참에 나도 머리를 쓰다듬어 볼까? 그런 시시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강한 시선이 느껴졌다.
잊고 있었던 요정. 치르노가 뿌루퉁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그 존재를 뒤늦게 눈치챈 나는 치르노에게 아직도 있었냐는 시선을 보냈다.
「뭐야. 점은 안 치고 싸우기만 했잖아. 결국은 내가 최고의 점쟁이라는 거네.」
불만스러워 하면서도 제멋대로 자신이 최고라는 결론을 내버린 치르노가 같잖아서 그만 코웃음을 냈다.
「그래 인마. 니가 짱이다. 됐냐.」
진지하게 상대해 주기 싫어 적당히 비행기를 태웠더니, 빙정이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공중제비까지 돌았다. 언제 봐도 개 쩌는 리액션이네.
그러면서 슈퍼맨 자세로 하늘 위로 솟아오르면서 「나 최강!」이라고 외치는 치르노의 모습에 실소가 터져 나온다. 저 근자감에 대체 뭔지. 방금 본새가 물고기와 대화하는 아쿠아맨을 보는 듯 해서 더 웃기네. 저 정도면 타고난 예능감이다.
이제 볼일이 없어진 해바라기 밭에 계속 머물러 있을 이유도 없고. 나는 마사다양에게 먼저 요괴의 산에 돌아갈 것을 권했다. 괜히 같이 돌아가다가 행여 모미지에게 들키게 되면 여러모로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그럼, 먼저 가보겠어요.」
마사다양은 연장자인 내게 머리를 조아리고는 요괴의 산을 향해 쏜살 같이 날아갔다. 혹시나 이것도 인연인데, 기왕이면 같이 돌아가자고 우길까봐, 걱정이었는데 기우였나 보다. 아니면, 내가 자의식 과잉이었다 거나.
요즘 여자들과 엮일 일이 많아서 나 자신이 조금 오만해 진 모양이다. 나 실은 여자들에게 그렇게 인기 많은 타입이 아닌데. 뭔가 쪽팔리네. 유카건도 그렇고, 다음부턴 지례짐작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