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 진짜야?!"
직전 들은 유카리(레이무) 이야기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우사미 스미레코는 그렇게 수어 번을 유카리에게 소리치며 되묻고 있었다. 감격에 절은 그녀의 두 손은 움켜져 있는 채 부들부들 떨려가며 적잖은 환희를 표하고 있었고, 마음속에서는 수도 없이 탄성을 질러대면서 더도 없을 행복감을 뽐내고 있었다. 마음을 드러내는 창인 얼굴은 그 중에서도 반응이 가장 심하여 씰룩거리는 입술이 금방이라도 함박웃음을 품을 듯했다.
백 퍼센트 동의를 표할, 그런 스미레코의 반응을 살펴보던 유카리는 일이 잘 풀리게 될 것 같단 안도 반, 또 이유 모를 못미더움 반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의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가벼운 콧숨을 한 차례 내쉬며 유카리가 말을 이었다.
"응, 그래서 이변을 해결할 때까지는 네가 바깥에서 할 일이 있……."
"할래! 할 거야! 아니, 하게 해줘!"
스미레코의 자진은 곧 격한 주장으로, 또 간곡한 청으로 바뀌었다. 눈을 부릅뜨고 방방 뛰어대어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스미레코를 보던 유카리는 방금 들은 이 싱숭생숭함의 이유를 확신해버렸다. 이 중대한 사건을 단순히 놀이 같은 것으로만 보는 가벼움이 못미더운 것이라고.
"저기, 스미레코."
"응, 왜 그래!"
한 손으로 얼굴을 살그마니 쓸어내리며 혀를 찬 것을 숨긴 유카리. 그녀는 냉담히 스미레코를 불렀다. 그때까지도 스미레코는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두근대는 심장에 맞춰 펄쩍펄쩍대고 있었다. 유카리는 가늘게 뜬 눈으로 스미레코를 바라보며 낮게 깔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널 신뢰해. 그러니까 이번에 일을 맡기려는 거고. 솔직히 조건이 적격이기도 한 이유도 있었지만, 그건 신뢰가 밑바탕이 되어있으니까 가능했던 거였지."
"…으응, 그…렇지. 고마워."
방금까지와는 이질적인 온도차를 가진 유카리의 말에 스미레코는 잠시 날뛰던 가슴이 식어감을 느꼈다. 깨닫고 나서는 주위의 불온하고 서늘한 공기가 뜨겁게 달아오른 분위기를 이미 차게 굳혀버린 뒤였다. 그러니 추위는 더욱 혹독하게 다가왔다. 삭막해진 그녀의 눈동자가 잠시 떨렸다. 그러나 마나, 유카리는 설교 비스무리한 말을 계속해나갔다.
"하지만 자세한 이야기도 듣지 않고 나서 덜컥 받아들이는 네 모습을 보니까 좀 망설여져. 내가 과연 무슨 일을 맡길 줄 알고 그렇게 무턱대고 좋아하는 거야? 내가 도대체 뭐를, 어떻게, 너한테 부탁할 줄 알고?"
"……으."
스미레코는 신음하며 고개를 숙였다. 내가, 잘못한 거야? 순간 억울함까지도 들었으나, 지금의 청을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다른 모든 잡념을 누그러뜨리고, 위같은 행동을 취하도록 했다. 어떻게 받게 된 비일상이고, 어떻게 이어진 현실과 꿈의 연결고리인데. 절대 지금에서 놓칠 수는 없었으니까. 주어진 희망의 동앗줄을 끊어버릴 정도로 스미레코는 멍청하지 않았다.
짧은 한숨소리 뒤에 이어진 적막, 그것은 길게 지속되진 않았다. 이 정도면 어련히 알아듣고, 태도를 좀 바꾸겠지, 라 생각한 유카리가 스미레코에게 다시 이번 일에 대한 경고를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한 명, 좀 특이한 요괴를 네가 현실로 돌아갈 때 데리고 가 주었으면 해. 기간은, 음 일 주에서 한 달? 잘 듣고, 할지 말지를 결정해."
그거야 YES일 게 뻔하잖아. 스미레코는 입술을 오물거리며 생각했다.
"어떤 요괴이길래?"
"그 녀석은 마음을 읽을 수 있어."
삐삐삐…! 시끄러운 소리가 울려퍼졌다. 방 안을 가득 메우는 알람소리는 침상 맡에 있는 디지털 시계가 출처였다. 아침 여덟 시가 됐음을 알리는 그 우렁찬 고함에 스미레코는 졸린 눈을 비벼가며 꿈을 깨고 현실을 자각했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칙칙한 회색깔의 콘크리트 천장의 향연은 평소라면 넌더리가 날 정도로 그녀를 괴롭히는 현실로 다가왔을 터였으나, 오늘에서는 달랐다. 침대 바깥으로 한 걸음 내딛었을 때 뚜렷이 보인 이질적인 색깔의 존재 덕이었다.
"안녕."
"안녕… 하세요."
"널 직접 데려왔었으면 좋았을걸. 지금이 될 때까지 이야기도 제대로 한 번 못해봤네. 일단 통성명 할래? 나는 히가시후카미 고등학교 1학년, 우사미 스미레코. 우는 아이도 뚝 그치게 만드는 진짜 초능력자야. 또 비봉클럽의 초대 회장이기도 하지."
수십 번을 연습하여 이제는 입에 달라붙어있는 자신에 대한 소개를 스미레코가 가슴을 피고 당당하게 얘기했다. 코이시는 맹목적으로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자신에 대한 소개를 삼가고 있었다. 체크무니 교복 위로 매여져 있는 스미레코의 망토가 돌돌 말려져선 보기 부끄러운 모습이 되어있다는 말을 그 순간에 말할 수 없어, 이야기를 끝내 고사했기 때문이었다.
'어, 어쩌지. 답을 못 들었을 때는 상정 못했었는데.' 삐질대는 스미레코의 마음속 목소리가 들려오고서야, 또 대화를 위해 올려다본 스미레코의 표정에서 뻣뻣한 얼굴근육과 삐질거리는 식은땀의 환영을 보고서야 코이시는 급하게 입을 뗄 수 있었다.
"코메이지, 코이시…예요."
"그, 그래. 코메이지. 아니, 코이시로 할까? 그러니까 나도 스미레코로 불러줘. 이렇게 만나게 되서 반갑고, 또 기쁘긴 한데. 안 좋은 소식 하나가 있어. 정말로 안타깝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 하나가."
그게 뭘까. 뭐냐면 학생이라면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세상의 섭리와도 같은 등교라는 규칙이지.
자문자답이 이어지는 스미레코의 언행에 코이시는 멀뚱히 그녀의 눈을 쳐다볼 뿐이었다. 스미레코는 턱을 괴고 검지로 턱을 사근거리며 고민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아, 물론! 너를 이렇게 혼자 내버려두는 게 나도 엄청 꺼림칙해. 부탁까지 받았으니까…. 하지만 레이무도 내가 학교에 등교한다는 사실은 알고있으니, 일단은 그것도 상정하고 맡긴 거긴 할 텐데…. 으음…. 어떡하지?"
곧 무언가를 떠올린 듯 검지를 탁 치켜올리며 말하려는 그녀의 생각.
'아, 게임이라도 하게 해볼까?'
그리고는 방 구석에 짱박혀있는 온갖 전자기기들을 꺼내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종류가 모두 가지각색이며, 크기도 그 종류에 따라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공통점이라면 모두가 칙칙하다 못해 음울한 검은 색이라는 것일까. 스미레코가 미소를 띄며 처음으로 코이시의 손에 쥐어준 것은 휴대용이긴 하나, 두 손으로 전부 품기에는 크다싶은 화면 두 개의 게임기 하나였다. 주머니에 집어넣으면 꽉 차겠지만 들어가기는 할 정도일까. 미안하다며, 스미레코는 두 손을 둘이 찰싹 붙이곤 말했다.
"진-짜 미안해! 그런데 어쩔 수가 없어. 오늘 결석하면 유급의 위험이 있다던가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학생의 본분이라는 게 있으니까. 이해해줄 수 있지? 그러니까 그 동안은 이걸로 조금만 참아줘. 학교에서 돌아오면 더 재밌고 놀라운 걸 잔~뜩 보여줄게. 응?"
"…그래요."
"그래, 착하네. 자, 그럼 그동안 즐길 게임은! 잠깐만…"
스미레코는 두 손에 쥐어줬던 게임기를 다시 집어들더니 전원을 켜선 화면을 유의깊게 살피기 시작했다. 뚫어져라 쳐다본지 고작 몇 초쯤 지났을까, 통탄하는 마음의 소리가 코이시에겐 한탄처럼 들려댔다. 그녀는 아무래도 덮어씌우기에는 아깝다 생각될 정도로 게임에 열중하여 살았나 보았다. 전국도감이니, 나의 이로치 컬렉션이니. 지금의 코이시로서는 알아듣지 못할 단어의 나열따위나 내뱉었으나, 그 아쉬움은 그 열거에 의해 당연한 듯이 전파되었다. 스미레코는 마음을 굳세게 먹은 것인지 눈을 딱 감고 '새로운 모험을 시작한다' 버튼을 눌렀다. 그와 동시에 떨리는 손으로 코이시에게 그 게임기 -닌텐도라는 듯- 를 넘겼다.
"자… 적어도 몇시간은 즐길 수 있을 거야……."
"……."
코이시는 받아들이면서도 과연 이것 따위를 위해 그녀의 탄식을 내버려두어야하는가 하는 고민이 들었다. 그래도 스미레코는 괜찮다며 어영부영 넘기려는 시도만을 이었다. 과연 노력이 빛을 발했는지, 종국에 코이시는 스미레코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어 그 좁은 화면을 향해 초점을 고정시켰다. 그러나 즐기기 위해 반드시 해야할 일, 그러니까 버튼을 눌러 화면을 넘긴다거나 하는 행동은 이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방금보다도 망설이게 되었다. 그 좁은 화면 안에선 자신의 이름을 묻고 있었는데, 과연 이것에서 어떻게 답을 하여야할지를.
답을 하는 순간 코이시는 그 이름으로서의 정체성이 새롭게 하나가 생겨난다. 이미 스미레코가 정하여 이름 옆의 칸을 진득히 차지하고 있는 캐릭터의 성별은 그렇다쳐도, 이 '이름'으로서의 정체성이 정해지는 것에는 코이시는 망설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는, 누구로서 과연 이 이름을 결정해야만 하는 걸까? 이러한 고뇌가 그녀의 마음속으로 직접 던져지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그와 비슷한, 문자화되지 않은 무언가의 질문의 응어리들은 당연히 마음속에서 부유해대었다. 그럴수록 숨은 가늘어져 어느 선에 도달해버린다면 결국엔 끊어질듯만 했다.
"으음~ 역시 누구 앞에서 이런 이름 정하기는 조금 부끄럽지?"
멍하히 바라보기만을 하는 코이시를 보며, 스미레코는 그것이 보통 사람들이 겪는 부끄러움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나름의 배려랄까. 역시 이럴 때는 기본 캐릭터 이름이지, 라고 스미레코는 혼자 고개를 끄덕여댔다. 게임기를 다시 뺏어들고, 쥐어주고. 그런 일말의 과정이 끝나자 화면은 벌써 방향키를 눌러 자신을 직접 움직일 수 있는 정도까지 급하게도 진행되어있었다. 그러면서 간단한 조작에 대한 설명을 마친 스미레코는 코이시를 뿌듯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러면서도 측은감 얽힌 표정으로 몇걸음 물러섰다.
"정말 미안해. 몇 시간뒤엔 꼭 놀아줄 테니까. 그럼 조금 있다 보자!"
"네. 안…"
코이시가 인사를 끝낼 틈도 없이, 스미레코는 마술쇼의 마술사처럼 소리만을 남기고 그 모습을 감추었다. 이제 코이시는 덩그러니 혼자 남겨졌다. 사각형의 콘크리트 속에 혼자 가두어져선 의지할 것이라고는 스미레코가 남기고 간 하나의 기계장치 뿐이었다. 어쩐지 숨은 텁텁했다. 시야도 또렷지를 못했다. 아마도 먼지 때문인가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