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리나케 나온 내 집 앞에 서서 현관문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행여나 무섭게 변한 모미지가 나를 쫒아 오는 게 아닌지 긴장이 되었지만, 그럴 기색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안심하기는 이르다. 가만히 서있을게 아니라 지금이라도 돌아가 모미지에게 도망쳐 나온 것에 대한 변명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이대로 토도키에게 찾아가 거기서 하룻밤을 보내야 할지에 대해 나는 좀 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하아-.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용기가 나지 않는 나 자신이 한심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얘기를 해 두었을 텐데.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으나, 빈 냄비를 하염없이 저어대는 모미지는 진심 무서웠다. 야밤에 오니를 마주친 것 이상으로.
결국, 용기가 나지 않은 나는 발을 돌려 오늘 밤만은 동료이자 친우의 집에서 보내기로 했다.
*
쾅쾅쾅. 허름한 녀석의 현관문을 두드리기를 한참. 토도키는 겨우 잠에서 깨어나 문을 활짝 열고 졸린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하품을 크게 했다.
「야밤에 무슨 일이야?」
단잠이 깬 것이 어지간히도 짜증이 났는지, 녀석은 신경질적인 어조로 물었다. 나는 뜸을 들이지 않고 바로 말했다.
「하룻밤 재워주라.」
「응?」
그런 내가 의아하다는 듯 눈을 찌푸리는 토도키. 나는 재차 말하며 부탁했다.
「좀 재워주라고. 부탁이야.」
「갑자기 문을 두드리더니 다짜고짜 재워달라니. 뭔 일이야?」
「그게..」
이유를 묻는 질문에 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러고 보니 적당한 핑계거리를 생각해 놓지 않았었구나. 뒤늦게 후회 했지만, 그것도 잠시. 사실 대로 말할 수 없었던 나는 즉석해서 이유를 지어냈다.
「오.. 오니가 나타났어! 오니!」
「뭐? 오니!? 너 잘못 본건 아니지?」
「사실이라고! 내 집 안방에 떡 하니 앉아 있었다고!」
실제로 이부키님을 비롯한 오니가 내 집에 며칠 머물다 갔으니, 완전히 거짓은 아닌거다. 응. 그러니까 양심의 가책 같은 건 느끼지 않아도 돼.
「벌써 몇 백 년이나 코빼기도 안 보이던 오니가 이제 와서. 그것도 네 방에 나타났다는 걸 나 보고 믿으라고?」
「믿어라. 게다가 그 오니가 이부키님이라니까!」
「허풍은.」
토도키는 영 미심쩍다는 눈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내 방에 오니가 나타났어요!'를 계속 시전했다.
「이부키님뿐만 아니라 무지 위험해 보이는 오니도 있었어. 그러니까, 신세 좀 지자!」
나는 토도키를 옆으로 밀치며 안으로 침입했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구리구리한 냄새가 코를 쏘아 댄다. 그러고 보니 이놈 체취가 장난 아니었지. 그래도 오늘 밤은 반드시 여기서 자기로 한 이상 불평을 내뱉을 수는 없었다.
그런 내 행동에 토도키가 어처구니 없어하며 말했다.
「야, 말을 지어 낼 거면 그럴싸하게 지어 내던가. 이부키님이 있었다면 네가 여기로 도망쳐 올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아니. 운 좋게 빠져 나온 거 뿐이야. 변덕으로 놓아 준 걸지도.」
「그리고 위험해 보이는 오니라니? 이부키님이 있는 것만으로도 다른 오니 여부 따윈 중요하지 않을 건데?」
「넌 그 오니를 직접 못 봐서 모를 거야. 그건 남자라면 누구라도 생리적 공포를 느낄만한 존재였어..」
아 젠장.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연회에서 먹었던 것들이 올라 오려고 한다. 그 징그러운 오니, 텐바쿠가 투박한 외견과 어울리지 않는 미성으로 날 부르는 환성이 들려오는 듯했다. 이제 이 화제는 그만하고 조금이라도 빨리 눈을 붙이고 싶다.
녀석의 집은 현관문을 열면 바로 다다미 몇 장 깔려 있을 뿐인 작달만한, 내 집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그지 없는 골방이었지만, 지금 만큼은 아득하고 포근해 보였다. 나는 아까까지 녀석이 덥고 있었던 이불 옆에 자리를 잡아 누웠다.
「그럼, 나 잘 테니까. 그렇게 알아.」
「얌마! 뭘 멋대로.」
녀석이 불만스런 투로 뭐라고 내뱉었지만, 확 몰려오는 피로감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임시방편으로 토도키의 집에서 잔 것은 좋았으나, 문제는 이 다음이었다. 어제 그렇게 도망쳐 놓고 모미지와 만날 생각을 하니, 위장이 쓰려왔다. 깨자마자 강제적으로 맡게 된 토도키의 지독한 냄새 때문이기도 하지만.
토도키 보다 먼저 일어난 나는 녀석이 깨기 전에 한 발 앞서 집을 나섰다. 가까운 개울가에서 세수를 하고 이제 제법 서늘해진 아침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어쩐다..」
모미지가 어제 밤과 똑같다면 그거야 말로 공포인데. 나는 모미지가 어째서 얀데레같이 변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짚이는 구석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최근 레이무와 사이가 좋아지면서 더 집착하게 된 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얀데레가 되다니.
아니, 아직 확정 짓기는 이르다.
이른가?
정말?
얀데레의 전매특허인 빈 냄비 젖기를 시전 했는데도?
복잡해지는 머리에 자꾸 한숨 소리만 푹푹 새어 나온다. 물에 젖은 얼굴이 대충 말라갈 때쯤. 멀리서 백랑텐구 한명이 다가오고 있었다.
눈을 가늘게 떠서 자세히 보니 설마 했던 모미지였다. 그 순간 나는 깊은 갈등에 빠졌다. 도망쳐야 되나? 아니지, 여기서 또 도망쳤다간 그때야 말로 겁쟁이가 되는 거다. 나는 마음을 굳게 다지고 최대한 태연한 얼굴로 모미지를 맞이했다.
「어, 모미지. 여긴 어쩐 일이야?」
「집에 안 계시길래, 혹시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아하하.. 그래?」
다행히 평소와 다름없는 모미지의 모습에 나는 어설픈 웃음을 내뱉었다. 정말이다. 어제의 그 무섭던 얀데레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모미지는 내가 알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내심 안도하면서 말했다.
「그런데, 아침부터 날 찾다니.」
「그게.. 오랜만에 소우지 씨에게 아침 밥이라도 해드릴려고요.」
「고맙긴한데, 넌 괜찮은 거야? 요즘 바빠서 그럴 틈이 영 없었잖아?」
「그건 괜찮아요! 성실하게 근무한 덕에 할당량이 많이 줄어서 여유가 좀 생겼거든요.」
기운차게 대답하는 모미지. 그녀가 말한 할당량이라는 것은 보도부에서 처리하는 서류를 뜻한다. 산의 경비 임무와 동시에 보도부의 일까지 도맡게 된 모미지는 그 서류를 분류하는 작업을 하는데, 그 탓에 아침부터 퇴근까지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할당량이 줄었다고 말하는 걸 보면 성실하긴 성실하네.
속으로 감탄하면서 바라본 모미지의 얼굴은 기분 좋은지 생글생글했다. 보라고, 이게 모미지라고. 웃으니까 얼마나 귀여워. 어제 밤의 그 공허한 눈동자는 역시, 잘못 본 거라고 치자.
그런 무서운 모미지는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할 때였다. 웃음 짓던 모미지의 표정이 굳어지더니, 두 눈에서 생기가 사라지고 없었다.
「그런데, 소우지 씨. 어제 밤에는 왜 도로 나간 거예요? 어째서 집에서 안자고 친구 집에 간 건지 말해주세요.」
「저기.. 모미지?」
「혹시, 제가 싫으신 건가요?」
저 얼굴. 저 눈빛. 눈빛!!
이 순간 나는 모미지의 얼굴에게서 다곤의 환상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