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를 둘러보면, 날씨는 정말 적당한 상태라고 말할 수 있었다.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작렬하지 않는 태양, 선선하게 불어주는 바람, 열이 올라오지 않는 대지, 열기에 일렁거리지도 않는 풍경. 그렇기에 유카리는 여가활동을 함께 즐기기를 권하고자 하쿠레이 신사로 왔다.
“그런데 왜 땀내 나는 수련이나 하고 있냐고오~!”
“조용히 하세요.”
그런데 눈앞에 있는 건 무엇인가. 여느 만화에서나 보일법한 명상수련을 하고 있는 레이무와 육체파 수련을 하는 사나에다.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는 카센이다. 가르침을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강약이 역전되어있는 이상함도 이상함이지만, 난데없이 수련을 왜 하고 있는지. 유카리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여 호소했다.
“아니, 날씨 좋잖아? 비록 바다다! 하고 놀러갈 바다는 없지만, 그래도 놀 거리는 마을에 잔뜩 있잖아! 그리고 왜 수련이야? 그것도 왜 레이무를?”
“자세가 흐트러졌어요. 좀 더 등을 꼿꼿이.”
“무시하지 말고오!”
그래도 카센은 묵묵히 사나에의 자세를 교정시킬 뿐이다. 개차반인 자신의 취급에 억울함을 느껴 유카리는 두 주먹을 쥐고는 방방 흔들어댔다. 이야기를 듣던 레이무는 천천히 정좌를 풀면서 말했다.
“괜찮잖아. 지금까지 꾸준히 했었는데, 오늘 하루 정도는 쉬어도.”
“……그렇다면야. 음, 오늘 하루 정도는 감안해줄게요.”
“그으, 럼! 저도 쉬어도 되는 거죠…!”
카센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참던 숨을 파! 단박에 내뱉은 사나에는 그대로 실신하듯이 바닥에 쓰러졌다. 정신을 못 차리고 헤롱대는 사나에에게 레이무는 부적을 태운 가루를 먹였다. 사나에는 쓴맛에 눈이 번쩍 뜨여 혀를 내놓고는 으엑- 신음을 내뱉었다. 유카리는 레이무와 얼굴을 맞대고 히죽댔다. 스키마를 바로 열며 떠벌떠벌 수다를 떨었다.
“그래, 그래! 역시 수련보다는 노는 게 최고지. 굳이 더 발전할 필요는 없잖아? 레이무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걸. 자, 그러니까 놀자!”
“겨우 마을 가는 거에 스키마 쓰지 말아줄래? 사람들 놀라거든?”
“기준이 너무 깐깐해.”
푸- 입술을 삐죽 내민 유카리가 다시 스키마를 닫았다. 그럼 걸어가자고, 레이무의 손을 잡으면서 걸음을 시작했다. 쪽팔리게 뭔 손을 잡고 가냐고 레이무에게 바로 내쳐졌다만.
“그런데 왜 수련을 하는 거야? 그리고, 뭔가 가르치는 사람이랑 가르침을 받는 사람이랑 뒤바뀌지 않았어?”
“…수련은 한 지 꽤 오래됐는데. 그냥 네가 눈치가 느린 거 아닐까.”
“제가 가르치는 건 육체의 단련이 아니에요. 내공을 다루는 부분이죠.”
“…….”
그니까 레이무를 더 강하게 해서 뭘 하려고. 세계정복? 환상향 제패? 유카리는 이번엔 자신답지 않게 말을 아꼈다. 카센은 잠시 고민하는 눈치를 보이다 레이무에게 말했다.
“레이무, 힘을 다루는 데 있어 변화가 생겼다고 생각되면, 저한테 찾아와주세요. 되도록이면 단 둘이 얘기하고 싶은 게 있으니까요.”
“그걸 꼭 지금 말해야 되겠어?”
단 둘이? 그 단어에 눈을 부라리는 유카리에게 레이무가 힐끔 눈길을 뒀다. 관련된 것에 하도 과민반응을 보이는지라 때때로는 귀찮기까지 한데, 불씨를 제공하면 어쩌자는 건지 싶었다.
“저기이…! 조금만 천천히 가주시면 안 될까요…!”
“……너도 갈 길이 멀다.”
“몸은 괜찮은데 정신이 어질어질해서 쓰러질 것 같아요.”
“진짜 멀다.”
왼쪽으로는 질투에 눈이 먼 유카리가 있고, 뒤쪽으로는 정신 수치가 곤죽이 나버려 허덕이는 사나에가 있다. 하도 정신이 사나워서, 레이무는 머리를 살짝 짚었다. 마을에 도달할 때까지는 뭐 다른 것을 생각할 틈도 없이 시끄러웠다.
아니, 요즘은 항상 이랬지. 시끄러워서, 또 달라붙어대서 지긋지긋하다는 말을 내뱉어도, 마음 한 구석에선 그걸 즐기는 자신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는 것은 없고, 오히려 더더욱 시끌벅적해지기만 한다. 그 때문에 자신마저도 변화했음을 통감한다. 옛날이었다면, 사나에의 의사 따위는 상관하지도 않고 이 환상향에서 내쫓아버렸을 거다. 그녀는 환상향 이외의 세계를 살아보지 못해 바깥세계에 적응하지 못할 마을사람 같은 것이 아니니까.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그녀를 홀로 설 수 있도록 가르치는 꼴이니.
“아, 레이무 씨! 안녕하세요!”
“요즘 따라 꽤 자주보는구먼.”
“……그래, 코스즈. 안녕.”
발도 넓어져서, 극히 한정된 관계만을 가졌던 때도 옛날 일이 되어버렸다. 마법사, 선인, 자신 이외의 무녀, 인간, 협력일 뿐이라지만 무려 요괴까지 지인이 되었다 싶을 정도이니.
“레이무우-, 내가 모르는 친구도 있었어? 왜 말을 안 해줬어….”
“네가 내 엄ㅁ… 하, 아니다.”
시답잖은 요구에 일일이 대응을 하면서도, 레이무는 생각했다. 이게 옳은 걸까. 홀로 서기를 작정했던 내가, 계속 이렇게 누군가에게 얽매이고 있어도 되는 걸까 라고.
‘모르겠네.’
하지만 나오는 답은 항상 같았다. 모르쇠로 일관할 뿐이다. 두리뭉실하게 넘기려는 생각과도 같다고 할 수 있었다. 현재에 기쁨을 느끼고 있기 때문인지, 내치려고 해도 쉽게 내칠 수가 없었다.
거리를 떨어트릴 만하면 그녀들은 계속 청해온다. 다가가도 되냐고. 그러다보면 자신은 어느샌가 관계를 긍정하게 돼버린다. 이는 유카리에게도, 일일이 참견을 걸어 귀찮다는 생각 뿐에 들지 않던 카센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였다.
뭔가를 먹고, 또래 아이들처럼 수다를 떨고. 그러다보니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때는 어느새 저녁 시간. 평범한 친구와의 만남같이, 때가 늦어가면서 하나 둘 붙어있던 사람들이 떨어져나간다. 또 다시 노숙하기는 싫다고 헐레벌떡 급하게 구는 사나에와 아무래도 걱정된다며 따라가는 카센이 그들이다. 그렇게 되니 있는 것은 둘뿐이다. 유카리와 레이무. 인연이 하도 불어나도 원래부터 함께하던 조합이다.
“레이무.”
“응.”
“노가쿠나 한 번 봐볼래?”
“노가쿠?”
“가볼래? 아니, 가보자.”
유카리는 평소 때보다도 고양된 목소리로 레이무에게 말했다. 레이무는 별 말 없이 유카리를 따랐다. 손을 꽉 잡고 질질 끌고 가자니 사람이 적잖게 모여 있는 무대가 있었다. 관객이라는 원으로 둘러싸인 무대의 중심에는 가면을 쓰고 있는 무표정의 등장인물이 있었다.
“레이무, 노가쿠를 본 적 있어?”
“본 적은 있긴 한데, 그땐 그리 재미를 못 느꼈어. 하도 어릴 적이라.”
“있긴 하구나? 누구랑 같이 봤었어?”
“친구와. 낼 돈도 없어서 나무 위에 올라타서 구경했었지.”
대화를 나누자니 곧 옆에서 조용히 하라는 타박이 들려왔다. 자신이 지적하는 대상이 하쿠레이의 무녀인 것을 알고는 오히려 지적한 사람은 깨갱, 기세를 죽였다. 하지만 맞는 말이니 공연 동안에 레이무는 더 이상 말을 내뱉지 않았다.
“어때? 인간들의 노가쿠하고는 좀 다르지 않아? 무려 가면의 츠쿠모가미가 직접 하는 노가쿠였는데.”
“글쎄.”
한 차례가 끝나고 쉬는시간이 되자, 유카리는 물었다. 레이무는 막연히 답했다. 유카리가 호들갑을 떨어대는 것에 비해 딱히 실속을 느끼지는 못했다. 굳이 따지자면 옛날과도 감상은 비슷했다. 하도 추상적인 춤들 뿐에 보이지 않아서,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야 될까.
“…….”
하도 시큰둥한 답만이 들려와서일까. 유카리도 잠시 동안 침묵했다. 그녀답지 않게 바닥을 보면서 우울함을 보였다. 레이무도 자신이 하도 시큰둥하게 굴었음을 알아서일까, 잠시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함을 보였다. 입을 뻐끔거리던 유카리가 곧 레이무를 바라보지도 않고 더듬더듬 말했다.
“저기, 레이무.”
“응.”
“나 궁금한 게 있는데, 되도록 알려주지 않을래…?”
“뭔데.”
항상 활기차던 목소리가 잠시 우울에 물들어 있자, 레이무도 이번만큼은 제대로 답해주기로 생각했다. 유카리는 말했다.
“나, 그래도. 레이무에 대해서 꽤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거든. 나름 몇 년 동안 같이 지냈었으니까….”
“…그래.”
“근데, 요즘 생각해보면 그게 아닌 것 같아서. 좀, 불안해. 그, 전부를 알고 싶다는 건 아니야! 다만, 공감하고, 같이하고 싶은 부분에서 놓치는 게 많으니까…….”
나도 모르는 친구를 몇 사귀었기도 했고, 수련한다는 이야기를 나한테 숨기기도 했고. 유카리가 손가락을 더듬거렸다. 명확히 질투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라고 유카리 스스로도 생각했다.
“레이무의 ……옛날 일도, 아니 옛날 일 뿐만 아니라 지금 일도. 난 잘 모르잖아. 어떤 친구가 있었는지도, 지금은 또 누구랑 친하고, 어떤 관계인지도 좀 많이 궁금해서….”
“응.”
“부담이 되지 않는다면, 알려줄 수 있을까?”
“그래.”
레이무는 기계적으로 답했다. 그렇다고 해서 실수로 긍정을 답하는 일은 없었다. 답하기를 원하는 건 명백히 자신의 의사였다. 유카리는 그 답이 기쁜지 잠시 입술을 씰룩거렸다.
“그, 그럼! 옛날 레이무의 이야기를 좀 알려줘! 그, 노가쿠를 같이 봤다는 친구는 누구야? 또, 네가 어떤 애였는지도! 지금은 내가 모르는 친구가 또 몇 명이나 있는지도!”
“…친구라.”
레이무가 잠시 시선을 피했다. 또한 대답을 망설였다. 그러다가 말했다.
“…걔는, 지금 세상에 없어.”
“아…….”
무거운 침묵이 감돌았다. 서로가 괜한 이야기를 꺼냈음을 통감했다. 다음으로 내뱉을 말들은 그녀들의 목안에 머무르기만을 하였다. 짓누르는 분위기를 그 어떤 말도 타파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그 상황은 짧지만, 꽤나 굵게 지속되었다.
“그래도 알고 싶어?”
“……응.”
“나중에, 뭐. 음. 성묘나 같이 가줘. 네 말대로 지금까지 숨기기는 했었네.”
레이무가 머리를 긁적였다. 짧게 한숨을 쉬고 그녀는 말했다.
“걔 이름은 키진 세이자야. 내 가장 친한 친구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