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에요……, 죄송해요. 비켜드릴게요.”
“뭐? 뭘 비켜?”
사나에가 고개를 돌리고 몸을 일으켰다. 싸움은 극히 사양이여서 자리를 비켜주려는 움직임이다. 굳이 충돌할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기도 하다. 그렇게 터덜터덜 피곤한 몸새로 떠나려는 사나에의 어깨를 레이무가 잡았다. 지금 시간은 혼자 싸돌아다니다 먹잇감이 되기에 딱 좋은 시간이었으니까. 인간이라면 요괴에게. 요괴라면 레이무에게.
“혼자 어딜 가? 너 누구야?”
“히익!”
날 선 태도, 어깨 위로 느껴지는 힘. 사나에는 이건 잘못 걸렸다 생각하여 부리나케 달음박질했다. 정확히는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몸은 꿈쩍을 하지 않았다. 나름은 힘이 있다 자신하고 있었는데, 그 자신마저도 한낱 따위로 취급시킬 힘이었다. 그럼에도 아파오지는 않았다. 사나에는 덜덜 떨며 고개를 돌렸다. 냉담과 싸늘함이 느껴지는 표정. 그곳에는 일체의 동정마저도 없어보여서, 사나에는 어떻게든 좋게 넘겨보려 억지 미소를 지었다.
“왜, 그러세요?”
“너 누구야. 이 시간에 뭐하고 있어? 요괴야? 인간이야? 당장 말해.”
“저, 전 무녀에요. 무녀...”
“무녀?”
“그거군. 며칠 전, 요괴의 산에 새로 왔다는 녀석 중 하나여.”
“새로 왔다고?”
레이무에겐 손에 힘 좀 빼란 뉘앙스를 마미조가 하였다. 해를 주진 않겠네, 도망치지 말게나. 사나에에겐 말했다. 레이무는 그 말이 전달되고서야 손에서 힘을 뺐다. 사나에는 그제야 둘을 제대로 마주볼 수 있었다. 그녀들은 대화 삼매경 중이었다.
“몰랐나?”
“전혀. 들어본 적 없어.”
“흠, 하긴. 아직 대외적 활동은 하지 않았으니 그럴만하구먼.”
마미조가 사나에에게로 힐긋 시선을 돌렸다. 우린 나쁜 사람은 아니라네. 거짓말은 아닌 말을 했다. 친절이 다량 함유되어있는 친근한 말투여서, 사나에는 잠시 납득할 뻔했다. 친절을 가장한 폭력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풀어진 경계심을 올렸다.
“처자는 이름이 뭔가?”
“예, 에? 코, 코치야 사나에…… 요.”
“이 시간까지 집에 안 들어가고 뭐했어?”
“돌아가려고 했는데 문지기가 막아서요….”
“……내 참.”
레이무는 실소를 한 차례 터트렸다.
“아침까지 기다려. 이 시간은 누구도 밖으로 못 나가니까.”
‘그래서 자려고 했는데, 깨웠으면서….’
사나에는 살짝 고개를 비틀어 숙여 중얼중얼 불만을 내뱉었다. 시선을 따라 내려서 입모양을 본 레이무는 표정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럼 뭐, 쥐도 새도 모르게 납치되게 냅둘까? 사나에는 입이 주책임을 깨닫곤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따라와. 어차피 할 것도 없을 거잖아.”
“에, 예?”
“한 한 시간 정도만 순찰 겸해서 따라다녀 봐. 그러면 아큐한테 부탁해서 아침까지 묵게 해달라고 해볼 테니까.”
“무녀라고 무조건 자네처럼 치안방범을 맡는 것은 아니다만.”
“내버려두는 것보다는 나아. 온 지 며칠 안 됐으면 아무것도 모를 거 아냐.”
“……?? 무녀요? 하쿠레이의 무녀세요?”
“봐. 진짜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렇구먼.”
걸음을 시작하는 마미조와 레이무의 뒤를 사나에가 다급히 쫓았다. 목전의 인물이 하쿠레이의 무녀임을 깨달은 사나에는 이제 경계를 다른 쪽으로 하여서, 살피기에 급급하였다. 막 자신의 망상처럼 근육질 떡대의 인상은 아니었지만, 충분히 무섭게 보일만하다고는 생각했다. 무표정 일변도에 붙임성 없는 말투, 그리고 느꼈던 강한 힘. 무섭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거려나.
앞을 주시하는 레이무가 나무토막 두 개를 꺼내들었다. 나무토막들은 통칭 딱따기와 비슷한 용도로써 사용되기 시작했다. 서로 부딪히며 생기는 딱, 딱! 소리는 경쾌해서, 침묵이 감도는 거리를 홀로 지배했다. 마미조는 속도를 늦춰 사나에의 곁에 가더니 태연히 물었다.
“궁금한 것이라도 있는가?”
“아, 가. 감사합니다..”
“무얼. 어차피 이곳에 왔다면 다들 같은 처지인 것을.”
“그럼 이름부터 알고 싶어요.”
“내는 후타츠이와 마미조라 함세. 저-쪽의 시큰둥한 무녀는 뭐. 알다시피 하쿠레이 레이무지. 쿡쿡, 앞으로는 경쟁자가 될 상대인감?”
“뭔 이상한 바람을 넣는 거야?”
“아닌가? 결국엔 이 아이도 신을 위해 신앙을 얻으려고 마을로 내려온 것일 터인데. 그렇다면 자네랑은 앙숙이 되지 않겠나?”
“난 신앙 같은 건 상관 안 써. 집어치우라 그래.”
“에?”
사나에가 놀라 발걸음을 잠시 멈췄다. 다시 제정신을 되찾고는 빠른 걸음을 했다. 무녀란 사람이 신앙을 추구하지 않는다니, 사나에로서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마치 상인이 손익을 상관하지 않고 장사를 한다는 것과도 비슷한 말이니. 주변에 다른 상점이 놓인다고 해도.
“저쪽은 그렇다는군. 자네는 어떻나?”
“경쟁 상대…겠죠?”
힐끔힐끔 레이무를 바라보던 사나에가 태도를 고쳤다. 이대로 주눅들어서 있다가는 기세에서 밀린다는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살짝, 아주 살짝 숙여져있던 고개를 들어 빳빳이 했다. 네, 경쟁상대에요. 다시 중얼거렸다.
“그리고 저희 모리야 신사가! 환상향을 대표할 하나의 종교가 될 거에요!”
“포부가 크구만.”
“…….”
쩌렁쩌렁한 외침에 이번엔 레이무도 눈길을 주었다. 딱, 딱! 규칙적으로 울려대던 나무막대가 멎었다. 언짢다는 이유는 아니었고, 이제 순찰이 끝나가서 히에다가의 앞에 서기 되었기 때문이었다. 레이무는 아큐의 사용인을 불렀다. 사용인은 잠을 자고 있을 아큐를 다음으로 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아큐가 직접 문 밖으로 튀어나왔다.
“아, 레이무구나? 게다가 마미조 씨도. 근데 그 뒤는….”
“코치야 사나에, 이번에 요괴의 산에 온 신들의 무녀라고 하더군.”
“아침까지만 잠시 머무를 수 있을까?”
“응, 물론 괜찮지.”
고개를 끄덕이던 아큐가 은근스레 음흉한 눈길을 마미조에게로 돌렸다. 그 시선에서 파렴치함을 느낀 마미조는 떨떠름한 표정을 숨겼다. 어째 레퍼토리가 저번 밀회 때와 비슷한 듯하여서 그럴까. 꼬리가 또 혹사당할 듯한 느낌과 예감이 술술.
그녀들은 문 안으로 들어섰다. 별실을 안내받고 잠자리에 들려니, 레이무도 딱히 나쁜 사람은 아닌가? 라는 의문이 사나에에게 들었다. 의외로 챙겨주는 것을 보면 착한 쪽에 포함되지 않을까 싶었다. 태도야 시원찮음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쳐도.
‘아니면, 그냥 신경을 안 쓰는 건가?’
그런 의문은 아침에 깨고 나서도 계속되어서, 어딘가의 찜찜한 구석이 남겨진 채였다. 아무튼 호의를 받긴 하였으니 감사인사는 하긴 해야 됐다. 사나에는 레이무를 찾았다. 그 다음으로는 묵게 해주었던 아큐를 찾았다. 아큐가 머물던 방에는 마미조도 함께였다. 아큐는 행복에 겨운 표정이었다. 감사인사를 마치고 나니, 아큐는 나중에 구문사기를 작성하기 위해 찾아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구문사기는, 환상향의 주민들을 정리해놓은 문서야.”
“그, 그런 건가요?”
모르자는 얼굴을 하고 방을 빠져나오자니, 레이무가 궁금증을 없애주었다. 그것보다 경쟁자이면서 이래저래 알려주려는 태도다. 이건 원래부터 있던 사람으로서의 여유일까. 자신은 경쟁자로서도 보이지 않는다는 걸까. 사나에는 삐뚤어진 생각을 했다. 친절...하시네요? 입 밖으로 생각이 튀어나오려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늦었다.
“하나만 말해둘게.”
“네?”
이건 혹시나의 선전포고일까? 사나에는 찰나동안 수많은 생각을 했다. 얼굴을 보지 않고 말하던 레이무였지만 이번만큼은 사나에와 얼굴을 맞보고 말했다.
“삐뚤게 듣지 말고, 제대로 들어.”
사나에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네가 도피해 온 거라면, 혹은 신에게 강제로 끌려온 것이라면, 기회를 줄 테니까 이곳 환상향에서 나가.”
“……예?”
“이곳은 절대 인간에게 있어 천국이나 도피처 같은 곳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