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오, 썅...!”
빼곡히 대나무가 솟아있는 미혹의 죽림 내, 후지와라노 모코우는 눈앞을 방해하다 못해 아예 가로막고 있는 대나무를 거칠게 헤집으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녀의 현 목적지는 영원정이었다. 그곳에 가는 데는 멀쩡한 길도 분명 있긴 하였으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요즈음은 사용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때문에 대나무 사이사이를 뚫어 영원정으로 향해야만 하는 고초를 겪어야만 했던 것이었다.
파사삭. 자신 말고도 대나무를 헤치는 누군가의 소리가 들리자 모코우는 몸을 푹 숙이며 숨을 죽였다. 그래, 이 고초를 겪게 하는 원인인 녀석이었다. 영원정에 들어서려고만 하면 추적자처럼 쫄래쫄래 쫓아다니며 방해하고, 떠벌떠벌 잔소리를 내뱉는 녀석. 그 이름, 레이센 우동게인 이나바.
모코우는 방금 욕지거리를 내뱉었던 입을 틀어막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도대체 왜 자신이 들키면 안 되는 범죄자 신세가 되어버린 건지 원.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무슨 큰 잘못을 저질렀다면 모를까, 카구야 몸에 불 좀 붙였다고 이래 삼엄한 경계를 받는 것이라 더더욱. 어차피 같은 봉래인이라 죽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하… 흐아, 하찮은 지상인 주제에… 내 시선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아!”
“……하이고.”
그리 속으로 이빨을 까대는 모코우를 겨우내 포착한 달토끼, 레이센은 몸을 숨기고 있는 모코우를 내려다보며 거칠게 숨을 헐떡대었다. 드디어 찾아냈다며 손가락을 모코우에게 겨누었다. 반쯤 앉아있던 모코우는 진절머리가 난단 표정을 지으며 레이센을 올려다봤다.
“야.”
“뭐!”
“너, 나 쫓아다니는 거 안 지겹냐? 나 좋아해? 뭔 스토커야?”
“무, 무슨 개소리야! 내가 하찮은 지상인을…!”
하찮은 지상인이란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레이센. 모코우는 그런 레이센이 참으로 우스웠다. 힘을 부쳐하며 말해서인지 위엄이 전혀 없어서이려나. 하도 듣다보니 도리어 어이가 없어져서 유쾌하게 보일 지경. 그래서 모코우는 손바닥으로 턱을 괴며 레이센을 한 번 비웃어주었다.
“아니, 집착도 너 정도쯤 되면 병이야 병. 독종이라고.”
“그건 네가 공주님에게 다가가니까 막으려는 거고!”
“아니, 카구야 좀 만나보겠다는 게 그렇게 죄야?”
“죄야!”
보기만하면 주먹부터 갈기는데 그게 죄가 아니면 뭔데! 레이센은 다시 대뜸 손가락을 겨누며 소리쳤다. 그래, 죄구만. 모코우는 고개를 잠시 푹 숙여 입술을 웅얼거렸다. 그리곤 자리에서 덜컥 일어서며 레이센의 어깨를 팡팡 두드리더니 빵긋 웃었다.
“그래, 그러면 앞으론 안 그러마! 그니까 만나도 되지?”
“안 돼!”
“아 뭐가 문젠데! 네가 카구야 보호자냐?”
모코우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레이센은 손가락을 옮겨 모코우의 머리를 겨누더니 말했다.
“넌 카구야 공주님을 원수로 여긴다며!”
“아 그거야 옛날 얘기고!”
분명 레이센의 말대로긴 했다. 옛날의 자신은 가문이 입은 수치 때문에 카구야를 원망했었다. 때문에 카구야를 엿 먹이겠단 마음가짐으로 카구야가 남긴 불사의 약을 강탈하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가문은 쇠하였고, 가문을 위한다는 목적도 그와 함께 덧없어진 것을 어쩌란 말인가.
가문의 명예? 아버지의 모욕? 그런 건 자신에게 남아버린 불사라는 저주에 비하면 참으로도 보잘 것 없는 것이 됐으니까. 세상이 멸할 때까지 홀로 살아남는단 것에서 비롯되는 외로움은 도저히 혼자서 버틸만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때문에 모코우는 카구야를 찾았다. 복수는 아니었다. 불사라는 저주를 안게 된 동료로서 동질감을 얻고자 카구야를 찾았던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불사로부터 비롯된 외로움을 해결할 수가 있었다.
그런데 왜 레이센은 모코우가 아직도 카구야를 원망하고 있는지 오해하는가. 그 이유는 레이센이 스승이라 부르는 야고코로 에이린이 모코우의 과거 이야기를 들려준 탓이었다. 용서는 수백 년 전에 했고, 지금은 티격태격하는 친구 사이인데 참. 모코우는 말이 통하지 않는 레이센이 참으로 답답했다.
“난 카구야 용서했다니까? 왜 도대체 옛날 얘기를 듣고 그리 오해를 하는 건데?”
“시끄러워! 하찮은 지상인이 달의 공주님을 뵈려는 것부터가 문제야!”
“아니, 그걸 네가 뭔 권리로 막냐고 임마!”
“난 공주님을 지켜야 하니까! 어쨌든 출입은 허가 불가야!”
누가 보면 카구야 보호자인줄 알 정도의 집착. 질리다 못해 물리는 레이센의 태도에 모코우는 다시 욕을 중얼거렸다. '탈영병인 놈이 혀는 또 존나게 길어요' 라고. 모코우의 입을 주시하던 레이센은 그 말에 분개했다.
“너, 내 옛날 일은 어떻게.”
“…왜, 들키니까 화나냐? 부끄러운 게 아니라?”
모코우가 주머니에 손을 넣으며 레이센에게 껄렁댔다. 갑작스레 모코우가 얼굴을 들이밀자, 레이센은 주춤거리며 한 걸음 물러섰다. 얼굴을 겨누던 손가락마저 잠시 거두고는 모코우와의 시선 접촉마저 피했다. 모코우는 이참에 기를 한 번 꺾어둘까 하여 얼굴을 더욱 들이밀었다.
“야, 나 때는. 아니, 나 때만이 아니라 지금도 탈영은 엄청난 범죄거든? 너 낯짝 들고 다니는 게 참 대단하다.”
“시, 시끄러!”
“참 나. 따질 기력은 있나보네.”
모코우가 허, 헛웃음 소리를 내었다. 인상을 더욱 찌푸리며 얼굴을 가까이 대자니 레이센이 한층 더 움츠러들었다.
“전우를 버리고 도망쳤으면……”
“시끄러워! 시끄럽다고!”
모코우의 타박을 레이센의 윽박이 끊었다. 레이센은 입술을 아득 깨물더니 계속 뒤로 주춤거리며 귀를 감싸 안았다. 아래를 향하는 고개에서는 연신 시끄럽다는 소리를 거칠고 날카롭게 내뱉었다. 벌벌 떨고 있는 레이센의 몸을 보던 모코우는 자신이 화에 휩쓸려 실언을 한 것을 깨닫고는 레이센에게 다가가 손을 붙잡았다.
“아냐… 난 버린 게…”
“정신 차려! 야 레이센!”
자책의 중얼거림이 끊이질 않고, 고개는 들리지 않았다. 모코우는 팔을 귀에서 떨어트리더니 정신을 차리라 다시 외쳤다. 양 팔이 레이센의 양 손목을 붙잡자 떨림은 서서히 멎어갔다. 모코우는 과거 이야기를 꺼낸 것을 잠시 후회하며 레이센을 측은하게 쳐다봤다.
“……사정거리네.”
“뭐?”
그 때, 레이센이 팔로 모코우의 얼굴을 덜컥 붙잡았다. 숙였던 고개를 휙 들어 올리더니 모코우와 눈을 맞대었다. 뻘겋게 핏발이 서 빛나는 눈이 모코우의 눈과 마주쳤다. 그 붉은 눈은 레이센이 광기를 다루는 능력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모코우는 레이센의 호소가 다 연기였음을 깨달아 인상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이런 ㅆ… 속였냐!”
“레드 루나틱 아이!”
멀리서 피어오르고 있는 화재의 연기. 미혹의 죽림에서 화재의 원인이라곤 떠오르는 원인이 단 하나뿐인지라, 연기를 바라보던 카구야가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번으로써 벌써 몇 번째 화재인건지. 세기도 귀찮을 정도로 수렴해버려 포기해버릴 지경이었다.
“이나바…….”
정말 충직한 아이. 그래서 문제가 되어버린 아이. 카구야는 그런 레이센의 충성심을 섣불리 타박할 수가 없었다. 레이센이 보호란 명목 하에 모코우를 광기에 물들게 해도. 그 광기 탓에 모코우가 죽림에 불을 지르는 사태가 수없이 일어나게 되었어도. 화재 뒤처리는 몽땅 자신이 도맡게 되었어도 말이다.
“공주님.”
“아니야, 화내는 건 안 돼.”
“그게 아니라….”
에이린은 카구야가 제 제자인 우동게의 수발을 들어주는 행위가 못마땅해 자주 본때를 보여주겠다 말하곤 했다. 이번에도 그거겠지- 생각해 카구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지만 이번은 의도가 다른지, 에이린이 평소와는 다른 태도를 취했다.
“그럼 무슨 일인 거야?”
“저 쪽에.”
“야 카구야야아아아아아…!!”
에이린이 손가락이 어딘가를 향했다. 카구야가 고개를 손가락 방향으로 돌렸다. 그 방향에선 몸이 불타고 있는 모코우가 험상궂게 얼굴을 찡그린 채 아등바등 기어오고 있었다. 한 차례 고개가 바닥에 철퍼덕 소리를 내며 가라앉았다. 몇 초나 지났을까, 모코우가 기력을 되찾고는 냉큼 달려가더니 카구야에게 주먹을 한 방 갈겼다.
“그놈의 토끼 좀 어떻게 하라고! 아오…!”
“오늘은 정신 빨리 차렸네?”
“짜증나서 그냥 ■■ 한 번 했다!”
“축하해. 장족의 발전이야.”
카구야가 가볍게 박수치며 씽긋 웃었다. 비꼬는 웃음에 모코우는 표정으로 언짢음을 표했다. 들끓는 속을 한 차례 진정시키고는 바닥에 철푸덕 앉았다. 쯧, 혀를 차면서 입을 열었다.
“우리, 뭐 이래 만나는 게 험난하냐. 응?”
“내가 충직한 아이를 둔 덕이겠지?”
“우와- 정말 부럽다아. 뒤처리 잔뜩 해줘야 하는 부하가 있다니이.”
“그렇게 입 삐쭉 내밀어봤자 비꼬는 것 같지도 않은걸.”
“늬예늬예. 어련하시겠어요.”
모코우가 살짝 고개를 들이밀며 빈정거렸다. 대화가 계속 이어지는데도 그런 모코우의 태도가 사그라들지 않자, 카구야도 살짝은 짜증나는 티를 보이기 시작했다. 낌새를 알아챈 모코우는 더더욱 비꼼에 불을 붙였다. 그제야 카구야도 짜증이 나는지 모코우의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적당히, 해!”
“으아아악. 너무 아프다.”
그대로 모코우는 힘없이 쓰러지는 척을 했다. 마룻바닥에 등을 붙이고 있자니, 눈앞에는 보고 싶은 하늘은 안 보이고 영원정의 천장이나 보였다. 그 천장도 금세 카구야의 얼굴로 바뀌어 보였지만.
“손 좀 잡아줘. 일어나기 힘들다.”
“정말.”
모코우가 손을 휘휘 흔들었다. 카구야는 이번만이라며 팔을 냉큼 들어올렸다. 오뚝이마냥 휘청거리며 다시 중심을 잡은 모코우는 멀리서 타오르는 죽림을 보며 흠, 콧숨이나 쉬었다. 썩 유쾌한 풍경은 아니었다.
“저거 내 탓 아니다.”
“그래, 그래.”
“배고프다.”
“왜 갑자기 주제가 확 바뀌었어?”
“변덕. 그러니 요깃거리 좀.”
꼬르륵. 모코우가 소리를 입으로 내었다. 카구야는 입을 막곤 쿡쿡 웃었다. 잠시 뒤를 돌아보니 에이린은 벌써 들어가곤 없었다. 둘만의 시간을 가지란 의미겠지. 때문에 카구야는 직접 영원정의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모코우는 기둥에 머리를 기댄 채 기다리기로 작정했다.
“…….”
그리 멍 때리고 있자니 들려오는 다급한 발걸음 소리. 거친 숨소리. 모코우는 소리 방향으로 눈길을 뒀다. 그러니 헐떡이며 눈을 뻘겋게 뜬 채 자신을 노려보는 레이센이 보였다. 끈질긴 것도 어느 정도껏이여야지. 이쯤이면 감탄이 나와 모코우가 말했다.
“와, 진짜 독하다 너….”
자리로 돌아오던 카구야의 얼굴이 서서히 굳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고, 코로 술술 풍겨오는 목재 타는 냄새 때문이었다. 덩달아 장지 너머로 보이는 붉은색 끼 때문이었다. 애써 유지한 웃음기도 문 너머의 풍경을 예상하자니 금방이라도 풀릴 기세였다. 카구야는 아니겠지. 잠시 중얼거리고는 문을 열었다. 당연하게도 광기에 물든 모코우가 실컷 날뛰고 난 흔적이 마루엔 남아있었다. 레이센은 탄 흔적을 뭔 배짱인지 걸레로 뽀득뽀득 닦아대고 있었다. 그 광경에 카구야는 잠시 뒷목을 잡고 싶어졌다.
“......하아.”
눈치 채지 못하게, 잠깐 한숨을 쉰 카구야는 눈웃음을 지으며 문을 다시 닫았다. 그대로 에이린이 있을 법한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모코우와 얘기를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던 에이린은 공주가 방에 들어서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카구야는 말했다.
“있잖아 에이린.”
“왜, 왜 그러시나요. 공주님?”
“달을 바꿀 수 있을까?”
“네?”
“된다면 잠시만 바꿔칠 수 있을까? 이나바가 능력이 사라졌다 생각할 때까지.”
달은 달토끼의 능력의 원천. 때문에 카구야는 생각했다.
이나바를 혼내봤자 지상인을 하대하는 성격이 쉽게 고쳐지지도 않을 테니, 그냥 능력이 없어졌다 생각할 때까지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자고.
그러니까, 잠시만 달을 바꿔치자고.
===========막간===========
“음… 있지 레이무?”
“너 뭐 잘못했어? 왜 그리 삐질삐질대.”
“응…. 엄청 큰 잘못을 했는데. 이해 좀 해줄 수 있어?”
유카리가 굳어버린 얼굴로 물었다. 또 뭔 말썽이냐며 레이무는 유카리를 째려봤다. 유카리는 눈도 마주치지 못한 채 소리를 죽여 말했다.
“저기, 달을 바꿔치기 했는데. 한 이 주 정도만 이러고 있으면 안 될까…?”
“너 지금 장난쳐?”
“아니, 아니! 진짜 장난 아니고! 한 이 주 정도만! 제발! 응?”
“맞고 그만둘래, 아니면 그냥 그만둘래?”
“응? 제발 부탁이야!”
“너 죽는다 진짜.”
“이렇게 간곡하게 빌게!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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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입니다
달 애들은 메인 스토리도 아니라 그냥 스킵하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