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왕녀와 흡혈귀 - Remy Ritter von Scharlach
[번역] 왕녀와 흡혈귀 - Prinzessin Maria Margarethe von Adelsried
[번역] 왕녀와 흡혈귀 - Her Royal Highness Princess
[번역] 왕녀와 흡혈귀 - Prinzessin und Vampir (1)
[번역] 왕녀와 흡혈귀 - Prinzessin und Vampir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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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간의 전쟁은 독일을 매우 황폐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프랑스도, 스페인도, 스웨덴도 모든 참전국이 심각한 피폐를 직면했다.
전쟁을 주도한 권력자들도 이미 대부분 죽었다. 개신교 박멸을 꿈꾸던 황제 페르디난도 3세도, 독일의 개신교 자유를 실현하려 했돈 스웨덴 왕 구스타프 아돌프도, 황제군 사령관으로서 그들의 앞을 가로막고 이름을 떨쳤던 용병 대장 발렌슈타인도, 합스부르크 타도를 목표로 하던 프랑스 왕국 재상 리슐리외도 모두가 과거의 인물이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기적과도 같이 전화를 모면한 아델스리드 성백작국이 적에게 유린 당하려하는 현 상황은 발버둥쳐도 빠져나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 파멸은 제국 전토에 평등하게 찾아올 운명이었으니까.
──1648년 5월 17일.
봄이 한창이라고는 해도 바이에른의 아침 공기는 뼛속까지 스며들 정도로 추웠다.
“기다리게 만들었군. 라벨.”
“아뇨. 문제 없습니다. 샤라크 경.”
바실리우스 바실리온에 타고 있는 레미는 자신의 애마에 올라타고 있는 라벨에게 찾아갔다. 두 사람다 마상창시합때 걸쳤던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있다.
성백작국 북부에 위치하고 있는 농촌 벨덴은 지금은 숨죽은듯이 한산하다. 그건 당연한 것이었다. 현재 벨덴의 건물에는 가지고 갈 수 있는 재산이란 재산은 전부 주민들이 들고 피난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근교에는 아델스리드 성백작국군이 서쪽을 향해 방어진을 전개하고 있다. 그 수는 보병이 2천 미만. 그리고 기병이 백명 정도. 실질적으로 성백작국군이 소유하고 있는 전력의 전부였다.
“적은 올까요.”
“안 왔으면 좋겠지만. ……올거다. 분명.”
진형은 매우 단순하다. 6열 횡대──2년전에 비하면 2열의 삭감이 성공했다──의 총병이. 약 250열 좌우로 늘어서있다. 실제로는 50열 마다 지휘 계통의 단락이 있지만 정면에서 보면 약점이 될 구멍은 없다. 그리고 후방에는 적의 기병돌격을 대비할 장창병들이 대기하고 있다. 여차면 그들이 총병의 앞으로 나와 기병의 칼에게서 총병을 지켜내는 것이다. 또 총병의 예비도 어느 정도는 갖춰두고 있다.
그리고 보병대의 좌우에는 기병대를 분할해 호위로 붙여두고 있다──만 레미는 이번 전투에서 그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생각은 없었다. 우회하는 소수의 적부대를 흩뜨리기만 하면 충분하다 기병대는 결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떠맡을 것이기에. 그래서 지금은 기병들을 헛되이 소모하고 싶지 않았다.
“성을 나가기 직전에 황제군에게 보냈던 전령이 돌아왔었다. 아직 적의 본대와는 만나지 않은 것 같더군.”
“황제군이 어떻게 나올지 엿보는 걸까요.”
“글쎄다. 튀렌 장군과는 몇 번이나 대치 해봤지만 그 인간은 천재와도 같은 군인이다. 평범한 나는 그의 의사를 헤아릴 수 없다고,”
“잘도 말하시는구만요. 샤라크 경도 그들과 대적 할 정도의 흔하지 않은 장군입니다.”
자신감이 강한 레미의 겸손이 우스웠나본지 라벨은 숨죽이며 웃었다.
“그렇게나 웃긴 일인가?”
“아아, 이거 실례했습니다. 훈련에서의 경은 타협이 없었으니까요. 아무래도 그 때의 인상이 강해서 그랬나봅니다.”
“나도 성격이 너그러워졌나.”
“지금의 경은 정말 평온한 총사령관이십니다.”
라벨은 신뢰를 가득담은 시선을 레미에게 향했다. 그가 성백작국에서 두각을 뽐내게 된건 최근의 일이지만 그 이전부터 계속 선대 게오르크를 섬겼고 지휘관인 레미를 지켜봐왔다. 그리고 그 마상창시합, 3년간의 훈련으로 그의 레미를 향한 경외는 극한에 달했다.
“이 전쟁에서 열정을 가지고 전투에 임하며 승리의 영광을 쥔 자는 얼마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 전투만 넘긴다면 샤라크 경도 냉철한 장군으로서 이름을 떨칠지도 모릅니다.”
“……그래. 그렇지. 어떻게 해서든 이겨야만 해.”
그렇다. 그녀는, 레밀리아는 어떻게 해서든 이 작은 영지를 지켜야만 한다. 그녀는 마리아의 희망의 빛, 신의 빛이다. 흡혈귀의 힘을 가진 신의 가호가 현세에 재림한 것이다. 그녀와 같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들지 않게 하기 위해서.
──레미의 눈이 좁혀진다. 누구보다도 날카로운 시각이 숲의 그림자에서 나타나는 집단을 발견해냈다.
“……왔군.”
규율을 맞춰 행진하는 북방의 이단자들. 내걸고 있는 푸른 바탕에 금색 십자의 군기는 이국의 바람에 흩날리며 뻔뻔스럽게 군림하고 있다. 먼 옛날의 과거에 유럽을 재패했던 바이킹의 후손, 개신교의 수호자, 지금은 죽은 사자왕의 부하들. 현 강대국의 전사들이다.
“스웨덴군……!”
레미의 목소리에서 전율이 나타났다. 그녀는 이 전투에 있어 몇 개의 가정을 내고 있었다. 적이 아델스리드 방면으로 진군하지 않는 것. 프랑스가 분견대를 보내는 것.
그 중에서도 최악의 상황이 스웨덴이 분견대를 보내는 것이다. 선왕 구스타프 아돌프의 군사 개혁은 스웨덴의 군대를 유럽 최첨단, 최강의 군대로 만들었다. 프랑스군도, 황제군도, 그리고 아델스리드 성백작국군도 스웨덴의 개혁을 모방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스웨덴의 완성도에 미치지도 못했다.
그런 군대가 지금 대열을 짜고 아델스리드를 향하고 있다. 그 규모는 성백작국군을 앞도는 약 3천 명.
“질과 양, 둘 다 뒤쳐지게 됐구만요.”
라벨은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목소리는 태연스러웠지만 레미와 마찬가지로 전율하고 있는 건 명확한 사실이었다.
“……최악의 상황이다. 그래도 예측 못했던 건 아냐.”
레미가 행한 훈련의 최종 목표는 프랑스군의 격퇴가 아니다. 스웨덴군에게 수적 우위를 잡은 상황에서 이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혹독한 재정 상황에서의 훈련은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싸울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병사의 수도 질도 뒤떨어진다. 그러면 지휘의 질과 교묘한 전술로 맞서면 된다. ──모든 건 레미에게 달려있다.
“용감한 아델스리드의 병사 제군!”
스웨덴군이 한걸음씩 성백작국군에게 다가오고 있다. 그 공포에 잠겨버린 병사들을 향해 레미는 고함을 질렀다.
“우리들은 고향의 땅을 지키기위해 피가 번질 정도의 혹독한 훈련을 견뎌왔다! 그 과혹은 제군들이 가장 알 것이다. 위대하신 신도 그걸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마지막 시련을 우리에게 던져 준 것이다!”
레미는 기세 좋게 양검을 뽑아 빛나는 칼끝을 행진하는 스웨덴군에게 향했다.
“봐라. 저것이야말로 파멸이다. 저것이야말로 나락이다!”
모든 병사들이 숨죽였다. 머스켓총을 들고 군기와 연대기를 들며 발소리를 내는 스웨덴군에게는 그 비유에서 현실미가 느껴질 정도의 위용이 있었다.
“그래도 겁먹지마라. 겁먹어선 안 된다. 그들이 패배하면 기지로 후퇴할 뿐이지만 우리가 등 뒤에는 영토와 아름다우신 마리아 마르가레테 각하가 있으시다!”
레미의 목소리는 라벨조차도 전율시킨다. 그리고 그녀는 연설의 매듭을 지었다.
“우리들의 목숨이 다하더라도 각하를 사수해야만 한다!”
“──전군, 전진!”
라벨의 명령에 총원 2천명의 군대는 이국의 군대를 무찌르기 위해 행진을 시작했다. 그 박력은 스웨덴군에게 결코 뒤쳐지지 않았다.
보병대의 진두지휘를 하기 위해 그들와 함께 레미와 라벨도 말로 이동한다. 양검을 검집에 집어넣은 그녀의 손에는 검도 총도 아닌 거대한 활이 있었다.
“지휘의 보좌 정도는 해주겠지만── 한 동안은 맡기겠다. 라벨.”
“알겠습니다. 기대하고 있다고요. 샤라크 경.”
“적의 보병을 조금 도발할 뿐이다.”
대담하게 웃은 레미는 말을 끌고 보병의 뒤에서 멀리 있는 스웨덴군을 바라봤다. 스웨덴군의 약점을 찾는다. 총병대에 지휘계통의 구간이 있고 그 구간마다 하급 지휘관이 배치 되어 있는건 스웨덴도 같았다. 그 구간들을 바로 단절 시키고 스웨덴군의 기세를 끊어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건 내 동생이 잘하는데.’
그들의 진형은 성백작군과는 또 분위기가 다르다. 레미의 반전행진사격 진형은 옆에서 보면 머스켓 총병이 6명 정도 서있고, 그들이 바쁘게 장전, 조준, 사격을 반복해서 끊임없는 탄막을 펼치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전개한 자리에서 진형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공격적인 전술이라 할 수 없다.
구스타프 아돌프는 그걸 개량을 가했다. 스웨덴군의 진형을 옆에서 봤을 경우의 총병의 열은 불과 둘 밖에 안 된다. 끊임없는 탄막은 힘들지언정 같은 인원 수의 총병을 갖춘 전제하에 일제사격의 밀도가 레미의 반전행진사격의 3배가 된다.
그리고 스웨덴 식 진형에서의 총병은 사격 후에 아군에 뒤로 돌아가서 장전하지 않는다. 쏜 그자리에서 장전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뒤에 있는 2열째의 총병이 장전을 끝내면 사격을 끝내고 장전 중인 아군 앞으로 나와서 발포한다. 그렇게 진형은 계속 전진이 가능하며 반전행진사격보다 더 능동적으로 전투를 치룰 수 있다.
어느쪽이 우수한지는 레미도 판단을 하지 못한다. 수십년이 지나면 저절로 해답은 그 시대의 군인들로 인해 나오겠지만 적어도 방어에 몰두해야하는 아델스리드 성백작국군에게는 스웨덴식보다 네덜란드의 반전행진사격이 어울린다고 판단했다.
“……포병도 있는 건가.”
성백작국군은 보병과 기병밖에 없다. 그러나 스웨덴군은 최후방에 3문의 야전포가 있었다. 스웨덴군 독자의 다루기 쉬운 경포다. 그리고 고작 3천명의 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야전포를 3개나 배치한다는 건 조금 허풍과도 같았다. 그 소리는 즉──
“아델스리드 성을 재빠르게 함락시킬 생각인가?”
숙련도도 규모도 웃도는 부대를 파견 하는 것으로 소영주의 과병을 정리하고 자신의 등을 찌를 수도 있는 불안요소인 성을 포병으로 부셔버린 다음에 황제군 본대의 측면을 유유히 협격한다. 그야말로 합리적인 전법이다.
“그렇게 놔둘 순 없지. ……일단은 그 물러터진 전제조건을 부셔버리겠어.”
아델스리드 성백작국군의 행진이 멈췄다. 라벨의 명령을 받은 그들은 훈련대로 머스켓총에 장전을 시작한다. 이제 곧 양군의 총병대가 사정거리에 들어간다. 그 거리를 가늠한 거리는 스웨덴군의 사관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머스켓총의 사정거리는 매우 짧다. 기병이 전력으로 달린다면 10초도 안 걸려서 돌파할 수 있는 거리다. 그런데도 머스켓총이 활을 대체할 수 있었던 건 사수의 육성이 비교적 쉬웠기에 가능했다.
즉 활의 병기로써 우위성을 가지는 건 이 17세기에 와서 완전히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활의 사정거리는 머스켓총보다도 훨씬 길고, 근거리에서도 위력의 감퇴는 허용 범위안에 들어간다.
레미는 자세를 잡고 물흘러가듯 화살을 시위를 메겼다. 그 순간 온 몸에 그리움이 맴돌았다. 소녀 레밀리아가 태어났을 적엔 이미 머스켓총이 실전에서 운용 되고 있었지만 역시 그녀에게 있어 가장 친숙한 무기는 이 활이었다.
장궁── 영국에서 만들어지고 백년 전쟁에서 영국군이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던 대형 활이다. 몸집이 작은 레미와 비하자면 장궁의 길이는 그녀의 어깨부터 발꿈치까지 닿는다. 그래서 레미가 장궁을 당기는 모습은 조금 기묘하게 보일 정도다. 그러나 이 무기는 그녀가 쓰기에 그 잠재요소를 발휘 할 수 있다.
살아있는 시체, 스트리고이는 어디까지나 시체다. 레밀리아는 몸에 따로 특수능력은 없지만 근력과 오감은 인간을 매우 웃돌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그 왜구로 플레이트 아머를 입고 랜스를 쥐는 것이 가능했다.
그래서── 그 괴력으로 장궁을 극한까지 당기고, 그 시력으로 적의 지휘관을 정확하게 노리는 것이 가능하다.
장궁에서 화살이 날아간다. 이것이 개전의 신호가 되었다.
곡사를 전제로 한 활에서 직사와도 같은 탄도를 그리며 화살이 날아갔다. 그 순간 화살은 말을 타고 있었던 스웨덴 사관의 목을 관통했다.
“뭣…….”
그에게 죽음의 감각은 찾아오지 않았다. 그 광경을 본 모두가 말문이 막혀버렸다. 공포가 만연하는 건 스웨덴군이 더 심각했다. 하지만 그들에겐 그 모습을 지켜볼 틈같은 건 없었다. 자신의 의사로는 발걸음을 멈출 수 없는 불쌍한 스웨덴 총병들은 방금 아델스리드 총병대의 사정거리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적군을 기다리고 있던건 이미 사격 준비가 끝난 최전열의 머스켓 총병들이다. 라벨의 명령은 사자의 포효처럼 울려퍼졌다.
“……발사!”
250정의 머스켓총이 일제히 불을 내뿜었다. 그 굉음은 대지를 흔들고 하얀 연기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 연막을 가르는 성백작국군의 2번째 사격이 스웨덴군을 향해 발사 됐다.
적에게 퍼부어지는 총탄은 이걸로 이미 5백발. 그러나 그 모든 총알이 적을 꿰뚫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유효탄이 극히 일부다. 사정거리의 한계점에서 발사를 했기에 당연한 결과이지만 상관없다. 한 명이라도 많은 적군을 쓰러뜨려야만 하니까 유효탄은 적어도 누군가 맞기만 하면 상관없다.
레미의 장궁이 발사하는 것과 총병대의 3번째 사격이 동시에 이뤄졌다. 기사의 미늘갑옷 조차도 꿰뚫는 예리한 화살촉이 운이 안줗은 경장비의 스웨덴군 지휘관의 가슴을 꿰뚫는다. 그는 힘없이 말에서 쓰러졌다. 그리고 성백작국군의 납탄이 총병 몇 명을 명중 시켰다.
하지만 성백작국군의 일방적인 공세도 여기까지 였다. 혼란에서 빠져나온 스웨덴군은 흐트러진 대열을 다시 갖추고 전열의 머스켓 총병이 사격을 개시했다. 성백작국군의 몇 배나 되는 총탄이 그들을 덮쳐온다.
“겁먹지 마라! 밀어붙여!”
수 십 명의 성백작국군이 힘없이 땅으로 쓰러진다. 머스켓총은 사정거리는 짧지만 위력은 매우 크다. 기병과는 달리 총병은 갑옷을 걸치지 않는다. 피격하면 중상은 커녕 대부분이 즉사한다.
총병이 죽게 되어 생긴 빈 공간은 바로 예비병으로 채워진다. 성백작국군의 4번째 총성이 울려퍼진다. 그 총성에 응하는 것처럼 스웨덴의 2번째 총탄도 발사된다.
“역시 이걸로는 힘든가……!?”
레미와 바실리우스 바실리온의 갑옷에도 몇 발의 총탄이 도탄했다. 그녀도 그에 맞서 장궁으로 응전했지만 아무리 일격필살이라도 3천 명의 적군 상대로는 판도를 바꿀 수 없었다. 특히 레미가 있는 좌측 부대와 대치하는 스웨덴군의 우측 부대의 지휘관은 그녀의 장궁에 겁먹어 조금씩 회피 행동을 취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도 그들을 노리는 걸 포기하고 총병을 하나씩 죽였지만 그거야말로 소용 없는 행위였다.
그리고 진형의 가장자리에 있기에 레미는 알 수 있었던 사실이 하나 있었다.
“머지않아 협공도 하겠군.”
스웨덴군의 진형은 같은 인원수라도 성백작국군의 진형보다 가로로 길다. 그리고 적군은 총병의 수 자체도 성백작국군보다 많다. 그러니 진형의 가로 길이는 스웨덴군이 압도적이었다.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좌측과 우측 가장자리의 총병대가 성백작국군을 포위 하기 위한 전개를 할 것이다. 이대로라면 성백작국군은 3방향에서 총격을 받게 된다. 그렇게 되면 붕괴하는 것도 금방이다.
활을 쏴서 우측의 지휘관을 죽이고 시간을 번다. 그리고 중앙에서 지휘를 하고 있는 라벨에게 달려갔다.
“이제 한계다. 라벨. 적의 우측은 앞으로 몇 분이면 이 곳까지 노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쪽도 상황은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예상 이상으로 피해가 큽니다.”
그의 씁쓸한 표정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다. 아델스리드 성백작국군도 어느정도의 예비병은 준비해두고 있지만 애초에 소규모 국가이기에 예비를 많이 준비 할 수 있는 여력같은 건 없었다.
“지금이 기회인가.”
“그런 것 같군요.”
서로 수긍한 둘은 바로 말을 몰았다. 라벨은 우측으로 레미는 좌측으로. 그리고 전투를 속행하고 있는 총병들을 향해 큰 목소리로 전술의 변경을 알렸다.
“후퇴 준비!”
“후퇴 준비!”
──스웨덴의 지휘관 중에는 독일어를 할 수 있는 자, 아니면 독일인이 의외로 많다. 그래서 성백작국군의 지령을 들은 자들은 그들이 피해를 견딜 수 없어 철퇴를 선택했다고 착각했을 것이다. 그 중에는 벌써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자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곧 오히려 이 이후로 전투의 진면목이라는 걸 그리고 자신들이 상당한 실력의 상대와 전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변화는 완만히, 그리고 확실히.
최전열의 성백작국군 총병이 사격을 끝내고 후방으로 물러선다. 지금까지 하던대로 였으면 다음열의 총병이 방금 전까지 최전열의 총병이 있었던 곳으로 나와 변함없는 진형을 유지 했을 것이다. 그것이 반전행진사격이다.
하지만 성백작국군의 행동을 본 스웨덴군 지휘관들은 모두 놀랐다.
성백작국군의 총병들은 앞으로 나오지 않고 서있던 자리에서 머스켓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후방으로 물러나고 그 뒤에 있던 총병들도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서 사격하고 뒤로 물러났다. 즉 진형이 항상 전진하는 스웨덴식의 정반대의 전술이다. 아델스리드식 행진사격은 항상 후퇴하면서 쫓아오는 적에게 총격을 가하는 것이다. 매우 국소적이고 효율이 낮지만 스웨덴군 한정으로는 매우 유효한 전술이다.
“결국 이걸 쓰게 되는군.”
전술의 전환을 결의한건 레미였지만 내심은 불안으로 가득 차있었다. 스웨덴군이 2열횡대를 채용한 이유는 열이 많으면 이동하면 반드시 진형이 무너진다는 점에 있었다. 전진을 하든, 후퇴를 하든 그 점은 계속 걱정을 해야할 문제다.
하지만 성백작국군의 병사들은 훌륭하게 그 걱정을 떨쳐내고 레미에게 보답해줬다. 후퇴하는 성백작국군은 좌우에서의 추격을 뿌리치고 최소한의 피해로 스웨덴군을 농락하고 적의 수를 줄여나갔다.
“발사!”
라벨에게서 지휘를 넘겨받은 레미는 명령을 내리면서도 장궁으로 한명이라도 많은 적을 줄여나갔다. 반전행진사격 중에는 동등했던 피해량에 비해 지금은 성백작국군이 더 적은 피해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아델스리드식 행진사격은 어디까지나 기책이었다. 기책으로는 왕도를 이기는 건 손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안 됩니다. 샤라크 경. 스웨덴 군이 반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선두 지휘를 하던 라벨은 급히 되돌아와서 어려운 현 상황을 보고했다. 일시적으로 이탈했었던 적군의 좌우측의 진형이 전장에 복귀한 것. 또 일시적으로 혼란 상태에 빠졌었던 지휘관도 재빠르게 적응해 현재의 전투를 스웨덴이 주도하는 추격전의 양상으로 바꿔갔다는 것.
“……예비병도 다했다. 그래도 우리도 피해 이상의 타격을 적에게 입혔다──만.”
“애초에 우리군은 스웨덴 군에 비해 수가 적었고, 어중간한 소모전은 우리에게 있어 불리한 상황이라는 거군요.”
아직 후퇴 사격은 3번밖에 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한계점이 보이고 있다. 레미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어쩔 수 없군. ……벨덴까지는 이 진형을 유지. 나는 병사의 일부를 이끌고 벨덴에서 지체전술을 펼쳐 시간을 벌겠다. 그 사이에 라벨은 본대를 아델스리드까지 후퇴 시켜라.”
레미가 시선을 뒤로 돌리니 농촌 벨덴은 바로 근처에 있었다. 시민과 농기구가 있는 변변찮은 집들이 드문드문 있는 작은 마을이지만 지방 출신이 많은 성백작국군의 병사는 이 곳의 건물과 지형을, 또한 벨덴에서 아델스리드까지의 삼림지대를 빠져나가는 방법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이 버림돌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곳, 벨덴을 결전의 땅으로 삼을 생각은 없다. 아델스리드로 향하는 가도…… 거기서 스웨덴군을 몰아낼 것이다.”
벨덴도 성백작국의 일부다. 만일 적을 벨덴에 도착하기 전에 철퇴시키는 것이 가능했다면 그럴 일도 없었지만 이제 이렇게 된 이상 적이 아델스리드 성에 도착하기 전에 분쇄하는 것에 목표를 삼는 것말고는 방법이 없다.
“……무운이 함께 하길.”
총성, 노성, 비명. 인간의 극치가 담겨있는 전장에서 라벨이 레미에게 보낸 목소리는 새가 속삭이는 것만큼 보잘 것 없는 소리였다.
“그렇습니까…… 벨덴이 함락 했나요.”
마리아의 표정은 비관적이지 않았다. 그러나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지체전술을 성공하고 성백작국군 본대의 철수를 성공 시킨 레미는 일단 아델스리드 성에 귀환했다. 현재 본대는 좁은 아델스리드 가도에 방어진을 치고 있다. 스웨덴군은 벨덴을 확보한 후 태세를 가다듬고 있는듯 하다. 성백작국군의 저항은 예상보다도 거세어서 당장 행동을 개시할만한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성백작국군은 벨덴에서 아델스리드로 통하는 가도에서 스웨덴군과 결전에 임할겁니다.”
“승산은 있습니까?”
“저는 이미 패배를 경험한 몸입니다. 그러니 승리를 확신하는 건 의미가 없죠. ……그래도 전력은 다할겁니다.”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창 밖을 바라보던 마리아는 뒤돌아서 그녀에게 무릎을 꿇고 있는 레미에게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녀를 불쌍히 여기듯 뺨을 어루만졌다.
“그렇게까지 자신을 나무랄 필요는 없어요. 레미의 충의도, 능력도 의심하지 않아요. 당신이 벨덴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했던 건 저를 위해서 한 행동이잖아요.”
“……그건.”
“전 레미를 믿고 있어요. 그러니 당신은 당신의 본망을 다해주세요.”
레미가 올려다본 곳에는 덧없이 웃고 있는 마리아가 있었다. 마리아의 표정은 만지기만 해도 곧장 부셔질 것만 같을 정도로 힘이 없었기에 레미는 자신의 뺨을 만지고 있는 마리아의 팔을 건드리는 것이 불가능했다.
“……왕녀전하는.”
“네.”
“당신은 여기에 있으실겁니까?”
──두 사람이 있는 성의 회의실은 매우 한산했다. 방금 전까지 같이 있었던 신하들도 이제는 없다. 그저 성백녀와 기사만이 넓은 공간에 주체를 못하는 것처럼 한구석에서 조용히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제 이 아델스리드 성에는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존재했던 열기가 없어져버렸다.
벨덴에서 성백작국군이 패배했다── 그 정보는 많은 자들이 아델스리드에서 피난하려는 걸 결심하게 만들었다. 잡일꾼부터 신하들까지 전부. 그리고 마리아는 그들에게 아델스리드를 탈출하라고 권고 했었다. 애초에 어제부터 마을의 주민을 중심으로 성백작국의 시민들이 피난이 잇따르고 있었다. 벨덴에서 이뤄진 일시적인 철퇴는 그 흐름을 결정짓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마리아는 동생, 아델스리드 성백작 프리드리히도 신하와 함께 아우크스부르크로 피난시켰다.
하지만 섭정 마리아는 아직도 아델스리드 성에 혼자 남아있다.
“성주 프리드리히 각하도 피난하셨습니다. 당신도 빨리 아우크스부르크로 가야합니다.”
“마음만 받아드릴게요. 레미.”
“이제부터 여기는 군인들의 영역이 될겁니다……! 전투가 끝난 뒤에 되돌아오면 되지 않습니까!? 왕녀전하가 성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습니다……!”
말을 안 들으려 하는 마리아에게 격앙을 하는 레미는 그대로 일어나서 마리아의 팔을 붙잡았다. 하지만 그녀는 레미에게 익살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어머. ……레미는 이 성을 지킬 자신이 없는 건가요?”
“그런 건 아닙니다만……. 그래도!”
“그리고 제가 여기에 있을 이유라면 있어요.”
힘이 빠진 레미의 손이 그대로 마리아의 팔에서 미끄러져 마리아의 손바닥과 맞닿았다. 두 사람의 손바닥은 조그마한 틈도 없이 완전 밀착 되어 서로의 고동을 전했다.
“저는 섭정이에요. 성백작 프리드리히 대신에 성백작국의 모든 책임을 맡게 된 자이지요. 그러니 어떤 결말이 찾아오더라도 그건 제 결정에 의한 결말이죠. 모든 책임은 제가 짊어져야만 해요.”
“아냐…….”
“그래서 전 여기에 남을겁니다.”
레미는 중얼거리며 마리아의 결의를 부정했지만 그 말이 그녀에게 닿는 일은 없었다. 목소리는 성모와도 같이 부드럽고 너그럽지만 가슴 속에 품은 결의는 철과 같이 단단했다.
마리아는 레미의 손을 꽉 쥐었다.
“그리고 당신의 건투를 신에게 계속 빌 거에요.”
──성이 불타는 그 순간까지.
마리아를 아델스리드 성에 남기고 레미는 전장으로 돌아갔다. 적군을 격퇴하는 것이 가능하면 그녀를 구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좁은 가도에 아델스리드의 총병들이 대열을 만들고 있었다. 휴식은 끝났다. 모두가 전투의 재개를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신세를 지게 되는군요. 아르님 재상.”
“이 늙은 몸이 가능한 일이라면 전쟁 중이라도 무엇이든 응해준다고요. 샤라크 경.”
임시로 설치 된 작은 진지가 보병들의 후방에 있다. 그 안에는 성백작국의 재상, 즉 문관의 필두인 아르님이 중장비는 아니지만 복부에 갑옷을 걸치고 기병용 투구를 쓰고 있었다.
아르님에게 맡긴 것은 총병대의 지휘다. 레미와 라벨은 이 결전에서 총병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제가 가르친 우수한 병사들입니다. 지휘만 내려주면 재상의 명령도 잘 들을겁니다.”
“이거 즐겁군요. 뭐 저도 이래뵈도 전장에 서본 적은 있으니까 샤라크 경이 부탁하신 건 대강 달성할 수 있을 겁니다.”
“……의외로 의욕이 넘치시는군요.”
“아르님 가는 무인 가문이었으니까요. 그 피가 끓는겁니다.”
그는 그대로 말에 올라타 노인 답지않은 웃음을 지으며 경쾌하게 주위를 달렸다. 그 모습을 지켜본 레미는 걱정을 하나 덜었다고 생각하며 자신도 말에 올라탔다.
“초반엔 저도 지휘를 맡을겁니다.”
“그거 든든하군요. 라벨 장군은 어딨죠?”
“이미 기병대를 이끌고 예정 지점을 향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 남아있는 건 총병과 창병뿐이다. 레미와 아르님 등, 지휘관 급의 일부는 말에 올라타있지만 기본적으로 기병은 전부 없어졌다. 그리고 남아있는 총병들은 숲과 숲 사이에 구축한 가도── 정확히는 가도와 양쪽에 펼쳐져 있는 호밀밭에 머스켓 총을 들고 전개하고 있다.
레미와 아르님은 방금 전의 전투와 마찬가지로 말을 횡대의 가장자리까지 이동시켰다. 그리고 북쪽으로 뻗어이는 가도를 계속 바라봤다. 벨덴의 전투에서 곧 3시간이 지난다. 태양은 아직 하늘 위로 떠오르지 않았지만 추위는 어느샌가 사라져 인간들의 전쟁따윈 상관 없다는듯 봄의 따뜻한 날씨가 주위를 덮기 시작했다.
──하지만 북방에서 온 자객은 살풍경한 청색의 깃발을 들고 이 땅을 유린하려 한다.
“드디어 왔나.”
정찰같은 건 필요 없었다, 아델스리드와 벨덴과의 거리는 매우 가깝다. 정비를 끝낸 스웨덴 분견대는 다시 대열을 짜고 구스타프 아돌프처럼 그저 남하만을 목표로 했다. 그 행위에 타협은 없었다.
“……장전!”
레미가 외친다. 아델스리드 성백작국군의 사기는 아직 쇠약해지진 않았다. 모든 병사가 승리 하고 싶다고 기세 좋게 소리지르고 있었다.
벨덴에서 입은 피해는 약 3백 명. 예비병의 수를 살짝 웃돌고 있다. 그래서 이번 전투에는 총병의 수를 250에서 200으로 줄이고 남은 총병을 후방에 대기 시켰다. 행진사격의 본질인 끊임없는 탄막을 총병의 사상으로 인한 공백이 생긴다는 현실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실현하려 하면 어떻게든 그 공백을 메꿀 예비가 필요 했다.
그래서 진형 전체의 폭은 전보다 짧게 되었다. 그래도 벨덴에서의 전투와는 다르다. 레미는 폭이 짧게 된 것을 걱정하지도 않았다. 왜냐면──
“발사!”
전투가 시작된다. 최전열의 아델스리드 총병이 방아쇠를 당긴 것과 동시에 스웨덴 총병도 응전했다. 한동안 평온을 유지했던 가도가 연기에 뒤덮인 전장이 되었다.
전황은 벨덴 전투의 재현이었다. 아델스리드군은 네덜란드식 반전행진사격으로 총격을 퍼붓고, 스웨덴군도 스웨덴식 행진사격으로 항상 전진하며 총탄을 퍼부었다. 그러나 벨덴의 전투처럼 성백작국군이 압도 당하지는 않았다.
“장전을 서둘러라.”
“제 4열, 발사!”
아르님은 조촐하게 지시를 분주하고, 레미는 소리지르며 명령을 내린다. 스웨덴군의 상황을 보아하니 그녀는 자신의 의도대로 일이 진행되는 것을 확인하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