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무가 명계의 연회 소식을 알게 된 것은 마을의 소란스러움을 통해서, 정확히는 웅성이는 인파 사이에 껴들어가 직접 대자보를 목격하고서였다. 인파는 진의여부를 다투는 수다에 떠들썩했으나, 레이무는 웅성임을 묵살시키려 대자보를 보자마자 뜯어버렸다.
“여느 때처럼 헛소문이니, 다들 돌아가도록 해.”
“네, 넵.”
어느 청년의 긴장서린 대답을 기점으로 몰려들었던 인파가 퍼져나갔다. 또 무슨 이유 때문에 이런 황당무계한 소문이 퍼지려 한 걸까. 명계에 일반인들을 초청하려 하다니. 의도가 도저히 짐작되지 않아 들은 짜증에 레이무는 머리를 살짝 긁어댔다. 그나마 미연에 차단한 점을 다행으로 두어야 될 것이다. 그 덕에 이 소문도 지금까지의 도시전설들처럼 허황됨이 드러나게 될 터이니.
이런 정체불명의 소문은 두었다가는 절대 예삿일로 넘어갈 수가 없었다. 정체불명은 곧 미지의 공포로서 이어진다. 비롯된 공포는 바로 요괴의 힘의 근원, 부의 감정으로서 명맥을 이어간다. 그렇기에 소문을 퍼트린 장본인이 아니더라도 소문을 이용해 힘을 키우는 요괴는 여럿 있었다. 레이무 자신도 지금까지 지겹도록 봐오고, 또한 처벌해와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결국 소문은 해결해야 되었다. 근원을 해결해야 이와 같은 일을 다시는 벌이지 않을 터였다. 그렇기에 구겼던 대자보로 레이무가 시선을 돌렸다. 의외로 단서는 쉽게 눈에 띄었다. 프리즘리버 자매, 출처불명의 소문에서 유일하게 알아볼 수 있는 이름이었다.
“되게 빠르네. 벌써 출발했어.”
“망원경 저도 봐볼 수 있나요?”
“엿다.”
마리사로부터 망원경을 건네받은 사쿠야는 렌즈를 보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리사는 저쪽에 있다며 손가락으로 어느 방향을 가리켰다만, 사쿠야의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흐릿한 하늘뿐이었다. 건네는 사이에 사라질 정도로 속도가 빠르기라도 한 건가, 사쿠야는 눈에 맞추었던 망원경을 내려놓았다. 마리사는 쭉 기지개를 피며 몸을 일으켰다.
“봤다면 이제 만나러 가자. 프리즘리버 자매도 여기 근처에 있었으니까.”
“네.”
둘은 동시에 공중으로 뛰어들었다. 수다를 떠는 척 하면서도 시선은 앞으로 두었다. 곧 평소처럼 시선을 부라리고 있는 레이무와 시선을 마주칠 정도의 거리가 되었다. 그제야 마리사는 눈치를 챈 연기를 하여 능청스레 말했다.
“요, 오랜만.”
“안녕.”
“어딜 그리 급하게 가?”
“이변 해결.”
“헤에. 어디로?”
“네가 알 필요는 없어.”
변함없이 붙임성 없어 신물 나는 태도. 언제 봐도 대하기 참 막막했다. 마리사는 두르던 목도리를 입까지 슬며시 올리고는 픽 한숨을 쉬었다. 별 뜻 없는 행동이 아니라, 시선을 몰리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금 마리사의 손에는 마을의 대자보와 동일한 내용이 적혀있는 붕붕마루가 들려있었으니.
“……너.”
“응?”
옳커니, 걸려들었구만. 가린 입에서 옅은 미소를 지은 마리사는 곧바로 의문에 답할 준비를 했다. 레이무는 눈살을 한층 더 찌푸리더니 물었다.
“어디로 가는 거야.”
“명계로. 이쪽의 메이드 씨랑 함께.”
“명계는 산 자의 출입을 금해.”
“응? 연회가 열린다던걸. 괜찮지 않겠어?”
“……연회는 헛소문이니까 돌아가도록 해.”
“안-돼. 이미 갈 준비는 끝마쳤어. 프리즘리버 자매도 발견했다구? 돌아가기는 뒷맛이 영 개운치 못하단 말이지.”
그렇지 않아? 마리사는 천연덕스럽게 사쿠야를 돌아보곤 물었다. 갑작스럽게 넘겨진 토스에 잠시 멍을 때리던 사쿠야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억지 미소를 보이며 긍정했다. 어색함이 퍽 느껴질 정도의 암담한 연기 실력이라, 마리사는 콧숨읖 가늘게 쉬었다. 주의를 돌리려 다시 얘기나 꺼냈다.
“게다가.”
“?”
“네가 나선 걸 보니 이변일지도 모르고 말이지.”
“무슨 말?”
“숨길 생각 마. 네 표정에서 드러나거든? 지금 너도 명계로 가는 길이잖아?”
마리사는 과장스레 신문을 펄럭펄럭 흔들어댔다. 신문으로 시선이 몰려있던 것쯤이야 진작에 눈치 챘었다며, 얼굴 표정이나 관리해보라 말을 더했다. 레이무는 살짝 짜증이 난 얼굴을 하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알면 돌아가. 일반인이 낄 자리는 더더욱 아니야.”
“일반인 이전에 난 이변 해결사야.”
“집어 쳐. 또 다칠 생각이야?”
“그 때는 레밀리아의 실수였잖아. 왜 그렇게까지 민감해? 사고란 건 그리 흔하게 일어나는 게 아니라고.”
“너야말로 왜 그렇게까지 억지를 부려? 왜 스스로 불구덩이에 빠지겠다고 나서냐고. 그 날의 사고가 실수 같은 게 아닌 건 너도 알고 있을 거 아냐! 돌아가! 제발!”
호통에 가까운 호소에 마리사는 잠시 움찔했다. 레이무의 말대로 그 사고는 실수 같은 것이 아닌, 오히려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딱히 레밀리아가 아니더라도 나중에 벌어질 가능성은 높았다. 서로가 감당할 수 있는 화력의 기준이 달라 벌어진 사고였으니까.
“……미안.”
“…….”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미. 볼을 긁적이며 하는 마리사의 사과에 레이무는 입술을 씹으며 분함을 표했다. 무력으로 제압은 할 수 있겠으나, 이변이 끝날 때까지 제압한 마리사를 감시할 수도 없는 노릇. 강하면 뭣하나. 이런 것 하나 어찌하지 못하는데. 그런 무력감에 분함을 느껴 레이무는 눈동자를 떨구었다.
“……알겠어.”
천천히 숨을 내쉬던 레이무가 체념하곤 가슴께로 손을 집어넣었다. 곧 손에 실이 연결된 부적 무더기가 딸려나왔다. 우물쭈물 바라만보던 마리사와 사쿠야는 곧 오라는 손짓을 따라 레이무의 앞에 섰다. 레이무는 수십 장을 꺼내고, 문양이 다른 부적이 딸려 나오고서야 연결된 실을 들어올렸다.
“이게 내가 가진 수호부 전부야. 저번이랑 다르게 만들어 둔 게 없으니까, 이거 정확히 반으로 나눠서 둘이 챙겨.”
“음,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 그 문양 다른 부적은 무슨 용도?”
“봉인.”
이빨로 실을 끊으며 레이무가 간결하게 답했다. 받아든 부적을 둘둘 감던 마리사는 봉인이란 소리에 한 차례 더 궁금증을 표했다.
“뭐, 오른손에 봉인된 흑염룡 같은 거냐?”
“비슷해.”
“……아 그래.”
얘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마리사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삼켰다. 덩달아 부적을 받아든 사쿠야는 잠시 얼떨떨한 얼굴을 하며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저희한테 이걸 전부 주시면….”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하긴, 그렇네요.”
여기 있는 누군가는 적어도 무력에 관해선 레이무를 걱정할 처지가 안 되었다. 아니, 이곳에 한정짓지 않더라도 걱정할 처지의 인물이나 요괴는 없겠지. 항상 엄살떨며 과보호를 하려는 유카리를 제외한다면야.
“거, 준비 다 했는데 얼른 따라가자. 이러다 놓치겠다.”
마리사는 프리즘리버 자매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레이무는 선두에 나서며 프리즘리버 자매를 쫓았다. 속도는 꽤나 느긋하여, 따라잡는 데 시간은 별로 걸리지 않았다. 이렇게 계속 미행을 계속하겠지. 마리사는 그렇게 생각하고서 속도를 살짝 늦췄지만, 레이무는 오히려 속도를 높여 따라잡고는 말했다.
“동행 좀 하자.”
“으, 응?”
“하자고.”
“……네.”
눈을 부라리는 레이무의 위협에 장녀인 루나사가 대표로 답했다. 레이무는 나름대로 전투를 하지 않으려는 계책으로 내뱉은 것이었다. 이대로 프리즘리버 자매의 동료인 척 해 최대한 전투를 안 하려는 생각이었으니.
마리사와 사쿠야는 대뜸 해버린 합류에 어떠한 말도 할 수 없었다. 이의를 제기하는 것조차도 할 수 없어, 어처구니없는 눈치로 쫄래쫄래 달라붙기만 할 뿐이었다. 그 탓에 분위기는 서먹서먹해졌고, 마리사는 답답한 공기를 타파하기 위해 굳이 이야기를 꺼냈다.
“레이무, 근데 이 부적은 어디까지 막을 수 있어?”
“정확히는 몰라.”
“대충 말이야 대충. 어느 정도?”
“…웬만한 대요괴 아니면 못 뚫을 정도. 굳이 기준을 잡자면 카자미 유카.”
“……오메.”
분에 넘치는 장비를 받은 기분을 느껴, 마리사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이 정도면 돌다리를 두들겨보고 건너는 수준이 아니라 안심할 정도의 다리를 새로 만들어 강을 건너는 느낌이었다. 꺼낸 부적으로 시선을 돌려 이거 나중에 팔면 비싸려나, 장사꾼으로서는 건실할 고민 따위나 했다.
“앞에 봐. 도착했으니까.”
“아, 그래.”
마리사가 고개를 들자 보이는 것은 벚꽃의 향연이었다. 백옥루의 정원사인 요우무가 한 달을 꼬박 돌아다니며 모은 봄의 기운. 그를 통해 피워낸 벚꽃이었다. 마리사는 팔렸던 정신을 다시 다잡고는 정면을 보았다.
“일행인 척하고 넘어갈 거니까 조용히 해.”
“……야 야.”
아무래도 레이무는 쇼트 컷을 너무 좋아하는 듯 보였다.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그렇다고 해서 따질 깡은 없어 마리사는 그냥 닥치고 따라가기로 했다. 곧 그녀들의 시선에 시종인 콘파쿠 요우무가 보였다. 프리즘리버 자매는 뒤에 불한당이 있다는 긴장감에 땀을 뻘뻘 흘리며 요우무를 지나쳤다.
“아, 초청받은 분들이시군요! 유유코 님은 좀 더 위쪽에 계셔요!”
요우무는 반기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연신 콧노래를 흥얼거려대었다. 프리즘리버의 뒤쪽에 바싹 달라붙은 레이무는 그대로 동행하려 들었다. 뒤따라 붙는 레이무 일행을 본 요우무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쪽도 예정된 손님인지 하여.
“응?”
“응.”
레이무는 고개를 까닥거리며 긍정을 표했다. 무슨 긍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긍정이었다. 하도 당당하여 자연스러운 태도에 요우무는 잠시 덩달아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들을 보냈다. 연신 으음- 소리를 내다 프리즘리버 자매가 셋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될 때까지는.
“자, 잠시만요! 당신들 초청받은 손님 아니잖습니까!”
“……쯧, 들켰네.”
뒤통수 방향에서 들려오는 태클에 레이무는 혀를 쯧 찼다. 곧장 마리사와 사쿠야를 바라보며 어정쩡한 태도를 지적했다.
“너희들이 자연스럽게 안 구니까 실패한 거잖아.”
“아니 이게 왜 내 탓.”
“그러게요.”
“침입자는 용서하지 못합니다! 이 콘파쿠 요우무! 맞서겠어요!”
결국에는 오늘의 쇼트 컷도 실패. 지금까지의 성공률은 당연히도 제로.
*
“뭐야? 왜 화면 안 나와!”
사쿠야가 부적을 받아든 순간부터 출력되지 않은 화면. 한창 주시하던 차에 갑작스레 통신이 끊기자 레밀리아는 당황을 표하며 헐레벌떡 구식 텔레비전에 달려들었다. 덩달아 관람하던 차인 유카리도 그런 감정은 비슷하여 얼떨결에 어? 소리를 내었다.
“파체! 이거 무슨 일이야? 왜 티비가 지지직거려?”
“마력 송신은 되고 있는데.”
티비를 덜컥 부둥켜안은 레미는 다급히 파츄리를 호출했다. 화면은 딱 레이무에게서 부적을 만지고 나서부터 끊겨, 레밀리아의 불안감을 더욱 증폭시켰다. 불려온 파츄리는 화면이 끊긴 티비를 매만져대보긴 했으나,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레밀리아는 이를 딱딱 떨며 조마조마 기도를 했다. 신이시여, 제발 저의 종자가 안전하기를. 완벽하고도 소쇄한 메이드를 지향하기에 가끔씩 허둥대며 저지르는 실수가 챠밍 포인트로 부각되는 저의 종자를. 군말 없이 위험한 일조차 받아들이는 충성심이 무지 개 같은. 아니, 충견과도 같은 저의 아이를 지켜주시옵소서 라고.
흡혈귀에 악마라는 종족이 기도를 해도 되나. 지지직- 혼선음을 내는 티비에서부터 시선을 돌린 유카리가 턱을 괴며 생각했으나, 몸에서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 걸 보니 괜찮은 듯 보여 쉬쉬 넘겼다. 막 기도를 끝낸 레밀리아는 정신 사납게 티비 주위에서 방방 뛰어대며 파츄리를 재촉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문제야 파체? 티비가 구식이라 그런 거야?”
“아니, 그런 문제는 아니고.”
“그럼 뭐가 문제야!”
어떻게 된 일이냐고, 레밀리아는 파체의 옷을 움켜쥐고는 흔들어댔다. 잠시 어지럼증을 느낀 파체는 겨우겨우 레밀리아를 떼놓고 올라오는 헛구역질을 진정시켰다. 후우, 숨을 고르고서야 진상을 밝혔다.
“마력이 송신은 돼. 그런데 중간에 끊겨버려. 아마도 사쿠야가 받은 부적이 마력을 차단하는 기능을 갖고 있나 봐.”
“그, 그럼…!”
“응, 이제 못 봐. 포기해.”
“안 돼애… 사쿠야아……!”
털썩, 레밀리아가 무릎 꿇고는 절규했다. 유카리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절찬리 좌절을 표하는 레밀리아를 토닥였다. 어깨가 몇 번 토닥여진 레밀리아는 벌컥 일어서더니 이번에는 유카리의 멱살을 잡고 울먹거리며 외쳤다.
“너, 어떻게 할 거야! 우리 사쿠야 어떻게 할 거냐고!”
언뜻 듣기엔 상갓집에 원수라도 찾아온 도중이 아닐까 싶을 분위기였다. 오히려 부적은 사쿠야를 보호하는 역할일 텐데 말이다. 앞뒤로 흔들리는 멱살에 덩달아 고개가 뒤흔들리던 유카리는 진정 좀 하라며, 겨우겨우 말을 꺼냈다. 그럼에도 강세는 쳐지지 않고.
“진정? 어떻게 진정해! 당장 우리 사쿠야 데려와!”
이리 레밀리아는 일갈할 뿐이었다. 혼이 담긴 투정은 끝없이 이어져, 홍마관 내부에 메아리쳤다. 그럼에도 해결할 방법은 없었다. 레이무의 부적이 영적인 기운까지 차단하는 고성능인 것을 탓해야 할 뿐이었다.
한편, 백옥루의 상황. 흘러드는 혼 탓에 항상 칙칙함을 드러내던 백옥루의 계단은 모여든 벚꽃과 퍼져드는 탄막으로 알록달록한 색을 뽐내고 있었다. 언뜻 시선을 빼앗기기 쉬울 정도로 탄막의 형상은 화려했으나, 격돌한 넷 중 둘은 탄막이 아닌 요우무의 허리춤에 달린 칼로만 시선이 고정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돌발 변수라고는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은근히 검으로 힐긋힐긋 시선을 보내는 것은 요우무도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요우무는 지금 넷 중에서 칼에 가장 관심을 쏟는 이였다. 그럼에도 요우무는 아직까지 칼을 발도하지 않았다. 손은 당연히도 근질근질 거려, 지금이라도 당장 허리춤에 껴두었던 백루와 누관을 꺼내 탄막을 베어내고 싶었지만 말이다.
“수라검 「현세망집」!”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 어디까지나 검을 사용하는 때는 비장의 수를 보여야만 할 때! 그리 욕망을 삼키며 요우무는 맨 손으로 자신의 탄막을 베어내었다. 그녀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마리사와 사쿠야가 흠칫거렸으나 검에 일절 정신이 팔린 요우무로서는 눈치 채지 못했다.
“아아, 진짜……”
“탄막도 피해야 하고, 검에 신경도 써야 하고. 힘드네요.”
“나도 그냥 원 없이, 걱정 없이 탄막놀이하고 싶다아아아…!!”
양쪽, 그리고 정면의 방향에서 몰려드는 붉고 파란 탄막을 피하며 마리사는 중얼거렸다. 안 그래도 휭휭 날라드는 벚꽃 탓에 스펠 카드의 탄막 구분도 어려워 짜증이 솟구치던 차라 답답함은 더해져만 갔다. 짜증이 몰려들어 팔괘로에 출력을 모아 발사 해봐도.
“또 피하기는 요리조리 잘 피해요.”
라는 감상만을 남기게 될 뿐. 상황은 거의 고착된 것이나 다름없다고나 할까. 요우무로서는 셋에게 동시에 공격받는 일이 잦아 나름대로는 꽤나 진땀을 빼었지만.
“회령 「몽상봉인 차」”
요우무의 스펠카드가 끝나자마자, 레이무의 스펠카드가 위를 덮었다. 우선으로 던져진 회색의 동그란 탄막 몇 개는 위협이 되지 않았으나, 문제는 온 방향으로 차근차근 발사되는 회색의 부적 쪽이었다. 발사된 부적은 일정 좌표에 있던 요우무를 캐치하고는 그대로 색을 바꾸어 달려들었다. 요우무는 좌표를 이리저리 바꿔두며 혼선을 자아내려 했으나, 점점 부적이 공간을 제약하려 온 방향에서 달려들자 공중전을 버리고 바닥으로 내려가 달리기 시작했다.
“윽!”
아래에서 덮쳐드는 부적이 없어졌다고 하여 난이도가 줄어드는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삼방의 탄막의 밀도가 높아져 요우무는 그레이즈를 허용시키고야 말았다. 부적에 살짝 베인 가슴께를 바라보며, 요우무는 그제야 씨익 웃었다.
“좋습니다! 저도 이제 전력으로 상대해드리죠! 이제 저, 콘파쿠 요우무가 수십 년 간 다뤄온 검의 실력을 뽐내 보이겠습니다!”
허리춤으로 요우무가 검을 가져갔다.
“옥신검 「업풍신섬참」!”
외침과 함께 거대한 원형의 탄막이 여러 갈래로 퍼져갔다. 밀도는 하찮으나, 절대 우습게 볼 것은 아니었다. 탄막을 검으로 베어내는 순간 여러 종류의 탄막이 되어 적의 시야를 집어삼켜 버릴 테니. 적들이 당황하는 표정을 예상하며 히죽대던 요우무는 소리가 날 정도로 손에 힘을 잔뜩 주었다. 그대로 크게 소리 내어 발도했다.
“……묭?”
팔은 휘둘렀으나, 탄막은 베이지 않았다. 아직까지 푸른 탄막은 거대한 채였다. 실패의 원인은 검 대신에 잡혀버린 허공 탓이었다. 요우무는 허리춤으로 시선을 옮겼다. 분명 아까까지는 고이 간직해두던 검이 사라져버린 채였다.
“에……?”
분명 한 시도 떼놓지 않았었는데, 시선을 돌린 적도 별로 없었는데. 왜 사라졌지? 요우무는 허둥지둥 대며 주위를 둘러봤다. 바닥에서 차근차근 공중으로 시선이 옮겨지다 어느 한 지점에서 고정되었다.
“그, 그건 제 검!”
“……후, 세이프.”
발도 직전에 시간을 멈춰 빼앗은 검을 꼭 끌어안으며 사쿠야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덩달아 안심한 마리사도 사쿠야에게 엄지를 척 들어 올려 최고라 사인을 날렸다.
“돌려주세요! 그걸 왜 갖고 있어요!”
“탄막놀이는 평화로운 놀이니까요. 날붙이는 안 되죠.”
“아니, 제 비장의 수단이란 말이에요! 돌려주세요오오!!”
“안 돼요.”
또 누구하나 죽어나가는 꼴은 볼 수 없어, 사쿠야는 정색하며 답했다. 그럴수록 요우무의 투정은 심해져 얼굴색이 울그락 불그락 해졌다. 끝내는 울먹거리더니 사쿠야한테 달려들었다.
“이익! 돌려줘요!! 유유코 님도 겨우 허락해주셨단 말이에요!”
“우왓!”
왈칵 껴안을 듯 다가서더니 이내 검을 잡고 이리저리 휘둘러대는 요우무였다. 사쿠야는 가공할만한 힘에 몇 번 끌려다니다가 이를 악 물고는 버텼다. 검을 휘두르게 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지야 뻔할 뻔자. 그런데도 상대의 목숨을 지켜주기 위해 오히려 무기를 빼앗아야한다는 희한한 상황에 봉착해버린 것이었다.
“내놔요!!”
“안 돼요!”
“이 정도는 이해해 줄 수 있잖아요! 어차피 당신들도 연기에 참ㅇ……!”
“이, 미친!”
힘 싸움을 지켜만 보던 마리사는 폭탄발언을 내뱉으려는 요우무에게 곧장 레이저를 날렸다. 사쿠야와 요우무는 서로 부둥켜 얽혀 몸의 자유를 빼앗긴 상황. 당연히도 레이저는 직격하여 요우무를 덮쳤다. 바닥에 직격해 울려대는 레이저 음이 목소리마저 뒤덮었다. 천천히 소리가 잦아들고서야 마리사는 사쿠야를 불렀다.
“사쿠야! 괜찮아?!”
“네! 저는 괜찮아요!”
“무슨 일이야?”
자욱해진 먼지를 뚫으며 레이무는 덩달아 마리사를 따라갔다. 기절한 탓에 추욱 쳐진 요우무를 보고서야 마리사는 안도감과 짜증이 뒤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말할 게 있고 말하지 않을 게 있지, 미친.
“얘는 또 왜 기절해 있어?”
“미안해 레이무. 저쪽이 갑자기 사쿠야한테 달라붙길래 무심코.”
“맞아요, 이건 불가피한 일이었어요.”
변명을 들은 레이무는 셋에게 시선을 차근차근 두더니 의구심 일은 표정을 지었다. 탄막놀이를 하던 도중이었는데 둘이 갑자기 무력 제압을 해버리니 의문이 들지 않을 수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다치지는 않았지?”
“네. 수호부 성능이 끝내준 덕에요.”
사쿠야는 먼지 하나 없이 멀쩡했다. 반면에 요우무는 레이저에 노릇노릇 지져진 상태였다. 레이무는 한숨을 픽 쉬더니 마리사를 째려보았다. 마리사는 공포를 무릅쓰고 불가항력이라 외쳤다. 그럼에도 노려보는 시선은 떠나지 않아, 서서히 볼륨을 죽이며 사쿠야의 뒤에 숨어들었다. 사쿠야에게 다가선 레이무는 요우무를 받아들더니 바닥에 고이 눕혀놓았다.
“뭐, 이 정도 부상이면 금방 깰 거야. 가자.”
“그래, 얼른 좀 가자.”
저 눈치 없는 정원사 놈을 패고 싶었다만, 꾹 참고 마리사는 나아갔다. 하마터면 세상이 끝장날 뻔 한 것을 한 번 구해낸 마리사와 사쿠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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