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요가 서로 맞붙으면 어떻게 될까. 필히 인간의 패배일것이다. 설령 요괴를 이긴다 하더라도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인간보다 월등한 요괴를 상대로 한 인간은 온 몸이 걸레짝이 되어 너덜너덜해진채 머지 않아 요괴의 길동무가 되어줄것이다.
승산이 없는 싸움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살아남았다. 악바리처럼 검을 휘두르고 막아내고 베어내며 살아남았다. 츠바사는 그런 인간이였다. 자신은 꿈도 못꿀 장소에 떨어져, 꿈도 못꿀 사건에 휘말리고, 꿈도 못꿀 행운을 가지고 살아남고 있었다.
테루의 검격을 간신히 막아낸 츠바사는 한걸음 뒤로 떨어져 숨을 가다듬었다. 가벼운 단검이라고 생각하여 막아낸 일격이 전력을 다한 일격이라는것을 깨닫는 순간 검을 잡고 있던 두 손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두 팔이 가늘게 떨리고 검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물론 상대가 테루라서인 이유도 있었다. 10합이 지나도록 츠바사는 테루의 검을 막아내기만 했다. 망설이고 있었다. 검을 휘두르는 순간. 테루의 몸에서 피가 흩뿌려지는 순간 자신의 머리속을 스쳐 지나갈 그간의 추억들이 떠오르는것이 두려워 검을 휘두르지 못했다.
"망설이고 있어. 망설이면 안된다고 했는데도...그래서 인간은 안돼. 그래서 오빠가 안되는거야"
테루가 비웃으며 말했다. 츠바사는 검을 고쳐잡고 다시 방어 자세를 취했다. 머리 위로 치켜올린 검의 날로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테루와 츠바사. 두 인요의 몸에 묻은 피가 천천히 씻겨나가기 시작했다. 피가 묻은 검이 천천히 빗물에 씻겨 나가며 다시 예리한 모습을 드러냈다.
츠바사는 자신의 검을 바라보았다. 테루의 검도 바라보았다. 특수한 음각이 새겨져 피가 묻지 않는 검은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음각을 잔뜩 메워버릴만큼 엄청난 양의 피가 빗물을 타고 씻겨 나가고 있었다.
"도대체...얼마나 많은 텐구들을 죽인거야..."
"셀 수도 없이 많이. 눈에 띄는 족족.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런 망설임 없는 모습에 가슴이 아파왔다.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찌르는 흉기가 되어 날아왔다. 하지만 츠바사는 검을 내려놓지 않았다. 테루는 그런 츠바사를 바라보고는 감탄한듯 말했다.
"대단해. 정말로. 요괴를 가차없이 베어버린 츠바사 오빠다워. 10합이 넘도록 내 일격을 흘리지도 않고 막아냈으면서도 이렇게 멀쩡히 서있을줄은 예상 못했거든"
"천랑이 이것저것 알려줬지. 연습도 게을리 하지 않고"
"좋은 자세야. 정말로..."
테루가 말 끝을 흐렸다. 대회 시간은 끝났다는 뜻이였다. 말끝이 흐려졌다고 생각이 들던 찰나 테루가 폭발적인 속도로 달려왔다. 마치 예전의 하야미를 보는듯 했다. 박차고 나간 땅이 움푹 패였고, 앞쪽으로 달려오는 테루의 주변의 공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 죽이지 못해서야 죽을 수 밖에 없잖아?"
테루가 단검을 휘둘렀다. 츠바사는 테루의 검을 막지 않았다. 날을 기울여 테루의 검이 흘러나가게 두었다. 마치 물이 흐르듯이 매끄럽게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테루의 단검은 츠바사의 검날을 타고 흘러갔다.
"미안해 테루. 망설이지 않을수가 없었어...하지만 이젠 망설이지 않을래..."
일격이 파쇄되자 테루의 자세가 무너졌다. 츠바사는 검을 움켜쥐었다. 물론 두려웠다. 자신과 생사를 함께 했던 전우를 죽인다니. 얼마나 슬픈 스토리일까. 하지만 츠바사는 저항하지 않았다. 이것이 자신이 주인공인 소설의 내용이라면 그대로 흘러가게 두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테루는 자세가 무너진 테루를 베었다. 몸을 꿰뚫고 어깨를 파고들어 가슴께까지 검이 박혔다.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끊어지는 느낌이 고스란히 손잡이를 통해 전해졌다. 순간적으로 모든 추억이 머리속을 타고 흘러갔다.
다른 이들에게 있어서는 찰나같은 시간이였지만, 츠바사에게 있어서는 일분일초가 일년과도 같은 느낌이였다. 빗방울이 멈추고 모든 소리가 멎었다. 마치 온 세계의 시간이 정지해버린듯한 느낌이였다.
테루는 놀란듯 츠바사를 바라보고 있었다. 천천히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눈가에 고인 눈물이 눈동자까지 닿는 순간 테루의 눈의 붉은 기운이 눈물에 씻겨 흘러내렸다. 마치 피눈물을 흘리는듯 천천히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붉은 눈물을 바라보며 츠바사는 검을 뽑았다.
검을 뽑음과 동시에 테루의 몸에서 피가 솟구쳤고, 테루는 그 자리에서 무너져내렸다.
"미안해...정말로 미안해..."
츠바사는 테루에게 달려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테루의 손을 잡은채 계속해서 미안하다고 외쳤다.
"정말로...바보야..."
테루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츠바사의 뺨을 어루만졌다. 악귀처럼 붉게 빛나던 눈동자도 다시 예전과 같은 노란빛으로 돌아왔다.
"정말로 좋아했는데...정말로..."
테루가 울먹이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츠바사의 검은 테루의 어깨를 관통하여 폐까지 도려내져 숨조차 쉬기 힘들어 보였다.
"하지만 좋아한다고 말할수가 없었어...정말로 좋아하는데 오빠는 어떻게 말할지 몰라서 겁먹었어..."
테루가 흐느끼며 말했다. 온전한 팔을 들어 츠바사의 팔을 꼭 움켜쥐고 한마디 한마디를 쥐어짜내어 말했다.
"망설였어...망설여버렸어...그래서 후회했어...후회해서...미웠어...내 자신이...망설였었던 그때의 자신이..."
테루의 숨이 점점 잦아들고 있었다. 하지만 테루는 더 할말이 있다는듯 츠바사의 팔을 잡아 끌었다.
"정말로 좋아했어...꿈에서도 만나고 싶을 만큼..."
테루는 그대로 츠바사의 입에 입을 맞추었다. 츠바사는 눈물을 흘리며 테루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헤헤...저질러버렸네..."
테루의 눈동자의 빛이 사라졌다. 마지막 한줄기 숨이 입가를 타고 흘러나왔다. 아플정도로 움켜쥐고 있었던 손이 땅바닥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츠바사는 테루의 시체를 부여잡고 오열했다. 미친듯이 소리치며 울었다. 이누바시리 또한 테루를 바라보며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검이 서로 맞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내고 있는 전장의 한 가운데에서 인간의 울음소리가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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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기획했을땐 죽일 의도가 없는 캐릭들중 하나였었는데...
근데 스토리가 진행될 수록 어쩔수 없이 '죽인다'는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편을 쓰면서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진짜로 죽여야할지...죽이지 않고도 이야기를 이어나갈 방법이 없는걸까.
불가능했습니다...
소설 쓰면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캐릭터가 죽어버리면 정말로 기분이 찝찝하죠.
마침 비도 오네요.
담배 태우면서 위령제라도 지내야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