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라미스는 사랑의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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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밖에서는 작게 불꽃이 쏘아 올려지는 소리가 울리며 빌딩의 그림자에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해 형형색색의 빛이 희미하게 차 안으로 비추고 있다.
「의외로 여기서도 꽤 보이네.」
녹색의 불꽃이 빛나고 있다. 렌코의 옆모습은 뭔가 걱정이 있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바다에 비춰져서 더 예쁜 광경이 보여져.」
불꽃이 올라간다. 창문에 불꽃이 비춰져 내 얼굴이 떠올랐다. 뭔가 슬퍼보여서 순간 다른 사람인가 생각해버렸다.
쿠우우우우우…… 작게 울리는 유리카모메의 달리는 소리.
나와 렌코는 승객이 없어 텅 비어있는 유리카모메의 맨 앞쪽에 바싹 붙어 앉아 멍하니 도쿄의 밤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이라는 날의 마지막이 엄청 쓸쓸하게 느껴진다. 말로는 표현 못할 상실감이 온 몸을 감싼다.
어깨에 뭔가가 털썩하고 닿았다. 보니까 렌코가 내 어깨에 머리를 대며 잠을 자고 있었다. 작게 흔들리는 가슴에 렌코의 머리에서 풍겨오는 좋은 냄새가 코를 간지럽힌다.
어쩌지. 나는 생각했다. 렌코의 무게가 어깨에 걸려온다. 그 자체는 별로 문제가 안 된다. 안 되지만 이 상태는 정신적으로 버티질 못한다. 반대의 입장이었으면 상관없지만 움직이지 못하는 이 상태가 오래 지속되는 건 위험하다.
만지고 싶다. 그저 순수하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내가 있다. 작게 흔들리는 가슴에 생각보다 작은 어깨. 순수 그 자체인 흑발에 하얗고 예쁜 피부…….
「……………….」
희미하게 들려오는 렌코의 숨소리. 작고 가냘픈 소리. 평소의 렌코에게서는 상상도 안 될 섬세하고 가냘픈 소리다.
「………………하아.」
나는 고개를 숙이며 작게 숨을 쉬었다. 시야에 들어오는 어두운 천창. 창 밖의 불꽃이 터질때마다 희미하게 밝아지는 천장에는 뭔가 광고가 걸려있다. 나는 그걸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망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덮쳐왔던 그 광경은 주마등처럼 마치 슬라이드 쇼 마냥 보였던…… 그 괴물은 대체 뭐였을까.
렌코는 금속 배트를 손에 쥐고 그 괴물과 대치하고 있었고 무참히 죽었다. 그 광경은 뭐였을까. 내게 뭘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하지마, 그런거.」
나는 렌코가 어디론가 가버리지 않도록 자고 있는 렌코의 손을 꽉 잡았다. 손가락을 감아 절대로 어디론가 가버리지 않도록 하게…….
「싫어. 난 아직 죽고 싶지 않고, 렌코가 죽는 것도 바라지 않아. 알고있어?」
깊은 숨을 내쉰다. 멍하니 천창으로 향하던 시선은 하늘을 감돌면서 희미하게 내려오는 장막으로 인해 완전히 어두워지며…… 내 의식은 거기에서 끊겼다.
쿠우우우우우…… 작게 울리는 유리카모메의 달리는 소리.
그저 빛만이 비치는 어둠 속. 희미하게 떠오르는 나무 사이를 지나가며 유리카모메는 계속 달린다.
……아니 이건 유리카모메가 아니다. 정말로 유리카모메는 이런 숲 속을 달릴 정도로 레일이 길었고 차 안이 이렇게나 넓었던가.
나는 눈을 떴다. 모순. 지금의 이 광경은 언제 봤던 시점에서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인지 나도 모르겠다. 그런 모순이다.
창 밖은 새까맣고 나는 칸막이석에서 혼자 앉아있었다. 열차가 흔들릴 때마다 손잡이도 같이 흔들린다. 몸도 흔들린다. 그저 열차가 어딘가로 향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흔들리고만 있다. 노란 형광등의 빛이 희미하게 나를, 차 안을 밝힌다. 나는 일어서서 흔들리는 차 안을 조금 휘청거리면서 난간을 잡아서 맨 앞쪽 칸보다 앞에 있는 운전석을 살펴봤다.
아무도 없다, 그저 열차의 빛이 밝혀주는 광경은. 끝없이 이어지는 레일과 주위를 감싸는 나무만이 있었다. 이 광경에서 느껴지는 말로 표현 못할 불쾌함에 나는 눈을 돌렸다.
얌전하게 의자에 앉아있자.
나는 가까이 있는 의자에 앉았다.
옆에 앉아있는 렌코가 작게 숨을 쉬었다.
「얘, 메리? 나 이상한데 아무데도 없지?」
불안한듯 렌코는 말을 꺼냈다. 팔을 감싸고 머리를 숙이면서 정면에 앉아있는 렌코. 손잡이를 잡아 내려다보듯 나를 바라보고 있다.
「모르겠어. 정상인지, 이상이 있는지도.」
「그래…….」
벽에 기대며 무릎을 감싸면서 앉아있던 렌코는 그대로 고개를 숙여 얼굴을 묻었다. 나는 렌코의 옆을 기대주기 위해 살짝 일어났지만 바로 다시 앉았다. 고개를 숙이면서 앉아있던 렌코가 내게서 시선을 돌리고 손잡이가 아닌 난간을 잡아 천천히 2, 3 걸음 정도 걸어서 내 앞의 손잡이를 붙잡고 내게서 돌리고 있던 시선을 다시 돌려 숙이고 있던 얼굴을 내게 향했다.
그 얼굴은 커다란 구멍이 뻐끔 뚫려있었다. 노란 형광등에 비쳐진 모자의 그림자가 렌코의 얼굴을 덮었다. 렌코의 표정을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렌코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렌코의 얼굴에는 뻐끔히 구멍이 뚫려있다.
「얘, 메리? 나 이상한데 아무데도 없지?」
뭐라고 말하는지 잘 모르겠는 갈라진 목소리가 울린다. 부셔진 스피커를 통해 들리는 것 같은 거슬리는 소리. 나도 모르게 귀를 막아버렸다.
모르겠다. 평소의 렌코라면 내게 이런 식으로 다가오진 않을테고 뭣보다…….
쿠우우우우우…… 작게 울리는 유리카모메의 달리는 소리.
차 안에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져서 나는 뒤를 돌았다. 아무도 없을텐데 존재하고 있는 누군가. 그 모습이 보였을 때 나는 놀라서 소리를 지를뻔 했다.
그 곳에 서있던 건 금발의 여성. 접혀있는 양산을 손에 지니고 드레스 같은 예쁜 옷을 입고 있다. 머리에는 리본이 달려있는 모자가 노란 형광등의 불빛을 받아 그림자를 만들고 그녀의 얼굴을 덮었다. 유일하게 보이는 입은 작게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안녕하신지, 마에리베리 한 양.」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일어서서 저 여성에게서 조금이라도 거리를 벌리기 위해 물러섰다. 여성은 웃으면서 한 발자국씩 내게 다가왔다. 메마른 발소리가 울려퍼진다.
「어머, 내가 특별히 맞이해주러 왔는데 무정한 태도네.」
「그, 그, 그런게 아니잖아! 당신에게서 안 좋은 분위기가 엄청 풍긴다고! 누구야 당신! 대체 뭐야!」
한 발자국 더 물러섰다. 아. 여기는 맨 앞 차량이었지. 몰려버리면 더 이상 뒤가 없어!
「알기 쉽게 말하자면 네가 잘못 된 길로 가지 않도록 길을 수정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 곤란하다고. 네가 이상한 행동을 할 때마다 험한 꼴을 당하고 그 뒤치다꺼리를 해야하는게 우리들이니까.」
여성은 한숨을 쉬었다. 뭘 말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다. 이상한 행동? 험한 꼴? 뒤치다꺼리? 내가 모르는 사람한테 폐를 끼치고 있다고……? 아니 딱 한 번 본 기억이 있다. 한 순간이지만 덱스 도쿄 비치에서 봤다.
그녀는 얼굴을 제대로 들어올렸다. 그림자에 가려져있던 그녀의 얼굴이 불빛이 비춰져 확실하게 보인다. 반듯하면서 예쁜 용모에 일본적이면서도 일본인 같지 않은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위화감이 드는 알수 없는 얼굴이다. 하지만 매우 아름답다. 지나치게도.
「뭐 그러니까.」
그리고 그 아름답고 수상한 얼굴에 미소를 띄우는 그녀는──
「내일은 충분히 조심해서 행동 하도록 하렴. 너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세계를 위해서도, 우사미 렌코를 위해서도 말이지…….」
그녀는 돌연 사라져버렸다. 나는 그저 서있는 채로 멍하니 방금 전까지 그녀가 있었던 장소를 바라보고 있다. ……나를 위해서도, 그녀를 위해서도, 세계를 위해서도, 렌코를 위해서도, 나는 내일 뭘 조심하면 된다는 거지?
『메리. 도쿄의 성묘에는 이상한 풍습이 있어. 알고 있어?』
먼저 말을 꺼낸 것은 렌코였다. 나는 처음 듣는 그 풍습에 관해서 흥미 있다는 식으로 답했다.
『그래? 무슨 풍습인데?』
『성묘와 같이 하면서 말야. 묘의 주위에 있는 결계의 틈을 찾아내 명계 탐방을 하는 거야. 우란분재가 명계에서 선조 님이 돌아오는 것이잖아? 그래서 성묘 날에는 그에 대한 답례로 우리들이 인사를 하러 가는 거잖아.』
기쁜듯이 말하는 렌코. 하지만 정말로 처음 듣는 것들이라 이러저러 곤란하다. 왜 같이 설명을 안 해주는 걸까.
『그래? 좀 그런걸.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는데. 왜 말해주지 않은 거야?』
『거짓말이니까.』
태연한 표정으로 말하는 렌코에게 말문이 막혀버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녀석에게 어떻게 한 방을 먹일까 생각하고 있더니.
『그래도 모처럼이니 해볼까?』
기쁜듯이 말하는 렌코를 보고 나는 아무 말도 안 했던 것이 기억났다.
그래 도쿄에 오기 전 53분간의 짧은 순간에 렌코와 주고 받았던 대화다. 내일로 연기 되었던 성묘와 명계 탐방. 만약 그 때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그 무슨 일은 설마…….
「근데 왜 성묘에 금속 배트를?」
그렇다. 그 때 렌코는 금속 배트를 손에 쥐고 있었다. 성묘에 금속 배트는 필요 없다. 그럼 대체 어떤 경위로…….
「꺄악!?」
갑자기 열차가 크게 흔들렸다. 동시에 차 안의 전기가 한번에 꺼졌다. 내 몸은 밸런스가 무너져 그대로 벽에 크게 박았다. 온 몸에 고통이 몰려와 호흡이 순간 멎었다.
「으, 으윽…….」
충격 때문인가 시야가 흐려졌다. 새까맣다. 나는 열차 안에 서있다. ……아니 확실히 누워있을 것이다. 중력은 내 왼쪽에서 느껴진다 그런데도 시야에 비치는 광경은 아무런 변화도 없는 평범한 열차 안. 설마…….
「꺄아아아앗!!」
아래에서 밀쳐지는 것 같은 감각에 나는 비명을 질러버렸다. 열차가 크게 기울어 옆으로 쓰러진 것을 확신했다. 나는 옆으로 쓰러진 열차의 벽에 누워 있던 것이다. 창문이 깨지는 소리. 철이 삐걱거리는 소리. 서로 섞인 굉음이 울려서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내 몸은 옆으로 쓰러진 열차의 벽에 밀쳐져 그대로 굴러버렸다. 여기저기를 부딪히면서 회전하는 세계 속에서 내 시야에 들어온 것을 보고 무아몽중인 상태로 양손을 뻗어 몸의 회전을 막았다. 넘어져있는 상태로 양손을 내질러서 상반신을 일으켜세웠다.
「……………….」
공포로 인해 목소리가 안 나왔다. 지금 내가 손을 대고 있는 것은 열차의 문 바로 앞. 열차가 쓰러지는 충격으로 인해 문이 빠지고 그 공간은 커다란 창문이 되어 있었다. 그 창문의 밖은 지금도 기세를 멈추지 않고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열차와 지면과의 마찰이 발생하고 있다. 하마터면 나는 거기에 휘말려 고깃덩어리가 됐을지도 모른다. 목에서 갈라진 숨소리만이 나오고 있다.
나는 떨리는 무릎에 치며 갓 태어난 조랑말과 같이 뒤뚱거리면서 일어나 최대한 문에서 떨어지겠다는 한 마음으로 차량의 끝까지 걸었다. 옆으로 쓰러진 열차는 크게 흔들려 때로는 튀어오르면서 움직이기도 했다. 그 기세는 당분간 멈출 생각은 없어보인다. 열차 끝의 구석에서 웅크렸다. 전에는 천장이었던 벽에 붙어있는 손잡이가 매달려 있던 철봉을 잡아 지금도 쓰러진 상태로 멈출 생각을 안하는 열차가 멈추는 것을 기다렸다. 쇳소리 같은 소리가 울리며 여기저기의 창문들이 깨지고 열차 안으로 바람이 불어온다. 나는 눈을 꽉 감았다.
그리고 드디어 열차는 마찰에 기세가 막혀버려 천천히 정지했다. 거셌던 소리가 잠잠히 조용해졌다. 무서울 정도로. 나는 천천히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머, 멈췄어……? 살아있는, 거야……? 아, 아하하하……무, 무서웠어…….」
살아있는 것을 실감해 엉겁결에 무의미한 웃음을 내뱉었다. 무서웠다. 정말로 죽는줄 알았다. 그나저나 정말로 맥빠지는 웃음 소리다. 내가 웃은 건데도 그렇게 느껴질 정도였다.
「……자 뭔가 엄청난 일이 되버린 거 같은데. 여긴 어디지……?」
나는 일어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그래봤자 창문은 땅과 천장에 있으니까 밖의 상태를 알 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보이는 하늘은 새까만 밤이었다. 유리 파편과 여기저기 널려있는 무슨 부품인지 모르겠는 철조각들을 조심해가며 나는 차량을 잇고 있는 장소를 통해 밖으로 나갔다. 삐걱, 삐걱, 파삭, 파삭 밟을때마다 소리가 울린다. 탈선한 충격 때문인지 내가 타고 있던 차량과 뒤에 있던 차량의 연결 부분은 부셔져있고 연결 되있지 않았다.
「숲…… 어두운 숲 속…….」
연결부의 문을 기어올라 열차에서 나온다. 나온 곳은 어두운 숲 속이었다. 달빛이 조금 비치고 있는 그저 어두운 숲.
「왠지 기분이 나쁘네…… 렌코가 없으면 역시 쓸쓸해…….」
그러고보니 이제야 깨달았다. 렌코는 어딨지? 평소라면 이럴 때일수록 옆에서 나를 지탱해주는 비봉구락부의 파트너 우사미 렌코. 주위를 전부 둘러봤다. 사람의 모습은 커녕 기척조차 없다. 너덜너덜한 차량에도 사람의 기척은 없다. 어두운 숲 속에서 혼자 있다. 끝없는 고독감에 공포감이 생겼다.
「………………유령따윈 없어, 유령 같은 건 거짓말이야.」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좋다. 내 자랑인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예전에 렌코가 쿄토의 숲 속에서 불렀던 떨고있던 나를 위안을 해줬던 노래. 중간 까지밖에 기억 안 나지기에 이 구렴만을 계속 반복해가면서 나는 쓰러져있는 열차를 따라 숲을 걸었다. 아무래도 처음부터 여기에 선로는 없었던 것 같다. 땅은 열차에 의해 파인 흙이었다.
「유령따윈 없어, 유령 같은 건 거짓말이야.」
몇 번이나 이 구렴을 반복한걸까. 마치 부셔진 레코드 판 마냥 몇 번이나 몇 번이냐 같은 구간을 맴돌고 있다. 너무 많이 해서 질려버려서 다른 노래라도 부를까 생각했다. 땅은 이끼가 껴서 미끄러지기 쉬웠고 어둡기도 해서 몇 번이나 발을 헛디뎠다. 그래도 달빛도 이제 많이 익숙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공포감이 사라진 건 아니다.
어딘가에서 늑대가 울고 있는 듯한 소리가 숲에 울렸다. 나는 그 소리에 놀라 노래 부르는 걸 그만 뒀다. 조용한 숲에 울음 소리만이 울려 퍼진다.
「이, 일본의 늑대는 멸종 했을텐데…….」
아니면 들개 인 걸까? 어찌 됐든 간에 위험한 건 변함없다. 숲 속으로 들어가는 건 위험하다고 판단 해 얌전히 열차 안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다시 맨 앞 차량으로 돌아가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가려 했는데…….
「뭐야 이거…….」
그저 끝없는 어둠만이 있었다.
열차는 그림자도 형태도 사라져 그저 어둠에 쌓인 숲 속에서 나는 혼자 멍하니 서있었다.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공포가 몸을 지배해 몸을 게속 둔하게 만든다. 공포가 좀 먹고 있다. 내 발은 마치 묶여있는 것 마냥 움직이지 않게 되었다.
「으, 아……나, 나…….」
그대로 땅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아 버렸다. 이끼가 낀 바위가 땅 속에서 튀어 나왔다. 눅눅해진 흙이 옷을 더럽힌다.
싫어. 나는 귀를 막고 눈을 꽉 감았다.
아무것도 보고 싶지 않아. 아무것도 듣고 싶지 않아. 빨리 지금이라는 시간이 끝나기만을 그저 계속 기다렸다. 하지만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으……………….」
무서워. 무섭다. 언제 울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나는 그저 계속 여기서 가만히 이 악몽이 끝나는 것을 기다렸다.
미적지근한 공기가 피부를 핥는다. 바람이 불어 숲이 술렁거리고 암흑 속에 뭔가가 있는게 아닌가 한 불안함이 덮쳐온다.
악몽. 그렇다. 이건 악몽이다. 꿈은 분명 깨어날 것이다. 분명 그렇다. 그렇다고 결정 되어있는 것이니까.
하지만 난 알고 있다. 이건 꿈이 아니다. 언젠가 찾아올 현실이다.
「도와줘……렌코…….」
「메리!」
눈 앞이 밝아지는 것과 동시에 내 의식이 빠르게 돌아오고 있는 것을 느꼈다.
내 흐릿한 시야 속에서 렌코의 모습을 봤다. 렌코는 나를 흔들면서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다.
「메리! 역에 도착했어! 일어나! 내~릴~거~야~!」
시끄럽게 소리 지리는 렌코. 나는 주위를 둘러봤다. 유리카모메는 역의 승강장에서 멈춰있다. 열려있는 문에서 아직 불꽃 소리가 들려온다.
「빨리 안 내리면 열차가 출발해버린다고! 빨리 빨리!」
내 손을 끌어당겨 일으켜 세우는 렌코. 나는 휘청거리면서 일어나 천천히 기지개를 폈다.
「으……하아……. 잘 잤어? 렌코.」
「그래 그래. 잘 잤어, 잘 잤어.」
뒤로 돌아가 내 등을 미는 렌코. 승강장으로 나가니 타이밍 좋게 열차의 문이 닫혔다.
「하아, 아슬하게 세이프네. 깨우면 잘 좀 일어나라고. 메리!」
「아하하, 미안 미안…….」
그러면서도 나는 아까까지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어렴풋하지만 기억이 난다. 옆으로 쓰러진 열차. 암흑. 숲. 그리고…….
「어라? 메리. 왜 그렇게 진흙 투성이인거야.」
렌코가 내 치마를 가리키며 말했다.
「……………….」
「얘, 왜 그래? 메리 씨? 어이, 여보세요?」
「……괜찮아. 왜 그럴까…… 의자에 진흙이라도 묻어있던 걸까. 좀 그렇네. 정말.」
나는 웃으면서 진흙에 대한 걸 얼버무렸다. 이 진흙은 그 때 묻은 것이겠지. 예전의 부적과 죽순처럼. 이것도…….
「아~ 이래선 집에 돌아가면 또 목욕해야겠네. 세탁도 해야되고…… 아, 그래!」
「우리 집 근처에 목욕탕이 있는데, 가는 김에 목욕탕이나 갈래? 이번엔 깔끔한 후지산을 볼 수 있을 거야! 벽에 그려져 있는 그림이지만.」
렌코는 주의 하는 것 마냥 말했다. 그렇게 말 해주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다.
「목욕 후의 우유는?」
렌코가 손으로 잔을 기울이는 동작을 하면서 엄지 손가락을 세우고 웃었다. 내 안에서 예쁜 흰 꽃이 피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것이 무슨 꽃일지는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렌코가 본 내 표정은 매우 빛나고 있을 것이다.
「좋아. 꼭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