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발등에 불 떨어져서 일단 번역한 거 싹 다 올리고 다음 주 수요일까지 업무 중단합니다.
기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ㅋ
참고로 3장 첫 부분은 번역할 때 친구새기가 집에 놀러와서 집중 안되는 바람에 퀄이 날라갔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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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아리무라 히나에
무언의 응수로 교사와 공방을 펼치는 도중, 아리무라 히나에는 가방에 든 소설의 내용을 생각하려고 머릿속을 뒤졌다.
좋지 않은 경향이다. 자신이 쓰고 있는 소설의 내용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읽고 있는 소설을 생각하고 있을 때는, 기분이 가라앉은 증거라고 히나에는 알고 있었다. 애초에, 사건 이후 읽고 있을 뿐이지 전혀 쓰지는 못하고 있었다.
교무실이었다. 담임 교사는 의자에 앉아, 옆에 히나에를 세워둔 채 탁탁 펜을 책상에 두드리고 있었다. 책상에는 아무 것도 쓰여있지 않은 진로희망조사표가 올라와 있었다.
이번에는 꽤나 질기구나, 라고 히나에는 생각했다.
"......확실히, 기한인 종업식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지만 말이지."
직원실의 커다란 창문에 반사된 모습을 보며 히나에가 얼굴을 찌푸렸을 때, 담임이 말했다.
"너 외에는 전원 제출했어. 최악의 경우, 제3희망까진 채우지 않아도 되니까."
"아직, 진학으로 결정한 건 아닌데요."
"......우리 반은 전원 진학이라고?"
알고 있어요, 라고 히나에가 끄덕였다. 진로희망조사표에는, 진학이나 취직 어느 쪽에 동그라미를 치고, 진학의 경우 제3희망까지 대학이나 전문학교의 이름을 채워넣도록 되어 있었다. 히나에의 반 친구들은, 취직을 희망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변함 없는 히나에의 태도에, 담임이 펜을 움직이는 손을 멈췄다. 명백히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진로희망조사표를 히나에에게 돌려주었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 정해 줘."
종업식은 다음 주 월요일이 아니었지만, "알겠습니다."라고 히나에가 공손히 진로희망조사표를 가방에 넣었다. 처세술 처세술 이라고 머릿속에서 중얼거리며, 인사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아, 그래. 연구회 발표, 힘내 달라고. 부모님들도 기대하고 있는 모양이니까."
"네-이."
떠날 때 날아온 말에, 히나에는 얼굴만 돌아보며 대답했다.
교무실의 문을 조용히 닫고, 말 안해도 열심히 하고 있거든 이라며 혀를 내밀었다.
히나에가 언제나의 방, 원래 신문부의 부실이었던 곳이자, 지금은 학생자치연구회의 회실로 돌아오자, 센리가 노트북을 바라보며 맹렬히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다. 옆에는 서류가 쌓여있어, 히나에가 교무실로 호출되었을 때보다, 더 두꺼워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챠오- 지금 막 돌아왔습니다......하나는?"
"설문용 서류를 쌓아두고는 다시 나갔어."
"미즈키네는?"
"서류 놓고는, 그 뒤로 테니스 부. ......돌아올 때도 서류 가지고 와 준다는 모양이지만."
드물게 센리가 피곤한 기색으로 말을 뱉는 것을 보며, 히나에는 와우 라며 놀랐다. 서류가 더 두꺼워진 건 기분 탓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히나에는 그 다발을 적당히 들고, 회실에 이전부터 놓여 있던 컴퓨터로 향해, 아무리 타이핑해도 끝날 것 같지 않은 엑셀을 열고, 서류의 내용을 입력하기 시작했다.
"담임이 종업식 발표, 힘내라고 압박을 넣어 왔어요. 보호자들이 기대하고 있다면서요."
"......어차피 또 누군가의 부모가 전화라도 걸어온 거겠지."
학생자치연구회를 설립하고 수 주일. 당초의 예정을 아득히 뛰어넘는 작업량에, 히나에네는 바빠 죽을 것 같았다.
계기는 사소한 일이었다. 회장이 된 하나가 처음에 꺼낸 말은, "학교의 모두가 증후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어떤 느낌을 갖고 있는지를 묻고 싶어."라는 것이었다. 히나에도 센리도 찬성했다. 이 연구회는, "전 카오스 차일드 증후군자를 둘러싼 환경에 대해서 생각한다."라는 제목으로 설립된 연구회다. 하나의 말은 그 제목의 제 일 보로써 적절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학교의 허가를 받고, 전교생에게 연구회의 설립을 고지함과 동시에, 앙케이트 용지를 뿌렸다. 증후군에 관한 것이라면 뭐든 좋으니 써 주세요, 라는 막연한 것이었지만, 이게 예상 외의 회수량을 보였다. 제출은 임의였음에도 불구하고, 상상 이상으로 증후군에 대한 생각이 학생들에게 축적되어 있었는지, 아니면 "가능한 한 제출해 주세요."라고 말한 센리의 여제로서의 박력이 컸던 건지, 첫 날 부터 상당수가 회실로 보내졌다.
이후는 날이 갈 수록 그 수가 늘어났다. 메일으로 제출해달라고 했으면 좋았다고 후회해도 늦었었다. 아무리 그래도 수 주가 지난 지금은 피크를 지나긴 했지만, 지금에 와서도 "한 장에는 뒷면까지 써도 다 쓸 수 없었으니 용지를 한 장 더 주세요."라고 말하는 학생들이 뒤를 끊이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진위가 애매한 내용이나 신경 쓰이는 내용을 써 둔 학생에게, 직접 문답을 하러 간 것도 바쁨에 박차를 가했다. 어느새인가 "뭔가 연구회가 증후군에 대해서, 이것저것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질문에 대답해주거나 하는 모양이다."라는 소문이 퍼져서, 기회가 되는 대로 히나에네에게 말을 걸어오게 되었다. 그로 인해 얻는 것도 분명히 있었기 때문에, 히나에네는 굳이 그 소문을 정정하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 소문이 학교 측의 귀에 닿았다. 즉시 "그렇게까지 대대적으로 활동을 하는 거라면, 종업식 때 그 결과를 발표하도록."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거절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히나에네는 역할분담을 하여, 하나와 하츠야마 미즈키, 그리고 같이 위원회에 들어온 니타니 마치까지 1학년 3명이 청취를 담당하고, 히나에와 센리가 그 청취와 앙케이트 결과를 데이터화 하는 걸로 하였다. 입력 속도를 생각하면 히나에보다 하나가 타이핑도 익숙하고, 게다가 본인도 그 편이 좋다고 꽤나 강경하게 호소했으나, "회장은 너니까, 네가 선봉에 서도록."이라는 센리의 한 마디에 그 주장은 지워졌다.
학교 측 혹은 학생들부터, 보호자 측에까지 종업식 발표에 대한 것이 알려진 모양이라, 상세를 요구하는 전화 등이 연일 이어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선배, 선배네 학년은 진로희망 어떤 느낌이에요?"
히나에가 타이핑하던 손을 멈추지 않고 물어보았다.
"어떤 느낌이냐니?"
"진학인가, 취직인가."
"지금까지는, 거의가 진학이네. 취직인 사람은 학년 내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일까나. ......뭐, 졸업할 즈음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2016년 12월 현재, 히나에는 헤키호우학원 고등부 2학년, 그리고 센리는 3학년에 소속되어 있었다. 세간의 일반적인 고등학생이라면, 이미 올해 3월 단계에 센리는 학교를 졸업하고, 4월에는 히나에가 3학년으로 진급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증후군과 그 재활의 영향으로, 학교의 재개 후, 전교생은 재활 전에 속해 있던 학년 그대로 복학하는 조치가 내려졌다. 그리고 센리네 3학년에 한해서는, 복학 이후 졸업까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이유로, 1년 더 고등학교에 다니도록 되었다.
"그 때, 우리는 20살이 되어 있으니까. 뭔가 이것저것 생각하게 되는 사람들도 나오지 않을까나."
"어떻게 불러야될지 정해지지 않았다고 들었는데요. 4학년, 으로 괜찮은가요? 내년 4월부터."
글쎄, 라고 센리가 어깨를 으쓱했다. 내년 4월에는 중등부 3학년이 새로 고등부 1학년으로 들어오게 된다. 일시적으로 고등부에는 4학년이 소속하는 게 된다.
"......설마 선배랑 같은 타이밍에 졸업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그것도 지금까진 그런 거잖아. 법이나 사회가 어떻게 될진 모르지만, 혹시나 너도 4학년이 될지도 모를 일이지."
"선배는 5학년임까."
그건 아무리 그래도 봐 줬으면 좋겠는데, 라고 센리가 투덜대는 걸 보며, 히나에는 쓴웃음을 띠웠다.
그러한 귀찮은 조치가 취해진 건, 결국 전 증후군자의 취급을 사회가 어떻게 할 지 정하지 못한 것이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학생의 대부분이 진학을 희망하는 것도, 현재 상황이라면 취직보다 진학 쪽이, 전 증후군자에 대한 차별이나 편견 등이 사회적으로 적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통상의 대학이나 전문학교라면, 수험을 치르고 입학하는 경우, 과거의 정신질환 이력이 입학 자격에 영향을 주는 경우가 적다.
하지만 취직이 되면 얘기가 달라지고, 그에 더해 카오스 차일드 증후군이라는 게, 정신질환의 일종이라는 것 외에는 명확히 해명되지 않은 것도 있어, 그렇다면 애초에 전 증후군자들이 다니는 헤키호우 학원을, 통상의 사립고교로 인정해도 좋은가 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전혀 줄어들지 않는 서류를 보며, 히나에는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해 줄 건지 말이죠......"
"어떻게 할까나."
잠시 뒤 손가락과 눈이 피로한지, 센리가 커피를 끓이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히나에가 "감삼다"라고 말하며 자기 몫을 받아 들자, 센리는 눈 둘 곳을 헤매며, 자리로 돌아가지 않고 히나에의 옆에 선 채로 커피를 마셨다.
이건 또 드물구만, 이라고 히나에는 센리를 올려보았다. 뭔가 말을 꺼내려다 주저하고 있는 듯 했다. 이럴 때의 센리는 평소의 기댈 수 있는 누나에서, 나이에 걸맞는 혹은 그보다 어린 여동생같이 보이는 게, 히나에는 치사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왜 그래요?"
더욱 센리가 침착하지 못한 기색을 보이고 있었지만, 잠시 뒤 컵을 양손으로 감싸며, 그 안에 시선을 떨구며 말했다.
"저기...... 고백, 어떻게 했어?"
"......에"
그 갑작스러움에, 히나에는 아연해했다. 센리는 히나에의 반응에 역시 놀라고 있었다.
"어째서 알고 계신가요."
"에, 어제, 고백받은 거 아니었어?"
"아니, 받았긴 한데요......"
같은 학년의 남자였다. 반은 달랐지만 친구의 친구라는 녀석으로, 얼굴도 이름도 히나에는 이전부터 알고 있는 상대였다.
"......나도, 받았거든. 어제."
"하아?"
듣자하니 센리에게 고백한 남자는, "지금쯤 제 친구의 후배도, 여제의 친구인 아리무라 씨를 불러내서, 고백하고 있을 테니까."라고 말했던 모양이다.
남자 둘이서 날을 맞춰서 고백하고, 주말에 더블데이트를 계획하고 있었다 한다.
히나는 기가 막혔다.
"뭐에요 그게."
"거절했어?"
"당연. 선배도죠?"
센리는 겸연쩍은 듯 시선을 피했다. 설마, 라고 센리는 표정을 바꾸며 몸을 내밀었다.
"......보류했어."
진짜냐, 라고 히나에가 말을 잃었다. 센리가 그런 결단을 할 줄은 몰랐다.
"에, 어쩔 거에요."
"......데이트는, 해 볼까 생각해서."
"......좋아하세요?"
자기 목소리의 톤이 낮아진 것을 히나에가 깨달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즐거운 연애담, 이라는 부류의 대화에는 감정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런 건 아니지만."
"그럼 어째서."
확실하게 책망하는 어조로 추궁하는 히나에에게, 센리가 표정을 흐렸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정리가 안 된다고라도 말하듯이, 커피를 천천히 마시며, 의자에 돌아가 신중히 걸터앉고, 자신의 손을 쓰다듬었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어렵지만."
잠시 뒤 말을 꺼낸 센리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자신이나 강함이 없었다.
"이것저것 있었지만, 지금은 나를 받아들여 주는 사람이 학교에 있는 거잖아."
"......그 모습 말인가요."
에에, 라고 센리는 끄덕였다.
카오스 차일드 증후군에 걸렸던 긴 시간, 센리는 증후군의 대표적인 증상인 신체의 노화현상에 더해, 옛 친구였던 쿠루스 노노의 모습으로 변화하는 특이한 현상도 겪었다. 증후군에서 회복함과 동시에 양 쪽 모두 개선되었지만, 이제까지 쿠루스 노노로서 인식된 자신이, 미나미사와 센리로 살아갈 수 있을지, 회복된 직후의 센리는 알 수 없었다고 한다.
무리도 아니라고 히나에는 생각했다. 어째서 센리가 노노의 모습으로 바뀌었는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사건의 진상과 함께 알고 있는 동료들은 제쳐두고라도, 사정을 모르는 사람 쪽이 보자면, 간단히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 분명했다.
센리는 착실히 이해를 구하고 다녔다. 처음엔 같은 학년 친구들부터 시작해서, 점차 다른 학년에서 교류가 있던 사람들, 다음엔 같은 타이밍에 재활을 하던 사람으로, 진실을 밝힐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증후군의 영향으로 몸이 변해있었다, 라는 걸 설명하며 돌아다녔다. 히나에네도 그것을 도왔다.
퇴원할 즈음에는, 적어도 센리와 학교에서 가깝게 지낸 사람들은, 센리를 노노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고백해 온 건 마스다 군이라고, 같은 반 아이라서. 마스다 군은 당연히, 지금까지 나를 노노쨩으로 보고 있었지만, 지금은 미나미사와 센리로서 봐 주고 있는 거네. 뭐, 호칭은 몇 번이나 말해도 '여제'에서 변하질 않지만....... 그, 처음이었으니까. 미나미사와 센리로서, 남자애한테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건."
"......그런가요."
"그러니까, 제대로 생각한 뒤에 대답을 하고 싶어서. 나도 모르게, 데이트 정도라면 이라고."
쓴웃음을 지으며 "......자기 일이 되면 어려운거네."라고 이어가는 센리를 보며, 히나에는 거북한 듯 얼굴을 돌렸다.
어제, 고백받았을 때를 떠올리자, 히나에는 센리와의 거리가 멀어진 듯 느꼈다.
강함이란 게 무엇인지 눈 앞에 들이밀어진 기분이었다.
"......센리 선배는, 타쿠루 선배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심술궂은 어조가 되지 않게끔 주의하면서, 히나에가 물었다.
센리는 즉답했다.
"좋아하지만."
"......남자로서 인가요. 아니면, 동생으로서?"
"글쎄. 어떠려나."
"모르시는 건가요?"
"너는?"
우, 히나에는 주춤했다.
"좋으냐 싫으냐고 하면, 좋지만"
"그건, 남성으로서? 아니면 전우로서?"
당돌한 단어였다. 하지만 그것은 솔직하게 히나에를 납득시켰다. 히나에는 그 단어를 확인하듯 끄덕였다.
"전우로서는, 틀림없이 좋아해요. 엄청 좋아해요. 남성으로서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 라고 센리는 짙게 웃었다.
"누나로서, 콧대가 높아지는 평가야. 고마워."
하숙집으로 돌아오자, 숙부 부부가 저녁 식사 준비를 해둔 채 기다리고 있었다.
무와 버섯이 든 된장국이 식탁에 늘어져 있는 것을 보고, 히나에는 들키지 않게 쓴웃음을 지으며 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3일 연속이었다.
"학교, 바쁜 모양이네."
"연구회의 활동 통지가 왔어. 참가하고 있지?"
대화를 건네 오는 숙모와 숙부에게, 히나에는 웃음을 띠며 무던한 대답을 되풀이했다. 신경써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된장국만 해도, 히나에가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말했기 때문임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히나에는 이 된장국이 싫지는 않았지만 좋지도 않았다. 3일 전에 맛의 감상을 물어봐서, 좋아하는 음식이라고 그만 말해버렸을 뿐이었다.
방에 돌아와, 히나에는 침대에 드러누웠다.
스마트폰을 꺼내, 이시와타 케이스케의 이름을 띄웠다.
고백해 온 남자였다. 언제 번호를 교환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도 아직 증후군의 영향 때문에, 자신이 상대의 말을 거짓인지 진실인지 알게 되어버리던 시기였겠지 라고 히나에는 생각했다.
방과 후의 교사 뒷편이었다.
긴장해서 약간 굳은 입을 어떻게든 움직이며, 이시와타가 말했다.
"전부터, 아리무라를 좋아했어. 사귀어 주세요."
"으왓, 미안허이. 좋아하는 사람이 있거든. 용서해주게."
자신이 한 말을 떠올리고, 히나에는 베개로 자신의 얼굴을 짓눌렀다. 숨을 못 쉴 정도로 위에서 짓누르며, 발을 버둥거렸다.
거짓말이었다. 확실하게 연애 대상으로서 좋아하는 남성의 얼굴 따위, 그 때 히나에의 머릿속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이시와타는 멍 때리다가, 그 뒤 괴로운 듯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뭐 하고 있는 거야, 라고 히나에는 베개 아래에서 신음했다.
학교가 재개한 뒤, 히나에는 그 때까지와 변함 없이 사교적인 인물상으로 친구들과 사귀고 있었다. 하지만 그 교류 방식은 이전과는 다르다고, 몸에 사무칠 정도로 느끼고 있었다. 증후군에서 회복하고, 상대의 말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게 된 것이 크겠지. 하나부터 열까지 농담만 일삼던 그 때와는 달리, 이전보다 원래 성격이 나올 기회가 많아졌다. 확실하게 본심으로 대할 수 있는 건, 사건의 경험을 공유한 하나네 뿐이지만, 그래도 다른 친구들과도 전보다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얕고 넓은 교류가 깊고 좁은 걸로 바뀌었다고 말해버리면 그뿐이지만, 그 변화는 히나에에게 있어 거대한 것이었다.
숙부 부부와의 거리도 변했다. 아직까지 서로 신경을 써야하는 미묘한 관계였지만, 그래도 한참 증후군 상태일 때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숙부나 숙모가 거리를 좁히려 해주는 것도, 그리고 그걸 히나에 자신이 반발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도, 이전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사교계에서나 할 법한 대화나 감정은, 과거 히나에가 가장 싫어하던 것이었다.
그렇게나 소원했던 양친과도, 가끔씩이지만 전화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전보다 나아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백받았을 때, 히나에가 순간적으로 입에 담은 대답은, 완전히 농담과 적당함으로 굳혀진 것이었다.
"......젠장맞을."
진실로 무장하지 않고, 주위의 분위기에 맞추면서, 하지만 그 분위기를 마음 속에서는 소외시키고 있던 그 때의 캐릭터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이시와타는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자신의 진지하지 못한 태도로, 상처입혀 버렸다.
좋아한다고 들었을 때, 어디선가 전우인 그와 무언가를 비교해버린 거겠지 라고, 히나에는 생각했다.
센리는 똑바로 마주보고 있었다. 그와 그렇게나 가까웠으면서도, 고백받았을 때 지금의 자신으로서 그것을 받아들이고, 생각했다. 우키가 "언니에겐 이길 수 없다."라고 자주 내뱉는 것을 히나에는 떠올렸다.
기세 좋게 몸을 일으키며, 히나에는 스마트폰을 다시 손에 쥐었다.
"여보세요, 이시와타 군? 아리무라 입니다만."
용건을 고하고, 전화를 끊었다.
히나에는 습관에서, 읽던 책을 가방에서 꺼내 눈으로 훑었다. 얄궃게도 여자 주인공이 두 명의 남성 사이에서 애정에 흔들리고 있었다.
내용은 전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선배......"
"......왜."
"어떻게 된 거에요, 그 꼴이랑 화장은."
"코모리 씨가 달아올라서...... 우키도 거기에 덩달아 가세해서......"
약속 장소에 도착한 히나에는, 평소대로 성실하게 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있던 센리의 모습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센리는 완전히 지친 듯이 어깨를 떨구었다.
보통 앞머리로 조금 가려진 센리의 얼굴이 완전히 나와 있었다. 옆으로 묶은 머리카락을 앞으로 넘기며, 슈슈(역주: 고무줄을 천으로 감싸 주름지게 만들어 둔 도넛 모양 머리끈)로 모아 두었다. 보통은 베이스랑 립글로즈 정도인 화장도, 눈 화장과 옅은 볼 터치가 더해져, 좀 더 어른스러운 인상을 강조하고 있었다. 복장은 코트로 평소와 같지만, 목 부근으로 엿보이는 옷은 센리 치고는 밝은 색의 비싸보이는 것으로, 거기에 더해 힐이 높은 부츠까지 신고 있었다.
"그런 옷, 갖고 계셨어요?"
"코트 빼곤, 옷도 메이크업도 전부 코모리 씨. 이 신발, 그 사람 어제 일부러 사 온 거 있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듣자 하니 어젯밤과 오늘 아침은, 거의 코모리 씨와 우키의 옷입히기 인형이었다는 모양이다. 때때로 강제적으로 감상을 요구받은 유우토가 몸 둘 곳을 찾지 못하며 곤란해했다고 말하는 센리에게, 히나에가 쓴웃음을 지었다.
약속 시간 즈음에, 2명의 상대가 나타났다.
센리에게 고백했다는 마스다 코우타는, 무례하게도 아연한 표정을 띠웠다.
"......어떻게 된 거야 여제, 그 모습이랑 머리 모양. 아니, 기쁘긴 한데."
키는 남자 평균 정도이지만, 꽤나 건장한 체격에 어두운 녹색의 안경을 끼고 있었다. 눈이 크고, 자다 일어난 건지 구분이 안 가는 삐친 머리가 합쳐져 애교스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센리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느낌으로 대답했다.
"내버려둬. 가족한테 당했어. 그리고 여제는 그만둬."
한 편 이시와타는 한 마디로 말하자면 정돈된 외모를 하고 있었다. 키도 꽤나 커서 180을 넘기고 있었고, 적당히 내린 머리는 셋팅을 한 듯이 어울렸다.
이시와타는 어쩐지 포기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리무라는, 평소대로?"
"그럼. 내면이 좋으니까 필요 없어."
듣자 하니 두 사람은 초등학교 때 부터 친구였던 모양으로, 가족끼리 친했다고 한다.
"아- 그보다 미안. 우리들 다른 장소는 그닥 잘 몰라서 말야."
마스다의 말에 맞춰, 이시와타도 머리를 숙였다.
만나기로 한 곳은 점심을 조금 지난, 눈에 익은 시부야역 앞이었다. 오늘의 일정과 장소는 남성진에게 전부 맞긴 상태였다. 정말로 미안하다는 듯한 두 사람에게, "신경쓰지 않아도 됨다."라고 히나에가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처음 들른 곳은, 시부야역에서 걸어서 5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플라네타리움 이었다. "별 좋아해?"라고 히나에가 묻자, "아니, 별로. 그저 영화보다 짧고, 붐비지도 않고."라고 이시와타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헤에, 라고 히나에가 생각했다. 그러고보면 데이트 라는 건 그런 부분을 생각하는 것이었다. 들어가보자 과연 나쁘지 않았다. 아마도 초등학교의 어떤 이벤트로 온 뒤 처음이라는 부분도 있어선가, 오늘 밤 하늘의 별에 대한 해설이라는 단순한 프로그램이어도, 히나에는 의외로 신선하게 즐길 수 있었다.
잡화점과 CD샵을 구경하러 간다길래, 히나에와 센리는 그에 따랐다. CD샵은 둘째치고 남자 고등학생이 잡화 따위에 흥미가 있는 걸까 히나에는 생각했지만, 배려해서 코스를 생각해 준 걸 테니, 사양않고 즐기기로 했다.
도중의 이시와타와의 대화는, 그럭저럭 괜찮았다. 좀 더 늘어지듯 이것저것 물어볼 거라고 히나에는 생각했었지만, 의외로 자제할 수 있는 모양이었다. 히나에는 그게 고마웠다. 한편 센리와 마스다는, 들려오는 한에서는 아무래도 센리가 일방적으로 마스다를 꾸짖거나 혼내거나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마스다가 까불대는 타입인 모양으로, 센리는 "저기 말이지......"라고 한숨을 계속 내쉬고 있었지만, 정말로 질려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학교에서도 저런 느낌으로 주고 받는 건지, 대화에 익숙함 같은 것이 있었다.
잡화점은 플라네타리움에서 걸어서 10분 정도인 역의 반대편, 이노카시라 길 근처에 있는 빌딩에 있었다.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린 순간, 네 사람은 동시에 몸이 굳었다.
원인은 확실했다. 히나에는 자신들의 뒤에 줄 서 있는 다른 이용객들이 수상쩍어하는 걸 느껴, 앞장서서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다른 세 사람도 말없이 뒤를 따랐다. "잡화 같은 거 흥미 있어?"라고 히나에가 얼버무리는 투로 이시와타에게 물었다. "사실 잡화점 자체가 처음"이라고 장단을 맞추며 대답한 이시와타의 말에, 모두 가볍게 웃었다.
잡화점에서 히나에가 센리와 함께 탁상소품을 구경하였다. 센리는 토끼가 그려진 메모홀더를 눈에 담고 있었다. "여전히 우키네가 토끼작전 실행중인가요."라고 묻자, "이름 후보까지 내놓고 있어. 수컷 암컷 별로 잔뜩."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생각대로, 남성진은 할 일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 곤란해보이는 얼굴을 봐서, 히나에네는 이르게 잡화점에서 나왔다.
돌아갈 때는 물론 계단을 사용했다.
다시 한 번 그 엘리베이터에 탈 생각은 들지 않았다.
잡화점 근처에 있는 커다란 CD샵을 보고 나서, 그보다 더 북쪽으로 올라가 공원 길에 붙어있는 에스닉(역주: 주로 아프리카, 아시아 계통 민족) 요리점에 들어갔다. 몇 자리 분의 카운터 외에는, 가지런하지 않게 늘어진 크고 작은 각각의 소파가 객석으로 되어 있는 느낌 있는 곳이었다. 점내의 장식이나 희미하게 켜져 있는 음악도 좋은 분위기였다. 이시와타 왈, 자주 이용하는 곳이라고 한다.
어울리지 않네 라고 생각한 히나에였지만, 메뉴를 보고 납득했다. 가격은 고교생이 매일 먹고 마시고 하기엔 조금 비쌌지만, 주 메뉴의 거의 전부에 "고봉밥 주의. 양이 많습니다."라고 주의가 써져 있었다. 센리도 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쓴웃음을 지어 왔다. 시간은 런치타임이 지난 15시 경이었지만, 휴일은 심야의 폐점시간까지 영업을 하는 모양으로, 몇 무리의 젊은이들이나 커플이 선객으로 앉아있었다.
확실히 혼자서는 도저히 먹을 수 없을 듯한 대량의 타코라이스를, 히나에가 센리와 나눠 먹고 있자, 이시와타가 말했다.
"아리무라랑...... 미나미사와 선배는, 어떻게 알게 됐어요?"
"어떻게라니?"라고, 히나에.
"아니, 지금은 연구회가 같지만, 전에는 달랐잖아? 옛날부터 아는 사이?"
"아닝, 고등학생 때부터."
"아리무라는 문예부 부장이고, 나는 학생회장이니까. 그 관계로 말을 나누게 되었어."
보충하듯이 말한 센리를 보며, 히나에가 과연 이라고 생각했다. 확실히 그건 사실이었다.
그랬나요, 라며 이시와타가 끄덕였다.
"아리무라, 의외로 지금의 연구회, 열심히 하고 있구나."
"의외로는 뭐여, 의외로는."
"아니, 진지하게 말해서. 전에는 그런 활동 같은 거, 그렇게까지 제대로 하는 캐릭터가 아니었잖아?"
우, 라고 말문이 막힌 히나에에게, 센리가 "제대로 보고 있나보네."라고 즐겁다는 듯 말했다.
이시와타가 쑥쓰러웠는지 얼버무리듯이 머리를 긁었다.
"......뭐, 캐릭터가 전혀 바뀌지 않은 녀석 따위, 헤키호우에는 거의 없지만 말이죠."
슬며시 이시와타가 이은 말에, 자연히 침묵이 내려앉았다.
잠시 뒤, "뭐, 그렇지."라고 대답한 마스다의 표정은 어딘가 딱딱해 보였다. 아마 자신도 같은 얼굴을 하고 있겠지, 히나에는 생각했다.
커다란 컵에 든 라씨(역주: 인도식 요거트)를 히나에가 홀짝이고 있자, 근처의 자리에 앉아있는 커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길을 주자, 아마도 동년배인 고교생으로 보이는 커플이었다.
진학인가 취직인가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들려온 내용에, 히나에는 기분이 확실히 뒤틀리는 걸 느꼈다. 얼굴에 나타난 것인지, 쿡 하고 센리가 가볍게 미간을 찔렀다.
문지르면서 시선을 돌리자, 이시와타와 마스다도 어딘가 불편한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까. 연구회에 우리들의 부모님들이, 뭔가 건의 비슷한 거, 이것저것 내고 그러지 않았어?"
잠시 뒤, 이시와타가 화제를 돌리듯이 말했다.
히나에는 커플의 목소리를 귀에서 쫓아내듯이, 조금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 꽤 있어. 뭔가 학교 측에 직접 말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야."
"그래. 미안."
"미안하다니, 왜?"
"우리 엄마가 그런 거에 상당히 열심이라서 말야. 뭔가 다른 부모님들과 같이 그룹 같은 걸 만들어서 이것저것 하고 있거든. 이 전에도......"
아, 하고 이시와타가 말을 흐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얼버무리듯이 물을 입에 갖다 댔다.
"왜 그려?"라고, 히나에.
"아니, 별 이야기 아니지만, 모처럼 데이트 하고 있는데 말이야."
그러자 센리가 "신경 쓸 필요 없어."라고, 말을 덧붙였다.
"뭔가, 우리들의 연구회나 증후군에 대한 이야기잖아? 괜찮아."
그래도 이시와타는 말하기 힘든 모양이었지만, 한 번 더 센리가 손으로 재촉하자, "......네. 죄송합니다."라고 끄덕인 뒤 이야기를 시작했다.
"정말 별 거 아닌 이야기에요. 조금 이전에, 코우쨩이랑 같이 알바 면접을 갔었는데요. 편의점의."
코우쨩? 이라고 저도 모르게 히나에가 입 밖에 내자, 마스다가 자신을 가리키며, "나야 나. 마스다 코우타."라고 말을 덧붙였다.
"뭔가 젊은 점장이 하고 있는 적당하다고 할까 가정적인 듯한 곳에서. 알바 지원자입니다 라고 말하니까, 두 사람 다 곧바로 채용할 것 같은 느낌이어서. 일손이 부족했는데 살았다, 같은. 그리고, 일단 이력서라던가 부모의 동의서를 보여달라길래, 가지고 있던 서류 보여줬는데 말이죠......"
거기까지 들은 시점에서 센리는 ".......과연."이라고 끄덕였다. 히나에도 내심 그렇게 생각했다.
"갑자기, 아, 일났다, 같은 느낌이 돼서. 어딘가에 전화라던가 걸기 시작해서. 그러더니, 일단 오늘은 돌아가 줘, 채용할지 어떨지 다시 전화할테니 라고 말해서."
"......그래서, 결국 떨어졌어?"
센리가 뒤를 잇자, 이시와타가 "네."라고 끄덕였다.
"뭐, 헤키호우의 녀석이란 게 알려진 시점에서, 분명히 말썽이 생길 거라고 생각은 했으니, 별로 놀라지도 않았지만요...... 그저, 그걸 안 엄마가 뭔가 화가 나서. 편의점에 전화해서, 왜 떨어뜨렸냐면서 클레임을 걸기 시작해서. 아니, 정말 그 정도의 이야기지만요."
히나에는 "......우와아"라고 크게 중얼거렸다.
이에 뭔가 낀 듯한 표정을 띠우며, 센리가 말했다.
"확실히, 꽤나 열심인 어머님이시네."
"뭐 이 녀석의 집, 엄마랑 둘 뿐이니까."라고, 마스다가 덧붙이듯이 말했다.
과연, 이라고 히나에는 생각했다.
히나에 본인도, 타인의 가정 사정을 진기해 할 환경은 아니지만, 직접적으로 어머니에 대한 것을 화제로 꺼내는 고등학교 남학생은 드물다고 느끼고 있었다. 모자가정이면, 그런 것에 대한 의식이 다르거나 한 것일까.
"랄까 어때 여제, 이런 경우 연구회에 상담하는 편이 좋아?"
센리가 질린 의식을 하듯이, "여제는 그만둬."라고 마스다에게 말한 뒤,
"뭐라 하기 힘드네. 물론, 정말 참고가 됐어. 내가 알고 있는 한에선, 현재진행형으로 알바 면접에 간 애는 헤키호우에 없으니까. 그저, 만약에 연구회에 상담해온다고 하면......"
생각에 잠긴 센리를 보며, 히나에도 머릿속에서 이것저것 시뮬레이션을 해 보았다.
"......어렵겠죠? 정식으로 고용된 상태에서 이유없이 부당하게 해고당했다, 정도라면 모르겠지만."
"......그렇네. 나도 아리무라도 잘 아는 건 아니지만, 도장을 찍지 않은 단계의 구두 약속으로 고용한다고 말했을 뿐이라면, 어떻게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해."
무리라는 표정을 하는 두 사람을 보면서, 이시와타는 당황한 기색으로 손을 저었다.
"아니아니, 알고 있어요, 괜찮아요. 별로 어떻게든 하자고 생각하는 거 아니니까요. 그저, 뭐랄까...... 이게 뭘까-, 싶어서."
중얼거린 목소리를 지우듯이, 근처 자리의 커플의 목소리가 다시 커졌다.
진학과 취업의 이야기는 끝난 건지, 웃고 있었다.
이게 뭘까-, 라고 히나에는 이시와타의 말을 속으로 되풀이하며 끄덕였다. 그리고, 답답해진 기분을 거스르지 않으며, 자신의 음료를 들었다.
"건배하죠."
에, 라고 세 사람이 히나에를 보았다.
"어쨌든 건배하죠. 우리들의 이게 뭘까-, 에. 자 마실 거 들고-"
머뭇머뭇 음료를 드는 세 사람의 망설임을 무시하며, "건배-"라며 히나에가 컵을 부딪혔다.
그 뒤로는 노래방에 간 뒤 해산했다. 히나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지만, "뭐, 무난한 코스겠지만......"라고 센리가 약간 식상한 듯 했다. 전에 히나에가 강행한 노래방에서의, 5시간 반에 걸친 감금이 아직 꼬리를 물고 있는 것 같았다.
남성진과 헤어지고 나서, 센리가 물었다.
"그러고보니 오늘, 이시와타 군한테 뭐라고 하면서 데이트 승낙한거야? 고백은 거절했다며?"
히나에는 다소 껄끄러운 듯이 대답했다.
"......조금, 한 번만 더 천천히 생각하게 해 달라고. 그러니까, 사귀는 걸 OK 한 건 아니고, 그...... 일단은 데이트부터 랄까."
"그래. 그 애, 좋은 애잖아. 멋있고."
"그렇슴까? 마스다 선배야말로, 좋지 않나요, 시끌벅적해서."
말하며 센리를 보자, 뭔가 미묘한 표정을 띠고 있었다. 히나에는 어쩐지 그 기분을 알 것 같아서, 할 수 없이 웃었다.
"뭔가, 맞선 보고 품평회 하는 느낌이라 싫어지네요-. 여자로서 점수가 깎여나가는 기분이 펑펑 드는데요."
"......그러네. 익숙하지 않은 짓은 하지 말란 걸까나. 랄까 너, 맞선 본 적 있어?"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거 뭐가 재밌는 걸까요."
집에 돌아오자, 생각보다 긴장하고 있었던 건지 확 피로가 몰려와서, 히나에는 숙부 부부와의 대화도 적당적당히 한 채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에 누우며 오늘의 데이트를 떠올려 보았다. 박정하게도 떠오른 것은 이시와타네 본인들에 대한 것이 아니었다.
잡화점의 엘리베이터에 대한 것.
근처에 있던 커플에 대한 것.
그리고 이시와타가 말한 아르바이트에 대한 것이었다.
이게 뭘까-, 라고 흘린 이시와타의 말이 의외로 말도 안 되게 자신의 기분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라고 히나에는 생각했다.
문득, 진로희망조사표가 머릿 속에 떠올랐다.
월요일인 내일까지 제출하도록 되어 있었다. 히나에는 또다시 "이게 뭘까-"라고 중얼대며, 피곤한 몸을 무리해서 일으켜, 책상으로 향했다.
다음 날 부터, 학생자치연구회가 한층 더 바빠졌다.
활동의 발표인 종업식이 다음 주말로 닥쳐와, 적어도 이번 주 중에는 모든 질문과 희망사항을 데이터화 해 두지 않으면 시간에 맞출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히나에와 센리는 계속해서 페이스를 올리며 데이터를 정리하고, 미즈키와 마치는 테니스 부를 일단 완전히 쉬면서 청취 조사에 전념하기로 하였고, 하나는 이 틈에 발표의 초안을 작성해서 학교 측에 허가를 받기로 하였다.
"센리 선배, 잠시 괜찮은가요."
연구회실에서 그 초안을, 들고 온 노트북으로 작성하고 있던 하나가 말했다.
"대충 다 된 걸지도......인데요."
"왜 그래?"라고, 센리.
"응...... 각 위원회의 위원장이나 부장의 코멘트가, 별도의 칸에 써져있는 편이, 그럴싸할까 싶어서. 위원회나 동아리의 의견으로써 보기 편할지도 이니까. 그래서, 그 코멘트의 청취는 저보다 학생회에 면식이 있는 선배 쪽이......"
"......헤에."
센리는 데이터를 입력하던 손을 멈추며, 하나 쪽을 보았다.
"나를 써 먹으려 하다니, 믿음직하네."
"죄, 죄송해요."
"아냐아냐, 비꼬는 게 아니라 정말로 감탄하고 있는거야. 좋은 아이디어고, 옳은 판단이니까."
그럼 지금 바로 라고 말하며 센리는, 하나가 "그런, 지금 당장이 아니어도"라고 말리는 것도 듣지 않은 채 나가 버렸다.
히나에도 내심 감탄하고 있었다.
저도 모르게, 하나를 눈으로 좇고 있었다.
"......하나, 뭔가 변했어?"
"뭐가?"
"아니...... 그냥 어쩐지...... 어쩐지 랄까...... 그, 어쩐지."
뭐야 그게, 라고 하나가 웃으면서 "이 틈에 미즈키네한테서 서류 받아올게. 쌓여있을지도 이니까."라고 말하며, 바쁘게 자리를 떴다.
히나에는 변함 없이 그런 하나를 보고 있었다. 시선에 감정이 있었던 건 아니겠지만, 뭔가를 느낀 것인지, 나가기 직전에 하나는 돌아보며 말했다.
"......응응. 변했다곤 생각 안 하지만. 히나, 전에 말했잖아. '소중하기 때문에, 그럼에도 우리는 멀어지지 않으면 안된다. 소중한 것에 응석부려서, 그 소중함을 그야말로 자기 손으로 깎아내리기 전에'...... 맞지?"
히나에는 천천히 나오는 말에, 적잖이 움츠러들면서 끄덕였다. 저번 달이었던가, 하나가 미즈키의 일로 고민하고 있을 때, 확실히 극장에서 한 말이었다. 그 자리에서 떠오르는 대로 한 말이기 때문에, 정확하게는 기억하고 있지 않았다.
"이런 사고방식, 나 꽤나 좋아할지도, 이니까."
어딘지 쑥쓰러운 듯 하나가 그렇게 말하며, 방에서 나갔다.
혼자 남겨진 히나에는 돌아온 대답이 울려퍼지는 동안 묵묵히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작업을 하던 손을 멈춘 채로, 잠시 그러고 있었다.
모르는 장소에서 미아가 된 듯한 불안을 히나에는 느꼈다.
"......말은 잘 하네."
그렇게 중얼대며, 히나에는 가방에서 진로희망조사표를 꺼내들었다.
백지였다. 결국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담임에겐 "연구회의 활동이 바빠서"라고 사실이지만 본심과는 먼 변명을 하며 얼버무렸다.
센리는 간호사를 목표로 하기에, 진학으로 제출했다고 들었다. 그리고 하나는 이과 계열 대학으로 진학을 희망했다. 구체적으로 되고 싶은 직업 같은 건 정하지 않은 모양이지만, 적어도 진학에 망설임은 없는 모양이었다.
전원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하여 최후에는 나 혼자 남았다......인가."
이전이었다면 딱히 망설임 없이 진학을 희망하여, 자신의 학력에 맞는 적당한 대학의 이름을 써 넣었을 거라고 히나에는 생각했다. 그보다, 딱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고작 해야 진로희망조사표, 종이쪼가리 한 장이다. 가령 진학이라고 써 냈다 하더라도 절대로 진학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도 아니다. 나중에 얼마든지 바뀌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는 기분이 들었다.
히나에는 지금까지 읽어 온 소설을 막연하게 떠올려 보았다. 이런 상황에 처한 등장인물은 몇 명이나 있었을 터다. 그 때, 그들이나 그녀들은 어떤 결단을 내렸었던가. 결단을 내릴 때,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전우인 그는.
불쑥, 걸려온 전화에 휴대폰이 울렸다.
표시된 발신자를 보며 의외라고 생각하면서, 히나에는 전화를 받았다. 상념에 잠긴 자신을 건져올리기 위해, 짐짓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챠오 이시와타 군. 뭔 일?"
"......갑자기 미안. 조금 상담하고 싶은게 있어서."
요요기에 있는 AH도쿄종합병원에 히나에가 도착하자, 정면 입구의 로비에 이시와타가 면목 없다는 듯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 미안. 민폐라고 말렸지만......"
"아니아니, 괜찮아. 그 일 자체는 어떻건, 연락해 준 건 고마워."
히나에네 전 증후군자들에게는 익숙한 병원이었다. 증후군의 치료와 연구를 한 몫에 담당하는 병원이면서, 지금도 특히 정신적으로 회복하지 못한 증후군자들이 많이 입원해있다. 히나에 자신도, 반 년 정도 전에는 여기의 침대에서 자고 있었다.
방금 전 일이라고 한다.
이시와타가 의무로 지정된 정기검진을 하러 왔을 때, 아마도 주간지라 생각되는 매스컴이 취재를 하고 있었다. 그 자체는 드문 일도 아니었기에, 내밀어진 녹음기를 무시하고 지나쳐서, 이시와타는 평소대로 검진을 받았다.
하지만, 검진이 끝나고 나와보자, 언제나 항상 동행하던 모친이 매스컴의 취재를 받고 있었다. 모친은 쏟아지는 질문에 대답하면서, 전 증후군자의 보호자의 유지를 모아, 이 병의 문제에 대해 힘을 쓰고 있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한 후, 거기서 학생자치연구회의 이름을 꺼냈다는 모양이다.
학교 측도 증후군의 당사자인 학생 자체의 연구회라는 것을 만들어, 우리들 보호자 모임도 그와 연대해 문제 해결을 모색할 것이다, 라는 발언의 흐름이었다는 모양이다. 매스컴 측은 그 연구회라는 단어를 물고 늘어졌고, 모친은 매스컴이 물고 늘어진 것에 물고 늘어졌다. 매스컴이 연구회에 대해 알고 싶다면, 연구회 측도 매스컴에 증후군의 현재 상황을 이것저것 역으로 취재하는 편이 앞으로의 활동에 도움이 될 것이다, 라고 생각한 모친이 이런 기회는 좀처럼 없다면서 말을 듣지 않았고, 어쩔 수 없이 이시와타가 연구회원인 히나에에게 연락을 넣었다는 것이다.
"학교 측은 뭐라고?"라고 물어온 이시와타에게, 히나에는 고민하듯 눈살을 찌푸렸다.
"지금은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라던데. 뭐 지금의 연구회가 할 수 있는 말은 거의 없지만. 애초에 만들어지고 아직 한 달도 안 지났으니까. 어쨌든 그것만 직접 전달하러 온 거야. 그래서, 어머님이랑 매스컴은...... 혹시 윗층?"
"아아. 5층의 정신과. 그, 언제나 검진 때 대기하는 작은 로비."
와우, 라고 히나에가 과장하듯 신음했다. 병원에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매스컴은 꽤나 허가나 수속 등이 필요할 테지만, 그렇게까지 하다니 다시 봐 줄 부분이다.
완전히 익숙한 얼굴이 된 접수처의 간호사에게 가볍게 목례하고, 히나에는 이시와타와 계단으로 5층을 향했다.
"정말 미안해, 뭔가 말려들게 만든 느낌이라."
"전혀. 몇 번이나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니까. 혹시 어머님이 학교로 직접 연락을 넣었으면, 좀 더 큰 소동이랄까 큰일처럼 돼서, 결국은 연구회 쪽에 귀찮은 형태로 불똥이 날아들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살았다 살았어."
입원 중에 재활도 겸해 몇 번이나 왕복해, 계단 수까지 완전히 기억하게 돼 버린 계단을 다 오르자, 부드러운 배색의 벤치가 몇 자리 놓여있는 로비로 나왔다. 그 구석에 수트 차림의 여성과, 2인조의 중년 남자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매스컴이겠지. 히나에가 눈으로 묻자, 이시와타가 끄덕였다.
가까이 가서, 우선 히나에는 놀랐다.
이시와타의 어머니를, 어딘지 모르게 멋대로 속시끄럽고 엄한 외견을 한 여성일거라고 히나에는 상상하고 있었지만, 거의 정반대였다. 세미롱 스타일의 차분한 머리 스타일이 어울리는 사람 좋을 것 같은 미인으로, 늘씬한 모델 체형이었다. 이시와타의 어머니라면, 아무리 어려도 40대에 가까울텐데, 아무리 봐도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30대 전반으로도 충분히 통할 테지.
"엄마."
이시와타가 말을 걸자, 모친은 금방 돌아보며 히나에를 눈에 담았다.
정면에서 봐도 역시 미인이었다. 일순, 위축될 뻔 했지만, 선제공격 선제공격 이라며 히나에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며 먼저 머리를 숙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시와타 군의 친구인 아리무라 히나에라고 합니다. 헤키호우 학생자치연구회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에 저기, 이번에는......"
어디서부터 말을 꺼낼까, 주저한 짧은 시간이었다. 갑자기 어머님이 히나에의 허리에 손을 뻗어왔다. 그대로 껴안는 형태로 히나에를 끌어들였다.
"자. 이런 귀여운 애도 있다구요. 외견으로 이러쿵저러쿵 말할 수 없겠죠? 전염하는 병도 아니니까요-- 봐요, 전혀 아무렇지 않아요."
다음엔 손을 연인 사이처럼 잡듯이 깍지를 껴 왔다. 그리고 그 손을, 눈 앞에 있는 매스컴에 보여주듯이 들어올렸다.
"엄마!"
이시와타가 책망하듯이 작게 고함치자, 모친은 쉽사리 손을 놓았다. 히나에가 멍하게 있자, 어떤 반응을 바라는지 모를 웃음을 지어왔다.
웃, 하고 솟아오른 감정이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히나에는 필사적으로 참았다.
이 거리를 줄여들어오는 방식은 귀찮은 타입이다. 이전의 자신이었다면 앞의 모친의 발언이 거짓인지 진실인지 판단해서, 그걸 토대로 모친이 기분 좋아할 만한 행동을 취했겠지 라고 히나에는 생각했다.
히나에는 일부러 친한 척 웃어주지 않았다. 약간 모친의 표정이 굳는 것을 알았지만, 그건 무시했다. 사무적인 어조로 강조하듯이 히나에는 말했다.
"방금, 이 건에 대해 학교에 확인을 거쳤습니다. 학교 측--- 랄까 연구회 측에서는, 지금 시점에서 매스컴 여러분께 드릴 말씀은 딱히 없습니다. 죄송합니다만."
매스컴 2인조가 수상쩍다는 표정을 띠었다. 하지만, 먼저 목소리를 낸 건 모친 쪽이었다.
"무슨 말이지?"
"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지금, 연구회는 전교생의 의견을 물어보고 그걸 모으는 작업을 하고 있는 도중입니다. 발족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어떤 의견이 나와 있니?"
"그러니까, 그걸 정리하는 도중인 겁니다."
그러자, 실례할게 라며 매스컴의 한 사람이 끼어들었다. 손에는 녹음기를 들고 있어, 그걸 배려 없이 들이밀었다.
"연구회를 학생 주체로 설립했다, 라는 건 사실인거지?"
"네."
"너는, 그 쪽 책임자야?"
"아뇨, 그저 회원 중 한 사람입니다. 죄송합니다, 너무 이것저것 말하지 말라고 학교 측에서 말했기 때문에, 취재라면 다음에 학교를 통해서 다시 찾아오시길 부탁드립니다만."
2인조는 물고 늘어지면서 더욱 이것저것 질문을 하며 녹음기를 내밀었지만, 히나에는 계속해서 "다음 번에 다시"라고 반복했다. 이런 취재를 받는 것은 처음도 아니기에, 히나에는 대응에 익숙했다. 어쨌든 이 쪽의 발언이나 그에 담긴 감정을, 상대에게 넘겨주면 안 되는 것이다.
"잠깐. 그럼, 너는 매스컴에 묻고 싶은 거나 부탁하고 싶은 게 없니?"
모친이 말했다. 상태를 수습하려는 게 아니라, 히나에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기색이었다.
히나에는 즉답했다.
"없습니다."
"......너희는 증후군 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연구회잖아? 의견을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좀 더 이런 기회를 이용하는 게 어떠니. 사양할 필요 없단다, 이 사람들은 그게 일이니까. 그렇죠?"
모친이 웃으며 이야기하자, 2인조는 물론 그렇습니다 라며 끄덕였다. 웃고 있었다.
"우리 보호자들도 말이지, 이제야 이것저것 움직일 수 있게 됐어. 전부터 병원 측과 함께 증후군에 대해 이해를 촉구하는 강연회를 정기적으로 열자는 제안을 하고 있어서 말이지. 그 취재를 방금 부탁드리고 있던 참이란다. 너희들 연구회도 함께 도와준다면 정말 도움이 될거야."
강연회. 히나에는 처음 들었다.
"죄송하지만, 다음에 다시."
"......아리무라 씨, 였지. 학교에서 이것저것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정말로 좋은 기회야. 이럴 때--"
"엄마, 이제 됐잖아. 아리무라, 가자."
이시와타가 한계라고 말하듯이 끼어들면서, 히나에의 팔을 잡아끌었다.
히나에는 순순히 따르며, 계단으로 향했다. 그러자 매스컴 2인조 중 한 사람이 가까이 와서, 뭔가를 내밀었다. 명찰이었다.
히나에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자, 남자가 말했다.
"너 말이지, 그걸로 괜찮은거야? 저 사람이 말하는 대로, 좀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
내려다보듯 하는 남자의 시선에, 히나에는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있자, "그럼, 뭔가 있으면 거기의 번호로 연락해 줘"라고 말한 남자는 돌아갔다.
"아리무라?"
옆에 있던 이시와타의 목소리가 멀게 느껴졌다.
그걸로 괜찮은거야, 라는 물음이 히나에의 머릿속에서 뱅뱅 돌았다.
자신은 괜찮은건가.
괜찮을 리가 없다. 히나에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계단을 내려갔다.
시부야에 돌아오자, 완전히 날이 저물었다.
히나에는 학교에 돌아가 연구회의 작업을 계속할 셈이었지만, 이시와타가 어떻게든 사과로 뭔가 한 턱 내고 싶다고 해서, 호의를 받기로 했다.
편의점에서 팥만두와 뜨거운 차를 사서, 역 근처에서 간단히 쉴 수 있는 미야시타 공원으로 향했다.
"그런 걸로 괜찮아?"라고, 이시와타.
"충분. 편의점의 팥만두는 얕볼 수 없다고."
적당한 벤치에 둘이서 나란히 앉았다.
히나에에게는 익숙한 공원이었다. 여전히 밤에도 강한 조명으로 밝고, 노숙자들이 어슬렁대고 있었다. 추운 바깥 공기에 맞춰서인지, 공원의 안 쪽에서 자원봉사자들이 국물을 끓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시와타가 거북해하고 있어서, 히나에는 자기부터 말을 꺼냈다.
"미인인 어머니잖아?"
"......그런 사람이야."
곤란한 듯이 이시와타가 한숨을 쉬었다.
"스스로 자신이 있는 거야. 지금은 예능사무소의 매니저지만, 원래는 모델이었던 모양이라서 말야. 자신이 예쁘다는 걸 알고 있어."
"......뭐, 그런 느낌이었지만."
히나에는 끄덕였다. 매스컴 2인조와 이야기하고 있을 때, 명백하게 자신의 용모를 무기로 삼고 있는 느낌이었다.
젊은 외견과 분위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자식에게 형제나 친구처럼 다가갈 수 있는 타입이다. 이시와타가 아무렇지 않게 모친의 이야기를 화제로 꺼내는 이유를 히나에는 알게 된 기분이 들었다.
"확실히 그 사람이라면, 알바처에 전화 한 통 정도는 걸 것 같구만."
"......옛날부터, 말하는 거랑 행동하는 게, 하나하나 맞는 사람이야. 하지만 말이지......"
이어지는 말은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하고 싶은 말을 히나에는 알았다.
"이게 뭘까-."
이전에 이시와타가 한 말을 히나에가 중얼거리자, 이시와타가 웃었다.
그리고 "그러게말야."라고 말하며 음료를 들이켰다.
히나에는 웃어줬다. 그 때 처음으로, 조금 이시와타에게 흥미가 생겼다.
다시금 옆에 있는 이시와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자, 확실히 센리가 말한 듯이 잘 생긴 부류에 들어가는 걸지도 몰랐다. 어머니 쪽 피인 걸까.
당돌하게 눈이 맞았다. 히나에는 얼버무리듯 물어보았다.
"에 그러니까...... 아, 이시와타 군은, 진로희망조사표 냈어?"
"아...... 일단. 취직으로."
"에, 거짓말"
히나에가 놀랐다. 1학년 위인 센리의 학년도 그렇지만, 히나에의 학년에도 대부분 진학을 희망했다. 한 학년에 몇 명 뿐인 취직희망자도, 확실히 전원이 자영업으로 가업을 돕는 형태였을 터이고, 물론 이시와타는 그렇지 않겠지.
"아리무라는?"
"...... 아직 안 냈단 말이지. 재촉당하곤 있지만."
"망설이고 있어?"
"음-글쎄...... 응. 그렇네. 망설이고 있어."
"...... 나도야."
엣, 이라며 히나에가 놀라자, 이시와타는 어깨를 으쓱했다.
"취직이라고 희망은 냈지만 말야...... 아니, 이제와서 하는 말이지만, 엄마가 권한 거야, 취직으로. 별로 공부하고 싶은 것도 없고, 뭐, 지금까지 폐를 끼쳤으니까. 취직으로 전혀 상관없지만."
모자 가정이라고 마스다가 말했던 것을 히나에는 떠올렸다. 그리고, 증후군에 대한 것도. 폐를 끼쳤다고 모친 쪽이 생각하는지 어떤지는 알 방법이 없지만, 확실히 여자 혼자서 증후군인 아들을 키우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본인도 학력이 높은 사람은 아니니까. 대학이나 전문학교의 단위를 하나 늘리는 것보다, 알바 하나라도 더 경험하는 쪽이 절대로 장래에 도움이 된다는 게 입버릇이라서. 예의 편의점 건도, 엄마가 말을 꺼낸 거였어."
"......그래."
"그래도 뭐, 이걸로 된 건가 싶어서. ......아리무라는? 공부하고 싶은 거라든가 없어? 흥미 있는 일이라거나."
공부하고 싶은 것. 팟 떠오르는 건 없었다. 소설을 읽는 건 좋아하니까, 출판이나 편집 쪽 방면은 흥미가 있다면 있었다. 하지만 전문적으로 공부해서, 장래의 길로서 어떤가 까지는, 히나에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만약에 진학으로 조사표를 낸다면, 희망하는 대학이나 학부를 써야 한다. 솔직히 생각하면 문학부겠지. 취직으로 낸다면 출판사 같은 데려나. 하지만 고졸으로 들어갈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하면 얼마 안 될 것이다. 애초에 헤키호우 졸업이라는 게, 단순히 고졸 자격으로 문제 없이 인정될지 어떨지도 의문이었다.
"......어렵구만."
뭐에 대해서 그렇게 중얼거린건지 히나에는 스스로도 몰랐다. 하지만 그대로 벤치에서 일어났다. 슬슬 돌아가지 않으면 오늘분의 데이터를 정리할 수 있을지 의심스러워진다. 이시와타도 그 이상 깊이 물어보지 않았다.
공원에서 나오려고 입구 근처에 도착했을 때, 히나에는 발을 멈췄다.
원래는 주차장이던 입구 옆 공간이었다고 들었다. 거기에는 텅 하니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넓게 펼쳐저 있었다.
"......"
거기에는 원래, 한 대의 캠핑카가 세워져 있었다. 지금은 경찰이 차량 째로 들고 가 버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출입금지 테이프나 구획 정리용 라바콘 등은 치워져 있었다.
공원에서 살 곳을 찾고 있을 터인 노숙자들도 발을 들이지 않는 모양이었다.
"--리무라. 아리무라?"
핫 하고 히나에는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응, 왜?"
"아니, 어떨까나?"
"......어떠냐니?"
아무래도 이시와타는 뭔가를 물어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히나에는 당황하며 얼버무리듯 손을 저었다.
"미안미안, 잠깐 멍 때리고 있었어. 왜 그래?"
"......아니, 괜찮아. 별 거 아니었어. 오늘은 정말 미안. 학교에서 또 보자."
손을 들고는 걸어가는 이시와타를 히나타는 눈으로 배웅했다.
학교에 돌아가려고 발을 움직였을 때,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빈 캔이 하나 굴러다니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히나에는 그것을 주워들었다. 그 바람에, 주머니에서 뭔가가 떨어졌다.
아까 받은 명찰이었다.
그걸로 괜찮은건가.
히나에는 한숨을 쉬며, 주운 빈 캔을 근처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리고 지나가던 얼굴이 낯익은 노숙자를 발견해, 말을 걸었다.
겐 씨라는, 매일 말하는 과거가 바뀌는 떠들썩한 사람이다. 조금 잡담을 나눈 뒤, 라이터를 빌렸다. 공원에 있는 흡연구역까지 안내받고, 놓여있는 재떨이에서 그 명찰을 불태웠다.
학교에 돌아와 센리와 하나에게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할 즈음에는, 명찰에 적혀있던 기자의 이름조차 히나에는 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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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했다고 생각했는데 복붙 해 보니 그렇지도 않네요...
분량으로 치면 3장 절반에서 2/3 정도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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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봐주세요! | 17.04.23 14: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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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ㅋ | 17.04.23 14: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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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랄까 를 붙여썼더니 지.랄로 인식.... | 17.04.23 14: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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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랄까 엌ㅋㅋㅋ | 17.04.23 14:2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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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올리는 것보다 더 많이 번역은 해 두고 천천히 올리고 있었는데 시험기간이라 더 못하고 그냥 다 올렸더니... ㅋㅋ | 17.04.26 00:39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