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명성에 걸맞게 엘레강박의 집은 상당히 호화로웠다.
"자, 이쪽입니다."
탄탄한 몸매의 젊은 운전기사 노원이 조은비 요원을 2층으로 안내했다.
엘레강박의 시체는 2층 창가 옆에 엎어져 있었다. 황금으로 된 가위가 +자 모양으로 벌려진 채 한쪽 날이 등에서 심장을 향해 깊이 꽂혀 있었다.
흉기가 된 황금가위는 젊었을 때 엘레강박이 세계미용대회에 출전해 당당히 우승을 하고 부상으로 받은 것이었다. 사건현장인 2층의 장식장에 보관해 왔는데 범인이 장식장 유리를 깨고 꺼내 흉기로 사용한 것 같았다.
허술한 거실 장식장에 황금으로 된 값비싼 가위를 보관해 왔다면 의아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집안 전체의 보안시스템을 살펴보면 결코 허술하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집안의 대문과 현관, 담장 곳곳에 성능 좋은 도난경보기와 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감시카메라 녹화테이프를 일일이 확인하고 난 조은비 요원은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망추정시간인 어젯밤 10시경 집안에는 죽은 엘레강박 이외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녹화테이프를 보면 며칠사이 엘레강박의 집을 드나든 방문객이 한 명도 없었다. 엘레강박은 어제 오후 6시경 혼자 집으로 돌아와 줄곧 집에 있었고 오늘 아침 운전기사인 노원이 엘레강박을 태우러 갔다 시체를 발견했다. 노원은 초인종을 누르고 전화를 해도 대답이 없어 열쇠로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감시카메라 녹화테이프를 보면 집안으로 들어갔던 노원은 5분쯤 지나 허겁지겁 집밖으로 나왔고 10분쯤 지나 119구급대원들과 함께 다시 집안으로 들어갔다.
2층 거실의 닫혀 있는 창문을 살피던 조은비 요원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방충망이 30Cm가량 일직선으로 찢어져 있었다. 마치 칼로 찢은 듯했다.
"시체를 발견했을 때 창문이 지금처럼 닫혀 있었습니까?"
조은비가 노원에게 물었다.
"예. 닫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시체를 발견했을 때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고 휴대전화로 119에 신고한 뒤 곧바로 밖으로 나가 구급차가 집을 빨리 찾을 수 있도록 집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렇데 집안에 모기와 나방이 들어와 못나가고 있네요. 뭔가 좀 이상한데?"
방충망과 창문 사이에 갇혀 있는 곤충들을 보며 조은비가 중얼거렸다.
2층 거실 창밖을 내다보니 20미터쯤 떨어져 있는 도로 맞은편에 ‘엘레강박 미용센터’라는 간판을 단 5층짜리 건물이 보였다. ‘엘레강박 미용센터’는 엘레강박이 직접 운영하는 미용실과 미용학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엘레강박 미용센터의 2층 화장실과 3층 미용학원 실습실에서 엘레강박 저택의 거실 창문이 보였다. 이곳저곳을 수색하던 조은비는 미용센터 2층 남자화장실 안에 있는 휴지통에서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일부러 자른 것처럼 똑같은 부위에서 부러진 가위 손잡이 4개였다. (사진의 1번)
버려져 있는 가위 손잡이가 어떤 종류인지 조사를 해보니 사진의 2번과 같았다. 이 날카로운 가위는 엘레강박 미용실과 미용학원에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엘레강박의 등에 꽂혀 있던 황금가위와 모양이 똑같았다.
조은비가 조사를 해보니 가장 유력한 용의자가 바로 아침에 시체를 발견한 운전기사 노원이었다.
노원은 1년 전까지만 해도 프로야구단의 2군 투수였다. 그런데 어느 날 자선 헤어디자인 패션쇼에 참가하며 엘레강박을 만났고 그것을 계기로 비전 없는 야구를 그만두고 엘레강박 밑에서 미용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에 엘레강박은 노원이 재능이 있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두 사람은 금방 친해져 허물없는 사이가 되었는데 사실 그 관계는 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엘레강박은 동성연애자였는데 엘레강박이 탐내고 있었던 것은 노원의 재능이 아니라 운동으로 단련된 잘빠진 몸매였다.
어느 날 노원은 엘레강박의 집으로 거처를 옮겼고 엘레강박의 자동차 운전과 미용센터 운영을 떠맡았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난 며칠 전, 엘레강박이 갑자기 노원에게 집에서 나가줄 것을 요구했다. 엘레강박에게 새 애인이 생긴 것이었다.
"노원씨, 어젯밤 10시경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저는 그 시간에 저 앞에 있는 미용센터에 있었습니다. 미용센터의 문을 닫는 것도 제 일이죠. 어제도 다른 날처럼 밤 10시께 미용센터 문을 닫았고 그 이후에는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셨습니다. 새벽 2시쯤 집으로 돌아갔죠."
"혹시 어젯밤 문을 닫을 때 미용가위 두 개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지 못했습니까? 종업원에게 물으니 밤사이 미용가위 두 개가 없어졌다고 하던데요."
"그래요? 밤에 없어진 것이 확실하답니까? 어젯밤 거기까지는 꼼꼼히 점검을 하지 못했는데…"
조은비는 노원을 의심하고 있었다. 비록 2군 출신이어도 프로야구팀의 투수였다면 날카로운 흉기를 던져 20미터쯤 떨어져 있는 사람을 어렵지 않게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조은비가 엘레강박의 시체를 부검한 법의학자에게 의견을 이야기하자 일리가 있다고 말했다. 노원의 몸에 난 상처가 흉기인 황금가위 날보다 약간 큰 것으로 보아 던져져 회전하며 날아온 물체에 찔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기전문가들에게 물어보니 비록 투수출신이라 할지라도 일반인이 멀리서 칼이나 가위를 던져 사람을 죽이는 것은 쉽지 않다고 했다. 투수라면 칼이나 가위를 던져 목표물을 맞히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만 날 부분부터 목표물에 맞아야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데 그럴 수 있을 정도로 수련을 쌓으려면 상당한 기간이 필요했다.
아직 군대조차 갔다 오지 않은 노원은 칼이나 가위 같은 흉기를 던져 꽂히게 하는 기술이 없었고 흉기로 쓰인 황금가위도 화살과는 달리 복잡하게 생겨 깃털을 붙이는 등의 장치를 하더라도 날아가 꽂힐 것 같지도 않았다. 또 그런 방법이 가능하다고 해도 공기저항을 이용해 날부터 날아가게 하는 방법은 흉기가 회전하지 않고 일직선으로 날아가기 때문에 회전하던 물체에 찔린 것과는 상처부위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엘레강박이 살해될 때 집 안에 사람이 없었으니 범인은 밖에서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컸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하자니 또 다른 생각의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최근 엘레강박의 집에 드나든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밖에서 황금가위를 흉기로 사용하려면 누군가 황금가위를 며칠 전에 미리 훔쳐냈어야 하는데 황금가위는 유리를 깨지 않는 한 훔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솜씨 좋게 훔쳐냈다고 해도 애지중지 하는 황금가위가 며칠 동안이나 사라졌는데 엘레강박이 모르고 있었을 리 없었다.
"그런데 미용센터 2층 화장실에서 발견된 가위 손잡이는 무슨 의미일까?"
엘레강박의 집 주변을 조사하던 한 요원이 집 근처의 하수구에서 손잡이 부분이 없는 두 개의 가위를 찾아냈다. 화장실에서 발견된 가위 손잡이와 맞춰보니 딱 맞았다. 그리고 검사결과 그 2개의 가위에서 엘레강박의 혈액이 검출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진짜 흉기는 도대체 어떤 거야…?"
손잡이 부분이 잘려나간 가위 두 개를 가지고 퍼즐을 맞추듯 이리저리 만져보던 조은비가 갑자기 손뼉을 쳤다.
"그래, 범인은 역시 노원이었어!"
[문제] 노원은 어떤 방법으로 엘레강박을 죽이고 알리바이를 만든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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