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닝비버] 게임 디자인에서 청각만이 있을 때, '플로리스 다크니스'
그러나 한편으로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타이틀도 있다. 지난 11월 진행된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서 굿게임상을 수상한 올드 아이스의 ‘플로리스 다크니스’가 대표적인 예다.
플로리스 다크니스는 ‘시각장애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모두가 같은 플레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획된 게임’이라는 지향점을 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느껴졌던 것은 앞세우는 가치가 아니었다. 게임 플레이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시각적 요소를 배제하고 어떻게 게임 플레이와 메커닉이 성립할 수 있는가?에 대한 궁금증이기도 했다.
지난 8월 얼리 액세스를 시작한 플로리스 다크니스는 자신들이 내건 가치를 달성하기 위한 나름의 방법을 찾았다. 이들이 보여주는 게임 플레이 메커닉은 시각이 없더라도 게임 플레이를 어떻게 성립하도록 만들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같았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다루었던 게임 제작 방법론을 적용할 수 없다는 의미로도 이어진다.
감각을 하나 차단하고 접하게 되는 플로리스 다크니스는 시각을 가장 직접적인 정보 전달 창구로 사용하지 않는다. 미로 속에서 길을 찾는다는 어찌보면 간단한 플레이지만, 시각이 없기에 청각만이 플레이어가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그리고 미궁 내에는 플레이어를 위협하는 요소들도 존재한다. 장애물이나 차단벽은 물론이고, 절벽 / 화살 함정과 독가스 함정 / 괴물 등 플레이어를 예상하지 못하는 지점에 빠뜨리는 요소들도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청각만을 통해 인지되는 것이다.
게임 플레이에 있어 중심이 아닌 보조적인 수단이었던 청각만이 존재하기에, 플로리스 다크니스가 가져다주는 경험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결과물로 이어진다. 독특함의 첨단부에 자리하는 경험이자, 쉽사리 경험지 못하는 새로운 형태의 플레이를 제공하는 셈이다.
청주에서 홀로 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올드 아이스의 박재형 대표. 이번 버닝비버 2023에 참가한 올드 아이스 부스에서 그를 만나, 너무도 인디스러움을 보여준 독특한 발상과 설계에 대해서 약간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올드 아이스 박재형 대표
● 스팀 얼리 액세스에서 해보고 감탄을 금치 못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러한 타이틀을 개발하게 되었나요.
= 처음에는 우리가 이렇게 즐겨하는 게임이라는 것 중에서 시각 장애인 분들이 자유로이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은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탈출 장르를 좋아하게 되었는데, 이를 시각 장애인 분들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보자 하는 생각에서 출발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주목을 받기는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뭔가 계산을 해서 만든 것은 아니었고요. 저도 눈을 가린 상태에서 테스트를 하고. 그 분들 입장에서 어떻게 재미있게 다가오는 지를 체험하고 상상을 하면서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 개인적으로 놀라웠던 점은 그거거든요. 시각적인 요소를 배제하고도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게임 디자인이 성립할 수 있을까. 이 부분이었는데, 실제로 게임 플레이가 잘 정립되어 있어서 정말 놀랐습니다. 이걸 구현하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 거기서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지금처럼 한 칸씩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3D 공간에서 움직이면서 길을 찾는 것으로 게임을 만들었는데요. 이게 게임이라도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시뮬레이션의 느낌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그 다음에는 천장이 달린 공간을 배경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 한정된 공간에서 플레이가 진행되도록 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방식이 된 거군요.
= 다만, 이 과정에서는 벽까지 내가 얼마나 거리가 있는지. 거리를 재는게 힘들게 됐습니다. 그래서 한 칸씩 움직이는 것으로 구성을 해서 미궁을 돌파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샛길이 있는지 없는지를 모르는 문제가 있었죠. 시각이 없어서 주위를 살필수도 없고요. 그래서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하는 방식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 그것 만으로는 부족했을 것 같기도 한데요. 아무래도 시각이 빠지니까 상황 판단을 하기가 어렵고. 평소에 청각에만 의지한 경험도 없다보니 더 그렇고요.
= 어디로 가야할지를 찾기가 힘들기도 한데, 이 또한 청각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괴물의 발소리가 가까워진다면 그 쪽 방향에는 길이 있는 셈이니까요. 거기서도 플레이어가 새로운 길이 있구나. 라는 점을 인지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독가스 함정 같은 경우에는 발동하기 전에 가스 소리가 나서 플레이어가 이동하도록 한다거나. 이런 식으로 청각에서 줄 수 있는 정보 전달을 최대한 활용하고자 했습니다.
● 미술품 같은 경우에는 시각장애인 분들도 감상할 수 있도록 촉감을 활용하는 방법도 제시되고 있더라고요. 패드 진동 등으로 촉감을 활용하는 방법도 고민하셨을 법 한데요. 패드 진동도 피드백이 확실하니까요.
= 촉각도 고민은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제한적인 면이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에는 시각장애인 분들도 컴퓨터를 쓰시는 것은 알고 있으니까, 키보드 정도는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패드도 진동이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시각 장애인 분들이 게임 패드를 얼마나 가지고 있으실까?’하는 거죠.
● 아. 그 생각은 못했네요. 실제로 키보드를 사용하시니, 그 면에서는 키보드가 선택지가 될 수밖에 없네요. 보유하고 있고. 익숙하고. 키도 버튼보다는 명확하고 크니까. 인지하기도 쉽고요.
= 아무래도 그렇습니다. 컴퓨터를 사용한다고 하면, 다 가지고 있으시니까요. 그래서 조작도 보시면 방향키(WASD)와 스페이스바 / SHIFT 와 같은 키만 사용하고 있습니다.
● 앞선 목표는 시각장애인 분들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인데, 실제로 반응은 어떤가요. 해외의 반응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 영어 버전이 있기는 한데, 따로 홍보는 하지 않아서 그리 알려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외국 스팀 큐레이터 분 중 하나가 플로리스 다크니스 관련해서 글을 올려주시기도 했습니다. 이 분은 본인도 시각 장애인시고 큐레이팅 하는 타이틀도 시각 장애인들이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을 전문으로 다루시고 있고요.
● 소리를 정보의 창구로 사용한다면, 이 음향을 조정하는 것에 공을 많이 들이실 것 같은데요. 공간감을 주기 위한 고민들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 일단은 엔진 내에 공간 음향이 되서, 엔진 내부에서 거리와 위치를 지정하면 공간감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리고 각 동작을 플레이어들이 인지하도록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화살 함정에서 화살이 날아올 때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 경우에는 발사되는 소리 / 화살이 공기를 가르며 날아오는 소리 이런 식으로 발사가 되었음을 인지시키고요. 그 때 방패를 들어 막으면 튕기는 소리 /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 등으로 안전하게 막고 화살이 떨어졌음을 인지시키는 방식입니다.
● 스팀에서 가격이… 1만 2천 500원. 얼리 액세스를 진행하고 계십니다. 현재 개발 진척은 어느 정도가 되었나요.
= 현재 개발은 100스테이지 중 60 스테이지까지 개발이 된 상태입니다. 혼자 개발을 하고 있기에 시간은 조금 걸릴 것 같습니다. 다만, 현재까지 개발하고 업데이트 한 것들이 데모 버전의 기능을 길게 늘린 것과 같아서, 나머지는 새로운 기믹을 추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를 고려하면 모든 콘텐츠를 선보이는 데에는 빨라야 내년이 될 것 같습니다.
● 새로운 기믹 같은 경우에는 어떤 식이 될까요. 대략적으로 설명을 해주신다면?
= 일단은 화살 함정이 아무데나 막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파악하고 막아야 하는 형태.. 그러니까 몸을 돌려서 막는 식으로 바뀌는 것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이외에도 밟았을 때 미로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게 한다거나. 하는 기믹을 보여드리고자 합니다. 다만, 이런 것들은 게임에 익숙해지는 시점에서 추가될 예정입니다. 익숙해졌을 때 다른 플레이를 제공하는 형태입니다.
정필권 기자 mustang@ruliweb.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