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백 外 다수,
창작물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허구를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게
사람의 업이지.
-서머타임 렌더-
룩백을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창작물은 무력한 허구에 불과한가.
현실의 문제가 닥쳐올 때 물리적으로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하는 허구는, 그걸 만드는 일인 창작은 과연 어떤 의미인가 하는 것 말이죠.
-룩백은 고통스럽고 기약 없는 창작을 위해
모든 걸 쏟아 붓는 창작자들을 대변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누군가 저에게 창작물이 너의 인생을 바꾸었냐고 묻는다면 확실히 이렇다 대답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되돌아보면 일시적이거나 미약하고 인생에서 겪은 실제 사건들 이상으로 크게 내 길을 뒤틀었는가 하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거든요.
-페르소나5는 내게 싸울 용기를 주었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평범히 살다 보니
최근엔 나 또한 어느새 작품 속 침묵하는 시민 1이
되어버린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창작물은 허구입니다. 가끔 현실을 기반으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이야기의 흥미나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따라 조금, 때론 많은 각색을 첨가해 허구의 것으로 바뀌어 저희를 찾아오죠.
실재하는 현실의 사건들은 큰 영향을 줍니다. 예를 들어 당장 내가 오늘 직장에서 짤리는 사건이 벌어지면 현재, 미래, 어쩌면 과거의 어떤 것들까지 개인의 인생에 영향을 주게 되죠.
꼭 내가 직접 겪지 않은 사건이라도 그렇습니다. 나와 내 주변의 누군가가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지 않더라도 다른 지역, 나라의 큰 사건이 벌어지면 크던 작던 개인 또한 영향을 받게 됩니다.
끔찍한 참사가 벌어지면 부족하던 사회 시스템이 바뀌기도 하고 온 나라가 축복할만한 희소식이 들려오면 안면식이 없는 사람이라도 괜시리 같이 기뻐지곤 하죠.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버블경제 붕괴 이후
사회에 절망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이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작품이다.
이름조차 알지 못했던 문학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에 다 같이 기뻐하고 지구 반대편의 청년들이 대통령이 멋대로 일으킨 전쟁에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면 정치 사회에 관심이 없더라도 어떠한 감정이 들기 마련이죠.
이건 우리가 창작물을 볼 때도 꽤나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에 따라 현실의 일보다 더 몰입하고 감정의 동요를 느끼며, 어느 땐 나의 일보다 더 큰 영향을 받게 되기도 하는 것. 그게 창작물이 가진 매력이자 근원적인 의미라 생각합니다.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는 소통과 이해를 주제로 한 뛰어난 반전주의 작품이다.
그리고 그 주제는 최신작까지 이어져 오며
여전히 반전과 소통의 중요성을 전해주고 있다.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서브컬쳐도 흔히 대중적이라 말하는 드라마, 영화와 다르지 않습니다.
영화나 드라마가 배우와 배경, 소품들을 카메라에 담고 그걸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펼쳐내듯 애니메이션이나 게임 또한 그림이나 그래픽 등을 디지털 혹은 종이에 펼쳐 원하는 바를 그려내죠.
이런 창작은 시대를 적던 많던 반영하고 만들어진 이야기는 어떤 이에겐 현실의 그것 만큼이나 큰 파장을 일으킵니다.
그게 현실에서 벌어지기 힘든 일이라고 하더라도요.
공상 속에나 존재하는 거대로봇이 괴수들과 싸우거나 한 사람의 목숨과 세계를 저울질 해야 하는 세카이계 작품들은 분명 현실과 크게 동떨어져 있는 설정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 뿌리는 결국 현실에 있기에 충분한 공감과 감정을 일으킵니다.
물론 꼭 이런 커다란 상황이나 전쟁 같은 참혹한 사건을 다뤄야만 와 닿는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이들에게 무언가에 몰두하는 열정을 일깨워준 슬램덩크.
물론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사건을 보는 것도 창작물의 매력 중 하나 입니다.
하지만 꼭 창작물이라고 해서 현실에 없는 것 만을 그려낼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당장 나도 할 수 있는 그림 그리기나 노력은 필요하지만 불가능하지는 않은 스포츠나 밴드를 다룬 작품들도 그 깊이와 완성도에 따라 현실의 우리에게 크나큰 영향을 줄 수 있죠.
-걸즈 밴드 크라이는 밴드와 음악을 주제로 깨지고
부서져도 흔들리지 않는,
스스로가 믿는 옳은 것을 관철하는 주인공을 내세워
현실의 나를 돌아보게 하고 또 응원하게 만들었다.
가끔 창작물은 허구라는 벽을 넘어서려 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 또한 창작이고 허구의 영역이지만 메타픽션이라는 장르는 허구이고 창작물이기에 시도될 수 있는, 독특하고도 특별한 인상을 남기는 장르죠.
어떨 땐 잘못 사용되어 너무 그것에 매몰되거나 난발해 감상을 망치기도 하지만 메타픽션은 현실에서 절대 느낄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한다는 데 있어서 창작물만이 보여줄 수 있는 필살기라는 생각도 드네요.
-유치하단 인식이 있는 가면라이더도 이런 도전했었다.
제 4의 벽을 깨는 설정으로
'우리는 허구의 존재에 불과하다'라는 방황을
주인공들에게 전했음에도
'누군가 기억하고 있다면 거기에 우리들은 존재한다'
는 말로 극복하는 아주 낭만적인 이야기로.
물론 창작물을 이렇게 까지 생각하고 영향 받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사실 창작물을 본 뒤 나오는 감상은 보통 재밌다, 재미없다에서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조금 더 나아가면 연기가 어떠니 작화가 저렇다느니 하는 얘기도 하지만 금방 휘발되기 마련입니다.
그런 점에서 창작물은 그저 가벼운 유희, 무력한 허구가 맞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정론을 약간 벗어나서 저런 심도 깊은 주제나 해석이 필요한 요소가 없다면 의미 없는 창작물일까요?
-러브 코미디 장르는 한때 많은 인기를 구가하지만
동시에 그저 가볍기 만한 장르로 폄하 받기도 한다.
근데 그럼 어떠한가 재밌는데.
창작물은 허구이기에 현실에 물리적으로 영향을 줄 순 없지만 그로부터 발생하는 감정 등의 파장은 현실의 우리가 느끼기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게 꼭 좋은 주제나 역사적, 맥락적 의미가 존재해야지만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코미디는 그 특성 때문에 폄하 받기 쉽지만 화면 너머의 우리에게 웃음을 주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고 연애물은 끝에 남는 것이 잠깐의 설렘 뿐 일지라도 감정을 크게 요동치게 하는 것 만으로도 그 시간이 아깝지 않죠.
-일명 '미소녀 동물원' 이라 불리는 작품들도
즐거웠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창작물은 누군가에겐 잠깐의 유희, 그저 스쳐 지나가는 허구일 수 있습니다.
저는 그것 또한 잘못된 생각이 아니라고 봅니다. 창작물은 창작자의 손을 떠난 순간부터는 받아드리는 이의 몫이고 어찌 받아드리든 그건 청자의 자유이듯 창작물에 대한 시선도 청자의 자유인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많은 작품을 보고 그러다 반한 작품을 짧은 식견이지만 나름 탐구하면서 즐기는 저도 매번 꼭 분석과 탐구를 전제로 작품을 보진 않습니다.
그래야만 하는 작품도 분명 있지만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들도 많습니다.
대표적으로 크게 고민하지 않고 웃으며 볼 수 있는 비교적 가벼운 러브 코미디 같은 장르는 어떤 대단한 교훈은 주지 않았지만 일상의 좋은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이건 다른 장르의 어떤 작품도 마찬가지고요.
-란마 1/2을 보며 깊은 탐구와 해석을 하진 않는다.
하지만 란마를 보는 시간은 충분히 행복하다.
누군가에게 창작물은 어떤 의미인가 하고 물으면 가벼운 유희, 짧은 일탈, 상상의 소재, 인생을 바꾼 동기 등등 다양한 대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떤 대답이 나오든 다 정답입니다. 앞서 말했듯 받아드리는 것은 청자의 몫이니까요.
저는 창작물을 통해 교훈과 주제의식에 대한 탐구를 얻고 나름의 발전을 해나가면서 조금씩 이지만 나아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래서 창작물은 불씨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그 창작물에 영향을 받았듯 그 창작자 또한 어떠한 창작물, 사건에 영향을 받아 그런 것들을 만들게 된 것이니까.
작은 불씨를 창작물을 통해 옮기고 다른 누군가를 뜨겁게 만들어 또 다른 불씨를 타오르게 하는 것.
그게 제가 생각하는 창작물의 의미입니다.
-SSSS.GRIDMAN은 엄청난 양의 오마주로 유명한 작품이다.
다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여러 작품으로 부터 받은 영향을 자신만의 색깔로
녹여낸 새로운 창작물이다.
1년간 꾸준히 리뷰를 작성하면서 제 리뷰는 언제나 작품에게 보내는 전해지지 못할 러브레터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가끔 화가 나는 작품을 보고 리뷰가 도전장이나 저주서처럼 될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작품을 보고 설레어서 혹은 너무나도 좋아서 그 마음을 최대한 담아내려 노력했습니다.
어떤 점이 좋은지 이 부분은 어떻게 느꼈는지 그리고 왜 사랑하는지.
물론 아마 창작자들에게 직접 전해질 일은 없겠지만 그럼에도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꾸준히 적어올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결과도 성장도 보장되지 않는,
길고 어두운 ‘창작’이라는 터널을 걷는
모든 창작자는 분명 존중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에게 창작물은 어떤 의미인가요?
어떨 땐 울고 웃게 만들고 어떨 땐 가슴 깊이 파고 드는 인상을 남기는 그런 특별한 것인가요?
아님 일상의 작은 쉼표, 짧은 유희거리, 대화를 위한 수단인가요?
어떤 것이든 확실한 게 하나 있다면 그건 창작물은 허구이지만 그저 무의미한 것이 아닌 현실의 우리에게 어떤 감정을 남긴다는 것이겠네요.
세상 모든 창작자들에게,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창작물들에게 전합니다.
자 고개를 들어봐
나에게도 보여줘, 네가 가진 유니버스.
-그리드맨 유니버스 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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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 오드 : 유니버어어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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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버스~ 유니버스~ | 24.12.08 08:2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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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에 대한 말 중에 가장 인상에 남은 두 가지 말이 있습니다. 하나는 라따뚜이에서 나온 "누구나 요리할 수 있다.", 또 하나가 어떤 동방 프로젝트 동인지의 후기에서 나온 "문화는 현실로부터의 도피만이 아니다. 때로는 냉정한 현실에 맞서기 위한 무기로서 쓰이기도 한다." 입니다. 후자의 말은 문맥상 거대담론적인 이야기로 읽히는데 저에겐 창작물, 더 나아가 문화가 그런 의미가 됩니다. 예시로 드신 작품 중에는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가장 부합할 것 같군요. 거칠게 표현하면 오타쿠들의 자위적인 작품을 넘어 사회현상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 마치 환상처럼 보이다가도 시위에 노래가 사용된다든지 교토에 핵폭탄이 투하되지 않은 사실이 마냥 그렇지만은 않겠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창작물이란 그 이전에 본질적인 매력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위의 이야기는 모두 쓸모없는 것이 되고, 현실에 대항하는 것은 문화가 아닌 다른 것이 대체하고 있었겠지요. 그렇지만 수용자로서 작품에 대한 가장 큰 존경은 그것을 현실과 맞서기 위한 무기로써 사용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게 개인의 싸움이든 사회에 대한 저항이든지 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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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작품과 그걸 만든 작가가 작품을 '무기'로 사용하는 것을 원치는 않으리라 생각합니다만 무기 정도는 아니더라도 현실이 변화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쓴 작품들은 여럿 떠오릅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작품인 페르소나 5는 허구임에도 사회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그것에 대한 해법으로 개개인의 각성과 잘못된 지도에 대한 불응을 제시한 작품입니다. 현실의 우리가 이런 메시지에 공감하고 현실에서 불합리한 상황들에 싸워나갈 용기를 얻는 것이 '작품이 무기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의견에 동의합니다. | 24.12.08 08:35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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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 대한 생각은 각자 다르기에 100% 공감하진 않지만 문화적인 결과물로서 어떠한 의미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은 동의합니다. 다만 그것만이 인류의 존재 의미라고 한다면 그외의 모든 행동을 부정할 수도 있다 생각해서 문화와 그것의 향유 뿐 아니라 삶을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를 그려가는 과정으로서 생각하는 건 어떨까 싶습니다. 페르소나 3의 엔딩이 아직까지도 회자되는 이유는 단순히 주인공이 초인적인 힘으로 구세주가 되기 때문이 아니라 엔딩씬의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이제껏 플레이어와 함께하며 게임상의 시간 1년간 만나온 인연과 일상을 되기는 것의 감동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현실의 우리는 섀도타임도 느낄 수 없고 페르소나 같은 것도 아마 없겠지만 페르소나 시리즈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커뮤니티는 현실에서도 경험할 수 있거든요.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그저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는 등의 예술적인 활동을 넘어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24.12.08 08:47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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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구를 믿는 것이 주입식 교육의 폐해인가 라는 점은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허구를 믿는 것은 오랜 인간의 업이고 이건 단순히 교육이 시스템으로서 뿌리내리기 전 부터 있던 문화이죠. 물론 여전히 높은 교육열과 대학에 대한 선망으로 현실에서 압박을 받는 아이들이 도피처를 찾고 그 중 하나가 게임, 애니메이션인 것은 사실이나 이것들이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져서 허구를 도피처로 삼는다는 말로 이어지는 건 논리비약이라 생각합니다. 분명 누군가에게 허구는 도피의 수단일 것 입니다. 말씀하신 주입식 교육과 더해 과도한 교육열은 도피처를 찾게 만드는 이유일 수 있습니다. 이런 걸 다루는 메인으로 다루는 작품이 하나 있습니다. 바보와 시험과 소환수는 공부로 학생들을 서열화하고 나아가 그게 계급화로 이루어지는 작금의 현실을 비판하는 작품입니다. 이것도 그저 허구이고 도피라고 생각하실 수 있으나 이건 말씀하신 현실을 비추고 있죠. 허구는 누군가에게 도피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수 있으나 현실을 되돌아 보게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편적인 판단은 무언가를 평가하고 분류하는데 효율적이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게 그것의 전부는 아닙니다. 적어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 24.12.10 12: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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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하신 부분은 드라마 송곳 같은 작품이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음에도 비교적 외면 받은 사례를 말씀하신 거 아닌가 싶습니다. 현실과 맞지않다. 현실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물리법칙이나 상황상의 전개를 어기면 충분히 받을 수 있는 비판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보여주었을 때 보지않거나 욕하는 얘들이 많은 건 단순히 현실을 여과없이 보여주었다는 이유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반전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전쟁의 잔혹함을 보여준다고 해서 모두 외면 받지는 않듯 결국 장르나 주요 시청자들에 대한 고려가 필요한 부분이 않나 싶네요. 기동전사 건담 UC는 물론 현실에 없는 모빌슈트와 우주전쟁을 다루고 있지 않지만 건담 시리즈 답게 현실의 전쟁을 강하게 비판하는 작품입니다. 병사 한 명 한 명이 내장을 쏟고 팔다리가 잘리는 장면은 안 나오지만 사람의 구조를 닮은 모빌슈트가 마치 병사들의 신체가 찢어지듯 날아가고 부숴지는 걸 보면 대상만 다를 뿐 잔혹한 전쟁의 참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죠. 이러한 현실을 그대로 비추는 작품들도 인기를 끕니다. 허구이기 때문에 믿는다는 건 '현실적인 것보다 판타지를 사람들이 선호하다' 라는 말을 의도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만 아주 개인적인 생각으론 장르에 따라 방식에 따라 받아드리는 사람 따라 창작물에 원하는 허구와 현실의 농도는 다른 것이고 어떤 작품은 반전주의를 표방하고 그 속에서 문제를 탐구하는 시리즈로서 현실의 비중을 크게 주어도 인기를 끌고 어떤작품은 주요 시청자 층이 드라마를 여가수단으로서 잠깐의 휴식으로 대하는 것에 비해 너무 적나라하고 현실적인 문제를 현실적으로 끌고가니 그 피로감에 비교적 외면 받은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송곳이 절대 나쁜 작품은 아니지만 분명 취향을 타는 작품이듯 단순히 현실을 보여주면 싫어하고 허구여야 욕하더라도 본다 보단 타겟층에 따라 작품이 보여주는 농도를 달리 잡는 게 좋을 것 같다 정도로 저는 생각합니다. | 24.12.10 14:2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