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시간 40분 만에 불길 모두 잡혀
소방관 신속구조·주민들 침착대피
93명 병원 이송 불구 대부분 경상
울산의 33층짜리 주상복합아파트에서 한밤 중 발생한 대형 화재로 자칫 참사가 빚어질 뻔했다. 소방당국과 주민들은 기민하면서도 침착한 대처로 인명피해를 막았다. 가연성 건물 외장재와 강풍의 영향으로 진화에 애를 먹인 불은 15시간40여분 만에 꺼졌다.
9일 울산소방본부에 따르면 전날 오후 11시7분 남구 달동 주상복합아파트 ‘삼환아르누보’에서 불이 났다. 높이 113m에 지하 2층, 지상 33층 규모의 건물에는 127가구 주민 300여명이 거주하고, 음식점 등 상가도 있다. 13층 부근에서 처음 난 것으로 추정되는 불은 가연성 외장재를 태우면서 여러 개 층을 건너뛰며 건물 외벽을 타고 삽시간에 꼭대기층까지 번졌다. 한때 건물 전체가 불덩어리처럼 보이기도 했다.
불이 시작된 곳은 당초 12층으로 알려졌으나, 목격자의 최초 신고 내용에 따른 것일 뿐 아직 발화지점은 불분명하다. 불티가 강한 바람을 타고 날아가면서 왕복 9차로인 삼산로 건너편에 있는 대형마트 옥상에 불이 옮아붙기도 했다.
소방관들은 신고를 받은 지 5분 만에 현장에 도착해 발화지점을 확인하면서 주민들에게 피난층과 옥상 등지로 대피할 것을 알렸다. 소방 관계자는 “건물이 높고 바람이 많이 불어 진화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먼저 인명구조에 주력한 뒤 본격적인 진화에 나섰다”고 말했다.
아파트 거주자도 대부분 침착하고 일사불란하게 대응했다. 주위에 화재 발생을 알리고, 물에 적신 수건을 입에 대고 자세를 낮춘 채 빠져나왔다. 신생아와 노인 등을 차례로 대피시키는 데 힘을 모으기도 했다. 고층부 주민들은 피난 공간으로 대피해 소방대원들 지시에 따르면서 구조를 기다렸다. 대피층(15·28층)과 옥상으로 대피한 주민 77명은 화재 발생 3시간 만에 무사히 구조됐다. 장모(23)씨 등 주민 93명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중상으로 분류된 3명을 빼고 모두 단순 연기흡입이나 찰과상 등 경상으로 알려졌다.
이날 불길이 외벽을 타고 건물을 급속히 삼킨 것은 건물 외장재가 불쏘시개 역할을 한 탓으로 추정됐다. 울산소방본부 관계자는 “건물외벽에 알루미늄 패널을 붙이는 데 쓰인 가연성 접착제 때문에 급격히 연소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알루미늄 복합 패널은 일반적으로 알루미늄판과 판 사이를 실리콘 같은 수지로 접착한 다음 건물 외벽에 붙인다. 상대적으로 가격이 비싸 고층 주상복합건물에 주로 쓰인다. 알루미늄 자체가 열에 강하지 않은 데다가 판과 판 사이 충전재로 들어간 수지나 접착제가 불에 잘 타 화재에 취약하다.
더군다나 전날부터 울산에 발효된 강풍주의보는 진화를 어렵게 했다. 울산의 최대순간풍속은 시속 30.2㎞를 기록했다. 패널 속에 숨어 있던 불씨가 강풍에 되살아나며 불길이 강해졌다 약해졌다를 반복했다. 순식간에 여러 층에 불이 붙으면서 스프링클러가 동시다발로 작동하면서 옥상 수조에 저장된 물이 금세 동난 것도 진화를 더디게 했다.
소방대원 930여명과 사다리차, 헬기 등 소방장비 148대가 투입돼 이날 오후 2시50분쯤 완전히 불을 껐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발화 지점과 원인, 정확한 피해 규모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울산=이보람 기자 bora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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