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생활시민실천연합 등 조사에서도 ‘번호판 불량’ 여전…가려지고 훼손되고 오염돼
‘오토바이 번호판 잘 보이나’ 설문조사에…전체 응답자의 84% “잘 안 보인다”
오토바이 ‘전면 번호판’ 이야기는 이미 정치권에서도 있어…관련 법 개정안 발의도
국민 대다수가 ‘전면 번호판’ 원하는 것으로 보여…10명 중 9명이 ‘찬성’
“제 동생이 오토바이에 치이는 사고를 당했는데, 번호판에 ‘키링(이 달린 인형)’이 매달려서 (가해자를) 잡지 못했어요.”
앞서 지난달 도로교통공단과 TBN한국교통방송이 주관하고 교육부·경찰청·손해보험협회·초록우산 어린이재단 등 후원으로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회 전국 어린이 안전 말하기 대회’에서 무대에 오른 A양이 발표를 마친 후, ‘혹시 등하교 중에 오토바이로 인한 사고가 날 뻔한 적이 있나’는 심사위원의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이 학생은 등굣길에 총 세 번 횡단보도를 이용한다며, 번호판 가린 오토바이 운전자를 본 적 있다고 덧붙여 무대를 지켜보던 어른들을 대신 부끄럽게 했다.
번호판 가린 오토바이에 동생이 다친 사연이 A양에게 있어서일까. A양과 한 팀을 이뤄 무대에 오른 이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발표 주제는 ‘오토바이로 인한 사고를 해결할 방안’이었다. 이들은 오토바이 운전자들의 ‘번호판 가림’ 행위가 단속을 피하기 위한 수단인 점을 조사를 통해 알아냈다면서, “어린이 안전을 위협하는 사람을 강하게 제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어디선가 불쑥 튀어나와 어린이들을 위협하는 오토바이를 막아달라는 호소는 심사위원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에게도 생각할 거리를 던졌다.
이러한 사정은 안전생활실천시민연합(안실련)과 손해보험협회가 공동으로 진행한 ‘이륜차 교통안전 대국민 설문조사’에서도 비슷한 맥락으로 나타난다.
안실련 등이 지난 10월 서울 구로구 등의 사무실 밀집지역과 주거지역 그리고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인근에서 오토바이 총 769대의 번호판 상태를 점검한 결과, 이 중 10.8%에 해당하는 83대의 번호판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구체적으로는 83대 중 38대의 번호판이 오염됐고, 20대는 가려졌으며, 17대와 8대는 각각 번호판이 변색되거나 훼손됐다. 여기서 ‘오염’은 각종 오물 등으로 번호판 글자와 숫자를 알아보기 어려운 상태를 말하며, ‘가림’은 자물쇠나 끈 등으로 번호판을 일부러 가리는 행위다. ‘변색’은 번호판의 도색이 지워지거나 별도 도색한 행위이고, ‘훼손’은 번호판을 자르거나 구김 또는 과도하게 꺾은 행위를 뜻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안실련 등이 지난달 22~24일 국내 20세 이상 성인남녀 총 55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오토바이 번호판이 잘 보인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83.9%인 469명이 ‘번호판 글씨가 잘 안 보인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씨가 잘 보인다는 응답자는 8.6%인 48명에 불과했고, ‘모르겠다’는 답변은 42명으로 비슷했다.
오토바이 번호판이 후면 하나인 점 등을 들어 정치권에서는 이전부터 오토바이 ‘전면 번호판’ 부착 필요성이 제기됐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해 5월 “이륜자동차는 차체 후면에만 번호판이 부착돼 무인 자동 단속장비를 통해 속도위반 등 위반행위를 적발하는 게 불가능하다”며, 오토바이 번호판의 전면 부착 등을 골자로 한 ‘자동차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이보다 앞서 2020년에는 박완수 국민의힘 의원이 “현행 자동차관리법에서 이륜자동차번호판의 부착 위치를 후면으로 규정해 이륜차 무인단속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오토바이 운전자의 교통법규 준수 의무 강화 등 취지에서 ‘자동차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이들 개정안은 현행 자동차관리법의 ‘이륜자동차는 그 후면의 보기 쉬운 곳에 국토교통부령으로 정하는 이륜자동차번호판을 붙이지 않고는 운행하지 못한다’는 규정을 수정해 ‘전면 부착’도 포함하도록 한다.
다만, 당시 개정안 검토보고서를 보면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앞쪽 범퍼가 있는 자동차와 달리 차종마다 전면부 구조와 형태 등이 다르다는 점에서 번호판 부착 공간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했다. 차체 구조상 대부분 전면이 둥글어 번호판 부착 시 주행 안정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고, 번호판의 날카로운 면면이 운전자와 보행자 부상을 유발할 수 있으며, 자동차 전용 단속 카메라로는 이륜차 번호판 인식이 어렵다는 점에서 입법 취지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도 판단했다.
그럼에도 국민 대다수는 오토바이 전면 번호판 부착의 필요성이 크다고 본다.
안실련 설문조사에서 ‘이륜차 전면 번호판 추가 부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무려 91.8%에 해당하는 513명이 ‘찬성’했다. 반대는 6.4%(36명)에 그쳤다. 아울러 ‘전면 번호판 부착 시 안전운행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냐’는 질문에도 전체 응답자의 79.1%(442명)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안전운행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는 응답자는 17.9%(100명)로 나타났다.
안실련은 오토바이 전면 번호판 장착과 후면 번호판 개편 등 이륜차 시스템의 혁신이 필요하다면서, 이달 중으로 자동차관리법 등 개정안 제출을 국회에 요청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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